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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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니까, 요즘의 대학 생활과 비교할 바는 못 되겠지만, 학자금 대출을 모르고 졸업을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고, 공부를 너무 잘해서 장학금을 받은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좋은 조건을 이용하게 되어, 어느 정도의 학점만 유지하면 안심하고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후에 시작되는 거라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또 그다음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며 사는 것만 걱정하면 되는 거로 생각했다. 그것마저도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청춘을 보면 나도 모르게 걱정의 마음으로 보게 된다. 내가 여유로우면서 던지는 시선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막막함에 더해진 무언가가 더 삶을 힘들게만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당장 가까이 있는 큰조카만 봐도 그랬다. 자세하게 몰랐는데, 이미 학기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학생이면서 채무자 신분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거다.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채무자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고단함도 감당해야 한다. 생각하고 계획한 그대로 다 잘 된다면 다행인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취직도 어렵고, 일하면서 돈 모으기도 간단하지 않다. 중년도, 노인도 힘들지만, 청년도, 힘든 세상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도 다르지 않았다. 이 청춘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 한가득 마음으로 읽게 된다. 두 주인공 정용과 진만은 지방 사립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도 그들의 취업은 진행 중이다. 저렴한 월세를 구하고 둘이 함께 산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선택한 방법인데, 나는 이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의 끝이 좋은 걸 거의 못 봤기에. 함께 살기 시작한 둘은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편의점, 고속도로휴게소, 출장 뷔페, 택배 상하차 등 돈이 되는 일은 무조건 했다.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려고 팬티스타킹을 입어가면서 말이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데, 그럼 이들 앞의 세상이 조금은 살기 괜찮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들은 그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20대일 뿐이고, 언제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삶을 버티는 이들을 볼 때마다 울컥해지고, 때로는 수치심도 느낀다. 이렇게까지 악다구니 써가며, 비난의 시선을 받아내며 살아가야만 하는가 싶은 마음. 읽는 나도 이들의 하루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몰입감이 상당한 소설이다. 슬프고, 애틋하고, 한숨이 나고, 한때 나도 엄마에게 할 소리 못 할 소리 했던 것도 기억나고. 부모가 무엇을 물려주느냐에 따라 자식 인생도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따지듯 말한 적이 있다. 부가 부를 낳고, 가난이 가난을 낳고.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인생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니, 그저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정용과 진만이었다. 특히 진만은 좀 어리숙해 보이고, 마음이 여리기까지 하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무슨 오지랖인가 싶을 정도로 타인의 문제에 잘 빠져든다. 단순히 공감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진만의 현실이 너무 심각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정용은 진만과 그런 면에서 좀 다른데, 그게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의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진만을 보면서 답답했던 마음이 터져버리고 진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된다. 그 길로 사라진 진만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진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주한 진만의 소식에 놀란다.


나도 놀랐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하기도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니겠지 하는 기대로 진만의 소식을 나도 정용만큼이나 기다렸다. 현실이 팍팍하지만, 몇 년을 함께 산 친구에게 아픈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털어내고 돌아올 거로 믿었다. 매번 두루뭉술, 속 좋은 사람처럼 행동했던 진만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잠깐 바람 쐬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진만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네. 여전히 진만에게 현실은 고단했고, 무엇이든 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는 돈을 벌어야 했고, 그러려면 뭐든지 해야 했다는 거. 그것 말고는 남은 게 없었다.


이들의 슬픔마저도 웃으면서 읽게 하는 재주를 가진 작가이지만, 그래도 마냥 웃음만을 선사하지 않았다. 작가가 그려낸 웃음 속에 진득하게 가라앉아 있던 현실의 무게감이 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 게 아닐까 싶었다. 혼자 키득거리면서 이 소설을 읽었지만, 아무리 해도 벅찬 현실이 지워지지 않았다. 때로는 간신히 버틸 수밖에 없는 날들,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그려지는 문장 속에서도 드러나는 건, 정용과 진만이 함께 했을 때 튀어나오는 웃음이었다. 무슨 만담을 주고받듯, 각박한 일상에서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을 수도 있구나 싶은 안도. 그러네, 둘이 함께였을 때 더 잘 살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믿음 같은 거였나 보다. 혼자서는 한없이 어렵고 엄두도 내지 못할 날들이, 둘이어서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었던 듯하다. 크게 바라는 것 없었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날들에 필요한 가장 중요했던 거 하나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날들이었다고 말이다.


작가가 아무리 소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고 해도, 현실의 막막함과 불평등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태어난 순간 이미 결정된 것만 같은 불평등의 시작이 참 우울하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부러운 것도 많고, 노력하면 바뀔 것 같은 기대도 하지만, 사실 뭐 그렇게 큰 기대가 되지도 않는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게 삶의 진리 같다는 생각이 진해서.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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