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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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은 언제나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때로는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로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부정하며 거부하던 것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게 다 아는 게 아니었다는 새로운 사실과 맞닥뜨리며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을 열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다. 우리 삶에 스며드는 것처럼 다가오는 순간 중의 하나인, 바로 '내 옆의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는 이 소설처럼 말이다.

 

69세 아서의 아내 미리엄은 1년 전에 죽었다. 그 1년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는 것도 의미 없다. 현재 그의 일상은 살아있는 사람의 시간이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 그는 미리엄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런 아내를 잃은 상실에 스스로 집안에 가둔 삶을 1년 동안 이어왔다. 꽉 닫힌 집안에서 아내를 기억하는 일이 그가 사는 일상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1년 만에 정리하는 아내의 옷장 속에서 낯선 팔찌 하나를 발견한다. 참이라 불리는 팔찌의 펜던트들. 옷장 깊숙이 숨겨있던, 처음 보는 아내의 물건에서 그의 여정이 시작된다.

 

처음 시작은 그에게 아내를 추억하는 여행처럼 여기게 했다. 읽는 나도 그랬다. 아서의 상실과 슬픔은 우연히 발견한 팔찌 하나로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을 것만 같았다. 그가 몰랐던 아내의 물건이 그가 알기 전의 아내의 시간으로 불러줄 거로 믿었다. 그 시간의 아내를 만나는 일은 그가 아내의 부재를 인정하며 슬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내의 팔찌와 그가 좇은 아내의 시간은 그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된 건 맞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마주하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는 거다. 40년을 함께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그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아내의 시간을 마주함으로써 그는 아내의 숨겨진 마음을 듣게 된다.

 

"만약 당신이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당신을 만나기 전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귀었고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했는데 그 얘기를 당신한테 하지 않았다면, 그게 문제가 될까요?" (162페이지)

 

책, 코끼리, 호랑이, 팔레트, 반지, 꽃, 골무, 하트. 아내의 팔찌에 끼어있던 여덟 개의 참을 단서로 아서는 아내의 삶을 추적한다.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아내의 과거를 하나씩 마주하면서 슬픔과 의심으로 가득해진다. 런던, 파리, 인도까지. 아내의 친구, 아내의 인생, 아내의 남자. 영혼의 동반자라고 믿었던 그의 아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아내의 시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마주한 아내의 과거로 그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그가 아내의 흔적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그의 의심과 분노, 질투를 하늘을 찌르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시간이 흐를 때마다 점점 세상 속으로 스며드는, 집 밖으로 나오는 아서를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의 방문이 귀찮아서 거부하고, 집 밖으로 나갈 일조차 만들지 않고, 오직 아내 미리엄과 함께한 그 집에 붙박이가 되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아내를 위한 애도의 모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틀렸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거였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곳에서 그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고, 그때마다 그 사람들 상황들 속에 부딪힌다. 피해가거나 숨거나 드러내지 않는 게 그가 보낸 1년의 세월이었다면, 아내의 팔찌를 들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그의 시간은 사람들 속에 속하면서 이야기와 마음을 주고받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는 평범한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만 같았다.

 

아서가 발견한 건 결국 그 자신에 관한 것들이었다. 호랑이한테 물렸을 때 그토록 용감하게 행동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는 침착하게 대처했다. 정말이지 그는 자신이 비명을 지르거나 겁에 질릴 줄 알았다. 또 잠옷과 치약도 없이 이상한 영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바로 전날만 해도 일상의 조화가 깨어진다는 생각만으로 이마에 진땀이 나던 그였건만.

카페에서 낯선 사람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했고, 그 조언이 그가 그 자신을 두고 생각하는 것처럼 한심한 노인네가 하는 소리 같진 않았다. 과거의 연적을 만났고 무심히 돌아설 수도 있었지만 세바스티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약물 중독 전력이 있는 청년과 청년의 개에게 보여준 열린 마음과 포용력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아서는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고 더 속 깊은 사람이었고,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사람들과 사건들이 아서의 내면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갈망이었다. 욕정이나 그리움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는 돕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호랑이가 그를 공격했을 때 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오렌지색 짐승이 그를 내려다볼 때, 그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생각했다. (225~226페이지)

 

그랬다. 아서의 여정이 시작된 처음의 마음이나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아내의 과거가 불러오는 그가 느끼는 감정은 배신감이나 분노, 절망이 아니었던 거다. 처음의 예상이나 의도와는 다르게, 그 여정은 아서에게 조금 더 멋진 애도의 시간을 만들게 했다. 아내와 함께한 40년의 추억으로 충분한 행복이었으니, 이제 아내가 떠난 현재의 아서가 살아가야 하는 오늘과 내일을 보게 했다. 언제까지 우울하게 아내가 떠난 시간의 상실만 되새김하면서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아내도 그걸 바라지는 않을 거다. 아서와 미리엄이 사랑했던 시간은 아주 아름답게 남아있으므로, 이제는 혼자 남은 아서가 살아가야 할 시간을 채워야만 한다. 그가 아내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발견한 것은, 그가 몰랐던 아내의 삶이 아니라 아내가 살아가고자 했던 방향의 시선이었다. 아내는 자유로운, 멋진 삶을 이룬 여자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아서에 대한 사랑도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여자였다. 그런 아내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는데, 아서가 주눅이 들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서는 충분히 사랑받고,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었다는 확인과 확신을 얻은 게 이 여정의 수확이었다. 절망과 슬픔에서 희망과 기쁨, 용기로 바뀌는 시간...

 

"날씨가 아주 고약하네요. 걷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신 거예요? 날씨가 이렇게 변덕스러운지 원." 여자가 손가락으로 소리를 냈다. "기가 막히게 화창하다가도 갑자기 어두워지고 음산해지죠. 하지만 태양은 반드시 다시 나와요.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네요. 이제 곧 갤 거예요." (370페이지)

 

아서의 마지막 여행지에서 그가 느끼는 자유로움이 폴폴 느껴졌다. 잃었다고 여긴 것들 대신 그를 채우는 것들로 행복해하는 표정이 저절로 그려진다. 일흔의 노인이 가진 삶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삶의 방식이었는데, 그런 생각 역시 편견이고 불필요한 생각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나이가, 누군가의 과거가, 상실의 슬픔이 문제가 되지 않는, 우리가 바라고 나아가야 하는 삶의 자세라고 말이다. 그의 사랑으로 충분했던, 그의 사랑이 불러온 자아 찾기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어딘가로 한 발짝 나아갈 용기를 부르게 하는 아서의 이야기에 새해의 시작과 함께 밀려오던 우울함이 가신다. 문 한 번 열고, 한 발 내딛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이렇게 또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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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결혼이라는 건
도다 지음 / 동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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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밋밋하다.

기억상실이라는, 정략결혼과 후회남이라는 키워드가 그리 재미없기도 힘들텐데,

갑자기 기억상실이 되는 여주인공도,

후회남이 되어서 몸부림치는 남주인공도,

또 그 모든 과정이 흘러가는 분위기도 너무 지루해서 페이지 넘기기가 힘이 든다.

 

연애결혼과 중매결혼의 차이만큼이나 감정이 파고들 틈이 없을 것 같은 정략결혼이겠지만,

또 서로 마주하며 살아가다 보니 정도 들고 사랑도 싹틀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의 관계나 분위기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느낌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펼쳐들었건만, 역시나 서운함이 밀려오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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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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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그렇구나' 하고 느꼈을 때는 대개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면서 저절로 깨닫게 되는 일,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다. 뭔가 지나가고 있는 그 순간에는 다 알지 못 하는 일들이, 반드시 시간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나타난다. 절대 공짜로는 알려줄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젊음을 잘 모르고 흘러가 버린 시간에, 노년이 되어 되돌아보고 나니 다가오는 것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을 지는 저녁 풍경을 바라보듯, 집사라는 자부심으로 온 인생을 채운 스티븐스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그러했다.

 

집사의 본분이 자기 인생의 모든 것처럼 살아온 스티븐스다. '달링턴 가'에서 35년을 그렇게 지내오던 중 주인이 바뀌면서 뜻밖에 주어진 시간. 새 주인으로부터 여행을 제안받고 떠나온 길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스티븐스는 새 주인의 휴가 제안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달링턴 가에서 스스로 갇힌 듯이 살아온 그의 평생인데, 갑자기 밖으로 밀려난 느낌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떠밀리듯(?) 발걸음을 뗀 여행마저 달링턴 가의 이로움을 위한 목적이라니, 이 남자의 인생 어떻게 흘러왔는지 훤히 보일 지경이다. 새 주인이 시키지도 않은 짓, 오래전에 달링턴 가를 떠난 켄턴 양을 만나러 가는 게 그가 택한 여행의 목적이 된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켄턴 양을 만나는 일도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었다. 혹시나 켄턴 양과 뒤늦은 해후를 하며 황혼의 사랑이라도 만들려는 것일까 기대했건만, 그는 오로지 달링턴 가의 부족한 일꾼 섭외가 목적이었던 거다. 이 여정이 그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감히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스티븐스는 나의 예상 밖을 벗어난 인물이 되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일주일 동안의 여정에서 그의 시간은 두 가지로 채워진다.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이거나,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며 떠올리는 자기 일(집사)의 뿌듯함과 만족감을 곱씹어보거나. 특히 그가 35년의 집사 일을 떠올릴 때면 아주 위대한 업적을 세운 듯한 표정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한 위대한 일은 없을 것 같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그의 현재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가는 길 곳곳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하고, 영국의 위대함에 만족스러워하며, 자기가 서 있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허물없이 받아들인다. 그저 위대함으로...

 

그의 회고록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그에게 집사계의 공로상이라도 주어야 할 판이다. 그의 젊은 날은 오직 달링턴 가에 머문 흔적밖에 없다. 그마저도 철저한 을로 살아가는 모습만 강조된다. 주인의 심기를 받드는 일이 최우선이며, 그곳에서 열리는 모든 일의 완벽한 마무리까지 그가 주관해야 할 일이었다. 일하는 사람의 관리부터, 저택에서 일어는 모든 일은 완벽해야 했다. 특히 주인이 영국 사회에서 처한 위치나 처세까지 감당해야 했다. 거슬리지 않는 조언도 해야 했으며, 저택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품위까지 챙겨야 했다. 당시 영국의 시대적 배경까지 생각하면, 그의 말 한마디나 행동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함부로 언급할 상황이 아니었던 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는 어느 위치에서 누군가의 시선으로 저택의 사람들을 대해야 했던 걸까. 반유대주의에 앞장서야 했는지, 아니면 그에 반대하여 켄턴 양의 화에 동참해야 했는지... 여기서 또 한 번 그의 집사 자리가 그의 말처럼 우아하고 위대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파고든다. 그는 여전히 달링턴 가의 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앞날을 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면, 집사의 자리가 평생 그러한 것이라는 걸 몸에 새기고 살아온 습관이거나. 어쨌거나, 그가 임무를 완수하는 모든 시간의 행동과 선택을 나무랄 수만은 없었다는 게 그의 집사 업무의 위대함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답이 된다.

 

소설의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달링턴 가의 총무 켄턴 양은 오히려 당찬 현실적인 여성이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부조리를 상사(?)인 스티븐스에게 언급할 줄 알았고, 잘못된 일에 화를 낼 줄 아는, 우리가 아는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녀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티븐스 같은 남자를 판단하느라 달링턴 가에 머물며 보낸 시간이다. 내가 보기에 켄턴 양은 자기가 떠나야 할 때를 미룬 것만 같다. 눈치 없는, 혹시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스티븐스 때문에 말이다. 완벽한 집사의 모습으로 채운 그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켄턴 양이 한 번씩 그를 찌를 때마다 그가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곤 했다. 감정의 흥분을 드러내고, 우아함을 내던지고 화를 내는, 자기의 자리를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쳐주길 바랐던 거다. 그래서 살살 긁는 듯한 켄턴 양의 시비(?)가 너무 긴장됐다. 스릴 있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 그는 자기의 모든 시간을 하나의 일직선으로 그어놓고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 선을 그대로 밟고 살아갈 것처럼 벗어나지 않았다. 켄턴 양이 조금의 시간이라도 그를 기다렸던 게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그는 올곧았다. 그런 그에게 개인 시간이 주어질 리 없다. 아니다. 아마 그는 그가 누려야 할 개인적인 시간조차 생각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진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켄턴 양이 보내는 신호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세상 누구보다 눈치 없는 남자로 기록된 거겠지.

 

그의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듣는 것도 아련했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우리를 붙잡는 건 그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문득문득 던지는 한마디들이었다.

"내 말을 믿어 보시오, 선생. 올라가 보지 않으면 후회하게 도리 거요. 그리고 또 누가 알겠소, 몇 년 더 세월이 지나고 나면 너무 늦었을지도."

노인은 약간 천박하게 껄껄거렸다.

"할 수 있을 때 올라가 보는 게 좋아요." (35페이지)

어쩌면 그의 여정은 지금 어느 길을 올라가 보는 중일지도 모른다. 올라가 본 아래의 풍경에서 자기가 놓치고 살아온 것들을 찾아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게 켄턴 양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삶이 아닌 주인의 삶에 맞춰 흘러간 그의 시간일지도 모르지. 그게 무엇인지 찾는 것 역시나 스티븐스 자신의 의무이자 역할로 남아 있다. 그게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듯, 인생의 황혼 녘에 찾는다는 게 무척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하는 여정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소설이다. 동시에 한 남자의 인생에서 우선하며 살아온 시간을 타인이 판단할 수도 없다. 그가 놓치고 살아온 것, 그 자신이 아닌 저택에 속박된 것처럼 지내온 시간이 후회스럽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가 가고자 했던 '위대한 집사'로 향하는 길을, 그는 충분히 밟아왔을 테니까. 다만, '그에게 지금 남은 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졌을 때 나올 대답이 무엇인지는 궁금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종속 관계가 주는 서글픔, 임무에 충실 하느라 바로 위층에 누워있던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안타까움, 사랑인 줄도 모르고 놓쳐버린 여자를 끝까지 붙잡지 못 하는 일들이 그의 내일도 채울 것만 같은 불안함은 뭔지... 일주일의 여행이 끝나고 다시 달링턴 가로 돌아왔을 때의 그의 모습이 어떨지,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 그의 35년을 '다시보기'하는 느낌이다.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놓치고 후회하는 것들이지만 다시 선택하는 게 변함없을 거라는 불안함. 그가 보냈던 일주일의 시간은 뭔지 참 모순적이지만, 그런 그의 선택을 공감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우리 삶이 그러하다고 확인이라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읽는 내내 '이상하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 소설이었다. 이미 다 알게 되었으니 스티븐스가 다른 선택을 하길 바라면서도, 그가 택한 마지막을 인정했다. 그럴 때마다, 다 안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하면서도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다른 생각들이 충돌했다. 그럴 때마다 슬퍼졌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고민과 갈등으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스티븐스가 선택한 결말은 절망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상 같아서다. 그런데도 그의 선택과 다짐 앞에서 또 한 번의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을 겹쳐본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우리이므로, 내일의 어느 순간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후회하더라도, 현실의 선택에 순응하며 살아왔노라고 말하는 게 우리여서.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294페이지)

 

하긴 그렇다. 언제까지나 뒤만 돌아보며 내 인생이 바랐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책해 본들 무엇이 나오겠는가?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중심축에서 우리의 봉사를 받는 저 위대한 신사들의 손에 운명을 맡길 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내 인생이 택했던 길을 두고 왜 이렇게 했던가 못했던가 끙끙대고 속을 태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진실되고 가치 있는 일에 작으나마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야망을 추구하는 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도 긍지와 만족을 느낄 만하다. (300~301페이지)

 

며칠 전에 만난 어떤 사람은 "인생 뭐 있겠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하면서 지금의 힘든 시간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잠깐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래 인생 뭐 있을까 싶은 마음에 눈길을 돌리며 다른 선택에 시선을 두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처럼 인생 뭐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가도, 인생 뭐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기대를 한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나날은 지금껏 그래왔듯, 어쩔 수 없이 후회와 기대의 양가감정으로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 순간들 안에 또 수많은 선택과 갈등, 후회가 자리하겠지만, 어쩌겠나.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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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합본] 불청객 (전2권/완결)
임윤혜 지음 / 퀸즈셀렉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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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은 나쁘지 않으나,

나처럼 현대물에 익숙하고 현대물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혼란스럽기도 할 것 같은 느낌.

빙의물이라고 하는데, 또 그 빙의물 중에서도 특이한 설정이기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을 수 있으나,

취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재미없다는 여운을 만들어줄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자체의 모자람은 없어보인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취향 차이만 없다면 두루두루 사랑받을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조금 더 내 취향을 극복한 다음에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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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도의 취미 ㅣ 도의 취미 1
라임별 지음 / 마롱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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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이유는 참 많겠지만, 이 소설에서처럼 그가 가진 안목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진품과 가품을 단번에 알아보는 눈, 예술의 가치를 아는 눈, 예술가의 열정을 볼 수 있는 눈. 그래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보이는 그였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상대의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랑이었다.

 

도현그룹은 예술 사업의 선두주자다. 그 도현그룹의 차남 도우진은 어린 시절부터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뛰어난 안목을 가졌다. 그의 심미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의 배경부터 외모까지 모든 게 완벽해서 어릴 때부터 여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이경이 바라보는 도우진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그녀가 바라볼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눈길은 어김없이 도우진을 향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진이 먼저 이경에게 다가온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림을 좀 더 활발하게 그릴 수 없는 그녀에게 우산이 되어준다. 물론 우진이 처음 이경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좋지 못했다. 그만의 방식이었겠지만,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야 밝혀질 일이다. 지금은 지금이다. 이경에게 다가간 우진이, 둘만의 사랑을 이어가는 일. 그게 중요한 거니까. 우진은 자기만의 사랑법으로, 물심양면으로 이경의 재능을 돕고, 이경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우진과의 사랑을 계속하면 되니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시작이 다양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이야기다. 동시에 이런 모습의 사랑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남자가 가진 예술을 보는 안목에 걸려든 여자. 어느 순간 마음까지 통해버려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마는. 분명 그들이 했던 건 사랑인데, 시작이 잘못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아버렸을 때는 잠시 주춤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돌아온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서 집착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알고 확인했을 때 안심하는 마음을 아주 모르지 않아서, 그래서 이런 모습의 사랑을 인정하게 되기도 한다. 쉽지 않은 일, 사랑인가 보다, 라는 깨달음이 오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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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7-12-22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서재의달인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17-12-24 20: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