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해커스 공인중개사 출제예상문제집 2차 공인중개사법령 및 실무 - 제 32회 공인중개사 2차 시험 대비ㅣ기출지문 빈칸노트 제공 2021 해커스 공인중개사 출제예상문제집
황정선.해커스 공인중개사시험 연구소 지음 / 해커스공인중개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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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인중개사시험 과목 중 비교적 암기 위주로 출제되며, 철저한 암기가 바탕이 되고 반복 학습만 이뤄지면 큰 문제는 안 되는 영역이겠습니다. 대체로는, 기본서만 열심히 보고, 조문 숙지만 빠릿빠릿하게 이뤄지면 고득점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예상 문제집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실전 적응이 잘 이뤄질 듯합니다.


제1편 공인중개사법


법은 공법과 사법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뉘며 이 법은 중간영역인 사회법 성격이 강하다고 합니다. 공인중개사는 개인 간의 부동산 거래를 다루니 사법(私法) 영역에서 활약하지만, 이 활동이 전적으로 사적 자치에 맡겨진 게 아니고 엄격한 규제가 이뤄지므로 공법입니다. 특히 중개사 시험에 자주 나오듯 법정분을 초과하여 수수료를 받으면 이를 반사회질서로 의율하여 무효로 보는 판례가 있으므로 이 점은 누가 봐도 공법적 성격입니다. 


p21에 보면 02번 문제에서 답이 ②라고 나옵니다. 뒤의 해설(별책 p9)을 보면 명문으로 법제화되어 있지는 않으나 해석상 민법의 위임계약(채권법 각칙) 규정이 보충적으로 적용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무리 조문 중심으로 공부해도 실전 문제에서는 의표를 찌르는 함정이 파이기 마련이므로 문제집 공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p24에 고득점용 문제가 나옵니다. 사실 ①은 상식적으로 봐도 틀린 게 명백합니다. 계약 자체는 쌍방이 의사 합치가 되어야 이뤄지지만, 중개 의뢰를 쌍방 모두로부터 받아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죠. 만약 그렇다면 공인중개사를 통해 최종 성사되는 거래가 도대체 몇 건이나 되겠습니까? ⑤는 명인방법이라는 건데 관습법상 인정되는 공시 방법입니다. 


p25에서 ③은 도급이 "일의 완성 의무가 있다"고 했는데 이건 맞는 말입니다. 민법 채권 각칙에서 위임은 완성의무가 없으나(그래서 독일 변호사법에서 성공보수는 반사회질서 무효라고 처리했었죠) 도급은 완성의무가 있다는 걸로 계약 본성이 구별됩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에게 완성 "의무"가 있는 건 아니죠(중개를 못 이루면 의뢰인에게 손해배상?). 다만 완성을 해야 중개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는 하겠습니다. 


p34의 01번에서 공인중개사 자격요건은 비교적 널널한 편입니다. ③이 비교적 헷갈리는 편이지만 집행유예는 말 그대로 집행유예이므로 응시 요건에 결격이 될 건 없습니다. 다만 중개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생각하면 더 엄격하게 규율할 필요는 있겠죠. 최근에 어떤 중개사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차라리 위임사무와 책임 범위를 더 넓히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하더군요.


p36의 05번에서 ③은 선지를 찬찬히 읽어 보면 "무자격자로 하여금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대여한 것으로 본다"면, 아니 세상에 법에 안 걸려들 사람이 없겠죠. 이런 문제는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판례의 내용에 대해 기억을 다지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정도의 의미가 있겠다 싶습니다. 


p71의 60번에서 ③의 경우 甲도 책임을 지는데 이는 민법상 사용자책임이 강화된 것이므로 당연합니다. 이 문항은 고득점용으로 표시되었는데 특히 이 부분 최근 출제 가능성이 높아지는 듯하므로 판례까지 포함 공부를 잘 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p81에서 일반중개계약, 전속중개계약을 비교해 놓고 있습니다. 기본서에도 잘 정리되었겠지만 이 문제집에서도 다시 볼 수 있어 공부하기에 편했습니다. 


p89에 신유형으로 08번이 나옵니다. 중개사무소의 명칭, 소재지 드등은 광고에 명시해야 하지만, 중개대상물의 소재지는 표시 의무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미끼매물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요. 또 연락처는 명시를 해야 하지만 사업자등록번호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주의해야겠습니다.


p132에서 또 손해배상책임을 묻습니다. 이 문제도 고득점용이라고 나옵니다. "목적물 인도, 보증금 지급, 확정일자 취득 등이 예정되었다면 이는 중개행위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게 판례의 태도라고 별책해설 p33에 나옵니다. 이 판례는 2007년에 나왔으므로 비교적 최신 것입니다. 


p167의 29번도 고득점용 문항입니다. ②가 정답인데 폐업 전 업무정지처분의 효과가, 처분일로부터 1년간 승계된다는 겁니다. 바로 아래의 선지 ③과 비교해 보십시오. 과태료 처분도 똑같이 1년이라고 하면 아마 안 잊어버릴 겁니다. 


p193의 07번도 고득점용입니다. 피용인인 중개사뿐 아니라 이를 고용한 개업공인중개사도 처벌(벌금형)을 받는데(이른바 양벌규정), 이때 행위자가 아닌 개업중개사의 자격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게 그 요지입니다. 해설에는 안 나오지만 위법행위 본인이라고 해도 300만원 이상이라야 취소가 되며, 양벌규정(행위자와 고용인, 또는 법인)에는 자격 취소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이런 것도 해설에 좀 명기를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문제집 본책이 318페이지인데 1편 공인중개사법편이 200페이지입니다. 이 과목에서는 공인중개사법의 비중이 절대적이므로 철저히 조문 위주로 학습해야겠습니다. 


제2편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p213에 신유형 09번, 이게 유형 자체가 새로운지는 잘 모르겠으나 최근 들어 이 파트가 출제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건 사실인 듯합니다. 이 법상 거래신고 사항이 아닌 걸 고르는 건데 ⑤가 답이죠. 다만 별책 p49 해설에 "법인의 매출액"은 신고 사항이 아니라고 했는데, "보유 주택 수" 역시도 해당 없습니다. 둘 다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p234의 09번, ① 대가를 받고 지상권을 설정하는 경우에도 매매에 준하여 허가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②는 거래허가를 득할 시 만약 원래 농지였다면 따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③은 농지법상의 규정과 무관하게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하므로 틀린 것입니다. 


제3편 중개실무 


p264의 12번에서 관습법상의 여러 권리는 가급적이면 확장해 주지 않는다는 게 판례의 태도입니다. 분묘기지권도 그렇고 경작자의 작물에 대한 권리(부합의 법리 적용 제외), 명인방법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가급적이면 인정 안 해 주려는 게 판례의 태도이므로 분묘의 외형도 갖추지 못한 평장, 암장의 경우 분묘기지권이 인정될 리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 외형은 공시 방법이므로 물권법상의 성립요건 둘 중 하나가 결여된 거나 마찬가지죠. 


p271의 27번. ①이 어렵습니다. 선지에는 농지취득자격증명원이라 되어 있으나 임대차의 경우에는 그 임대차 사실의 확인만 받으면 충분합니다. 등기가 없어도 이처럼 보호를 해 주는 것은 도시의 경우 주택임대차 보호 제도를 떠올리면 되며, 또 농지법에서는 원래 경작자를 폭 넓게 보호하기 때문이죠. ④는 1차 과목 민사특별법에 나오는 내용인데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해 계약갱신요구권이 있는 것이고 임대인에게 그런 권리를 인정할 이유가 없죠. ⑤는 농지법상 아예 그런 규정이 없습니다. 표 하나에 임차인을 보호하는 3법의 내용을 다 담아서 문제화한 게 특이합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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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의 기적
케리 버넬 지음, 김래경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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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고 합의한 이야기라고 해서 언제나 진실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도 벌어지는 거고... 더군다나 그런 이야기가 어떤 강한 도덕적 당위를 지니고 있다거나, 그 이야기만 들으면 삶의 의욕과 희망이 샘솟는다거나, 이러면 이 이야기는 이미 사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집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걸 두고 사실과 구별되는 진실이라며 따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이런 건 악용의 가능성이 있기에 권장할 게 아닙니다.


"마블"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은 불과 다섯 살 때 어미곰한테 잡혀가 죽을 뻔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하키 스틱으로 곰을 쳤고, 이 틈을 타 어느 주민("한물간 스토니")이 총을 쏘고 곰에게 겁을 줘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연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브를 희망, 용기,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며 널리 그 이야기를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다섯 살 때의 일이지만 그 일을 겪은 당사자 마브의 기억(지금 7~8년이 흘렀다고 합니다)은 좀 다릅니다. 마브(아마 마빈 정도의 약칭이겠죠)는 그 일 이후로 경이롭다는 "마블"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마치 예전 권투선수였고 최근에 사망 소식이 들린 마빈 해글러가 마블러스라는 이름(나중에는 아예 호적상의 이름으로 바꾸었죠)을 얻었던 것과 비슷합니다. 여튼 마브가 몸소 겪은 기억에는 "어떤 여자 아기, 살려는 의지가 강했고 곰보다 더 야생적이었던 아기가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고, 자신은 그 아기를 구하려 들었던 것"뿐입니다. 그러나 엄마를 포함 어떤 어른들도 "아기? 무슨 아기?"라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물론 아무리 애라고 해도 그 아찔하고 강렬한 기억을 어떻게 잊겠냐고 할 수 있지만(또 한국과는 세는 나이도 다르겠지만), 과연 다섯 살의 기억이 그리 믿을 수 있겠는지 조금은 의심이 들었습니다. 또 그 경고문에 나온 세 문장이 다섯 살의 마브에게 과연 그리 의미가 깊이 다가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스쳐가더군요. 여튼 마브, 그 일 이후로 "하키 실력도 엄청 늘었다는(!)" 15세 소년은 여전히 그 아기와 어미곰의 기억을 마음에 품고 지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두고 풀어야 할 자신만의 의문과 수수께끼를 가질 수 있습니다만 마브는 그 계기를 매우 드라마틱하게 마련한 셈입니다. 


"곰이야." '내 곰인가?'(p68) 사람은 어렸을 때 품은 의문을 그 일생 동안 해결하려 드는 버릇이 있습니다. 마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자신에게 위협적이었던 그 큰 어미곰보다는 아기와 가까이 있었던 새끼곰이겠지요. "여자애랑 곰이 같이 자랐다면, 둘은 서로를 특별한 마음으로 아끼는 사이일거야.(p73)"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마브 특유의 순수한 마음 아니겠습니까. 어른들은 그저 야생동물을 포획하거나 살상해야 할 위협적 존재로만 보는데 말입니다(물론 현실에서, 곰은 정말 조심해야 할 동물이긴 합니다).


"프로미스가 또 의상을 망가뜨리면 그레타가 산 채로 가죽을 벗길 거야."(p92)


이처럼 이 책은 약간 무서운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고(물론 결론은 감동적이고 모든 문장이 순수한 동심에의 복귀를 강조하는 착한 마음을 담았습니다만), 약간 내용이 좀 많습니다. 위니더북의 기존 어린이책을 생각하신 학부형들은 좀 의외로 여길 만도 합니다. 


마브는 놀랍다는 듯이 말합니다. "여자애가 스케이트를 끝내주게 잘 타는 것 같아요.(p125)" 아빠와 엄마 리언은 카니발 구경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이 시점부터 아들 마브의 일생을 둔 수수께끼에 드디어 동참하는 것 아닌가,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 느꼈습니다. 


"이름이 왜 튜즈데이에요?" "화요일은 걔 운이 좋은 날이거든."(p135) 하지만 마빈은 벌써 직감합니다. 이 구경이 내 일생을 바꿔 놓겠구나 하고 말이죠. 왜인지 아십니까? 바로 앞의 그 곰 사건도 화요일에 벌어졌으니까요. 


"네가 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잘 알아. 그레타가 곰이랑 너를 너무 가까워지게 놔 뒀지. 그래봤자 동물인데 말이야." 서베스천이 이렇게 책망해도 튜즈데이는 여전히 기가 죽지 않고 대꾸합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우리말로 (번역)된 텍스트가 맥락의 파악에 훨씬 유리한 것 같습니다. 분위기나 인물의 내심도 더 전달이 잘 되고요.


"저건 긴 망토를 입은 여자애 아냐?" (p188) 카, 여기서 마브, 엄마곰 뒤를 여태 따라온 마브는 드디어 누구를 만납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너희 둘을 다 찾았다니 믿을 수 없어."(p190) 

"아니, 우리가 널 찾은 거야."

크.. 역시 OOOO 다운 말입니다.(누군지는 스포라서 가립니다)


드디어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고야 만다... 인생의 영원한 진리입니다. 소설 제목에도 "기적"이 붙었지만, 이 장편소설(생각보다 기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으십시오)은 정말 끝까지 읽은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우리 어른들도 어린 시절의 동심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야, 생에서 얻는 감동과 감격, 뭉클함이 더 잦아지고 많아집니다. 마브의 모험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이런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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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무쌍 황진
김동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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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한국사의 여러 위기는 우리 후손들이 갚으려고 해도 결코 갚을 수도 없는 큰 은혜를 끼친 위대한 영웅들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게 거의 전부입니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 책에도 이런 말이 나오지만, 7년 전쟁 임진왜란은 해전에서의 기적뿐 아니라 육전에서의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전과 덕분에 결국 적을 격퇴하고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이 저렇지만, 황진 장군에 대해 보다 더 포커스를 맞추었을 뿐 "소설로 보는 임진왜란"이라 해도 될 만큼 조선과 왜 사이의 16세기말 7년 전쟁 전반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게 지어진 소설입니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근거를 실록, 징비록, 김학봉 문집 등 다양한 문헌에서 찾았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이라는 느낌보다 역사서를 차라리 읽는다는 생각이며, 다만 소설처럼 술술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물론 터무니없는, 도요토미라는 자의 제 주제를 모르는 탐욕 때문에 발발했지만, 왜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전략은 치밀했으며, 정말로 우리 민족이 큰일날뻔한 위기였다는 점 소설을 읽고 다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 중에도 나오지만 백 년 가까이 저들끼리 목숨 걸고 싸운 전국시대를 거쳤기에 "견고한 성을 짓고 공방전을 벌이길 밥 먹듯이 하였으며" 수백 년 동안 북방의 오랑캐와 남쪽의 도적들(물론 다 민간인들이죠)이 일으키는 변방의 난리만 수시로 격퇴했을 뿐 거의 태평성대를 누린 우리 민족이 처음에 얼마나 당황했을지 눈에 선하게 그러졌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제목과 주인공이 황진 장군인데도 임란 주요 국면 전반을 다 개관할 수 있는 소설인데 그 이유는 자칭 관백 히데요시를 보러 조선에서 파견된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의 사신 행렬에서부터 이미 황진 장군이 젊은 무관 신분으로 참여(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서 황진 장군은 의외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채 한반도를 향한 야욕을 드러내던 왜의 실체를 보고 경악하고선 그들의 장점을 현지에서 최대한 파악하고 실전(미래에 일어날 게 거의 확실)에 대비하려던 자세를 보입니다. 실제로 군인으로서 전략적 두뇌도 뛰어났고 개인적 무용도 출중했던 분이었기에, 이분이 사신단을 수행했던 건 겨레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백 년 전부터 양다리를 걸치고 간교한 술책을 벌이던 쓰시마 무리의 행각, 그나마 전쟁을 회피하려 했자만 오만무례하고 비뚤어진 세계관을 가졌던 고니시(소 요시토시의 장인) 등의 모습이 잘 그려졌더군요. 또 소설 전반부에서 주목해야 할 건 부사(副使)였던 김성일의 태도와 인품입니다. 물론 그는 수길에 대한 평가절하를 통해 전쟁 대비에 차질을 빚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신으로서의 행차 내내 꼿꼿하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본인뿐 아니라 당대 사대부 모두가 공유하던 철학을 현지에서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나마 사신단의 체면을 지킨 면도 있었고 이 소설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황진은 젊은 무관으로서 때로는 그를 존경하고 때로는 부딪히는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다 같으나 그 실천론에서 차이를 보였던 점이 흥미롭습니다. 


정사 황윤길 역시 현실을 바로 파악하여 "예(禮)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귀국하여 전쟁에 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현명한 면모를 보입니다. 독자로서 다만 건강을 좀 잘 간수하시지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습니다(건강은 상당한 경우 본인 관리 의지의 문제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서인은 시대착오적 화이관에 찌든 무리들이기만 했던 게 아닙니다. 조선 후기 북학파 등도 다 서인 혹은 특히 노론에 속했던 인사들입니다. 오히려 학봉 김성일이 동인 소속이었고 이 소설에서도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잘 묘사되죠. 


전쟁 발발 후 특히 5만 명의 근왕병이 모여 불과 2천명의 왜군에 패퇴한 용인 전투는 지금도 큰 수치로 꼽힙니다. 다만 당시 왜군이 보여 준 놀라운 전술과 무기 등을 감안하면, 그저 종래의 왜군 무리겠거니 하고 몰려온 근왕병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이해는 됩니다. 5만 명이 모였다는 자체가 일단 어디겠습니까. 전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백 년 가까이 내전에만 몰두하여 살아남은 승자들하고 게임이 안 되는 게 당연하죠. 칠 년 동안 상대와 싸우며 적의 장점을 배워 끝내 그들을 몰아낸 점이 대단하며 마치 2차 대전 당시 초기에 궤멸적 피해를 입고도 끝내 상대 전술을 그대로 흡수하여 격퇴한 소련군의 업적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권율 장군이 꽤 자주 나오는데 황진 장군이 이 노장, 본래는 그저 문관이었던 그를 잘 보좌한 역사적 사실 때문입니다. 권율 본인은 나이도 많고 전쟁 경험이 없었으나, 문관으로서 고루한 우월 의식만 내세우지 않고 황진 장군 같은 무(武)의 인재를 잘 알아보고 적시적소에 그를 기용했다는 자체가 벌써 불멸의 업적입니다. 그 외 그만의 탁월한 전과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후손들이 다 잘 알고 기리는 바입니다. 


일본에는 오랜 동안 불교 문화가 정착했기에 승려 출신으로 무장이 된 이갸 많습니다. 무장까지는 아니었으나 왜군에 소속되어 많은 일을 한 현소(겐소)도 우리 나라에서 유명하고, 이 소설에는 무장으로 안코쿠지가 나오는데 승려 출신이라서인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면이 자주 묘사됩니다. 훌륭한 적에 대해 최소한의 리스펙트를 바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도 "곡예처럼 칼을 쓰는 사무라이"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으며 이 때문에 도쿄 대공습이나 원폭 투하 등 다소 무리한 수를 두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러나 목책을 쌓고 지형지물의 유리한 점을 잘 이용하는 등 전술의 디테일에 있어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 내어 이런 가공할 적의 무력에 대항하는 모습이 놀랍습니다(실제 역사이기도 하고요). 이런 점은, 섣불리 상대를 야잡아보고 쳐들어온 저들 왜적이 결코 예상 못했을 것입니다. 위에서 학봉 김성일도 "조총이 뭐가 무섭냐? 우리에게는 화포가 있다"고 했는데 이런 기개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총은 개인 화기이며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반면 화포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 조총을 두고 명중률이 나쁘다며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화포도 마찬가지며 왜군이 이 단점을 알아 체계적으로 전술적 극복을 이미 이뤘다는 게 중요합니다. 


한 개인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게 황진 장군은 웅치, 이치, 사평, 죽주 등 거의 모든 주요 theater에서 맹활약합니다. 책에는 "황진 장군의 임진왜란"이란 표현도 나옵니다. 과연 그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충무공께서 노량에서 사거하신 것처럼 황 장군도 진주성 싸움에서 그 위대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우리는 종종 "진주성 싸움에서 우리가 혹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면?" 같은 가정을 하는데 이게 사실이었다면 더 이른 시기에 덜 피해를 입고 간악한 왜의 무리를 축출했을 것입니다. 작가는 "진주성 싸움에서 만약 황진이 전사하지 않았더라면?"으로 질문을 확장합니다. 왜는 김시민 장군 같은 이들만을 이 힘들었던(저네들 입장에서) 싸움의 영웅으로 기억하지만 우리는 황진 장군의 놀라운 행적까지 후손으로서 기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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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시선 - 개정판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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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교수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언제나 개인적으로 느끼는 점은, 동반자(간혹은 상간자. 내연녀[남]), 부모님, 와이프, 혹은 남편, 친구 등에 대해 종전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성찰하는, 어떤 계기가 작품 중에서 제공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서두에 대뜸 말테가 등장하여 조금은 놀랐습니다. 말테는 물론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책 <말테의 수기>에서의 그 화자입니다. 


이 소설에서의 "아들"도 뭔가 익숙하면서도 약간은 능청맞고 뭔가는 좀 부족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사실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진짜 부족한 사람이야 당연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부모님 앞에서는, 번듯한 회사를 다니거나, 뭐 남한테 딱히 꿀릴 것 없는 학교를 졸업했다거나, 어지간히 벌이를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는 떳떳지 못하고 부족한 느낌을 가집니다. 이 소설 중에서도 나는 딱히 죄 지은 바(?)도 없으면서 "스트레스 많을 때에나 걸린다던 결핵을 우리 아들이 걸리다니...:"라며 안타까워하시는 어머니 앞에서 "내가 무슨 공부를 그리 심하게 했다고..."라며 도리어 자책 중입니다. 스트레스 받은 것도 딱히 없으면서 결핵에나 걸리고, 어머니께 오해를 부른 것 자체가 큰 불효이자 떳떳지 못한 아들 점수 1점 더 벌기나 한 것처럼 말이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처럼 꼬이고 꼬인 인물들의 난해한 의식까지는 아니라도, 이승우 작가님 작품 속 역시 별의별 생각으로 다 마음 속이 복잡한 이들이 나와 그 내면을 (원튼 원치 않든 간에) 우리 독자들에게 (준비가 되었든 안 되었든) 들려 줍니다. 아니 누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지금 그런 얘기는 왜 하시는 건가요 라고 물어 보고 싶지만 틈도 안 주고 이야기 시작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승우 작가님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 내면의 독백(이라기보다 누구 들으라고 중얼거리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란... 저 릴케라든가 울프의 주인공들처럼 현학적이거나 배배 꼬이지 않은... 카프카의 주인공들처럼 좀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싶은 불안의 지점에도 머무르지 않는, 그저 동네 아저씨 수준의 담화인데 다만 쓸데없이 섬세해지는 그런 내러티브입니다. 이러니 듣고 있다 보면 우습기도 하고(우스운 게 가장 첫째 반응입니다) 다음으로는 어 이거 혹시 내 이야기인가 하고 은근 공감의 지점을 찾거나 뭔가 뜨끔해지는 순서라고나 할지. 여튼 섬세하고 집요하다가 이지적으로 들어가면서도 별 부담이 없고 친근하다는 점, 그러면서도 억지스럽게 감정의 폭발이나 강요된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솔직하면서 온건한 세계라고나 하겠습니다. 


p169에서 김중사가 그리 나올 때, 우리 주인공이 (사실 피지컬로는 해 볼 만할 텐데도) 혹 저 (예비된) 폭력에 반항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독자가 있을까요? 언제나처럼 이 유니버스의 주인공은 무기력 그 자체입니다. "나는 어차피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호주머니에서 순순히 전화기를 꺼내 주었다." 이 문장은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주인공이 그처럼 쉽게 포기하리라는 점 어느 독자라도 예측할 수 있기에 이 문장은 의미상 잉여입니다. 기술적으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아버지들은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한다. 그러나 아들들은 그렇지 않다. 아들들은 그저 아버지일 뿐인 존재를 찾을 뿐이다."(p177)


만약 이 문장이 릴케라든가 카프카의 작품 중에 나왔다면, 평론가나 대학원생들은 그 의미를 궁구하기 위해 1t분량에 이르는 논문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승우 교수의 작품 중에서 저런 문장은 어떤 심오한 사색을 부르기보다, "그건 그려" 같은, 보편적이고 진입 장벽 낮고 뜨듯미지근한 반응을 부를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심각한 의미의 탐구 이전에 한국인이면 누구나 공감할 듯한, 어떤 최불암씨의 연기 같은 푸근한 지점을 이미 만들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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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미로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2
천세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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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야기를 갖고 있어." 그러니 모든 사물, 사람 등에 생명을 부여하는 건 이야기이며, 무엇이 살아 있는지 아닌지는 이야기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이상, 누가 감히 그것이 죽었다고 말할 수 없겠죠. 


마을마다 전문적으로(?) 이야기만 전해주거나 읽어내는 사람이 있고 이를 "이야기꾼"이라 부릅니다. 이야기꾼도 생업에 종사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는 듯하며,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후계자를 양성하기도 합니다. 이야기꾼은 자신이 (스승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으며 전달할 수 있습니다. 공력이 높으면 말 없는 사물이나 심지어 오래 전에 죽은 이들로부터도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삼촌이 미로와 함께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 버렸기에, 또 아직 저쪽 편 세상에 대해 외삼촌 자신도(또 미로 역시) 모든 걸 알지 못하기에, 이어지는 사연은 말로 전하지 못하고 글로 전달됩니다. 하지만 외삼촌 역시 지금 우리 세상에 대해 꽤나 회의적이고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므로, 그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그가 전하는 진실은 말 그대로 정직한 진실입니다(혹은, 그렇게 믿고 싶네요). 


얼마 전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을 읽었을 때, 북반구 추운 지방에 사는 원주민분들은 그 부모가 갑자기 죽거나 한 고아의 삶에 대해 그리 넉넉한 배려를 베풀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게 사실 우리 세계의 냉혹한 현실이죠. 그런데 저기 미로가 사는 세상에서는, (아직 아빠가 살아계시긴 하지만) 미로가 흘린 눈물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고민도 하는 등 고아(아직은 아니지만)에 대해 조금은 더 배려가 이뤄지지 안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강을 이뤄 흘러넘치는 눈물 때문에 입을 현실적 피해"가 걱정이 되어서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저는 남의 슬픔에 대해 냉정하고 잔인하게 구는 편인 우리네 세상에서 고작 누구(그것도 어린애)의 눈물 정도로 집단 피해가 안 일어나는 건, 이게 둘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 아닌가, 반대로 저쪽은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라서 그렇게 홍수가 나기도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큰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려면, 세상을 널리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미로네 세상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고, 또 스승인 이야기꾼에게 이야기를 전수 받고, 이 과정을 통해서 상처가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건, 우리 역시 사정이 그럴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받아들여. 어차피 누구나 겪는 일이야."라고 위로하지만 우리나 미로나 그런 말로는 힐링이 안 됩니다. 


스승인 이야기꾼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p80에 처음 이름이 나오죠. "이름"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이름이 없어도, 혹은 잘못되거나 우스운 이름이 붙어도 그리 신경 쓸 게 없다는 말도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구루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그저 이야기꾼으로만 불릴 뿐입니다. 


이 소설,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로서 제가 인상 깊었던 건, 마을의 크기나 부유함 같은 것에 무관하게,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빈곤하면 사람들이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걸로 봐서, 아마도 우리네 세상의 소설가, 시인, 혹은 널리 문화 컨텐츠 크리에이터에 이 이야기꾼이라는 분들이 해당하는 것 같고 또 그에 대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삼촌과 1인칭 주인공인 "나" 등이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처럼 저들은 이야기꾼 포함 문자를 쓰지 않는다는 게 꽤 특이합니다.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전승지식, 노하우 등을 문자로 적어 두면 정말 편할 텐데도 구태여 그리 하지 않는 건(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동화 "구연"이라든가 판사 앞에서 이뤄지는 법정의 생생한 직접 증언 등에 특별한 가치를 두는 건, 눈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통해 이뤄지는 진술 속에 더 강한 진실이 담겨 있고, 단순 정보 이상의 더 인간적인 감정, 진실이 소통된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들"이 사는 우주의 이야기, 이야기꾼이 특별히 존중 받는 이유도 저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의식적으로, 허위와 왜곡이 이뤄지기 쉬운 문자 체계 채용을 배척한 것이겠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네 사는 세상에서 이야기가 중요한 다른 이유는, 우리들 하나하나가 마치 미로네 엄마처럼 언젠가는 유한한 생을 마치고 모두와 이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로장생할 수만 있다면 표정과 더 간단한 말로 그때그때 소통하면 충분합니다. 남겨진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걸 남겨 주고 싶다면, 이야기는 더 진실해야 하며 그런 진실된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은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어갈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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