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기억
안채윤 지음 / 자화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언젠가부터 누구를 향한 마음에 본전을 생각하곤 했다. 내가 너를 이만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이만큼 좋아해야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계산.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한 계산인데, 아마도 상처받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더 깊고 큰 법이기에, 그 상처의 주인공이 내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다짐 같은 것. 그렇게 이기적이고 나를 먼저 챙기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도, 안채윤의 『서촌의 기억』을 읽는 동안에는 그런 본전 생각을 안 하게 된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마음, 그게 짝사랑인데도 한없이 절절한 마음을 혼자서 앓고만 있던 순간을 보고 있노라면, 일방적으로 보내는 마음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겠다.

 

태인은 서촌의 어느 골목길 끝에 자리한 흉흉한 건물을 매입하고 공사를 시작한다. 그도 왜 그 집을 구매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갑자기 마음이 끌렸다고 할 수밖에 할 말이 없다. 친구와 함께 가구 공방을 차릴 장소로 선택한 곳이다. 오래된 그 집을 수리해서 사무실 겸 공방으로 만들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편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집의 외양간 밑에서 방공호 같은 작은 공간을 발견했고, 그 공간 안의 나무 상자에서 나온 오래된 물건들을 본다. 낡은 담요, 이백 통이 넘는 오래된 편지들. 중단되었던 공사는 계속되고, 태인은 그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1950년에 써진, 일 년 동안 계속된 한 남자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였다. 차마 부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쓰는 걸 멈출 수도 없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친구가 직접 와야 할 만큼 외출도 안 하는 남자 태인은 그 편지로 인해 뭔가가 꿈틀거린다. 이백 통이 넘는 편지와 빛바랜 사진 두 장, 그나마 사진 한 장은 가장 궁금한 얼굴이 잘려나가기까지 해서 잘 알아볼 수가 없다. 궁금했다. 무엇인지 모를 호기심에 심장이 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접 나섰다. 편지의 주인공, 혹은 그 편지와 관련한 인물을 알려줄 단서를 찾아서. 태인은 그렇게 한발 한발, 누가 등 떠밀지 않았는데 그가 직접 대문을 열고 나갔다.

 

1950년의 흔적을 발견하다.

 

1950년 1월 1일 일요일 저녁. 당신에게 쓰는 편지.

이 편지가 언제쯤 당신의 손에 쥐여지게 될는지 기약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편지를 쓰는 연유는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하루가 다르게 강물 불어나듯 넘쳐나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봄, 오후 늦게 내리던 소낙비를 피해 나의 벗들과 들어간 그 간판 없는 전집에서 당신을 처음 본 것이 이 연모의 시작이었습니다. (28페이지)

 

편지는 1950년 1월 1일부터 시작한다. 서촌의 한 막걸리 집에서 본 여인에게 마음을 뺏긴 문학도 구자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에게 먼저 막걸리 마시러 가자고 말할 정도로, 그 술집의 여인을 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를 모르지만, 그는 그녀의 행동과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면서 마음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길을 걷는 그녀를 본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그녀가 숨긴 열정을 읽는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 그녀가 일하는 공간이 현재의 그녀에게 어떤 시간을 살게 하는 건지 알게 된다. 그렇게 그녀에 관해 하나씩 알아갈수록 구자윤이 그녀를 향한 마음은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그 마음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편지에 꾹꾹 눌러 담는다. 그러던 중에 발발한 전쟁으로 그는, 더는 그녀를 볼 수 없게 된다.

 

태인이 66년 전 구자윤의 편지를 한 통씩 읽어갈 때마다 드러나는 그 시간의 진실이 애절하다. 한 여자를 향한 마음을 담은, 차마 전해지지 못한 편지는 그 마음을 더 애타게 한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그는 그녀에게 직접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짝사랑의 끓는 마음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자윤의 편지였다. 그녀를 살짝이라도 보고 싶어서 자꾸 그 술집을 찾고, 우연히 알게 된 그녀의 이름에 설레 잠 못 이루고, 그녀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내일을 기다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그의 마음은 하루하루 이어가는 편지의 양과 비례한다.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끝내 전해지지 못할 것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때 적어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을 풀어놓아야만 했으니, 지금 같다면 온라인 어디에 말하거나 혼자만의 일기장에 적어두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시인을 꿈꾸던 남자였으니 그 마음의 표현이 오죽했으랴. 옛날식 말투가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그런 편지글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떤 말투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편지에 담긴 마음이 어떤 건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꺼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을 거라는 예측 가능한 진심이기도 하다. 그렇게 계속 적다 보면 언젠가는 전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 그렇게 전하고 나서 마음을 나눌지도 모르지,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하지만 운명은 참 얄궂다. 구자윤에게 그렇게 중요한 시기였는데, 감성 폭발하여 절절한 연애편지로 시를 쓰는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때에 전쟁이 일어나다니. 살아남기 위해 몸을 숨기며 갇혀(?) 지낸 그 순간이 그에게는 더할 수 없는 습작의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한 그 아픈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을 듯하다. 아, 이 남자의 순정은 이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이제 마지막 종이입니다. 나에게 남은 종이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수중에 돈도 없고 상점도 열지 않으니 아마도 이 편지가 당신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낙마저 없어지면 난 이제 어떻게 하루를 버텨내야 하나, 눈앞이 아찔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봐야겠지요. 그동안 참아오고 버텨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나마 날 여기까지 살 게 한 건 두말할 여지없이 당신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온 정성을 다해 사모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도 당신 덕분에 알게 되었으며 당신 덕분에 가슴 뛰었던 나의 젊은 날들을 사랑해 마지않습니다. (293~294페이지)

 

설정은 달달하다. 21세기에 발견된 1950년도의 편지라니. 내용을 몰라도 이런 분위기를 미리 알고 나니 설레기부터 한다.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현재의 사람이 과거의 흔적을 굳이 찾아 나서게 하는 마음에 저절로 이끌린다. 그 호기심이 불러낸 어떤 감정을 읽기도 전에 공감할 것만 같다. 태인이 구자윤의 편지를 단서로 찾아가는 과거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니까 말이다. 현재 태인의 발자취와 과거 구자윤의 편지가 교차하듯 보이는데, 그게 더 호기심을 부른다. 그는 그녀를 만났을까? 못 만났을까? 이십 대 초반의 그들은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 만약 그들이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건을 추적하듯 태인의 여정에 동행하다 보니, 어느새 소설은 끝이 났다. 구자윤은 매번 편지의 끝에 '당신을 사모하는 구 자 윤'이라 적었다. 언제 부쳐질지 모를 편지에 자기 이름 넣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당신을 '사모한다'는 마음도 잊지 않고 적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통화 연결음이 들리는,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바로 전송되는 문자, 자판 몇 번 두드리며 발송하는 이메일. 점점 악필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익숙한 지금 만나는, 이런 아날로그적인 이야기가 생소하면서도 정겹다. 어린 시절에 적어보던, 누가 볼 새라 잠금장치를 걸어두었던 일기장, 몇 번인가 적었다가 찢어서 버렸던 마음들, 아닌 척하면서 몰래 훔쳐보던 누군가를,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야 마는 순간들을 기억에서 꺼내본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세상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는 했는지... 그런 마음에 더해진 시대 상황이 구자윤의 사랑을 더 진하게 만든다. 우리 기억 속 '언젠가'의 감정과 전쟁이 부른 안타까운 이별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감성, 추억을 부른다. 살면서 세상에 부대끼며 잊고 지냈던,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었을 감정을 이렇게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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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25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영화 <파이란>이 떠올랐습니다. 참 좋았는데요 그 영화.

2017-10-2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없이 가깝고 먼 사이. 대개 이런 사이는 가족이란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에서 지켜본바, 대개 엄마와 딸 사이가 그렇다. 모녀처럼, 친구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고 길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 반면, 그 거리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질 수 있는 불안을 아는 사이.

 

처음 제부가 집에 인사를 왔을 때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나)는 어머님이랑 정말 친한가 봐.' 단 몇 시간 만에 분위기 파악을 끝낸 제부 말처럼, 엄마와 나는 친구처럼 마치 세상에서 서로 의지할 단둘만 남은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먼저 상대를 평가하는 마음을 가진 때였다. 믿을 사람 없다고, 일단은 의심하고 보자는 눈으로 살아갈 때였다. 사람을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였으니, 유일하게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사람이 엄마라고 여겼다. 언제까지나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언제까지나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고...

 

누가 누구를 소개하며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착한 사람의 기준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나에게 잘하면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나와 싸우거나 여러 가지로 어긋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닌 거다. 철수는 영희에게 착한 사람일지 몰라도, 철수는 나에게 착한 사람이 아닐 수 있던 거다. 그런데도,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무 착해서 바보처럼 누군가한테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내가 인연 맺고 사는 모든 상대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안다. 모두에게 그럴 수 없었을 테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는 상대에게 착한 사람이 아닌 채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도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평생. 엄마에게 잘하지 못해서 나 자신을 죄인처럼 여길지라도, 나는 엄마에게 좋은 인간이 되고 싶은 거다. '그래도 내 딸이 나를 이해해주는구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는 공감을 가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으로 남을 거로 생각했다. 이제껏 그래왔다고 믿었다. 엄마와 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같이 견뎌온 동지애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우리'가, 더는 '우리'가 아닌 것만 같다. 폭발하듯 두 여자가 울며불며 터졌다. 발단은 다른 사람의 오지랖 때문이었지만, 언제고 터질 일이 이때다 하고 터져버린 거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거다. 대책 없는 인생에 아픈 기억에, 어떤 기억으로 내일을 살아야 행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의 감정이 한껏 예민해지고 고조되었을 때. 엄마와 나는 그런 순간을 맞이했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가슴 속 말들을 터트렸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나의 잘못임을 안다. 이번 일로 누군가에게 사과도 해야 했다. 나에게 상처받은 그분은 괜찮다고, 잘 아는 사이이니 그 맘을 왜 모르겠느냐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그분께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터트리며 어른으로 대하지 못한 것까지 사과해야 했다. 이상했다. 오히려 사과는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마음의 씻어지지 못한 감정이 그 사과를 온전하게 만들지는 못한 듯하다. 다음 주에 찾아뵙겠다고 말하면 약속을 잡았지만, 그것도 안다. 엄마와 내가 이번 일로 더는 동지애가 쌓아질 수 없는 것처럼, 그분과 나도 존중하고 감사하는 사이로 더는 묶일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에게 미안해지는 건 한순간인데, 그 미안함은 참 오래도 갈 것 같다.

 

엄마와 나는, 서로가 등 돌리면 바로 외로워질 사이가 되어버린 거다. 다른 딸들은 결혼해서 나가 살아도, 한번 보러 오려면 몇 시간씩 걸리는 곳에 살아도 별말씀 없던 엄마가, 내 결혼에 관해 얘기할 때면 늘 이런 말을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와 볼 수 있는, 그런 지척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그랬던 우리였는데...

 

엄마와 같은 밥상에 마주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물론 밖에 나가서도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3일을 굶었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갈 데까지 가봐야 이 불편함이 끝이 나겠지. 그래도 자식이라고, 엄마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늦은 저녁까지 들어오지 않는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한 건 엄마였다.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저녁 차려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먹으라고...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바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다 보니 눈이 빨갛고 얼굴이 너무 부어서 정돈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그렇게 들어오고서도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비어버린 위장이 배고픔의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러버린 오늘. 거의 일주일 만에 엄마와 같은 밥상에 마주했다. 엄마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서로가 어색하게 말을 섞고 있지만, 우리는 안다. 예전과 같지 않음을. 동지에서 동거인으로 이름을 바꿔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사이가 되었음을.

 

엄마와 딸.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지만, 한번 틀어지면 화해가 어려운 가장 먼 사이가 된다는 걸 증명하는 관계다. 적어도 내가 보고 겪은 엄마와 딸은 그렇다. 가장 밀접하고, 아끼고, 친해서 유지되던 관계가 한 번의 어긋남으로 친하기 전의 사이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방송이나 책에서 보던 여러 사례가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바로 여기,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었던 거다. 다만, 그동안 내가 겪지 않았고, 겪을 겨를이 없었던 것뿐이다.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근거 없이 자신했던 마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장 많이 가진 서로인,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사이였던 것을.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다가 몇 권을 꺼내 들었다. 그중에서도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던 신달자의 책을 가장 먼저 펼쳤다. 작가의 말처럼, 엄마 역시 딸의 행복을 바라며 했던 많은 행동, 말이었을 거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걸 이해하기 위해 뭐라고 읽어야 했다. 평소에 열 마디를 하는 우리였다면, 지금은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다. 선뜻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다. 실없는 말 한마디조차도. TV 뉴스를 보면서 같이 욕하던 일도, 영화 예고편을 보고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하는 것도, 같이 목욕탕에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일도, 가끔 낮술을 같이 즐기는 것도. 그동안 우리가 같이하던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 순간의 아픔을 건너가지 못한다면, 나는 영영 엄마와 같이할 수 있는 게 없을 것만 같다. 엄마와, 엄마에게 말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말하는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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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4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0-24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 자식이 뭔지..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저녁 차려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먹으라고..
말하는건 항상 엄마 ㅠㅠ

2017-10-2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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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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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섬뜩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이보다 더한 부드러움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

이미 원작으로 그 아련함을 증명한 소설이기에 이번 영화 개봉이 기대된다.

예고편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기분에, 서늘해지는 가을인데 봄 느낌이 나기도 한다.

살짝, 오래전의 어떤 시간이 떠오르기도 하고. ^^

읽는 재미, 보는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선사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오랜만에 추억여행 하고 싶게 만드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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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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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싶은 순간,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만 남겨놓고 소설은 끝나버렸다. 다른 국적, 다른 배경을 가진 세 사람이 만들어낸 역사의 한 시절은, 서로가 바라는 게 달랐어도 결국 같은 의미를 남겨놓았다. 살아야 한다. 아니, '이렇게 살아냈으니 살아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일까. 어쨌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세 사람의 인연이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로 엮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칼로 잘라내도 의미를 잃지 않은 혀의 감각으로 모든 것을 이겨낸 이들의 운명이라고.

 

요리사 첸의 아버지는 도마 위에서 태어났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첸의 요리 솜씨 또한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만, 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이 그의 요리를 우아하게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첸은 비밀 자경단원이 되어 적지에 위장하고 들어간다.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의 군대를 몰락시키겠다고 자기 목숨을 걸다니. 최고의 요리로 모리의 혀를 사로잡을 요리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첸의 뒤에는 위안부 출신의 조선인 아내 길순이 있다. 길순 또한 첸의 작전이 실패하면 바로 투입될 계획으로 늘 긴장한 상태다. 길순에게는 적진으로 뛰어들어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모리 한 사람만 사로잡으면 더욱 빠른 길로 가는 거였다.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일본의 전쟁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소설에서 보는 그는 오히려 전쟁보다는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맛을 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맛의 기억에 빠져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세 사람이 한국, 중국, 일본의 배경이 되어, 세상에 없는 요리를 맛보며 역사 속으로 스며든다.

 

소설이기에 허구일 테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는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실제 이야기에 더해진 게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모리라는 인물은 전쟁에 대해 조금 다른 시선을 갖게 한다. 강력한 군인의 모습이어야 할 그의 캐릭터는 오히려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으로서는 맞지 않는 이미지다. 전쟁을 무서워하며, 미륵불의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맛을 탐미하는 인물이다. 그가 빠져드는 맛의 세계에는 어김없이 어머니가 등장한다. 피가 낭자하고 전쟁터라는 배경에 음식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 싶지만, 이들 모두 음식과 맛에 매료되어 혹은 그 음식을 무기로 상대를 누를 수 있는 계획까지 세운다는 게 사실이다. 그 맛 때문에 모리는 첸의 시한부 목숨을 약점으로 채용하게 되고, 첸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기의 요리 실력으로 자경단원의 임무를 수행하려 하며, 길순은 그런 두 사람이 경쟁하듯 맛의 세계에 빠져들 때 그 맛을 보며 목숨을 유지해가는 여인이다. 물론 이들 각자가 가진 요리와 맛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우리가 보는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자기만의 기억으로 채운 세상에서 취한 듯한, 기다리는 듯한 감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게 맛이었다.

 

무언가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은 인간이 자신의 생 앞에서 가장 진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매운맛을 견뎌낸 소고기들이 혀에 부드럽게 녹을 때 비로소 고통조차 달콤해진다. 적들이 넘실거리며 국경을 넘어와 온몸이 무거운 사슬갑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해질 때도 나는 한 끼의 식사 앞에서 여유를 부릴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다리를 베고 누워 먹던 분고규의 평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식탁에 빈 접시가 덩그마니 남게 될 풍경을 머리에 드리며 달그닥거리는 소리조차도 아름답게 들리는 시각, 원형의 식탁을 점령하고 앉아 나는 당장 내일 죽어도 좋으니 이 순간만큼은 평화롭다고 외칠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신을 느끼는 순간은 포화에 살이 찢긴 시체를 목격할 때가 아닌, 부지런히 뭔가를 먹는 그런 순간이다. (122페이지)

 

다 알 수 없는 요리들, 그 요리가 풍기는 냄새, 그 요리가 오른 상 위의 모습을 그리면서 읽게 되는 장면이 많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풍성해야 할 것 같은 장면에서 느끼는 건 오히려 죽음과 가까이 있다는 감각이다. 한 사람은 죽이기 위해 요리를 하고, 한 사람은 죽이기 위해 먹고, 한 사람은 그들 사이의 긴장감을 다 알지 못한 채로 위로가 되는 자리에서 또한 그 요리를 맛본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맛은 무엇일까, 하고. 그 맛을 느끼는 혀는 무엇으로 맛을 책임지는가, 하고. 긴장감이 서리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이들이 벌이는 맛의 싸움은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궁금증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첸과 모리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 떠올랐다. 혀는 목숨을 구하는 무기가 되기도 하면서 약점이 되기도 했다. 요리사에게 가장 필요한 맛을 보는 일, 누군가에게는 느끼기 위해 맛을 보는 일.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가진 그것, 혀. 첸이 세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요리하고, 모리가 첸의 요리에 점점 길드는 일이, 어쩌면 그때 진행되고 전쟁의 상황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점점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져 오던 시기, 전쟁을 두려워했던 모리가 중국인 요리사가 내놓는 맛에 빠져들면서, 또 다른 인물이 놓은 함정까지도 알아채지 못하는 우둔한 눈을 만들어놓은 것. 그러면서도 국적이나 상황을 떠나 생존의 우선을 위해 손을 뻗는다.

 

모리와 첸, 길순이 각자의 시점에서 하는 이야기가 개인의 역사이면서도, 세 나라가 흘러온 현재의 모습이었다. 먹는다는 일. 어느 시대를 살고 있어도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음식에 깃든 추억과 아련함은 어떤 위기를 극복하게도 하지만,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한다. 첸과 모리의 기억의 대조적이면서도 닮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칼을 휘두르며 목숨을 위협하다가도 혀로 느끼는 맛으로 서로를 위무하는 게,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삶과 가까운 감각들. 장교식당의 화덕이나 극락사의 공양간에서 풍기는 냄새, 그 냄새로 평온해지는 마음, 눈앞에 드러나는 음식의 다채로움으로 나도 모르게 풀어지는 마음. 결국, 음식 앞에서는 불가능한 화해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으로 들린다. 길순이 극락사의 부엌으로 그들을 끌어들인 것처럼... 그러고 보면 음식이 아니라 부엌이란 공간의 힘이었던가? 여러 가지 재료를 가져와 다듬고 자르고, 굽고 끓이고 익히면서, 하나의 그릇에 내놓아지고, 그렇게 내놓은 음식을 입에 넣는 자리에 모인 이들이 하나가 되는 듯한 힘을 가진 곳.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그 모든 게 결국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첸 아버지의 도마, 그 도마 위에서 춤을 추던 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요리, 그 요리의 맛을 보며 채워가던 마음이.

 

나는 여전히 말하고 싶다. 이제 우리의 내기는 끝이 났다고. 나는 무엇도 요리하지 않았고 당신은 무엇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외로웠을 뿐이라고. 나는 요리를 했고 당신은 접시를 비웠다. 불과 싸우던 나의 시간도, 맵거나 짜거나 달콤하거나 시었을 온갖 요리의 맛들도, 우리를 아프게 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순간의 고통일 뿐이라고. 한 접시의 요리가 깨끗이 비워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증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 짧은 순간 나는 잘린 혀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318-31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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