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워 - 비즈니스 승부사(史)의 결정적 순간
데이비드 브라운 지음, 김태훈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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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장벽이 아무리 낮은 산업이라고 해도 이미 해당 분야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은 기업을, 이제 갓 시작하는 후발주자가 따라잡기란 무척 힘듭니다.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기존 언더독으로 위치가 거의 굳은 입장에서도 강자를 향해 되치기를 시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약자로 머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언젠가 한 번은 반전을 꾀해야 합니다. 


"그런 굴곡을 지닌 인형은 건전해 보이지 않았다(p39)." 1960년대 처음 루스 핸들러 부부가 독일의 어떤 캐릭터로부터 영감을 얻어 바비 인형을 미국에 출시할 때는 너무도 방해가 많았습니다. 시어스 백화점은 단칼에 해당 상품의 거래를 거절했습니다. 이런 건 낯선 데다 뭔가 외설적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이유였는데, 생각해 보면 그처럼이나 성인 몸매처럼 두드러진 곡선의 몸매를 한 인형이 처음에 부모들에게 큰 거부감을 준 건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도 미국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왕성히 활동하는 중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바비 인형, 혹은 그 비슷한 제품은 아주 이른 시절부터 유행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인형은 그리 당연히 받아들일 모양새가 아니었죠. "연쇄 창업가들은 저항을 격려의 신호로 보는 방법을 배운다(p43)." 후발주자가 알아야 할 점은, 혁신과 과감한 도전 아니면 시장에서 더 나은 자리를 꿰찰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기타 마니아들이라면 펜더, 깁슨이라는 브랜드가 익숙하겠습니다. 전자 기타가 오늘날처럼 말끔한 기능을 갖추기까지 여러 번의 기술적 난관을 거쳐야 했었으며, 이 책은 짧은 분량만을 할애하고도 전기 기타의 두 브랜드가 어떤 경쟁을 거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매우 요령 있게 요약합니다. 읽으면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피드백 효과(여기서는 엄청난 소음을 뜻합니다)의 제거가 이 악기의 발전에 결정적 노릇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저 두 창업자의 남다른 혁신 정신은 타 업계에도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컴퓨터와 거의 동의어로 일컬어지는 브랜드는 어떤 게 있을까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하드웨어를 만드는 IBM 등이 그런 위상이었겠고, 20세기말에서 21세기초까지는 운영체제의 지배자 마이크로소프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1950년대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과정을 혁신적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유니백이 만들고부터, 미국인들은 "컴퓨터 곧 유니백"이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때 IBM은 종래의 기계식 집계기 제조 부문에서 선두를 지킬 뿐이었고, 유니백처럼 전자식을 도입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고 합니다. 토마스 왓슨 주니어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천공 카드 방식을 버리고 자기식을 결국 채택하게 됩니다. 


그러니 1950년대 당시의 IBM은 우리가 아는 그 기업과 원래 전혀 다른 곳이었던 셈입니다. 이 분야에서 원래 우리가 최고인데, 이 방식을 송두리째 버리고 신참자들이 들고 나온 저 낯설고 근본 없어 보이는 방식을 채택한다? 놀랍게도 회사 안의 간부, 고참 기술진은 모두 반대였다고 합니다. CEO의 고독한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도 1990년대 초에 얼마나 뛰어난 엔지니어와 경영자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겠습니까. 현재에 안주하는 그였다면 삼성은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이런저런 대기업들처럼 벌써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레이 크록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며 이 책에서도 다뤄집니다. 레이 크록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특히 시대의 변화를 누구보다 앞서 감지한 그 혜안이 강조됩니다. 맥도날드 형제들은 그 지역에서 싸고 맛있는 메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위생적인 서비스를 제공했고("더운 여름이었는데도 파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고객들에게 유쾌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레이 크록은 샌버나디노의 그 매장에서 이런 걸 날카롭게 캐치했습니다. 1950년대 말을 "약국 청량음료 판매점의 시대가 끝나는" 기점으로 파악했던 레이 크록은 저 형제의 동네 가게에서 새 시대의 브랜드 원형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폰 초창기에 북미에서는 RIM의 블랙베리가 강자였습니다. 지금도 그 무렵에 나온 영화를 다시 보면 블랙베리만의 독특한 인터페이스를 한 휴대전화기가 마치 대단한 트렌드의 대변자인 양 폼 나게 묘사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RIM은 초기의 성공에 들떠 오만해졌습니다. 이 틈을 파고든 게, 현재 우리가 혁신의 아이콘으로들 알고 있는 잡스가 컴백한 애플이었으며 이 회사의 신상 아이폰은 세계 시장을 제패합니다. 사람들은 지금 블랙베리라면 그저 고대 유물 정도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여성 CEO, 혁신가들의 사례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서 서술합니다. 앞서 언급된 바비 인형의 창조주인 루스 핸들러 역시 여성이었으며, 1940~50년대 비치 에어크래프트의 회장이었던 올리브 앤도 그러했습니다. 물론 두 사람 다 전적으로 혼자 창업한 건 아니며 똑같이 유능했던 남편의 도움이 적지 않았거나 그 유산을 물려받은 바가 컸지만, 여성 경영인의 역량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던 당시의 통념을 깨고,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과감한 실험을 한 점은 정말 대단합니다. 


독재자 히틀러의 과오는 하나둘이 아니지만 자국 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하지 말아야 했을 초기 실책 중 하나가 유능한 유대인 실업가들을 쫓아낸 짓이었습니다. 헤르만 메나셰도 그 중 하나였는데 히틀러뿐 아니라 당시에는 일반 독일 시민들도 광기에 휩싸인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아들 프레드는 폭도들에 의해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계단 밑으로 떨어지는 끔찍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의 딸 릴리언은 어려서 오빠 프레드가 겪은 끔찍한 일을 보고 "자신 앞에 닥친 문제는 누구도 대신 해결해 주지 않으며, 바로 자신이 직접 즉시 직면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립심이 강했고 부친으로부터 남다른 사업 감각을 물려받기도 한 그녀는 이후 카탈로그 판매 사업을 시작해 큰 돈을 법니다. 릴리언 버넌 카탈로그는 오늘날 모든 종류의 통신 판매업에 있어 조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제품을 갖고서도 단지 포지셔닝상의 기발한 발상 전환으로 대성공을 거둔 사례도 있고, 고객이 어떻게 하면 마음이 설레고 기뻐할까에만 초점을 두어 대박을 친 경우도 있습니다. 불경기나 침체를 끈덕지게 참고 견디어 새로운 전환점을 마침내 맞아 모든 경쟁자를 압도한 기업도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Art of Business Wars"인데, art of war라고 하면 중국 고전 <손자병법>의 영역제목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의 전쟁터에서 숱하게 많은 최후의 승자들이 나왔지만 그 이긴 방법은 브랜드의 다양함만큼이나 각양각색입니다. 이 중 우리의 상황에 잘 들어맞을 멋진 생존 방법도 분명히 하나 있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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