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아이들이 묻다 니케주니어 사회문제 시리즈
유타 바우어 지음, 카타리나 J. 하이네스 그림, 장혜경 옮김 / 니케주니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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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말이 있지만 여튼 한국의 현대사는 나라(국가)와 개인이 힘을 합쳐 빈곤 문제를 극복하는, 매우 모범적인 사례를 이뤄 왔습니다. 독일 역시 2차 대전 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했지만 특유의 근면 성실한 국민성과 효율적인 산업 진흥 정책으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뤘죠.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특정 계층에서 벌어지는 가난의 대물림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저 바구니에 공이나 집어 넣으면서 이처럼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p26)." 바구니에 공을 집어 넣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회에 어떤 후생도 창조하지 않지만(새벽에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는 일이 훨씬 가치가 큽니다), 그 행위를 보고 꿈과 희망과 에너지를 얻는 이들이 무척 많습니다. 아마 타임머신 같은 게 있어서 과거 어느 시대 소크라테스나 칸트 같은 현자를 불러와 디르크 노비츠키의 성공을 보여 준다면 어이없어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지는 않고, 대신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독자는 그 중에서 자신의 답을 고를 수도 있고, 이를 종합하여 자신만의 답을 만들 수도 있겠네요. 제 생각으로는, 노비츠키처럼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저런 성공의 모범을 보고 현실의 자신을 부지런히 가다듬어야겠다고 결심을 굳히는 편이 어린 독자에게 유익할 듯합니다. 


 

p14에서 미하엘 휘터 교수라는 분은, 아마 개인의 가난 그 첫째 원인을 "그 사람이 능력이 없어서"로 규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처음에 선택한 전공이, 결국 자신과 잘 맞지 않거나, 나중에 사회에서 큰 수요가 생기지 않는 이유"도 듭니다. 또 그 다음으로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느냐"와 "국가 경제의 형편"을 들고 있네요. 그런데 물론 가정이 유복하면 남들보다 유리하지만, 그 좋은 조건을 살리지 못하는 사람도 무척 많습니다. 또 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해도, 남달리 집요한 노력을 통해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노력 만능주의로 모든 결론이 내려지는 건 아니지만요.

 

미하엘 짐머만 교수라는 분(p33)은 불교 전공이신가 봅니다. 불교를 학문적으로 전공한다고 해서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준수하거나 신봉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책의 독자들이 어리다는 걸 감안했는지 "많이 베푼 사람은 다음 생에서 큰 복을 받아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동아시아인들이 어려서부터 많이 듣던 이야기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남에게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런데 이건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혹은 공자의 말이 아닐지... 하긴 워낙 불경이 방대하기도 하니... 

 

"기부"는 예전부터 서양 사회의 미덕 중 하나였습니다. 귀족들은 수도원 등의 지도 하에 정기적으로 꼭 기부나 봉사를 하곤 했죠. 물론 상당수가 전시효과나 위선에 그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활동가 케르스틴 R(p88)이란 분은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부한다고 합니다. 미하엘 호르바흐라는 분은 전직 기업가이고 현재는 재단법인을 운영하는데 사업을 하던 시절에도 이윤의 10%는 언제나 기부를 했다고 밝힙니다. "진정한 행복은 남들에게 기쁨을 주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도와 줄 때에만 찾아온다"는 멋진 말을 합니다.


 

케르스틴 R이란 분은 p74에도 나왔습니다. "(당신이) 가난하면 혹 어떨지 상상이 되나요?" 그는 본인이 실제로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슨 차이가 있냐면, 어쩔 수 없이 그리 산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한 가난함이었기 때문에, 정말 피치 못한 가난과 맞닥뜨린다면 과연 어떨지 상상이 안 된다고 합니다. 굉장히 솔직한 말 같습니다. 펠릭스 M이란 대학생은 "여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합니다. 사실 요즘은 우리 나라 대학생들도 "그냥 공장 같은 데서 빡세게 몇 달 일해 보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더군요. 

 

폴란드가 형편이 어렵다 보니 프랑스나 독일 같은 곳에 와 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p98에 나오는 엘즈비에타라는 분은 여성, 이주민, 외국인, 가난, 질병, 다자녀 양육 등 가난의 총체적 문제 요소를 다 겪고 있는 불행한 분입니다. 같은 일을 하는 디터(p95)라는 분은 현재 가진 신발이 "지금 이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분들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힌츠 & 쿤츠트"는 노숙자 신문의 이름입니다. 우리 나라 사회과학 서적이나 잡이에도 자주 나오므로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p120 이하에는 이 신문을 파는 많은 이들의 이름이 죽 등장하여 자신의 발언(길지는 않습니다)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행복할 때"라든가 "인생에 좋은 날" 같은 게 있냐고 물었을 때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답을 합니다(pp.102~103). 자주 나오는 엘즈비에타라는 분은 폴란드 출신 답게 "교황을 뵈었을 때"라고 답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존경하고 따를 만한 사람을 마음에 담아두면 의지가 됩니다. 물론 그 사람이 정말로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인지의 여부는 또 별개 문제이겠습니다. 


 

이 책은 일단 아이들에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 "가난"에 대해, 뭘 가르치려 드는 어조가 아니라 우리 주변 이웃들(교수, 노숙자, 그저 평범한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입을 빌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돕습니다. 책 중에도 그런 질문이 나오지만, "왜 우리는 이처럼 풍요하게 살게 되었으면서도 극단적으로 가난한 이웃들이 그리 살게 방치하는가?"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내는 게 여전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꼭 거창하게 누굴 돕는다기보다, 아직 어린 독자들이 적어도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고 최소한의 공감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 책은 대성공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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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쌀 때 읽는 책 똥 쌀 때 읽는 책 1
유태오 지음 / 포춘쿠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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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화장실에서는 신문이든 책이든 무엇인가를 읽는 버릇이 그리 좋다고 하지는 않는데 여튼 가끔이라도 우리는 변기 위에서 무엇을 읽을 때가 있죠.


아이디어와 똥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를 "먹어야" 그것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실패를 먹고 뉴스를 먹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먹고, 여튼 나만의 상태로 가만 있지 말고 무엇인가를 섭취하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 먹는 건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망가져서 안 되겠죠.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무슨 자극이든 기존의 내가 갖고 있던 것 말고 다른 것을 섭취하라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은 "똥과 아이디어는 형제(p29)"입니다. 


p67에는 돈이 존경을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변호사다 의사다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건, 각고의 노력을 통해 그 자리까지 올라간 그 집념과 의지에 대한 존경 부분도 있는 건데 앞으로는 그저 "돈"만으로 명예를 얻는 경로도 있다고 하니 과연 그런 존경이 전문직에 대해 유지가 되겠냐는 겁니다. 네. 정말 그렇습니다. 


철수와 영희, 사실 이분들은 교과서에서나 8살이지, 이제는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을 분들입니다. 저자가 하는 말은 선입견을 버리자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어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pp.100~101)은 윤제림이란 분의 시(詩)라고 나오는데,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p120에서 "감"이라고 해서 저는 처음에 대통령감, 장군감 할 때의 그 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먹는 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았는데, 더 익기를 기다리고 더 지켜 봐야 무슨 감이 될 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3부 "응원"에 실려 있었는데, 우리가 누군가에게 응원을 보내려고 할 때, 혹은 뭐 그저 나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려고 할 때에도 그 방법이랄까 기본 전제가 올바를 필요가 있다는 점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제 예상대로 작가분은 군대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었네요. 참고, 기다리고... 이 모든 걸 배우는 곳이 군대입니다. 그래서 솔직한 말로 저도 사회에서 사람을 만날 때 군필자하고 그렇지 않은 분과는 좀 차이가 크다는 걸 솔직히 실감합니다. 군대 나오신 분이 뭔가 좀 달라도 다르다는 것, 군에서만 배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나뉩니다. 본문 하나하나도 읽고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상위 키워드와 연관지어 볼 때 더 깊은 맛이 난다는 게 제 느낌이었습니다. 화장살에서뿐 아니라, 출퇴근길에 혹은 잠들기 전에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읽어 보면 어떨까요? 생각보다 얻는 게 많은 책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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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시터 걱정은 그만 - 깐깐하고 똑똑하게 베이비시터 고르는 방법
민정숙 지음 / 라온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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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워킹맘들이 많으시다 보니 아이를 데이케어해 줄 인력이 또한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실 고용 효과 유발 면에서도 여성들이 이처럼 직장에서 활발히 수요되는 게 바람직합니다. 국가 전체(거시경제)로는 그러한데, 개별 어머니들 입장에서는 이런 지출도 꽤나 부담스럽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 즉 남녀 임금 격차의 완전 철폐가 이뤄져야 어머니들이 베이비시터 고용을 그나마 덜 부담을 갖고 행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담이 적지만은 않은 베이비시터 고용을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냐에 있겠습니다. 어떤 노하우로 시터분을 고르고 소통해야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되겠냐는 거죠. 이는 많은 워킹맘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나 자신도 누구한테 채용된 사람이지만, 내가 고용주의 입장에 섰을 때 운 없게도 몇 번 좋지 않은 일을 겪고 나면 사람 직업군 전체를 색안경 끼고 보게 됩니다. 이는 현명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당장 나 자신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합니다만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정부 여가부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가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름만 들어 봤는데 그게 정부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인 줄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물론 민간중개업체도 여럿 있는데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해피맘"이라는 가상의 업체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책 p49의 실제 현황표를 보면 그런 곳은 (의외로) 없더군요. 중개업체에 대해 다소 불신감이 있다면 회비를 내고 가입하여 이용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구인 글을 쓸 때에는 되도록 구체적으로, 또 진심을 담아 쓰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쓰라는 건 나중에 고용 조건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이 나오는 경우를 대비해서라고 하네요. "육아+가사 해 주실 따뜻한 이모님 찾습니다." "안전이 우선, 정성과 사랑으로 돌보겠습니다." 구인, 구직 글에는 이런 제목의 글들이 올라온다고 합니다(p58). 저런 글들이 가장 흔히 보이며, 또 (저자님 의견에 따르면) 어떤 감성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며, 앞에서도 말했듯 더 구체적인 사항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이 책에서 특히 제가 주목한 점은, p93이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사람을 고를 때는 충분히 깐깐하게 고르라는 겁니다. 채용하고 보니 내가 원하던 스타일이 아니라거나, 혹은 계약 조건에 대해 서로 의견이 불일치한다거나, 이런 것보다는 처음부터 깐깐히, 여러 사람을 만나 보고 내가 원하는 시터를 기어이 만나 보는 게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이는 고용주뿐 아니라 시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저자는 "거절하고 싶지만 업체를 믿고 그냥 간다"가 가장 좋지 않은 마인드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 업체가 보증할 수 있는 바는 많지 않습니다. 그저 아주머니들끼리의 말솜씨 대화 분위기로 넘어가곤 하는 거죠. 내가 원하는 바가 분명한 맘이라면 더군다나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시터가 무조건 을이라야 하느냐. 전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시터도 맘을 얼마든지 인터뷰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실 이처럼 적극적인 시터라면, 오히려 까다로운 맘이 더 선호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물론 원하는 바는 서로가 맞아야 하겠지만). 또 이 책은 맘들이 주로 보는 책일 텐데(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터분들이 이 책을 보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죠), 이런 말이 왜 있느냐 여길 수도 있지만 저는 저자분이 일부러 이런 말을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내(맘)가 언제나 갑이어야 한다는 자세로 시터를 고르지 말자는 겁니다. 갑이고 을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여건에 정확히 맞고 계약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일방적으로 갑 노릇을 하려는 맘한테 제대로 된 시터가 오겠습니까. 그저 앞에서는 비위나 맞추고 뒤에서는 대충대충 하는 엉터리가 걸릴 가능성이 더 크죠. 


pp.136~137에는 특히 맘들이 꼭 읽어 봐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자 역시 똑똑하고 꼼꼼한 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칭찬이 자자합니다. 아직 어린 아이한테 건강과 위생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읽으면서 와 이 정도인가 싶었습니다. p174에는 "시터를 왕으로 대접하면 내 아이는 왕자, 공주가 된다"는 제목 하에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읽으면서 참 이게 정답이다 싶었습니다. 꼭 보면 못난 사람들이 쓸데없는 데서 갑 스탠스에 목숨을 걸곤 하죠. "시터가 아기한테 뽀뽀하는 건 싫어요.(p193)" 저자는 이런 맘은 처음부터 시터를 써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런 맘을 나무라는 게 아닙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죠. 단지, 시터를 쓰지 말고 친정엄마나 시모나 자신이 직접 키우는 게 맞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시터 고르는 요령을 담은 책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읽어 보니, 시터의 고용주 이전에 엄마로서의 자세가 무엇인지, 내가 애를 어떻게 기르고자 하는 엄마인지 그 입장을 분명히 파악하게 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사람을 고용하는 자의 입장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 책은 어떤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니 시터를 구태여 쓰지 않으려는 엄마 입장에서도 참고 삼아 한번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시터 입장이라면 진정 이 책은 (오히려) 필독서입니다. 시터와 맘 사이에 어떤 표준 같은 걸 만들어 주는 책입니다. 강추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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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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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했던 시절 분연히 일어나 민족의 자존과 대의를 추구한 분들은 정말 존숭받아 마땅합니다. 이분들을 향한 존경과 사랑이 멈춘다면, 그건 아마도 민족이나 국가 단위가 이미 소멸해서일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과 우리 자손의 숨통이 붙어 있는 한 독립 우국 지사들은 영원히 기억되어야만 합니다.


이 소설에서 계속 란사라 불리는 주인공 분은 실존인물 하란사, 혹은 김병훈 선생의 딸로 태어난 김란사님입니다. 그녀는 과연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음이 소설 초반부의 여러 일화를 통해 독자에게 전해지네요. 식민지 시대는 아직 그 직전의 봉건 잔재가 극복되지 않았기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여성들은 성차별, 민족차별, 재능 억제 등 삼중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강점기의 민족 시련사는 남성보다 (뛰어난) 어느 여성에 의해 더 극적으로 부각되곤 합니다. 


"난 내 성씨가 싫어." "그냥, 그리고 서양에서는 남편의 성을 따르잖아? 난 곧 미국에 갈 거니까."


오히려 성을 타고난 성이 아닌 남편 성으로 바꾸는 걸 진취적인 선택이라 여긴 난사(낸시)의 의식 구조가 재미있게 보입니다. 큰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들도 많지만 부모 성을 함께 쓰는 현대 한국의 일부 여성들(극히 일부 남성도 포함)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라면) 오히려 더 타당한 근거를 갖추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에서 두 성씨를 함께 쓰는 건 남편 성, 태어날 때의 성(이 경우도 출생 가문이 상당한 명망을 갖췄거나, 자신이 결혼 전 일정 사회적 지명도를 얻은 경우에 대체로 한정)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란사는 나날이 빛이 났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이 제 명을 재촉하는 길인 줄 알았더라면 화영은 어떻게든 란사를 말렸을 것이다."


여기서 화영이라는 인물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이며, 이화학당 시절부터 내내 하란사의 절친한 벗이었던 걸로 세팅됩니다. 기생 출신이었다는 화영은 본처에게 걸려들어 호된 봉욕을 겪는데 이때 하란사가 나타나 본처(그닥 신분이 번듯해 보이지는 않는)의 폭력으로부터 구해 줍니다. 근 백 이십 년 전의 일인데도 시앗다툼은 현대 대한민국의 그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 아마도 현대 작가의 필치 끝에 나온 작품이라 그런 듯합니다. 


아무튼 빼어난 재주를 갖고 태어난 여성(그렇게 착각하는, 뭔가에 씌어 사는 이상한 여성이 아니라)이,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는 과정(과 결과)에서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건 참으로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뜩이나 인재가 부족한 판에 다시 성별로 갈라치기를 해서 인재 풀의 절반을 탈락시킨다는 게 얼마나 민족과 국가를 위해 큰 손해이겠습니까. 


사실 하란사도 인생의 초장마저 겉으로 드러난 그 역정만 보면 가혹한 비극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늙은 재력가한테 시집을 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남편 하상기 씨가 배울 만큼 배웠고 깰 만큼 깬 사람이었다는 것이고, 소설 속에는 "남편 덕에 그녀는 나날이 꽃필 수 있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 소설에서 전반부에 주인공처럼 각광 받는 인물은 차라리 하상기이며, 실존 인물로 "김란사"라 더 널리 알려진 이분에 대해 구태여 하란사라 제목이 붙은 건 작가의 이런 생각이 크게 작용한 듯합니다. 


소설 속에서 하상기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내 대하기를 마치 팬이 스타 대하듯 아끼며, 유학을 보내 주는가 하면 낳은 딸 자옥도 사실상 부친인 그가 키우다시피하는데 요즘도 이런 남편은 아마 보기 극히 드물 듯합니다. 그래서 소설 중, 오히려 어미가 딸 간수를 소홀히하여 일찍 죽었다며 과하게 란사가 욕 먹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어려서 죽은 자옥은 가락지로 마치 화체한 듯(p157) 이후 어머니의 몸에 내내 따라다닙니다. 


"이화학당을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당신이 생명을 그리 여기는 건 모순 아니겠소?"


나이도 어리고 사실 생각도 채 여물지 않은 란사를, 남편은 이처럼 능숙히 설득합니다. 생각이 더 완결돤 분이 그렇지 못한 어린 상대를 차분하게 설득하고, 당사자의 생각이 더 무르익게 도우면서도 자신의 의도도 관철하니 이 얼마나 뿌듯한 광경입니까.


"란사는 1908년 서른 여덟이 되던 해에 고종 황제로부터 훈장을 받았다(p73)." 그런데 1907년에 고종 황제는 이미 퇴위를 했으므로 만약 국가에서 주는 훈장이라면 고종이 아니라 순종 황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고종도 당시 태황제 신분이었으니 태황제가 수여하는 다른 영전체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또 p6에는 의친왕이라는 호칭도 널리 쓰기에 비록 일본식 호칭이지만 혼용한다고 하셨는데, 의친왕은 애초에 일본식 호칭이 아닙니다. 대한제국으로부터 러일전쟁 발발 전에 받은 작위인데 어째서 그게 일본식이겠습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널리 써도 됩니다. 역사적 진위가 명백히 가려지는 문제인데 한때 일본식으로 간주한다는 대중의(?) 합의(착각)가 있었다고 해서 흑이 백으로 바뀌겠습니까.


"참 장한 일이나 가슴이 아프오." "전하가 걱정되니 당분간 피하셔야겠습니다.(p191)"


하란사는 소설 속에서 의친왕을 밀접히 모십니다. 소설의 상상이 많이 가미되었으나 유능하고 총명한 그녀가 의왕에 대해 긴밀한 보좌를 해 왔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강(소설 중에서 자주 본명으로 일컬어집니다)과는 신분의 차이가 크나 하란사가 더 누나 뻘이기도 합니다. p177에 나오듯 란사는 황족들에 대해 마냥 숭배하는 태도는 절대 아니고, 이강 같은 특별한 경우에나 그리 존대를 하는 거죠. 물론 p165에 나오듯 이강은 파락호, 난봉꾼 같은 면모도 분명 있었습니다. 


"아줌마, 나도 그 애국이라는 거 하면 안돼요? 어떻게 하면 애국할 수 있어요?"(p216)

"쓸데없이 연애질이나 하며 청춘을 허비하면 안돼. 우리 한 명 한 명이 다 애국자가 되어야 해."(p62)


후자의 대사는 아직 어렸을 적, 자신보다 훨씬 어린 동생들에게 란사가 하던 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렇게 당찼으니 성인이 되어 그런 활약을 펼칠 수 있었죠. 전자는 병수가 강씨 아줌마한테 하는 말입니다. 


<관산융마>는 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화영을 첩으로 둔 영감님이 이 곡을 거론하더니(p63), 한참 뒤 기미독립선언 무렵 의왕이 학선에게도 청하네요(p234). 소설은 이처럼 독립지사 여성투사 하란사의 건조한 일생만 다룬 게 아니라(그녀의 일생은 결코 건조하지도 않았지만) 당대의 다양한 풍속과 이야깃거리가 곁들여져 더욱 내용이 풍성하고 재미있습니다. 


"정말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저는 전하의 심복이지 여사님(란사)의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이 구더기 같은 놈, 네놈이 전하를 잘 못 모셨으니 이 사달이 난 것 아닌가?"(p314)

"구더기 같은 X, 어디 붙어먹을 데가 없어 일본 놈하고 붙어먹어?"(p67)


이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속에서의 하란사 여사님은 대단히 직정적이고 입이 건 편입니다. 여튼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간 어느 신여성의 기개와 장한 행적이 이 소설에는 잘 묘사되어 있고, 마지막이 (이제는) 늙은 기생 화영의 조용한 회고로 마무리되는 것도 감동적이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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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마케팅 - 인간의 소비욕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매트 존슨.프린스 구먼 지음, 홍경탁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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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브랜드가 어떻게 대중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명품으로 자리하는지 그 과정을 밝혀 내는 건 마케팅학, 나아가 경영학의 절대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어떤 제품은 성능이 우수하고 시장에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도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지며, 다른 제품은 특별한 장점이 없는데도 롱런하거나 열광을 받는지는 정말 수수께끼라고 할 만합니다. 그 모든 것은 객체인 상품과 특정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어떤 힘을 갖는 게 아니라, 결국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밖에 안 됩니다. 


나이 든 뇌보다 젊은 뇌가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의욕적으로 흡수한다는 사실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타당하고 이미 오래 전에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p92에는 특히 미국에서 일정 사업은 어린이들에게 직접 마케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처럼 예민하고 왕성한 반응을 보이는 뇌에다 대고, 그처럼이나 자극성이 강한 상품과 그것이 안겨 주는(확실치는 않지만) 효능을 잔뜩 광고한다면, 아이의 정신 발달에 해로울 뿐 아니라, 한창 생산적인 정보와 지식을 머리 속에 정리해 나가야 할 어린이에게 얼마나 손해가 되는 결과가 빚어지겠습니까?(그런 거 "배울" 시간에 제대로 된 공부를 했었다면)


어리석고 기억력이 나쁜 사람일수록, 자기 머리 속에 남겨진 기억이 절대적이라고 착각합니다. 반면, 예리한 )기억력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기억에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을 자각하고 적절히 보정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죠. p118에는 "기억은 부정확한 재구축 과정"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이, "어차피 머리 나쁜 나건 좋은 머리건 간에 기억은 똑같이 부정확하다"고 우기는 바로 같은 소리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기억 재구축 과정의 줄을 놓은 사람하고(되는대로 막사는 사람), 매 순간 애착을 갖고 소중히 기억을 가꾼 사람이 어떻게 결과가 같겠습니까? 


책에서는 여튼 이런 사실 때문에, 기억이 참된 것이 아니라 무엇에 의해서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임을 전제로 마케팅에서 이를 집중 공략 중임을 지적합니다. 사실 이런 조작은 정치 세력이라든가, 연예 기획사 같은 곳에서 아주 집요하게 시도합니다. 우리가 포털 등에서 접하는 연예 뉴스 대부분은 어떤 정보나 뉴스 같은 것이 아니라, 상품화한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 조작입니다. 또 바보 같은 사람일수록, 냉정하게 정보와 지식을 가리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대중이 휩쓸리기 쉬운 트렌드나 유행 속에 떠도는 바이럴에 몸을 맡기며 자신의 뇌를 망칩니다. 이런 조작 가능성의 증대는 특히 최근 들어 가상기술의 발전(p119)으로 더욱 커졌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행동경제학자 카너만의 대중서 중에 나와서 유명해진 말이 "패스트 씽킹"입니다. 사실 그 말은 이 책에서 쓰는 것처럼 "자동모드(반대말은 수동모드)"가 좀 더 정확하겠지요. 우리 사고는 지금 이 책의 용어처럼 자동모드로 진행되는 게 있고, 일일이 생각과 검토를 거쳐 진행되는 수동 모드가 있습니다. 자동 모드는 충동의 영향을 받기 쉽고, 수동 모드는 충동에 저항(p162)하는 것이라고 책은 정리합니다. 또 책에서는 스트루프 현상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사실은 그리 똑똑하지 않은데) 우연히 그가 잘하는 일들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동모드 적합 사무에 최적화되었다면, 실제 능력 이상으로 똑똑해 보이는 효과를 거두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마케팅의 성공 여부는 대중의 이 무방비 상태 자동 모드 영역을, 어떻게 자사 상품에 유리하도록 조작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극소화하는 기제에 의해 행동합니다. 책에서는 마이클 랜디라는 어느 행동가의 예를 들며, 소유물을 모두 폐기하고 불태워버림으로써 획득하게 되는 자유로움이, 소유물을 모두 잃게 되는 고통(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겠죠)보다 컸기에 이런 행동을 감행했다고 말합니다(p197). 잘된 마케팅이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한때 세렌디피티라고 해서 우연히 발견한 쾌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유행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쾌감이라고 해도 그것이 노력이나 계산이 아닌 우연에 의한 만남이나 발견이었다면 더 가치가 크다고들 여깁니다. 책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예가 나오는데 30일 동안 아이스크림을 계속 체험하게 하면 마지막에 가서는 얼마나 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게 될지를 노린 기획이었습니다. 답은? 제발 이 프로그램에서 빼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는 거죠. 아이스크림은 대체로 이것을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우연히 누가 사다 줬다거나, 휴양지 등에 놀러왔을 때 우연히 마주친 현지 판매상한테 사 먹곤 하는 게 더 큰 효용을 가져다 준다는 거죠. 어느 특정 유명 브랜드가 "골라먹는 재미"를 강조하는 것도 아이스크림 자체가 워낙 지겨워지기 쉬운 상품인 이유도 있겠죠.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탄산음료, 맥주 같은 것도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선택의 폭이 넓으면 무조건 좋은 것인가. 과거처럼 제한된 선택 안에서 만족하던 시절에는 그렇다고 여겼으나, 요즘은 오히려 결정 장애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선택지의 폭이라는 것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쾌감을 감소시키고 행위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거죠. 기업은 또한 "참여"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사실은 "중독"을 유도하는 전략(p231)이라고 책은 말합니다. 요즘 "구독 경제"가 부쩍 강조되는 시점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입니다. 


특정 브랜드에 미친 듯 몰입하거나 특정 상권(홍대 등)을 열광적으로 미화하는 사람을 보면 좀 많이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플이나 주얼리의 특정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에 비해 자기 외모 가꾸기에 정성을 쏟는 사람은 차라리 일종의 자기계발(개발?)을 하는 셈이라 영리하게까지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튼 자기 인생에 애착을 갖고 자기 삶을 사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책에서 소개하는 할리데이비슨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간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엔진의 힘이 모터바이크의 매력 본체인데, 이걸 전기 동력으로 바꾸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 전환이 필연적이라면 오히려 좀 늦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들을 책에서는 제기(p311)합니다. 


생각해 보면 섬뜩한 일입니다. 광고를 보고, 혹은 연예인이 착용한 아이템 등을 보고 마음으로부터 그토록 큰 공감, 삶의 활력, 애정 등이 솟아올랐지만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셜계된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었다니.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쪼개서 퇴근길(뿐 아니라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다 내어서)에 들린 스OOO에서 홀짝거린 커피 한 잔의 여유, 낭만... 이런 게 모두 세뇌와 조작의 산물이었다니! 이런 좋은 책을 읽는 보람 중 하나는 첫째 미디어(매스미디어든 소셜미디어든 간에)의 영향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만의 소비 패턴이 무엇인지 재설계하는 바탕을 마련해 주겠고, 둘째 적어도 직장인이라면(자영업자라 해도 마찬가지) 실적을 내고 안 내고 그 모든 활동, 일의 기초가 결국은 마케팅이니만큼 어떻게 해야 영리한 마케팅이 되겠는지에 대해 인사이트를 제공해 준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이든 간에 일 잘 하려면 결국 모든 걸 이 관점(이 책에서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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