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아이들이 묻다 니케주니어 사회문제 시리즈
유타 바우어 지음, 카타리나 J. 하이네스 그림, 장혜경 옮김 / 니케주니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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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말이 있지만 여튼 한국의 현대사는 나라(국가)와 개인이 힘을 합쳐 빈곤 문제를 극복하는, 매우 모범적인 사례를 이뤄 왔습니다. 독일 역시 2차 대전 후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했지만 특유의 근면 성실한 국민성과 효율적인 산업 진흥 정책으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뤘죠.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특정 계층에서 벌어지는 가난의 대물림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저 바구니에 공이나 집어 넣으면서 이처럼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p26)." 바구니에 공을 집어 넣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회에 어떤 후생도 창조하지 않지만(새벽에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는 일이 훨씬 가치가 큽니다), 그 행위를 보고 꿈과 희망과 에너지를 얻는 이들이 무척 많습니다. 아마 타임머신 같은 게 있어서 과거 어느 시대 소크라테스나 칸트 같은 현자를 불러와 디르크 노비츠키의 성공을 보여 준다면 어이없어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지는 않고, 대신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독자는 그 중에서 자신의 답을 고를 수도 있고, 이를 종합하여 자신만의 답을 만들 수도 있겠네요. 제 생각으로는, 노비츠키처럼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저런 성공의 모범을 보고 현실의 자신을 부지런히 가다듬어야겠다고 결심을 굳히는 편이 어린 독자에게 유익할 듯합니다. 


 

p14에서 미하엘 휘터 교수라는 분은, 아마 개인의 가난 그 첫째 원인을 "그 사람이 능력이 없어서"로 규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처음에 선택한 전공이, 결국 자신과 잘 맞지 않거나, 나중에 사회에서 큰 수요가 생기지 않는 이유"도 듭니다. 또 그 다음으로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느냐"와 "국가 경제의 형편"을 들고 있네요. 그런데 물론 가정이 유복하면 남들보다 유리하지만, 그 좋은 조건을 살리지 못하는 사람도 무척 많습니다. 또 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해도, 남달리 집요한 노력을 통해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노력 만능주의로 모든 결론이 내려지는 건 아니지만요.

 

미하엘 짐머만 교수라는 분(p33)은 불교 전공이신가 봅니다. 불교를 학문적으로 전공한다고 해서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준수하거나 신봉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책의 독자들이 어리다는 걸 감안했는지 "많이 베푼 사람은 다음 생에서 큰 복을 받아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동아시아인들이 어려서부터 많이 듣던 이야기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남에게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런데 이건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혹은 공자의 말이 아닐지... 하긴 워낙 불경이 방대하기도 하니... 

 

"기부"는 예전부터 서양 사회의 미덕 중 하나였습니다. 귀족들은 수도원 등의 지도 하에 정기적으로 꼭 기부나 봉사를 하곤 했죠. 물론 상당수가 전시효과나 위선에 그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활동가 케르스틴 R(p88)이란 분은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부한다고 합니다. 미하엘 호르바흐라는 분은 전직 기업가이고 현재는 재단법인을 운영하는데 사업을 하던 시절에도 이윤의 10%는 언제나 기부를 했다고 밝힙니다. "진정한 행복은 남들에게 기쁨을 주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도와 줄 때에만 찾아온다"는 멋진 말을 합니다.


 

케르스틴 R이란 분은 p74에도 나왔습니다. "(당신이) 가난하면 혹 어떨지 상상이 되나요?" 그는 본인이 실제로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슨 차이가 있냐면, 어쩔 수 없이 그리 산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한 가난함이었기 때문에, 정말 피치 못한 가난과 맞닥뜨린다면 과연 어떨지 상상이 안 된다고 합니다. 굉장히 솔직한 말 같습니다. 펠릭스 M이란 대학생은 "여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합니다. 사실 요즘은 우리 나라 대학생들도 "그냥 공장 같은 데서 빡세게 몇 달 일해 보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더군요. 

 

폴란드가 형편이 어렵다 보니 프랑스나 독일 같은 곳에 와 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p98에 나오는 엘즈비에타라는 분은 여성, 이주민, 외국인, 가난, 질병, 다자녀 양육 등 가난의 총체적 문제 요소를 다 겪고 있는 불행한 분입니다. 같은 일을 하는 디터(p95)라는 분은 현재 가진 신발이 "지금 이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분들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힌츠 & 쿤츠트"는 노숙자 신문의 이름입니다. 우리 나라 사회과학 서적이나 잡이에도 자주 나오므로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p120 이하에는 이 신문을 파는 많은 이들의 이름이 죽 등장하여 자신의 발언(길지는 않습니다)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행복할 때"라든가 "인생에 좋은 날" 같은 게 있냐고 물었을 때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답을 합니다(pp.102~103). 자주 나오는 엘즈비에타라는 분은 폴란드 출신 답게 "교황을 뵈었을 때"라고 답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존경하고 따를 만한 사람을 마음에 담아두면 의지가 됩니다. 물론 그 사람이 정말로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인지의 여부는 또 별개 문제이겠습니다. 


 

이 책은 일단 아이들에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 "가난"에 대해, 뭘 가르치려 드는 어조가 아니라 우리 주변 이웃들(교수, 노숙자, 그저 평범한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입을 빌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돕습니다. 책 중에도 그런 질문이 나오지만, "왜 우리는 이처럼 풍요하게 살게 되었으면서도 극단적으로 가난한 이웃들이 그리 살게 방치하는가?"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내는 게 여전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꼭 거창하게 누굴 돕는다기보다, 아직 어린 독자들이 적어도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고 최소한의 공감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 책은 대성공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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