콩고양이 8 - 에이 설마~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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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콩고양이 시리즈를 만났다. 이웃님의 리뷰에서 한 번씩 만나던 두식이가 너무 궁금했더랬다. 이상하게 고양이 무리 틈에서 혼자 외롭게 존재할 것 같은 개 한 마리 두식이. ^^ 그런 궁금증으로 읽게 된 콩고양이 여덟 번째 이야기를 맞이하기 전에 두식이의 배경을 좀 찾아봤다.

 

고양이 콩알, 팥알과 같이 살면서 두식이는 자기를 고양이라고 생각했단다. 듣고 보니 이게 너무 웃긴 거다. 아니 그러면, 지금은 자기 자신을 개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추측건대, 내 주변의 존재하는 모든 게 고양이라면 나도 고양이로 생각하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환경의 차이일 수도 있고. 암튼 두 냥이와 너무 잘 지내는 두식이가 의아스럽지만, 이들이 어떻게 같이 지내왔는지 살펴보면 화기애애한 이들 사이가 낯설거나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두식이가 자기가 고양이라고 착각하든 말든, 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 거다. 적어도 이 가족에게는 말이다. 이 가족에게는 고양이와 개만 있는 게 아니다. 거북이에 가끔 고개를 들이미는 비둘기도 있고, 어느 순간 너구리까지 합세했다. 그리고 더 많은 동물이 이 집에 머문다. 이 집에 머무는 인간의 숫자보다 동물의 숫자가 더 많다. 어떻게 이런 집이 있을까 싶지만, 있다. 바로 여기에.

 

 

콩알, 팥알처럼 주인에게 귀여움을 받고 싶지만, 언제나 한발 뒤에서 간절한 눈빛만 보내는 두식이는 두 어른의 손길에도 행복하다. 게다가 엄마와 같은 체형에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바로 다이어트. 살을 빼야 해. 두식이도 엄마도. 둥실둥실 보기에는 귀엽고 예쁘지만, 너무 과한 것은 안 되느니... 콩알 팥알이 간식을 먹을 때도 두식이는 쳐다만 봐야 했다. 그에 콩알 팥알이가 간식을 획득할 수 있는 비결을 전수하는데, 이런~ 이거 제법 설득력 있는 방법이다. ^^ 결국, 두식이도 엄마도 당분간 다이어트 성공하기는 어려울 거란 예고를 하는 듯하다.

 

할아버지 내복씨의 여든 살 생일 파티 후 돌아오니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이 눈에 훤히 그려지고, 우연히 데려오게 된 유기묘 그레이를 돌보고 있던 이 가족에게 그레이의 주인 할머니가 찾아온다. 같이 살았던 정이 그렇게 큰 건가 보다. 그레이가 떠나고 그레이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이 가족이 그레이의 평온한 일상을 살짝 훔쳐보고 와서 안심하는 모습이 뭉클했다. 그리고 내복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일. 아침 식사하라고 내복씨를 부르러 간 콩알 팥알이와 두식이는 깜짝 놀란다. 내복씨가 움직이지 않은 것. 내복씨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고 며칠 후 집에 돌아오는데, 내복씨와 동물들의 사이는 더 애틋해진다. 이 부분을 보는데, 진짜 눈물이 날 것 같더라. 내가 키우는 동물이 나의 안부를 묻고, 나에게 이상이 생겼을 때 크게 짖어가면서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하면, 진짜 감동이지 않은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키우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대는 이런 동물들을 볼 때면 가슴을 꽉 채우는 애틋함이 있다.

 

소소하고 소박한 에피소드에 읽는 재미는 기본이고, 인간 세상에서 느낄 감동이 이 이야기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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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지도
앤드루 더그라프.대니얼 하먼 지음, 한유주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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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길을 헤매지 않게 안내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지도가 소설과 만났을 때는 길 안내 역할 말고 다른 방향의 인도자가 된다. 혹시 비슷하게 느끼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경우 소설을 읽으면서 장면을 상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장으로 그려지는 영상 같은 거 말이다. 문장으로 머릿속 상상력을 더해가지만, 막상 그리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 공간이 이렇게 생겼던가? 이런 구도였던가? 순서를 이렇게 그리면 될까? 하는 온갖 걱정으로 상상은 상상에서 멈추고 완성되지 못하곤 했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소설의 여정을 알려주는 지도, 아직 그 소설을 읽지 못했다면 당장에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지도를 그려낸 작가가 있다.

 

두 작가가 함께 그리고 엮은 『소설&지도』는 소설 속의 세계를 재창조하면서 색다른 재미로 그 작품 속을 헤엄치고 싶게 한다. 여기에서 소개된 19편의 작품은 대부분 고전이면서, 현대소설을 포함했다. 목록만 봐도 이미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게, 무슨 필독서처럼 어디에서나 봤음직 한 제목들이다. 유감이지만 나는 아직 읽지 못한 목록이 대부분이라 더 간절해지는 마음이 있다. 역자인 소설가 한유주는 이미 여기에서 소개된 책을 읽은 독자가 더 흥미롭게 여길만하다고 했지만, 아니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이미 다른 소설을 읽으면서 경험한, 문장으로 떠나는 여행 같은 느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일이 두려움이 아니라, 설레고 황홀한 여행을 떠나는 일임을 알게 된다.

 

 

그중에서 첫 작품으로 『오디세이아』의 항해를 언급하고, 긴 여행을 따라간다. 한 페이지에 그려진 여행 후기 같은 느낌이다. 그가 집으로 가던 그 길, 소설 속 문장으로 상상만 하던 그 길의 흐름이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진 분위기에, 축약된 도서 리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햄릿의 엘시노어 성을 비춘다. 막이 오르고 배우는 대본에 따라 연기를 하는 『햄릿』은 그렇게 희곡으로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한 준비 과정처럼 보였다. 이 지도에서 작가가 보여준 것은 무대의 배경이 되는 이미지나 엘시노어 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이동 경로에 맞춘 노선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디로 가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졌던 건지 또 한 번의 상상을 더 한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갈등, 고뇌 같은 감정이 여러 장마다 흐르게 내버려둔다.

 

각자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길을 따라가는 『오만과 편견』은 제목만 들어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 두 주인공 특유의 성격이 연상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성격과 방식의 두 사람이 소설의 마지막에 그려내는 그 훈훈한 마무리를 이미 알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저쪽에서 걷던 두 사람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몇 가지 색으로 이어진 빨간색 실 하나를 풀어놓은 것 같아서 설렌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은 굉장히 특이한 도서관 구경을 하고 온 것만 같다. 무슨 미로일까 싶으면서도 이런 도서관이라면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당연한 생각도 든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스크루지의 시간여행을 독자가 동참하게 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하룻밤 사이에 이곳저곳을 시간 구애받지 않고 날아다니는 듯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그의 과거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 차근차근 쌓여가는 변화를 독자가 함께 느끼게 하는 지도였다. 무인도에 떨어져 탈출을 꿈꾸게 했던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환경에 따른 그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확인하게 한다. 원시적인 느낌도 들지만, 그런 환경에 처했다면 인간 누구라도 생의 원초적인 흐름에 따르게 되지 않을까? 그의 무인도 생활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시선을 가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80일간의 세계 일주,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모비딕 등 여러 작품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꺼낸 지도가 되어 펼쳐진다.

 

 

소설을 한 장의 지도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어떤 것일까 떠올려본 적이 없다. 그만큼 내가 소설을 읽는 동안은 머릿속에서만 머무는 상상이었다는 거다. 편집자이자 작가인 대니얼 하먼과 일러스트레이터 앤드루 더그라프는 그런 상상을 지도로 그려내 독자에게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미 작품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제외하고 추린 50편을 다시 19편으로 정리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50편이 다 담겼다면 독자의 즐거움은 커졌겠지만, 아마 50편이 다 담겼다면 이 책의 가격은 후덜덜하지 않았을까? ^^)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리는 많은 장면, 등장인물의 궤적이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 인물 간 관계도 같은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책 『소설&지도』가 제시하는 지도가 그 상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전한다. 소설은 계속 다양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다가올 것이고, 그때마다 작품에서 독자가 느끼는 의미 또한 다르겠지. 매번 다른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 작품으로 들어가 자기만의 지도를 만드는 일이 독자의 몫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가 소설로 그려준 지도는 오직 한 가지 길을 알려주는 게 아니었으므로. 여러 갈래 길 중 하나만 보여준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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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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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러 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도, 가장 나빴던 기억도, 이해는 언제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595페이지)

 

전작 『베어타운』을 만난 독자라면 대부분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소설은 끝났지만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우리 사는 세상에서 느낀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일들이 여전히 소설 속에 남아 우리를 더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을. 소설이 현실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잘못한 게 없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에서 보고 싶은 독자의 바람이 있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베어타운』은 소설로의 재미와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내 안에 남은 화까지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그런 독자의 아쉬움을 알기라도 한듯, 작가는 이렇게 후속작을 내놓았다. 『베어타운』 그 후의 이야기.

 

소설의 배경은 여전히 '베어타운'이다. 작은 소도시 베어타운은 쇠락해가는 듯하다. 미래를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알다시피 그곳은 아이스하키에 매달려 마을의 영광을 이뤄냈다.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으로 전국 대회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마을을 살릴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았는데, 우승을 눈앞에 둔 그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니 지금 마을의 분위기가 어떨지, 얼마나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알 것 같다. 이 작품은 그 사건 이후의 몇 달 후인 마을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베어타운의 하키팀은 흩어졌고, 몇몇 선수들은 옆 마을 헤드 하키팀으로 옮겼다. 이제 베어타운에 남은 선수들에게는 팀의 해체라는 선택만 남은 듯하다. 그러면서 베어타운과 헤드의 신경전은 점점 치열해진다. 두 마을 사이에 돈과 정치라는 문제가 끼어있고, 그 너머에는 생존의 문제가 존재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하지 않는다. 대개 나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한다. (283페이지)

 

하키가 전분인 것 같은 베어타운에 새로운 코치가 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선수뿐이었고, 사람들은 팀의 선수들을 위해 모금도 한다. 그리고 검정 양복을 입은 사람들도 같은 뜻을 모았다. 그 중심에 하키팀 단장 페테르가 있다. 팀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무너져가는 베어타운의 하키팀에 손을 내민 정치인의 손을 잡기도 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만큼 하키팀의 존재는 그 마을의 전부라는 말로 들린다.

 

『베어타운』 이후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더 커진 상태로 소설의 전반부를 채운다. 마야의 아버지 페테르는 팀에서 쫓겨나고, 성폭행 피해자인 마야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다. 베어타운 하키팀의 선수들은 헤드로 이적한다. 그 안에서 머뭇거리는 듯한 벤이의 모습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머금은 것만 같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마을은 더할 수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혼란스러워진다.

 

전작의 느낌을 크게 한 가지(성폭행 사건과 권력에 의해 묻어지는 사건)로 보게 된다면, 이번 작품은 좀 더 스케일이 크고 넓은 사건과 사고를 담는다. 성소수자의 문제나,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차별, 정치인이 끼어들면서 움직이는 권력, 여러 가지 문제로 또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인간의 심리. 우리 살면서 많은 문제와 부딪히고 불평등한 결과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일들 겪게 되는데, 소설에서도 인간사의 그 많은 문제가 그대로 펼쳐진다. 두 마을 사이에 하키를 둔 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안에 자리한 온갖 감정들의 향연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글이더라는...

 

작가가 자기만의 분위기로 풀어낸 소설 한 편이 감동으로 마무리되면서, 인간으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들려준다. 사실은 우리가 그런 방식을 몰라서 행동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는 반성이 더 깊어지지만, 이런 시행착오의 감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또 성장하고 나아지는 삶을 배우게 되는 것일 테다. 오늘날의 세상과 다르지 않은 소설 속 무대에 씁쓸하고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서 더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다. 이 소설이 가고자 하는 방향처럼, 우리도 갈 수 있을 것을 알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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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하기 편하고,

내용도 괜찮은 한국 문학 시리즈.

벌써 세번째 도서가 나왔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이 오려는 길목에서 만난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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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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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살던 집 마당에는 커다란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마른 적 없이 나오던 그 우물을 온 동네 사람들이 이용했단다. 마을 사람들은 물을 길으러 엄마의 집에 왔고, 외할머니는 사람들이 물을 길어갈 수 있게 종일 대문을 열어두고 사셨다고 한다. 별로 어려운 것 없이 넉넉하게 살았던 때였고, 외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뭐든 나눠주고 지내면서 인심 좋은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랬구나, 외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는 한 마디 곁들인다. 종종 외할머니의 음식 솜씨를 칭찬한다.

"우리 엄마가 손으로 뭐든 조물조물해서 밥상에 올려놓으면 다 맛있었어. 궁중 요리도 아닌데 다 맛있었다니까. 나는 그런 맛이 왜 안 나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그런 외할머니를 기억나게 하는 옛날이야기는 이모를 만날 때 배가 된다. 엄마보다 언니인 이모 두 분, 미국에서 거의 5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오는 막내 이모, 엄마와 동갑인 나의 이종사촌 언니. 이 네 명이 만나면 아주 오래전, 내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이야기는 보따리를 풀고 다시 묶일 줄 모른다.

'그때 우리 엄마가 이랬어, 우리 옆집에 살던 아무개가 아직도 거기 살아? 올케언니가 왜 그렇게 미웠는지 몰라, 엄마가 얼마나 부지런하셨는지 쉬지도 않고 일하셨어, 엄마가 해주는 김장김치가 진짜 맛있었는데, 시래기만 넣은 된장찌개가 끝내줬어, 말하고 보니 진짜 먹고 싶다.'

이런 자리도 미국에서 이모가 들어와야 생긴다. 각자 살기 바빠 한국 땅에 있으면서도 서로 얼굴 볼 일이 집안의 경조사 말고는 없다. 그렇게 만나도 몇 시간 앉아있지 못하고 제 갈 길을 서두른다. 이렇게라도 서로 모여 옛날이야기 하면서 그리워하는 시간이 얼마나 더 있을까. 지나간 시간, 부를 수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얘기들. 언젠가 내가 겪게 될 순간들.

 

9남매인 엄마의 형제는 네 분이 미국에서 사신지 거의 오십 년이 다 되어가고, 나머지 다섯 명이 한국에서 사는데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 엄마와 이모 두 분이 남아계신다. 칠순 팔순을 넘어선 이 세 여인은 이제 서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종종 안부를 물으며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신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생긴 버릇이 있다. 내 기억에 없는 외할머니 얘기를 할 때마다, 궁금증보다는 어떤 의무감으로 엄마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식들 다 멀리 나가서 살고 유일하게 남은 엄마와 내가 동지처럼 지내는 관계이기도 해서 그렇지만, 언젠가 내가 그리워할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도 엄마가 그립지 않겠는가. 종종 '외할머니는~, 예전에 아무개는~' 하고 시작하는 엄마의 이야기에 바쁜 일 잠시 내려놓고 엄마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나는 한 마디만으로 엄마의 말문을 열다.

"응, 누군지 모르지만 일단 이야기를 해보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저자의 엄마는 일본군 위안부 징집을 피하려고 아버지와 결혼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그렇게 싫었다고, 그러니 그 결혼을 얼마나 피하고 싶었을까. 그런데 말이다. 인생이 참 아이러니해서일까, 아버지와 결혼하고 5일 만에 해방이 되었다고 하니 이렇게 슬픈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아이고야, 땅을 치면서 후회했을 것 같다. 5일만 더 버틸 것을... ㅠㅠ) 이어지는 한국 전쟁으로 엄마의 가족 일부는 남한으로 피난으로 오고 정착한다. 남은 형제와 부모가 이북에 살고, 오빠와 남한에 살게 된 엄마의 삶은 그 시대의 분위기처럼 평탄하지 않았다. 전쟁 후의 나라는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사람들의 생활은 팍팍했을 것이다. 건축 일을 하는 오빠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지만, 노름과 술을 즐기던 아버지의 무책임까지 대신하느라 엄마는 뭐든 하면서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 식당, 문방구, 신발 장사, 떡도 팔았다. 그런 고생에 어쩌다 한번 나갔던 꽃놀이가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는 삶을 보낸 엄마였다. 사는 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던 엄마의 성격은 정이 넘쳤다. 어려운 형편에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먹기를 즐겼던 푸근함이 엄마에게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도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어려운 살림에 많은 자식을 다 키워내고 가정을 이끌 수 있었겠지. 그런 엄마와 저자가 오십 여년의 세월을 함께해온 이야기다. 저자가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을 소환하고, 기억에 없는 부분은 엄마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읽으면서 자꾸만 옆에 있는 엄마를 쳐다보게 되는 그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저자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를 지나는 우리 엄마도 이렇게 살아왔겠구나 싶어서 안쓰럽고, 여전히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사는 게 미안하기도 하다. 엄마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내가 채워주는 게 분명 있겠지만, 엄마가 나를 채워주는 게 더 많다는 게 사실이니까. 한편으로는 언제 또 이렇게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생길까 싶기도 해서 울컥해진다. 아마 저자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엄마와 이렇게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기록하고, 몰랐던 엄마의 시간을 듣고 지금의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세월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삶을 알듯 말듯 다가오는 감정 때문에 말이다. 그런 엄마의 삶은 지금 저자의 인생과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엄마의 성장기와 엄마의 결혼 후 생활이 대부분이다. 4권 중반 이후로 저자의 이야기가 들려오긴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이어지는 자식(딸)의 이야기다. 엄마의 엄마가, 엄마가 없었다면 시작되지 못했을, 엄마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을 감정을 담은 이야기다. 세상 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엄마이지만, 모든 자식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겠지. 부모와 자식 간에 항상 좋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싸우고, 멀어지고, 원망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던 엄마가 이제는 힘을 잃고 자식에게 마음을 의지한다. 자식의 아픈 일을 더 슬퍼한다. 그런 엄마의 기억이 사라져간다. 이 책이 완성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그렇게 사라져가는 엄마의 기억을 붙잡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내 고향집이 한번 가보깁다.

만약 고향이 간다면 모(묘)를 파헤쳐 뼈를 만지보면 좋겠어.

우리 나고(낳고) 키운 어머니...

 

입소문으로만 듣던 이 책을 직접 만나는 게, 기쁜 일이라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제목에서부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늠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엄마의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들려올까 싶기도 하고, 마흔이 넘어 엄마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야겠다는 저자의 다짐 같은 게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엄마와 아들 사이에서도 그렇겠지만, 엄마와 딸은 그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겪어갈 감정이기도 하고, 저자가 나보다 앞서 겪어온 것이어서 더 무게감 있는 이야기로 들렸다. 엄마가 세상 더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가, 가장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가. 그러면서도 엄마와 함께하고 싶고 엄마를 이해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는 않기에, 이런 이야기를 멀리할 수는 없었다. 이 책 속의 엄마 이야기는 한 여자의 생애이기도 하고, 그 개인의 삶 속에 녹아든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친가와 외가 구분 없이 사용하던 호칭이 애매하게 들리고, 낯선 함경도 사투리나 풍습들이 백여 년의 시차를 느끼게 하면서도 생생하게 들린다. 듣기 어려운 북녘의 삶이 이렇게 그려지면서, 어김없이 그 안에는 엄마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워할 대상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바로 옆의 엄마를 다시 보게 한다. 그 무엇이든, 이 책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사는 모든 이에게 엄마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이야기라는 건 분명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역사가 된다. 그러니 그 사람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은, 그 사람을 직접 경험하거나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듣는 것이다. 그 상대가 가족이든 친구든 애인이든, 그 누가 되었든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사십 여년을 함께 살아온 엄마를 내가 지켜보고 겪어왔지만,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니 알겠다. 저자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며 이 만화를 완성해낸 것처럼, 내가 모르는 시간의 엄마를 이해하는 방법 역시 엄마가 지나간 시간을 듣는 일이다. 엄마가 가끔 꺼내는 외할머니 이야기나 이모들을 만났을 때 꺼내는 이야기들, 예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하게 들려오는 건 내가 엄마를 더 많이 알고 싶고 계속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엄마가 궁금해질 때마다 묻는다. 엄마의 처녀 시절부터 아끼던 재봉틀은 어디로 갔는지, 왜 큰 외삼촌을 따라 미국에 가지 않았는지, 어쩌다 아버지와 결혼했는지, 힘들었던 그때 우리를 버리고 나갔는데 왜 돌아왔는지 같은 이야기를 꺼내며 엄마의 기억을 자꾸만 소환한다. 단순히 기억을 읊는 게 아니라 감정까지 실어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에 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난 게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이미 엄마와 딸로 운명 지어진 것을 거스를 수가 없으니...

 

 

"엄마! 웅우우"

"왜, 너무 이뻐서리 꼬집어주고 싶니야?"

"어릴 때 엄마가 이렇기 궁둥이 두드려주고 그랬는데 이제 내가 그러네."

"이제 내가 엄마네. 내가 엄마야." 

 

엄마와의 남은 시간을 같이, 더 잘 보내야겠다는 막연한 다짐을 계속하면서 4월을 기다린다.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가 기다리는 봄이기도 하고, 4월에 엄마와 함께 제주도에 가자고 작년 12월에 여동생 네와 미리 예매해 두었다. 귀찮다고, 괜히 너희 돈 쓴다고 싫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하시더니, 막상 가고 싶기는 하신 것 같다. 제주도 가면 많이 걷고 많이 봐야 하니까 힘들면 안 된다고 요즘 저녁마다 동네를 걸으시며 운동하신다. ^^ 생각해보면 엄마와 여행다운 여행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식구들 다 모이기도 힘들지만, 꼭 움직여야 하는 일이 아니면 엄마가 선뜻 길을 나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할 기회를 너무 많이 미루기만 한 것 같아서 아쉽고 속상하지만, 그런 후회는 잠시 넣어두기로 한다. 이번 여행이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금씩 여행준비를 하는 즐거움으로 엄마가 많이 설레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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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9-02-1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의 ‘내 어머니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여행기도 기다려집니다. 어머니! 건강하셔서 펄펄 즐겁게 걷고 오셔요~

구단씨 2019-02-14 20:47   좋아요 0 | URL
걱정하면서도 설레면서 기다리시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