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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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한정’이라는 말에 혹해서 망설이던 책을 주저하지 않고 책을 산 적이 있다. 초판에 한정하여 양장, 저자 사인본 같은 이유로 예약판매 버튼을 누르고야 마는 일. (가장 최근에 산 초판 한정 책은 뭐였더라...) 아니면 리커버 출간본이거나. 지금 당장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출간을 기다렸던 책이 아니라, 그저 나중에 사는 사람과 다른 책을 받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것도 책을 향한 욕망이라면 욕망일까. 그럼 인간의 욕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정확히 알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인간의 욕망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며, 채우고 만족해하는 삶의 일부분이라는 거다. 그저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하고 급기야 나의 것이 되어야만 만족에 이르는 것. 하지만 이런 욕망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할 것임에도, 어느 순간 그 선을 넘어 범죄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개인의 욕망이 지켜야 할 그 선을 넘어 범죄자가 되어버린 깃털 도둑에 관한 이야기다.

 

에드윈 리스트는 플루티스트다. 어렸을 적 배운 플라이 타잉에 흠뻑 빠져들어, 어느 순간 그 세계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발휘한 청년이 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행해지는 플라이 타잉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온라인상에서 그가 배운 그대로 플라이 타잉 비법을 전수하기도 하는, 어리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재능을 흠뻑 뽐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취미든 돈이 들게 마련이다. 플라이 타잉에 필요한 건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깃털은 모든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은 염색하거나 깃털 비슷한 재료로 장식해도 좋을 테지만, 마니아층 사이에서 플라이 타잉의 매력은 진짜 깃털 그것도 ‘아름다운 깃털’로 만든 것이어야만 했다. 희귀한 새의 깃털이나 19세기 깃털 모자의 유행으로 사용되었던 깃털 같은 거 말이다. 에드윈은 음악에 필요한 플루트도 좋은 것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플라이 타잉에 최고점을 찍기 위해 아름다운 새의 깃털에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2009년 영국의 트링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새 가죽을 훔쳤다.

 

 

 

처음에 박물관은 도난 사실을 몰랐다. 500여일이 지나서야 도난 사실을 알고 수사를 의뢰했으나 범인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수사가 길어지는 동안 에드윈은 자기의 범죄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점점 사라졌다. 훔쳐 온 새의 가죽과 깃털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팔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왕립음악원에 다니고, 플루트를 연주하고, 플라이 타잉에 빠져 지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드윈이 저지른 일은 완전범죄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들려오는 이야기와 세상에 알려진 것을 보면 그의 완전범죄는 실패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에드윈이 희귀한 새의 깃털을 신나게 팔아댈 때 그에게 깃털을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깃털의 출처를 의심하는 이도 있었던 것. 그렇게 단서를 잡은 경찰은 에드윈을 찾아갔고 그도 순순히 자백했다. 남은 것은 그의 범죄를 낱낱이 밝히는 일과 그에 맞는 처벌을 내리는 것인데...

 

 

원래 플라이 타잉은 강에서 송어를 잡기 위해 인조 미끼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플라이 타잉을 무슨 예술 작품처럼 만들기 시작했다. 더 아름답게, 더 멋지게 만들어 자기만의 플라이 타잉을 구축하는 것.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새의 깃털을 사용하게 되는 건데, 보통은 일반적인 새의 깃털에 아름다운 색으로 염색해서 사용해도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아름다움이 처음부터 아름답게 만들어진 것과 같을 수 있었겠는가. 아니면 이 분야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속설이나 가진 자의 우월감을 뽐내려고 희귀한 새의 깃털을 소장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구하기 힘든 새의 깃털을 사용하는 방식이 이들의 갈증을 심하게 만들었고, 고가로 거래되는 깃털을 구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급기야 박물관에 전시된 새를 훔치게까지 한 것이다.

 

 

 

혹시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저 박물관의 저 새들을 가져올 방법이 없을까? 아무도 없을 때 그냥 훔쳐 올까? 아니야, 불가능할 거야... 상상으로만 멈춘 일을 에드윈이 해낸 것일 뿐, 그래서 박물관의 전시품을 훔친 에드윈을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에드윈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 마음은 나중에 수사 과정이나 저자가 인터뷰를 시도하려고 했을 때 보이던 커뮤니티 회원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멸종되어 더는 알아야 할 가치가 없는 새들, 더는 연구할 게 없어진 대상을 좀 가져갔다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이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무언가를 연구하는데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라져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플라이 낚시는 수온, 유속, 날씨, 물고기의 활동성, 플라이의 정확도, 깔끔한 캐스팅이 전부였다. (351페이지)

도대체가 궁금하다. 송어 낚시를 하는데 새의 화려한 깃털이 왜 필요한가? 희귀한 새의 깃털은 송어 낚시에 필요한 도구가 아니다. 아무래도 이 분야에 심취한 이들의 은근한 경쟁 심리 같은 게 작용해서 시작된 대결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흡사 요즘에도 어느 덕후들의 세계에서 보는 일반적인 모습 같다. 희귀템을 먼저 손에 넣어야 하고, 이런 희귀템은 중고시장에서도 상당히 고가로 거래가 되며, 마침내 그런 제품들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채워지는 이 충만감이란! 덕질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그 개인의 취향에 인류 역사의 연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 것들이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니겠나.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때로 자기 이외의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에드윈의 이런 기이한 행동도 인간이 내재한 욕망을 거스르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기에, 여러 방면의 학자들과 박물관은 그들의 집착과 욕망에 맞서 싸워야 했다.

 

 

에르메스 가방과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가 나오기 전까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은 죽은 새였다. 더 이국적이고 더 비쌀수록 더 높은 신분을 상징했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 새의 깃털일 것이다. 수컷 새는 암컷 새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신의 깃털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어왔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그 깃털을 이용해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고, 사회적 신분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새들은 수백만 년 동안 자기들끼리만 지내면서 너무 아름답게 변해버렸다. (70페이지)

 

깃털을 처음 장식으로 이용한 건 19세기였다고 한다. 19세기의 거의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가 인간에 의해 살해당했다. 오늘날의 명품을 만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신분을 표현하는 최고 수단으로 새의 아름다운 깃털을 선택했다. 깃털은 희귀하고 비싸게 거래될수록 높은 신분을 상징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왜가리 깃털을 올림머리에 꽂아 넣은 후, 100년이 지나지 않아 새의 깃털은 전 세계 여성의 모자를 장식하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모자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볼 수 없던 이들은 깃털 사용을 막으려고 했고, 깃털 관련 업체들은 경제 위기를 들먹이며 반대했다. 법으로 막을수록, 지하에서 거래되는 깃털은 더 귀한 게 되었고 부르는 게 값이 되었을 테지. 가벼운 깃털 하나에 묵직한 인간의 역사가 빼곡하게 담긴 것도 모르고 말이다. 보존해야 할 것들로 찾아낼 수 있는, 지구와 우주의 역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이들의 욕망은 집어넣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범죄 실화라고 알고 있어서 그런지 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저자의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더한 가독성이 있다. 절도와 범인, 범인을 추적하는 이의 구도를 넘어서서 범죄의 시작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에서 찾기도 하는 내용이 너무 흥미롭다. 그 바탕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금지되는 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 당신에게도 수없이 나타날 수 있는 욕망, 그 욕망이 춤을 출 때마다 인류 역사의 귀한 자료들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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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2-06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이런 책이었어요? 저는 깃털 도둑이라고 해서 은유적으로 말한 미스테리 소설일거라고 생각했어요. 와..

구단씨 2019-12-07 15:41   좋아요 0 | URL
네. 그렇답니다. ㅡ.ㅡ;;
실화라는 게 더 놀랍더라고요.

반유행열반인 2019-12-0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팔할 쯤 읽고나서야 아 논픽션이네 했어요 ㅎㅎ그만큼 재미있고 유익하더라구요.

구단씨 2019-12-07 15:4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도 위의 다락방님처럼 소설일 줄 알았어요.
한참 읽다가 보면, 진짜 놀랍기만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