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임 이야기 - 아이를 한 뼘 더 키우는
박미정 지음 / 이비락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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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즐겨한 아이들은 커서도 남들보다 조리있게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 다닐 때 소소하게 참여하는 글쓰기 대회 등에서도 자력으로 척척 입상도 잘합니다. 대입 논술은 이런 것과는 다소 궤가 다르지만 여튼 책읽기가 습관이 된 아이가 글도 잘 쓰고 논술에도 적응을 잘하는 건 분명합니다. 어려서 책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먼저 부모님이 그 본을 보일 필요가 있고, 만약 부모님도 아직 책 읽는 습관이 덜 들었다면 책모임 등에의 참여도 하나의 좋은 방법입니다. "자연스럽게 독서가 삶이 된 이야기"가 바로 이 책 안에 들어 있습니다. 


"문학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연극하기(p51)" 이게 별스러운 체험이 아니라, 실제로 어린 시절에는 문학 작품에 몰입하여 읽고 나면 특정 캐릭터에 몰입하여 막 그대로 따라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그것이 작품의 진행을 모방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예 본인이 다른 스토리라인을 살짝 창작하여 연기를 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되었든 유익하고 생산적인 체험입니다. "저학년 아이들은 '만약에'라는 마법의 말만 던져 줘도 금방 가상의 세계로 뛰어들기 때문이다.(p51)" 확실히 연기와 창작과 몰입은 아이들만의 특권이자 재능입니다. 저자는 다시 말합니다. "이런 연극이 학교에서는 여러 이유로 어렵다. 연극은 책모임에서 훨씬 쉽게 행해진다." 우리는 책모임이라고 하면 어른들끼리 모여서 어려운 주제로 토론하는 모습만 떠올리지만, 왜 자녀 동반이 꺼려지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른의 지도 개입 없이 아이들까리 자연스럽게 문학 작품을 재연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대목 읽으면서 "나는 여태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책 모임의 핵심은 질문이다.(p118)" 정말로 그렇습니다. 일단 저는 책모임을 하는 이유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아 이 좋은 느낌, 다른 독자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다, 이게 첫번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남김 없이 깔끔히 이해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꼭 내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소한 의문이 있어도 다른 분들께 의견을 물어 보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이 꼭 나보다 우월하거나 박식해서가 아니라, 그저 다른 생각 체계와 느낌을 가진 이에게 다른 의견 하나를 구하는 자체가 의의 있는 행동입니다. 내가 그분의 생각에 꼭 동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구나" 이것 하나만으로도 내 생각을 더 발전시키고 다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음에 드는 질문을 만나면 아이들 생각이 퐁퐁 솟아오른다(p119)." 우리는 아이 교육을 시킬 때 그저 영어를 조기에 시켜서 원어민처럼 유창한 발음이 나오게 해야지 정도만 생각합니다. 물론 그 역시 멋집니다. 그러나 영어 발음과 청해력이 어렸을 때 더 잘 계발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능력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자기 힘으로 창의적이고 즐거운 생각을 하는 능력이 더 어렸을 때부터 잘 계발된 아이가, 영어 조기 교육 받은 아이보다 아마 학교 가서 더 공부도 잘하고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지 않을지요.


"큰아이는 4학년 2학기에 친구 문제로 힘든 일을 겪었다. 친구 여럿에게 무시 받고 놀림당했다.(p140)" 이런 일을 어렸을 때 당하지 않는 편이 좋지만, 일단 벌어졌다면 어떻게 잘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고 치료해 주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겠습니다. 책에는 저자분이 아이와 대화 하며, 수습을 한다는 게 오히려 아이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직하게 이런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해 주신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이런 경우에도 책모임에서 학교와는 또 다른 친구들과 만나며 감정을 추스리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거더군요. 


이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는 밥벌이를 위해 다니는 곳이며, 설령 나와 죽어도 안 맞는 사람이 상사, 사수로 버텨도 티 안 내고 참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책모임(혹은 다른 동호회라고 해도)은 순전히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그것만을 위해 형성하는 집단입니다. 충분히 여기서 힐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집단 따돌림 과정에서 자존에 상처를 입지만, 이걸 치유한다고 해도 내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인간 관계 형성에 실패했다는 그 좌절감 때문에 2차로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책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교제를 통해 확실히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처도 가급적이면 어린 나이에 책모임에 나가 빨리 치유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빨리, 이른 단계에 다시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 녀석들이 이상한 거였잖아? 나도 얼마든지 친구를 만들 수 있고 정상적인 소통을 할 수 있었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아이들은 저희끼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자기만의 색깔로 모임을 만들어 나갔다.(p180)" 아이들은 이처럼 조건과 상황과 기회만 잘 주어지면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 나갑니다. 문제를 어른들이 더 깔끔하게 해결해 주는 것도 좋지만, 약간 어설프더라도 제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해 버릇하면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얼마나 정신이 성큼성큼 커 나가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아이 책모임을 통해 얻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부모님뿐 아니라 아이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책 읽기 습관이 아직 들지 않은 아이한테 모든 걸 혼자 알아서 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책에서는 여러 사례가 나오기 때문에 이 중 독자에게 잘 맞는 방법들을 찾아 하나 둘 적용해 보면서 또 자신만의 개성 있는 책 모임, 독서 교육 방법론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매일 함께 읽기를 하려면 진행자가 챙겨야 할 것이 좀 많다(p205)." 참 저희 어렸을 때만 해도 나이별로 알맞게 어휘가 조정된 reader가 없어서 어렵고 어색한(그 중에는 오역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독본을 읽어 나가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서점에 한번 가 보십시오. 어린이책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책을 고를 때 그저 대세다 주변에 다 이거만 보더라 하고 무작정 남 따라 사지 마시고, 아이한테 한 권 두 권 시범적으로 읽혀 가며 내 아이한테 맞는 책을 좀 골라 줘야 싫증을 안 냅니다. 이제는 책이 워낙 많이 나와서 골라가며 읽힐 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었습니다. 


루이스 캐롤의 명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해 저자분의 아이는 별5점을 줬습니다. 만점이라는 건데, 다만 사건이 빨리 전환되어서 기억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을 꼽았다고 합니다(그럼 5점이 아니지 않나요?여튼). 만약 어린 시절의 저로 돌아가서 별점을 매겨 보라고 하면 전 2점을 주겠습니다. 동화책으로 읽을 때 저는 이 이야기가 대체 왜 명작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초5쯤 되어 아 이게 영어로 말장난을 끊임없이 벌이는 숨은 사연이 있고 그게 우리말로 제대로 표현 안 되었을 뿐이었구나 했을 때 비로소 흥미가 다시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또 다른 의견을 말씀합니다. 부조리하게 보이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그 이상한 맛에 이 작품의 진짜 가치가 있다는 거죠. 저도 당연히 성인이 된 처지이므로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제는 말이죠. 


사실 <모비 딕>은 원전 그대로라면 아무리 번역이 잘 되어도 아이들한테 못 읽힙니다. 아니 일단 그 서두를 보십시오. 요즘이야 인터넷이 발달되어 저런 정보 찾는 게 일도 아니겠으나 멜빌은 당시 일일이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저 고래에 대한 다양한 평가, 정보, 비유, 전거를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사실 토머스 해리스의 <레드 드래곤> 같은 게 결코 3류 스릴러가 아닌 게 작품 곳곳에 미친 듯한 인문 레퍼런스가 숨어 있어서이죠. 여튼 고전은 고전이므로, 또 요즘은 아이들 눈높이에 잘 맞게 지어진 버전이 다 나오므로 얼마든지 어른들의 지도 하에 읽히기 가능합니다. p294에 성공적으로 독서를 마친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두꺼워서 읽기 겁났는데..." 사실 책 두께를 보고 겁을 내는 반응 자체를 안 느끼게 해야 합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이야기가 저렇게 많이 담겼다는 뜻이니 설레어야 마땅하죠. 우리 성인들을 보면 두꺼운 책을 보고 대뜸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어휴 저걸 읽다니 대단하십니다 같은 섣부른 반응을 보입니다. 이게 다 문제입니다. 두꺼운 책 그 자체가 뭐 어떻기에 말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어색하고 부적절한 반응이 안 나오게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취미로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야 합니다. 


요즘은 또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이제 곧 위드 코로나로 간다고 합니다만). 책에서는 그래서 여러 곳에서 줌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원격 모임에는 그에 걸맞은 어플이 필수죠. 꼭 줌이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물론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적절한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원격 모임을 잘 꾸려갈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종식된 후라고 해도, 우리는 지역과 상황의 벽을 뛰어넘어 원격 모임을 만들고 이어갈 필요가 따로 있겠습니다. 


책 뒤에는 권장 도서 목록, 또 아이들에게 책을 다 읽고 나서 적절하게 던져 볼 만한 질문 리스트라든가 느낌을 정리할 수 있는 모범 양식이 있습니다. 저희 때만 해도 주제를 적절히 포커싱한다든가 하는 세심한 지도 없이 그저 독후감 열 장 이상 쓰라는 식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는 책읽기나 글쓰기나 모두 지독한 고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세심하게, 또 아이들 눈높이에서 정성들여 이끌어야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원하는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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