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 개정판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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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교수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언제나 개인적으로 느끼는 점은, 동반자(간혹은 상간자. 내연녀[남]), 부모님, 와이프, 혹은 남편, 친구 등에 대해 종전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성찰하는, 어떤 계기가 작품 중에서 제공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서두에 대뜸 말테가 등장하여 조금은 놀랐습니다. 말테는 물론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책 <말테의 수기>에서의 그 화자입니다. 


이 소설에서의 "아들"도 뭔가 익숙하면서도 약간은 능청맞고 뭔가는 좀 부족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사실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진짜 부족한 사람이야 당연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부모님 앞에서는, 번듯한 회사를 다니거나, 뭐 남한테 딱히 꿀릴 것 없는 학교를 졸업했다거나, 어지간히 벌이를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는 떳떳지 못하고 부족한 느낌을 가집니다. 이 소설 중에서도 나는 딱히 죄 지은 바(?)도 없으면서 "스트레스 많을 때에나 걸린다던 결핵을 우리 아들이 걸리다니...:"라며 안타까워하시는 어머니 앞에서 "내가 무슨 공부를 그리 심하게 했다고..."라며 도리어 자책 중입니다. 스트레스 받은 것도 딱히 없으면서 결핵에나 걸리고, 어머니께 오해를 부른 것 자체가 큰 불효이자 떳떳지 못한 아들 점수 1점 더 벌기나 한 것처럼 말이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처럼 꼬이고 꼬인 인물들의 난해한 의식까지는 아니라도, 이승우 작가님 작품 속 역시 별의별 생각으로 다 마음 속이 복잡한 이들이 나와 그 내면을 (원튼 원치 않든 간에) 우리 독자들에게 (준비가 되었든 안 되었든) 들려 줍니다. 아니 누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지금 그런 얘기는 왜 하시는 건가요 라고 물어 보고 싶지만 틈도 안 주고 이야기 시작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승우 작가님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 내면의 독백(이라기보다 누구 들으라고 중얼거리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란... 저 릴케라든가 울프의 주인공들처럼 현학적이거나 배배 꼬이지 않은... 카프카의 주인공들처럼 좀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싶은 불안의 지점에도 머무르지 않는, 그저 동네 아저씨 수준의 담화인데 다만 쓸데없이 섬세해지는 그런 내러티브입니다. 이러니 듣고 있다 보면 우습기도 하고(우스운 게 가장 첫째 반응입니다) 다음으로는 어 이거 혹시 내 이야기인가 하고 은근 공감의 지점을 찾거나 뭔가 뜨끔해지는 순서라고나 할지. 여튼 섬세하고 집요하다가 이지적으로 들어가면서도 별 부담이 없고 친근하다는 점, 그러면서도 억지스럽게 감정의 폭발이나 강요된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솔직하면서 온건한 세계라고나 하겠습니다. 


p169에서 김중사가 그리 나올 때, 우리 주인공이 (사실 피지컬로는 해 볼 만할 텐데도) 혹 저 (예비된) 폭력에 반항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독자가 있을까요? 언제나처럼 이 유니버스의 주인공은 무기력 그 자체입니다. "나는 어차피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호주머니에서 순순히 전화기를 꺼내 주었다." 이 문장은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주인공이 그처럼 쉽게 포기하리라는 점 어느 독자라도 예측할 수 있기에 이 문장은 의미상 잉여입니다. 기술적으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아버지들은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한다. 그러나 아들들은 그렇지 않다. 아들들은 그저 아버지일 뿐인 존재를 찾을 뿐이다."(p177)


만약 이 문장이 릴케라든가 카프카의 작품 중에 나왔다면, 평론가나 대학원생들은 그 의미를 궁구하기 위해 1t분량에 이르는 논문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승우 교수의 작품 중에서 저런 문장은 어떤 심오한 사색을 부르기보다, "그건 그려" 같은, 보편적이고 진입 장벽 낮고 뜨듯미지근한 반응을 부를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심각한 의미의 탐구 이전에 한국인이면 누구나 공감할 듯한, 어떤 최불암씨의 연기 같은 푸근한 지점을 이미 만들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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