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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살면서 변해가는 것들을 말하다가 ‘변해가는 태도’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전에는, 그래도 괜찮다며 참거나 배려하거나,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괜찮아 하던 것이, 이제는 점점 더 싫고 좋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거였다. 거절하기 어려워 받아들였던 것도 스트레스가 되고 부담이 된다는 것을 너무 오래 무시해왔던 것 같다고, 내가 잘 지내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내가 시간이 안 되는데 ‘그래’라며 무리해서 맞춰가는 게 있었다면, 지금은 그 ‘무리’를 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는 거다. 길게 내다보면 무리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태도가 옳다 그르다 하는 의미를 담고자 했던 게 아니라, 이젠 그런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있으며, 지금은 그게 낫다는 생각에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어떤 태도라도 정답은 아닌 듯하다. 그저 그때, 살아가는 순간에 내가 선택하는 최상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임경선이 말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지금 내가 살아가는 생각과 비슷한 면을 많이 발견했다. 그녀가 말하는 지금의 그 태도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저자는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게 된 삶의 중요한 가치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라는 키워드가 무얼 말하고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느 정도는 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기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말하는 방식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녀의 자세에 좀 반했다. 내가 선호하는 방식의 모습들에서는 격하게 교감했다. 내가 다 표현할 수 없었던 태도를 말할 때면 비슷하면서도 조금 모자란 나의 방식을 생각했다. 나와 전혀 다른 사고를 하는 그녀의 말을 들을 때면 '이게 세상(사람)을 대하는 좋은 태도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생긴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갔던 일이 찜찜하게 남아 있던 기억들이 떠올라 잠깐 그녀의 방식에 넣어보기도 했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더 깔끔한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나 핑계 비슷한 변명도 하면서 말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말하는 삶의 태도, 자신을 드러내는 자세가 모두 똑같지는 않다. 똑같을 수도 없다. 그러니 보편화된 정답도 없는 거다. 다만, 내가 선택한 태도만 있을 뿐이다.
연애도 사랑도, 일도, 가족도. 무엇이든 항상 같은 태도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그러니까 이런 마음. '한번 해보니까 이게 아니더라' 싶은 거라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들. 그 방식이 처음부터 한결같이 고수하게 되는 것도 있고 시시때때 변하는 것도 있다.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 상대가 누군지,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단념하게 되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예를 들면 이런 상황. 나는 2년 전에 십년 넘게 교류하던 친구와 절교했다. 그 친구와 나는 성격이 극과 극이었지만, 그래서 더 오랜 시간을 이어올 수 있던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꼭 같은 결정은 아니어도 그녀의 사고를 존중하는, 관심과 간섭을 잘 판단하고 이해하기 위해 정한 선을 항상 잊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모든 게,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일방적으로 이어져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도 몇 달을 더 유예기간으로 삼았다.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고 전처럼 교류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내가 그녀를 계속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싶어서였다. 안타깝게도 결론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절교였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고는 관계의 해결 방법이 없었다.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범주 안에 속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거다. 그건 포기와는 다른 문제인 듯하다. 관계를 위해 왜 더 노력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받을 일도 아니다. 다시 보게 되더라도, 다시 못 보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하지만, 여전히 그대로의 태도로 타인을 대하고 있다는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때 그렇게 놓았던 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인간관계를 견뎌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장은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만 한번 관계를 자연스럽게 놓아버린 다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피차 홀가분해할지도 모른다. 둘 사이에 일부러 거론하지 않는 갈등이 있다면 그 갈등을 놓아보자.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연스레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들이 있다. 갈 사람은 가고 돌아올 사람은 분명히 다시 돌아온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없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나는 긍정한다. (102페이지)
성실하게 일하고, 관대하게 사랑하고, 정직하게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공정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얘기하는 저자의 말투가 단호하면서도 애틋하다. 지나간 것들을 슬며시 끄집어내 한 번씩 되새김하게 한다. 사실 이런 거, 자꾸 지나간 일 떠오르게 하고, '내가 틀린 건가?' 싶은 두통을 일으키는 고민을 좋아하진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건 듣기 좋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다른 생각일 수 있지만 틀린 게 아니니까 듣고 생각하게 하는 맛이 있다는 거다. 나와 달라서 한 번 더 듣고 싶은 기대와 나와 같아서 맞장구 치고 싶은 든든함 같은 거 느끼고 싶었다. 매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동시에 쉽게 해결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삶을 이루는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가까이에서 자주 대면하며 반복하게 된다. 어떻게 할까 늘 고민하지만 단호하게 구체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쉽지 않은 일.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 살아가는 방법들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르치려 드는, 내가 딱 질색하는 그런 어감이 아니라,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것도 괜찮더라.'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다. 기꺼이 상처받아도 좋다고, 그런 상처는 자신이 살아가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저자의 식대로 보여준다. 그 상처와 태도가 오늘보다 내일의 삶을 업그레이드시켜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계속 나아가게 한다. '완벽'하게 보다는, 인간미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우린 완벽한 인간이 아니니까. 상대의 불완전함을 수용하면서, 그렇게 사는 거, 난 좀 괜찮을 거 같은데?
어차피 우리는 정답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가지 않으니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내가 내린 답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슬픈 얘기지만 근본적으로는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내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서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6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