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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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물론 위험합니다만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도 많은 줄 우리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집(단편집)을 다 읽고 난 후 제게 든 생각은, "이 세상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었구나"였습니다. 물론 이 작품들의 배경이 된 곳은 정확히 지구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이며, 세상 천지에 한국보다 더 치안이 잘 갖춰진 나라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그것이 지구 반대편일망정 세상에 이런 곳이 지금 동시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불안해지고 무서워졌다고나 할까요? 정녕 지구반대편의 일일 것만 같지만 공동체라는 곳이 이런 절망, 가난, 무질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더욱 무섭기도 하고요.


4개월 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읽고 짧은 독후감을 남긴 적 있습니다. 그 책도 단편집이었는데 지금 이 책이 겉모습은 더 예쁘고... ㅎㅎ 음 더 작품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고 할까요? 역자 후기가 없는 대신 저자 후기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 뒤표지에는 "공포 소설집"으로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하는 말이 있으며 실제로 어느 독자라 해도 책장을 넘겨가며 으스스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실제로 몇 작품은 구태여 역사, 지리적 배경, 혹은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고려할 필요 없이 호러물로 읽어도 충분합니다. 정말로 호러물인 줄만 알고 이 책을 고른 독자들은, 그 몇 작품만 읽어도 원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것 같습니다(찐으로 무서우니 말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고 싶다면, 이 책만큼은 작가 후기를 좀 읽어 봐야 할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역자 후기, 작가 서문 등은 작품을 다 읽은 후에야 들춰 보는 게 원칙입니다. 문학은 아무 선입견 없이 순수 내 감상만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의라서인데, 이 작품집은 자주 뒤로 옮아가서 저자의 해설을 좀 듣고 싶었습니다. 


작가 후기에는 이 책을 두고 "내가 처음 쓴 공포 소설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분명 무서움을 주려는 의도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이 단편에서 사람들에게 '닥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가난이다(p342)." 한국 구전 설화나 전래 문학에서 가난은 물론 지긋지긋한 존재지만 그리 무섭게 다가오기만 하지는 않고, 때로 엄청난 해학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이 작품집에서의 가난은, 설령 악마가 있다 한들 그 이상이겠나 싶습니다. 저는 "이 단편에서 사람들에게 닥치는 것은, 가난의 탈을 쓴 악마 그 자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땅에서 파낸 앙헬리타>에서 처음에 이 할머니는 TV 드라마 <컴뱃!>을 즐겨본다는 말이 잠시 나오는데 음... 작품 전체와 어떤 특별한 맥락을 이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역주에 설명이 잘 나오긴 하지만, 한국에서 아마 50대 중반 이상의 남성이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인기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책에는 빅 모로라고 주연 배우 중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아마 빅 머로우라고 하면 알아듣는 이가 많을 것입니다. 여튼 할머니가 ㅎㅎ 저런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처음에 저는 어떤 범죄가 개입한 사연인가 짐작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요, 어려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동의 한 맺힌 사연(뒤의 저자 후기를 꼭 참고하세요)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라면 우리 나라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호숫가의 성모상>은 마치 루스 렌들이나 로알드 달의 스릴러에서 볼 법한 소름끼치는 서사가 돋보이죠. 이 역시 저자 후기에서 의도가 뭔지 상세히 가르쳐 줍니다. "상처 받은 소녀들은 위험에 놓이기 쉽고 그 자체로 위험해지기도 한다" 사실 이 이야기가 저는 가장 무서웠는데,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쓰진 않겠으나 성모상이 어느 우상의 여신상으로 바뀌는 과정, 또 그녀들의 좌절당한 구애, 성욕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빚는지가 포인트입니다. 아주 조심스럽기는 한데, 저는 일부, 극히 일부 여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성향 때문에 마녀사냥의 초창기 단초가 제공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역사적으로 마녀 사냥이라 함은, 종교, 정치 권력의 어두운 결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잔혹하게 탄압하여 지배력을 제고하고자 한 사악한 시도였음은 물론이지만 말입니다). 가톨릭의 성모상이 얼마나 절묘하게 이단의 무속으로 변형되는지 다시 생각해도 기막힌 솜씨입니다. 


<쇼핑카트>는 어느 "비렁뱅이 노인네(p73)"가 마을에 와 함부로 배변을 하는 소동에서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저 뒤 <슬픔에 젖은 람블라 거리>에도 p109에, 속에 단단히 탈이 난 듯한 소녀가 거리에 배변을 하며 자칫 그 위로 넘어질 뻔한 모습이 비슷합니다. 아마 인간이 최소한의 품위도 잃은 채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자주 쓰이는 듯합니다. 마을 전체에 닥친 공황 때문에 강도가 설치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안전과 재산을 보장 받을 수 없는 무법천지가 되는데, 사람들은 그저 "그 카트를 끌고 다니는 늙은 비렁뱅이!" 때문에 악운이 닥쳐 이렇게 되었다며 만만한 희생양을 찾습니다. 재앙 앞에 인간은 이성을 잃고 야만으로 치달으며, 마지막에 "엄마"마저도 자제력을 잃고 그 무지렁이 같은 마을 사람들을 따라 이지 빅팀을 탓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슬픔...>은 말 그대로 지옥도입니다.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며, 어린이들조차도 살기 위해 매춘을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의 폭죽이 터집니다. 마약 중독자들은 나중에 치아가 망가지게 되는데 이 소설에도 p135에 그를 상상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어떻게든 버텨 볼테니까 아무 걱정 할 것 없어(p135)." 마치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문장처럼 대단한 역설입니다. 아니, 이런 곳에서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습니다. 


"코라손"은 심장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이며 여성의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심장이여...>에서 화자 "나"는 <제인 에어>를 즐겨 읽는데 저자 후기에서 "어려서부터 앵글로색슨 문학을 읽고 자양분을 얻었다"고 밝히는 작가분의 분신 같기도 합니다. 결국 작품에 심취한 나머지 "심장 박동 성애자"가 된 것이죠. 


<카르네>에서는 또 위험한 소녀들이 나옵니다. 이 단어는 번역이 안 되고 그냥 원어대로 제시되는데 두 페이지를 넘기면 역주에 그 뜻이 따로 설명되며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잘 아는 영어의 "카니발리즘"과 어원도 같으며 작품 주제도 그것입니다(...). 오르페우스 설화와 비슷한 마무리가 인상적입니다. 우리 나라에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비밀리에 온 적 있는데 어떻게 알고 소녀팬들이 찾아가 난리가 벌어진 그 사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돌아온 아이들>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길이가 깁니다. 실제로 군부 독재 시절 아이들이 이유 없이 실종되기도 했고 이른바 "더러운 전쟁"은 지금도 그 수습이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작품에서 진정 독자에게 공포를 자아내는 건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 사람과 체제의 탐욕이 빚은 구조적 모순, 빈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와중에 성 모럴이 거의 짐승 수준으로 타락하는 과정(의 묘사)도 볼 만한데, 아마도 어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포르노 영상도 무섭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오히려 다행?).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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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기초 경매 - 부자 경매의 시작 알기 쉬운 경매
김인성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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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경매를 통해 좋은 부동산을 보다 싸게 매입하여 재테크에 활용하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테랑 공인중개사이자 건설업자, 인기 강연자이기도 한 저자는 일단 독자가 경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라고 가정하고 "그저 볼 줄 알고 읽을 줄만 알아도 경매는 할 수 있다"며 생기초부터 차근차근 알아 듣기 쉽게 이 책에서 가르칩니다. 


실제로 경매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으나,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저자는 경매로 돈 버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1) 선별검색을 통해 시간을 최소로 줄이면서 원하는 알짜 물건을 찾아낸다. 

2) 기다릴 줄 알며, 무리한 고가 낙찰을 하지 않는다.

3) 곁눈질 않고 내 목적에 맞는 물건에만 집중한다.

4) 나만의 원칙이 있다.

5) 상환 등 자금 운용 계획을 사전에 철저히 세운다. (p58)


이 다섯 가지 원칙이 모두 필수적이지만 저는 특히 2)와 5)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과거에는 고수, 전문가(?)들만 참여해서 고가 낙찰이 없었으나 현재는 서투른 분들도 많다 보니 경매를 통해 취득하는 보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 경매로 소유권만 확보했다고 다가 아니라 기존 임차인을 퇴거시키고 목적에 맞게 정비를 하려면 돈이 따로 많이 드는데 90~100%에 낙찰을 받으면 남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고가낙찰자에게는 오히려 노련한(?) 퇴거 대상자가 위로를 건넨다고 하니 이게 웃어야 할지 어쩔지 모를 일이죠.


또 경매를 통한 방법뿐 아니라 모든 재테크, 투자는 주먹구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100% 내 자금만으로는 일이 안 되니 어느 정도 대출을 받아야할지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고 언제쯤 얼마만큼 상환을 할지, 혹시 이런저런 자금 유입이 뜻대로 안 될 경우 플랜B를 어떻게 가동할지 다 마련된 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불의타를 맞고 좌초한다 해도 놀라울 게 없습니다. 비즈니스란, 무슨 장난이 아니며, 수억에서 수십억이 오가는 부동산 취득이 어느 정도 업이 된다면 이건 분명히 비즈니스의 일종입니다. 


당장 돈도 없는데 경매에 참여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심지어 빌린 돈도 없는데 어떻게 참여를 하느냐, 책 p67에서는 보증보험을 통해 아주 적은 돈만으로도 일단 참여는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물론 지금 당장에만 돈이 없을 뿐 나중에 확실한 조달 방법이 생길 때에나 가능한 방법입니다. 


경매에 참여할 때는 그저 지인들 따라 무작정 나서는 식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며, 공부를 한 후 과연 이 부동산에서 비전이 발견되는지 확고한 기준에 따라 꼼꼼히 따져 봐야 합니다. 책 p92에서는 현황조사서를, 필수로 따져 봐야 하는 서류들 중 하나로 듭니다(이것 외에도 많습니다). 이 서류는 임차인의 현황, 확정일자, 보증금, 나아가 이런저런 유치권 등이 걸렸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아무래도 부동산이라 함은 그 본질과 핵심 정보를 "등기부"에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죠. 책의 섹션 2에서 아주 자세히 설명되며 사실 권리 분석은 이 모든 과정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책에서는 앞 섹션 1의 말미에서 거론한 여러 서류, 즉 매각물건명세서, 현황보고서, 감정평가서 등의 실제 예를 들며 우리가 해당 물건에 대해 알아볼 때 어떤 점을 특히 주의해서(모든 점에 주의해야 하지만) 봐야 하는지 알기 쉽게 가르쳐 줍니다. 이런 서류는 몇 번 해 보면 익숙해지지만 처음 하는 분들에게는 헉! 하고 뭔가 무서운 느낌마저 들며 분명 한국말로 된 내용인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막막함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책을 보며 아 이렇게 생겼구나, 이 부분은 이런 정보를 담았구나 하고 하나하나 익혀 나가면 되겠습니다. 


특히 말소기준권리에 대해 잘 알아야 괜한 점에 헷갈리지 않고 목표한 바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점은 민사집행법 91조에서 명정하는 사항인데 책에서 우리 경매 참여자들만을 위한 내용만 잘 추려서 가르쳐 주네요. "소제"라는 말이 눈에 띄는데 정말 아주아주아주 나이 많은 노인분들이 청소라는 뜻으로 이 말을 쓰기도 합니다. 민사집행절차에서는 물론 다른 뜻인데 "낙찰로 인해 후순위권리를 전부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리킵니다. p118이하에서 세 가지 점에 특히 역점을 두고 독자의 주의를 촉구하네요. 


집합건물의 경우 특히 이 건물이 어떤 "대지권" 위에 서 있는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p134). 특히 저자는 전세권, 지상권, 임차권 등도 이런 대지(사용)권이 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요약합니다(물론 드물게나마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 위에 선 건물인가. 우리 법제는 토지에 건물이 부합하는 식이 아니라 따로 대장을 만들어 완전 별개의 소유권으로 다룹니다. 그러니 취득시효 등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권원 없이 땅 위에 건물만 덩그러니 가질 수가 없죠. 심지어 전세권, 지상권 등 제한물권을 쓰는 경우도 드물다는 겁니다. 혹시나 대지권 등기가 없다, 이러면 이거 큰일나는 수가 있으니 반드시 꼼꼼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게 결론입니다. 땅 임자가 어디서 나타나 철거를 요구하면 답이 없는 거죠. 


토지별도등기(p154)라는 것도 심심찮게 나타나 낙찰자를 괴롭게 만듭니다. 원래 이런 건 대장과 등기부를 통해 알아 보면 그만이지만(또 건물 취득자의 책임이지만) 법원은 혹시나 해서 이런 걸 미리 경고해 주죠. 집합건물 신축 시 건물보존등기, 대지권 등기(법적 용어가 아니라 실무상 쓰는 말입니다)를 경료하게 되는데, 이때 기존 설정 등기는 다 말소 신청을 하는 게 원칙입니다. 이때 법원에서는 별도등기를 표시하며, 취득자는 이런 부분에 반드시 유념하여 해결을 해야 합니다. 또 별 신경 쓸 필요 없는 별도등기로서 공익적 목적 구분 지상권 같은 게 있다고 책에서는 일러 줍니다. 


전세권이나 대항력 있는 임차권(소액임차권 제외)의 경우 순위가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밀소기준권리"의 날짜보다 늦은 후순위권리들은 매각결정과 함께 소멸하기 때문에(p167) 별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는 선순위 권리들입니다. 순위는 그 성립한 날짜로 결정됩니다. 


전세권자나 임차인이 횅사할 수 있는 대항력의 경우 일반매매는 내가 먼저 확정일자를 갖췄을 경우 매수인에 대해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지만(이걸 위해 만든 거죠), 경매는 그렇지 않다고 책에서 특히 강조합니다. 주임법은 아예 이 경우에 해당사항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말소기준권리"가 중요하며, 임차인의 경우 경매는 이처럼 불의의 변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하겠고, 반대로 낙찰자의 경우 저 권리 기준으로 임차인이 더 선순위이면 반환해야 할 보증금을 다 인수해야 한다는 겁니다(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자신이 반환해야 합니다).


"확정일자를 받으면 보증금을 지킬 줄 알았는데...."(p215) 항상 법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도 함께 규율하기 때문에, 나나 내 주변만 살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정 금액 이하로 정한 소액보증금의 경우 무조건 최우선순위이므로 책임재산이 허용하는 한 전액 변제가 가능합니다. 얼마부터가 소액인지는 p219에 지자체별로 다른 규율에 따른 금액이 나와 있으므로 참고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경매낙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얼마부터 낙찰자인 내가 책임지고 돌려줘야 하는지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이 모든 걸 다 알아야만 경매(참여)를 할 수 있나? 몰라도 되는 것 아닌가? 원칙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어깨너머로 따라하는 건 투기고, 반대로 자기 책임 하에 모든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건 투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책에서는 "정 하기 싫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참여하든지 하자"며 이런 분들을 위해 "최소 버전" 정도를 따로 또 일러 줍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 독자들은 원칙대로 공부를 하고 재테크에 나서야 하겠습니다. 사실 이 책도 제 생각에는 최소 볼륨입니다. 이 정도는 (좀 힘들어도) 공부를 해야겠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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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워 - 비즈니스 승부사(史)의 결정적 순간
데이비드 브라운 지음, 김태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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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장벽이 아무리 낮은 산업이라고 해도 이미 해당 분야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은 기업을, 이제 갓 시작하는 후발주자가 따라잡기란 무척 힘듭니다.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기존 언더독으로 위치가 거의 굳은 입장에서도 강자를 향해 되치기를 시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약자로 머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반전을 꾀해야 합니다. 


"그런 굴곡을 지닌 인형은 건전해 보이지 않았다(p39)." 1960년대 처음 루스 핸들러 부부가 독일의 어떤 캐릭터로부터 영감을 얻어 바비 인형을 미국에 출시할 때는 너무도 방해가 많았습니다. 시어스 백화점은 단칼에 해당 상품의 거래를 거절했습니다. 이런 건 낯선 데다 뭔가 외설적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이유였는데, 생각해 보면 그처럼이나 성인 몸매처럼 두드러진 곡선의 몸매를 한 인형이 처음에 부모들에게 큰 거부감을 준 건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도 미국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왕성히 활동하는 중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바비 인형, 혹은 그 비슷한 제품은 아주 이른 시절부터 유행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인형은 그리 당연히 받아들일 모양새가 아니었죠. "연쇄 창업가들은 저항을 격려의 신호로 보는 방법을 배운다(p43)." 후발주자가 알아야 할 점은, 혁신과 과감한 도전 아니면 시장에서 더 나은 자리를 꿰찰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기타 마니아들이라면 펜더, 깁슨이라는 브랜드가 익숙하겠습니다. 전자 기타가 오늘날처럼 말끔한 기능을 갖추기까지 여러 번의 기술적 난관을 거쳐야 했었으며, 이 책은 짧은 분량만을 할애하고도 전기 기타의 두 브랜드가 어떤 경쟁을 거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매우 요령 있게 요약합니다. 읽으면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피드백 효과(여기서는 엄청난 소음을 뜻합니다)의 제거가 이 악기의 발전에 결정적 노릇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저 두 창업자의 남다른 혁신 정신은 타 업계에도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컴퓨터와 거의 동의어로 일컬어지는 브랜드는 어떤 게 있을까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하드웨어를 만드는 IBM 등이 그런 위상이었겠고, 20세기말에서 21세기초까지는 운영체제의 지배자 마이크로소프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1950년대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과정을 혁신적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유니백이 만들고부터, 미국인들은 "컴퓨터 곧 유니백"이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때 IBM은 종래의 기계식 집계기 제조 부문에서 선두를 지킬 뿐이었고, 유니백처럼 전자식을 도입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고 합니다. 토마스 왓슨 주니어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천공 카드 방식을 버리고 자기식을 결국 채택하게 됩니다. 


그러니 1950년대 당시의 IBM은 우리가 아는 그 기업과 원래 전혀 다른 곳이었던 셈입니다. 이 분야에서 원래 우리가 최고인데, 이 방식을 송두리째 버리고 신참자들이 들고 나온 저 낯설고 근본 없어 보이는 방식을 채택한다? 놀랍게도 회사 안의 간부, 고참 기술진은 모두 반대였다고 합니다. CEO의 고독한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도 1990년대 초에 얼마나 뛰어난 엔지니어와 경영자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겠습니까. 현재에 안주하는 그였다면 삼성은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이런저런 대기업들처럼 벌써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레이 크록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며 이 책에서도 다뤄집니다. 레이 크록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특히 시대의 변화를 누구보다 앞서 감지한 그 혜안이 강조됩니다. 맥도날드 형제들은 그 지역에서 싸고 맛있는 메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위생적인 서비스를 제공했고("더운 여름이었는데도 파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고객들에게 유쾌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레이 크록은 샌버나디노의 그 매장에서 이런 걸 날카롭게 캐치했습니다. 1950년대 말을 "약국 청량음료 판매점의 시대가 끝나는" 기점으로 파악했던 레이 크록은 저 형제의 동네 가게에서 새 시대의 브랜드 원형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폰 초창기에 북미에서는 RIM의 블랙베리가 강자였습니다. 지금도 그 무렵에 나온 영화를 다시 보면 블랙베리만의 독특한 인터페이스를 한 휴대전화기가 마치 대단한 트렌드의 대변자인 양 폼 나게 묘사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RIM은 초기의 성공에 들떠 오만해졌습니다. 이 틈을 파고든 게, 현재 우리가 혁신의 아이콘으로들 알고 있는 잡스가 컴백한 애플이었으며 이 회사의 신상 아이폰은 세계 시장을 제패합니다. 사람들은 지금 블랙베리라면 그저 고대 유물 정도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여성 CEO, 혁신가들의 사례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서 서술합니다. 앞서 언급된 바비 인형의 창조주인 루스 핸들러 역시 여성이었으며, 1940~50년대 비치 에어크래프트의 회장이었던 올리브 앤도 그러했습니다. 물론 두 사람 다 전적으로 혼자 창업한 건 아니며 똑같이 유능했던 남편의 도움이 적지 않았거나 그 유산을 물려받은 바가 컸지만, 여성 경영인의 역량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던 당시의 통념을 깨고,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과감한 실험을 한 점은 정말 대단합니다. 


독재자 히틀러의 과오는 하나둘이 아니지만 자국 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하지 말아야 했을 초기 실책 중 하나가 유능한 유대인 실업가들을 쫓아낸 짓이었습니다. 헤르만 메나셰도 그 중 하나였는데 히틀러뿐 아니라 당시에는 일반 독일 시민들도 광기에 휩싸인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아들 프레드는 폭도들에 의해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계단 밑으로 떨어지는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의 딸 릴리언은 어려서 오빠 프레드가 겪은 끔찍한 일을 보고 "자신 앞에 닥친 문제는 누구도 대신 해결해 주지 않으며, 바로 자신이 직접 즉시 직면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립심이 강했고 부친으로부터 남다른 사업 감각을 물려받기도 한 그녀는 이후 카탈로그 판매 사업을 시작해 큰 돈을 법니다. 릴리언 버넌 카탈로그는 오늘날 모든 종류의 통신 판매업에 있어 조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제품을 갖고서도 단지 포지셔닝상의 기발한 발상 전환으로 대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고, 고객이 어떻게 하면 마음이 설레고 기뻐할까에만 초점을 두어 대박을 친 경우도 있습니다. 불경기나 침체를 끈덕지게 참고 견디어 새로운 전환점을 마침내 맞아 모든 경쟁자를 압도한 기업도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Art of Business Wars"인데, art of war라고 하면 중국 고전 <손자병법>의 영역제목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의 전쟁터에서 숱하게 많은 최후의 승자들이 나왔지만 그 이긴 방법은 브랜드의 다양함만큼이나 각양각색입니다. 이 중 우리의 상황에 잘 들어맞을 멋진 생존 방법도 분명히 하나 있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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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 이야기 - 아이를 한 뼘 더 키우는
박미정 지음 / 이비락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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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즐겨한 아이들은 커서도 남들보다 조리있게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 다닐 때 소소하게 참여하는 글쓰기 대회 등에서도 자력으로 척척 입상도 잘합니다. 대입 논술은 이런 것과는 다소 궤가 다르지만 여튼 책읽기가 습관이 된 아이가 글도 잘 쓰고 논술에도 적응을 잘하는 건 분명합니다. 어려서 책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먼저 부모님이 그 본을 보일 필요가 있고, 만약 부모님도 아직 책 읽는 습관이 덜 들었다면 책모임 등에의 참여도 하나의 좋은 방법입니다. "자연스럽게 독서가 삶이 된 이야기"가 바로 이 책 안에 들어 있습니다. 


"문학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연극하기(p51)" 이게 별스러운 체험이 아니라, 실제로 어린 시절에는 문학 작품에 몰입하여 읽고 나면 특정 캐릭터에 몰입하여 막 그대로 따라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그것이 작품의 진행을 모방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예 본인이 다른 스토리라인을 살짝 창작하여 연기를 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되었든 유익하고 생산적인 체험입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만약에'라는 마법의 말만 던져 줘도 금방 가상의 세계로 뛰어들기 때문이다.(p51)" 확실히 연기와 창작과 몰입은 아이들만의 특권이자 재능입니다. 저자는 다시 말합니다. "이런 연극이 학교에서는 여러 이유로 어렵다. 연극은 책모임에서 훨씬 쉽게 행해진다." 우리는 책모임이라고 하면 어른들끼리 모여서 어려운 주제로 토론하는 모습만 떠올리지만, 왜 자녀 동반이 꺼려지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른의 지도 개입 없이 아이들까리 자연스럽게 문학 작품을 재연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대목 읽으면서 "나는 여태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책 모임의 핵심은 질문이다.(p118)" 정말로 그렇습니다. 일단 저는 책모임을 하는 이유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아 이 좋은 느낌, 다른 독자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다, 이게 첫번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남김 없이 깔끔히 이해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꼭 내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소한 의문이 있어도 다른 분들께 의견을 물어 보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꼭 나보다 우월하거나 박식해서가 아니라, 그저 다른 생각 체계와 느낌을 가진 이에게 다른 의견 하나를 구하는 자체가 의의 있는 행동입니다. 내가 그분의 생각에 꼭 동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구나" 이것 하나만으로도 내 생각을 더 발전시키고 다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음에 드는 질문을 만나면 아이들 생각이 퐁퐁 솟아오른다(p119)." 우리는 아이 교육을 시킬 때 그저 영어를 조기에 시켜서 원어민처럼 유창한 발음이 나오게 해야지 정도만 생각합니다. 물론 그 역시 멋집니다. 그러나 영어 발음과 청해력이 어렸을 때 더 잘 계발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능력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자기 힘으로 창의적이고 즐거운 생각을 하는 능력이 더 어렸을 때부터 잘 계발된 아이가, 영어 조기 교육 받은 아이보다 아마 학교 가서 더 공부도 잘하고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지 않을지요.


"큰아이는 4학년 2학기에 친구 문제로 힘든 일을 겪었다. 친구 여럿에게 무시 받고 놀림당했다.(p140)" 이런 일을 어렸을 때 당하지 않는 편이 좋지만, 일단 벌어졌다면 어떻게 잘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고 치료해 주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겠습니다. 책에는 저자분이 아이와 대화 하며, 수습을 한다는 게 오히려 아이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직하게 이런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해 주신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이런 경우에도 책모임에서 학교와는 또 다른 친구들과 만나며 감정을 추스리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거더군요. 


이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는 밥벌이를 위해 다니는 곳이며, 설령 나와 죽어도 안 맞는 사람이 상사, 사수로 버텨도 티 안 내고 참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책모임(혹은 다른 동호회라고 해도)은 순전히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그것만을 위해 형성하는 집단입니다. 충분히 여기서 힐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집단 따돌림 과정에서 자존에 상처를 입지만, 이걸 치유한다고 해도 내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인간 관계 형성에 실패했다는 그 좌절감 때문에 2차로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책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확실히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처도 가급적이면 어린 나이에 책모임에 나가 빨리 치유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빨리, 이른 단계에 다시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 녀석들이 이상한 거였잖아? 나도 얼마든지 친구를 만들 수 있고 정상적인 소통을 할 수 있었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아이들은 저희끼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자기만의 색깔로 모임을 만들어 나갔다.(p180)" 아이들은 이처럼 조건과 상황과 기회만 잘 주어지면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 나갑니다. 문제를 어른들이 더 깔끔하게 해결해 주는 것도 좋지만, 약간 어설프더라도 제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해 버릇하면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얼마나 정신이 성큼성큼 커 나가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아이 책모임을 통해 얻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부모님뿐 아니라 아이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책 읽기 습관이 아직 들지 않은 아이한테 모든 걸 혼자 알아서 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책에서는 여러 사례가 나오기 때문에 이 중 독자에게 잘 맞는 방법들을 찾아 하나 둘 적용해 보면서 또 자신만의 개성 있는 책 모임, 독서 교육 방법론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매일 함께 읽기를 하려면 진행자가 챙겨야 할 것이 좀 많다(p205)." 참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나이별로 알맞게 어휘가 조정된 reader가 없어서 어렵고 어색한(그 중에는 오역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독본을 읽어 나가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서점에 한번 가 보십시오. 어린이책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책을 고를 때 그저 대세다 주변에 다 이거만 보더라 하고 무작정 남 따라 사지 마시고, 아이한테 한 권 두 권 시범적으로 읽혀 가며 내 아이한테 맞는 책을 좀 골라 줘야 싫증을 안 냅니다. 이제는 책이 워낙 많이 나와서 골라가며 읽힐 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었습니다. 


루이스 캐롤의 명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해 저자분의 아이는 별5점을 줬습니다. 만점이라는 건데, 다만 사건이 빨리 전환되어서 기억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을 꼽았다고 합니다(그럼 5점이 아니지 않나요?여튼). 만약 어린 시절의 저로 돌아가서 별점을 매겨 보라고 하면 전 2점을 주겠습니다. 동화책으로 읽을 때 저는 이 이야기가 대체 왜 명작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초5쯤 되어 아 이게 영어로 말장난을 끊임없이 벌이는 숨은 사연이 있고 그게 우리말로 제대로 표현 안 되었을 뿐이었구나 했을 때 비로소 흥미가 다시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또 다른 의견을 말씀합니다. 부조리하게 보이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그 이상한 맛에 이 작품의 진짜 가치가 있다는 거죠. 저도 당연히 성인이 된 처지이므로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제는 말이죠. 


사실 <모비 딕>은 원전 그대로라면 아무리 번역이 잘 되어도 아이들한테 못 읽힙니다. 아니 일단 그 서두를 보십시오. 요즘이야 인터넷이 발달되어 저런 정보 찾는 게 일도 아니겠으나 멜빌은 당시 일일이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저 고래에 대한 다양한 평가, 정보, 비유, 전거를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사실 토머스 해리스의 <레드 드래곤> 같은 게 결코 3류 스릴러가 아닌 게 작품 곳곳에 미친 듯한 인문 레퍼런스가 숨어 있어서이죠. 여튼 고전은 고전이므로, 또 요즘은 아이들 눈높이에 잘 맞게 지어진 버전이 다 나오므로 얼마든지 어른들의 지도 하에 읽히기 가능합니다. p294에 성공적으로 독서를 마친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두꺼워서 읽기 겁났는데..." 사실 책 두께를 보고 겁을 내는 반응 자체를 안 느끼게 해야 합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이야기가 저렇게 많이 담겼다는 뜻이니 설레어야 마땅하죠. 우리 성인들을 보면 두꺼운 책을 보고 대뜸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어휴 저걸 읽다니 대단하십니다 같은 섣부른 반응을 보입니다. 이게 다 문제입니다. 두꺼운 책 그 자체가 뭐 어떻기에 말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어색하고 부적절한 반응이 안 나오게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취미로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야 합니다. 


요즘은 또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이제 곧 위드 코로나로 간다고 합니다만). 책에서는 그래서 여러 곳에서 줌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원격 모임에는 그에 걸맞은 어플이 필수죠. 꼭 줌이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물론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적절한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원격 모임을 잘 꾸려갈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종식된 후라고 해도, 우리는 지역과 상황의 벽을 뛰어넘어 원격 모임을 만들고 이어갈 필요가 따로 있겠습니다. 


책 뒤에는 권장 도서 목록, 또 아이들에게 책을 다 읽고 나서 적절하게 던져 볼 만한 질문 리스트라든가 느낌을 정리할 수 있는 모범 양식이 있습니다. 저희 때만 해도 주제를 적절히 포커싱한다든가 하는 세심한 지도 없이 그저 독후감 열 장 이상 쓰라는 식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는 책읽기나 글쓰기나 모두 지독한 고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세심하게, 또 아이들 눈높이에서 정성들여 이끌어야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원하는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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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글쓰기
탁정언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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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에고를 달래며 안정적인 평화에 도달하는 건 꼭 수도자들만의 몫은 아니겠습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그런 마음 수련을 할 수 있겠는데, 이 책에서는 "글쓰기"와 명상을 결합해 우리 마음의 안정을 찾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에고를 알아차리기가 참으로 힘들다.... 에고를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글쓰기다(p63)." 또 이런 말씀도 있네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할 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은 (이) 질문하기가 분석하고 파헤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질문 자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 깨어 있게 하는 방법"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예전 프랑스 계몽철학자들도 "내가 무엇을 안단 말인가?"라고 자문했습니다. 저자의 방법론은 주로 동양적인 명상에 가깝다고 독자인 저는 판단했습니다만 이런 이치가 동과 서가 딱히 다를 이유가 없을 듯합니다. 


질문하는 자체가, 어떤 루틴이나 익숙한 느낌, 생각 패턴에 매몰되지 않고 에고를 콕 집어내는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확실히 "질문"은, 내게 익숙한 걸 그저 당연하다, 올바르다고 여기게 머물지 않고 "과연 그런가?"라며 한 번 정도는 의심을 품게 돕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대개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믿고 있지만, 생각과 감정은 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며 또한 무수히 자주 바뀐다는 걸 알 수 있다(p42)." 


저 문장,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뜻대로 뭐가 안 풀리거나 주변 사람들과 대판 싸우고 나면 미칠 듯이 화가 나기도 하고, 그 화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기도 합니다. 아니면, 더 미숙한 반응으로 물건을 부순다거나... 그런데 이런 격한 단계라는 게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두어 시간, 혹은 하루 정도 지나고 나면 "내가 왜 그랬지?" 같은 후회와 자성 단계(p98)를 또 대부분은 거칩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소화나 호흡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소화불량을 일으키거나 거친 호흡이 일어난다고 그 역시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 난 이것밖에 숨을 못 쉬고, 소화를 능숙히 이루지 못하는 걸까?"라며 도덕적으로 자책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병원을 찾거나 간단한 제산제를 사서 복용할 뿐이죠. 


문제는 이처럼 내 자신의 일부라고 볼 수 없는 감정, 반응, 이런 게 진짜 나 자신을 지배하게 놔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방치한 결과는, 우리가 어른이라면 여태 살면서 겪은 대로, 극심한 정신적 불안정, 괴로움, 공격(p99), 심지어 극단적 선택에의 충동 같은 걸 초래할 뿐입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은 대개는 짧은 순간의 미칠 듯한 괴로움에 휘둘려 그런 선택까지 내몰리는 것입니다. 만약 그 혹은 그녀에게 조금만 더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아마도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겠습니까? 


"나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무의식적이라는 것이다(p43)." (무의식이 아닌) 의식이 주인이 되는 이런 상태를 책에서는 "메타 코그니션"라 소개하며, 이는 요즘 많은 책들에서 독자에게 강조하는 메타인지 상태와 같은 말이겠습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글쓰기를 명상이라고 의식하기 시작하여, 에고가 하는 행위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하라(p55)"고 주문합니다. 바른 자세만 잡고 명상에 몰입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이처럼 글쓰기를 통해 명상을 행한다면 확실히 두 겹 세 겹의 성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사실 많은 이들에게 고통입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숙제로 내 준 독후감 써오기 같은 걸 떠올려 보십시오. 혹은 일기 쓰기라든가... 이만저만 고통이 아닙니다. 저자는 이런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그저 글쓰기로 접할 게 아니라 명상의 방법으로 수행하라는 겁니다. 글을 쓰는 건 분명 나인데, 어느 순간 그렇게 글을 쓰는 나를 누가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p54). 이때의 희열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며 숨이 가쁘지만 그와 동시에 마약을 하는 듯 기쁨이 느껴지는 "러너스 하이"와 유사하다고도 합니다. 


자, 이렇게 해서 나의 그 변덕스러운 감정들, 부질없이 스쳐지나가는 생각, 이런 걸 한 걸음, 나아가 여러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이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되면(p99)" "이상한 일이지만, 나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 더 끄덕거려 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이상합니다. 하지만 유익합니다. 실용적입니다. 어차피 결과는 달라질 것도 없는데 나를 괴롭히고 코너로 몰고 들들 볶을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보다는 (과정이 이상하지만) 나를 잘 달래는 게 훨씬 나은 결과를 낳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도 일종의 메타 코그니션이므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게 기특하지만, 더 파고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상처 입은 나를 잘 달래는 게 우선이죠.


"평온한 행복감이 밀려와 나를 감싸 안았다. 우주와 하나가 된, 전지의 수준으로 도약한 것 같았다(p143)."이는 질 볼트 테일러 박사의 회고입니다. 그녀는 뇌출혈로 큰 상처를 입고 뇌의 일부 기능을 잃게 되었으나, 대신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경지 비슷한 것"을 체험한 거죠. 물론 그녀처럼 평화를 찾기 위해 머리를 다쳐야 할 이유까지는 전혀 없습니다. 이는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 명상을 통해, 끊임 없이 나의 빈틈을 파고들며 나를 괴롭히는 에고의 장난질을 캐치하여 잘 다스리기만 해도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런 글쓰기를 "알아차림 글쓰기(p185)"라고 저자는 명명합니다. 우리는 운전 같은 걸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스스로를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넣습니까? 도로를 보면 꼭 남한테 피해를 끼치기 위한 게 하나의 목적인 양 운전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잘 아는 게, 그런 경우에조차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방어운전,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 상대할 가치가 없는 도발이야. 게다가, 저 사람을 이후 또 만날 것도 아니잖아?" 이것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과정"을 겪고 나면 교통사고의 위험도 벌써 피했을 뿐 아니라 기분도 좋습니다. 꼭 보복운전을 해야 자존감이 생기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알아차림을 통해 우리는 벌써 두 가지의 이익, 그것도 아주 근본적 차원의 이익을 얻습니다. 


"선각자들은 우리가 용기, 자발성, 수용의 수준에서 부를 추구하면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p248)." 심지어 돈 버는 활동에서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단히 "알아채며" 결정을 내리거나 정보를 살피면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저 마음의 평화만 찾아도 인생의 고통 큰 부분을 극복하는 건데, 이런 부수적 이득까지 있다니, 오늘부터 명상, 아니 글쓰기를 당장 실행해 볼 일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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