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교육은 처음이지? - 모으기, 쓰기, 나누기 용돈 교육의 비밀
고경애 지음, 최선율 그림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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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그 나름 잘 관리해서 최대한 주관적 만족을 뽑아내는 아이들도 있고, 그냥 길에 뿌리다시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앤드류 카네기라든가 워런 버핏이라든가 존 라키펠러 같은 이들은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감각이 유달리 발달하여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용돈을 잘 관리하지만 누구나 그와 같을 수는 없고, 대부분은 어른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하며 그게 또 졍상입니다. 가르쳐 준 걸 잘 새기고 실행하며 간혹 응용까지 해 보인다면 그때부터 우리 아이도 어린 시절의 카네기나 버핏 부러울 것 없습니다. 배워서라도 잘하면 그 역시 잘하는 거지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죠.


요즘은 "성인지 감수성" 등 감수성이란 걸 유난히 강조합니다. 기계적으로 계산하여 합리적 결과를 끌어내는 것도 좋지만 일찍부터 아예 마음 깊은 곳에 아 이게 중요한 거다 하고 우선순위를 높여 놓고 방심하지 않으며 꼼꼼히 챙기는 버릇을 들인다면 그 아이는 "경제 감수성"을 갖춘 것입니다. 이걸 초등학생 때부터 갖추게 해 주라고 저자는 말합니다(p28). 왜 그런고 하니, 사춘기 때 용돈 관리하는 법을 비로소 가르치고 잘못하면 핀잔 주고 하는 식이면 엉뚱하게도 아이가 감성에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더 이런 단계에 애들에게 심어 주자! 저는 이 대목을, 그저 머리로만 가르치고 받아들이게 하지 말고, 아 작은 돈이라도 이렇게 쓰고 관리해야 하는구나, 이걸 전인격, 감수성 레벨에서 아이가 수용하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용돈을 줄 때 실물로 줄 것이며, 카드나 계좌이체 같은 수단을 통하지 말라고 합니다(p48). 아니 지금은 동전 안 쓰기 운동이 한은 차원에서 벌어지며, 간단한 계산도 카드나 OOO페이 등으로 결제하는 판에 시대를 역행하는 게 아닌가? 물론 그렇지만 저자는 "돈"이란 그저 숫자나 부호에 불과한 것으로 아이가 받아들이면 이건 벌써 실패라고 말합니다. 돈은 "오감"으로 (그 중요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니, 우리 어른들은 이미 온갖 가상의 수단으로 결제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어른들 중 상당수는 "전자, 온라인, 가상"이 일상화하기 전에 이미 종이돈(의 뭉치), 많은 동전을 지갑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그 유통과 실체를 감각해 본 한참 후에서야 전자 결제를 겪은 세대입니다. 반면 지금 아이들은 태어나 보니 이미 전자 결제가 보편화한 세상이며, 또 결제는 얼마나 간편합니까? 그저 터치 한 번으로도 돈이 빠져나가며 예전처럼 캐셔분이 원 단위를 일일이 세어 건네는 일은 이제 매우 드뭅니다. 이러니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자라기가 쉽습니다. 당장 넉넉하다고 함부로 쓰면 빈털터리가 되기 십상임을, 아이들은 돈을 오감으로 느껴 보는 과정(p48)을 (이제는 일부러) 거쳐 봐야 마음으로부터 깨닫고 동의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키워진 경제 근육은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멋진 자산이 된다(p56)." 예전부터 자산가 집안은 일정 금액을 쥐워 주고 초등 고학년때부터 주식 투자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주식 투자 감각은 어려서부터 시작하면 할수록 더 감각이 좋아지며, 그런 경험에 노출되는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식뿐이겠습니까? 작은 돈도 더 알뜰하게 굴리고 같은 물건을 사도 더 싸게 살 방법을 궁리하는 버릇은 어려서부터 들여야 몸에 잘 배며 감각이 더 발달하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건 "경제적 자유"를 가능한 한 일찍 달성하기 위함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자유가 없는 사람이란 이미 어떤 자유도 못 누리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용돈을 실물로 쥐어 주고, 계좌 이체를 가급적 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건 돈을 실물로 체험시키기 위해서이며, 작은 돈이라도 쏠쏠히 잘 굴리려면 당연히 자기 이름의 계죄, 또 용도별로 구분된 통장 여럿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께 받는 용돈 모으는 통장, 어쩌다 친척들이 주시는 큰 규모의 용돈 모으는 통장, 자신이 직접 알바를 해서 번 돈을 모으는 통장... 액수가 적어도 이처럼 체계적으로 돈 관리를 하는 아이의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p69). "내가 이처럼 관리를 잘 해나가면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는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돈 모으는 마인드가 갖춰진 아이가 "마음이 부자(p69)"라는 건 이처럼 자신의 미래에 스스로 비전을 갖추며 행복해지는 방법을 안다는 뜻입니다. 


"10세 전후의 아동은 규칙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받아들이고 인지하며, 특히 보상을 얻기 위한 도덕성이 발달하는 단계이다(p115)." 이는 로렌스 콜버그의 말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동물이라 완전히 선한 동기에서, 윤리적 각성에 기인하여 도덕을 자신의 몸에 배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 과정을 잘못 보낸 아이는 온전한 방법으로 룰을 익히지 못하고 반사회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상을 적절히 줘야 하는데, 그것이 금전적 수단이라면 합리적인 경제 교육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물론 보상이라는 게 금전에만 치우치면 안 됩니다. 이른바 스킨십이라는 것, 칭찬, 자긍심이나 자존감의 부여 등 다양한 보상들이 균형을 갖춰야(p135) 아이의 인성이 조화롭게 발달하겠지요. 


미국의 성공한 부자들은, 예를 들어 아빠 차를 잘 닦기, 정원 손질하기 등을 행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아가며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듣습니다. 흔히 듣지만 우리가 자녀 교육으로 직접 실행하는 건 또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를 실천에 올기면 아이는 일단 돈 귀한 줄을 알고 신중하게 쓰는 게 몸에 뱁니다. 또 반짝반짝 빛나는 차를 보거나 잘 정돈된 정원(한국에서는 쉽지 않지만), 혹은 잘 청소된 거실을 함께 뿌듯이 공유할 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만의 소중한 추억이 생깁니다. 이 책은 이처럼 너무 살벌하게 경제 관점에서만 용돈 교육을 보지 않고 아이의 전인적 발달도 함께 고려에 넣는 게 좋더군요.


무작정 결론을 정해 놓고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왜 그게 옳은지 아이가 스스로 납득을 해야 합니다. "기후가 온난화하면 우리 나라에도 올리브 나무가 곳곳에 자라 좋을 텐데 왜 나쁘다고 하는 걸까?(p167)" 이처럼 아이에게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하며, 그 방법은 흉금을 터놓은 대화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그 현재가 아무리 어려워도 미래는 반드시 더 나아지리라는 꿈을 갖고 버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때 오히려 불안감을 느낍니다. 저자는 아이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1) 소망 품기 2) 그걸 꿈 노트에 쓰기 3) 그 꿈을 이뤄 줄 꿈 통장을 만들기.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이걸 열 살 무렵부터 꾸준히, 하루도 안 빼먹고 실천한 아이는 대학생쯤만 되어도 또래들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가 있거나 말과 행동이 진중하고 어른스럽습니다. 저자는 자녀들의 연금 수익률을 일일이 그래프로 그려서 가족 모두와 함께 공유합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얼마나 뿌듯하며, 또 그 자녀분들은 이처럼 섬세하게 케어받고 부모님의 자산(물질적, 정신적)이 나한테 고스란히 이전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얼마나 자긍심과 자신감으로 가득해지겠습니까? 수십 억 재산을 한번에 물려줄 수 있는 재벌가 자녀가 부럽지 않습니다. 억만장자는 이처럼 살림 늘리는 재미를 결코 알 수 없기에 적어도 그 점에서 극복 못할 한계가 있습니다. 서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게 바로 용돈 교육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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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통장 사용설명서 3.0 - 목적에 맞게 돈이 차오르는 대한민국 필수 통장 7 완벽 활용법, 전면 개정판
이천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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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2년 전 펀드 열풍이 불었을 때 많은 이들이 기존 상품을 해약하고 묻지마로 펀드를 가입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선택을 했던 분들은 당시 큰 손해를 입기도 했었고 이후 펀드에 대한 사회적 환상은 완전히 깨졌다고 봐야 하는데.., 여튼 그때나 지금이나 원금 손해 볼 위험 적고 만기가 되면 또 뭐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는 게 제1금융권의 이런저런 상품을 이용하는 거죠. 


09년 초판, 17년 1차 개정판에 이어 이번 이 책이 2차 개정이라고 합니다. 앞날개의 소개글을 보면 저자분이 우리나라 1세대 금융전문가이시라고 나옵니다. 1세대... 대체로 1금융권에는 언제나 엘리트들이 입사하는 직장이었고 오랜 세월 그 추이를 지켜 본 분의 안목이 믿을 만한 게 사실입니다. 제가 앞에서 회고한 현상이 대략 12년이었는데 이 책의 초판이 09년에 나왔다고 하니 그때 펀드 유행 따라 가지 않고 (이 책의 조언을 따라) 은행의 전통 방식을 고수한 분이라면 아마 가슴을 쓸어내렸을 만도 합니다. "책이 은인이었다." 저는 책을 펴 읽기 전에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데, 정말로 p166에 그런 독자의 사연이 나와서 신기했습니다 ㅎㅎ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요즘은 구독 서비스(p49)가 큰 인기이며 기업들도 소비자를 "구독자"로 만들려고 혈안입니다. 상장 기업도 구독자 확보수가 늘었다고 하면 큰 폭으로 (일시) 주가가 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께서는 p52에서 대뜸 이 구독 서비스에 대해 일침을 가합니다. "꼭 필요한 게 아니면 고정비 지출을 줄여라!' 사실 우리가 구독을 핝다고 해도 TV에서 뭘 봤거나 어떤 트렌드따라 감정적으로 덜컥 구독하는 게 보통입니다. 구독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이런저런 혜택을 알뜰하게 찾아먹는 사람은 구독하는 게 이익이겠죠), 저자는 "긴요하지 않은 고정비를 줄여라"는 일관된 관점에서 이런 조언을 하는 겁니다. 적어도 초판 당시에는 극히 드물었고 17년에도 별로 개발된 서비스가 많지 않았던 만큼 이런 점은 이번 개정판만의 피처가 아닐까 짐작합니다(정확한 건 제가 이전판들을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소소해도 고정 수익이 들어오는 게 중요합니다. 1년 전에 네이버가 네이버페이 구독자를 모을 때 무조건 네이버페이로 5천원을 뿌렸습니다. 5천원이라고 해도 수백만에게 뿌리는데 그게 적은 돈이겠습니까? 성격이 좀 다르지만 토스도 2년 전에 그랬습니다. 또 21세기 초에 왜 그렇게 기업들이 길거리에서 모집인을 두고 카드 가입을 받으려 했는지 알 수 있죠. 신용카드란 건 연회비 수입이 있으니 말입니다. 또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일단 가입자를 늘이려 드는 행태가 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행하는 거죠. 반대로 우리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긴요치 않은 고정비 지출은 일단 줄여야 한다"가 진리입니다. 


통장 이야기를 하는 책에서 갑자기 "독서를 권합니다(p100)" 뜬금없이 웬 독서? 우리는 아무리 돈을 아껴도, 또 재테크를 통해 열심히 굴려도, 기본적으로 나한테 들어오는 수입 자체가 적으면 어차피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월마다 들어오는 급여는 건강보험 연금 다 빼고 나면 바닥이 빤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몸값을 올려야 한다"입니다. 그리고 나의 몸값을 올리려면 독서를 통해 나라는 사람 자체의 실력을 높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머리에 쌓아두고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하는 지식의 범위에는 끝이 없는 법입니다. "이런 건 알 필요 없어"라며 자기합리화, 바보 선동을 하는 자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본인이 바보이며 엉터리라서 그게 남들 앞에 탄로나는 게 무서워서입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대중이 많이 각성했기에 이런 수준 낮은, 푸닥거리 같은 선동이 통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사기꾼도 공부를 해야 살아남는 시대이니 말입니다. 애초에 나쁜 사상, 비틀린 심성으로 가득한 인간이 공부라고 제대로 될 리가 없죠. 


부동산 투자에 관심 많은 사람은 지적 사이트, 경매 사이트, 부동산 시세 사이트를 자주 들릅니다. 자꾸 접하고 눈에 익히고 뭘 찜해두고 하다가 마침내 월척을 낚습니다. 낚시는 눈으로 물 밑을 볼 수 없고 정중동의 감에만 의존하지만 부동산 물건 물색은 감만 가지고 안 되며 체계적인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하기 때문에 낚시보다 훨씬 지적인(또 생산적인) 활동입니다. 저자는 p123에서 청약홈을 자주 방문하라고 합니다. 내 집 마련에 젊었을 때부터 눈을 벌겋게 뜨고 틈날 때마다 사정을 봐 놔야 한다는 겁니다. 갑자기 하려고 하면 좋은 물건은 벌써 남들이 선점해 간 후죠. 결국 재테크도 인생의 일정 시기에는 "내 집 마련"이 목적이니 말입니다. 


대출은 사실 안 받을 수가 없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적정선의 대출도 안고 있어야 자산운용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어떤 정치인은 "기본 대출권" 같은 것도 거론하지 않습니까. 기왕 대출을 받을 거라면 변동금리, 고정금리 중 어떤 편이 유리한지 잘 챙겨봐야 합니다. "미국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 변동보다는 고정금리 대출을 받아야 유리하다.(p182)" 사실 ETF도 그렇고 요즘은 홀짝 식으로 간이화하여 고객에게 제시하는 상품 포맷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니 이런 간단한 것도 국제 정세 돌아가는 걸 잘 파악하는 게 습관이 되어야 손해를 안 보거나 더 많은 이익을 챙기는 거죠.


예전에도 보험은 중도 해약하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만 그래도 환급금이 적지는 않았고 적금 비슷하게 운용 배당을 주는 곳도 많았습니다. 아직 한국인이 보험 개념이 없을 때라서, 여튼 장기간 돈을 부었는데 만기에 돌려 주는 돈이 없다면 누가 보험 가입을 하려 들지를 않았겠죠.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어 상품 이름 앞에 (무)라고 쓴 걸 오히려 선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보험료를 적게 내고 보장을 대신 많이 챙기며 이미 나간 돈은 그냥 없는 셈을 치는... 저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보험은 적금이 아니고, 따라서 보장을 챙기고 고정비를 줄이는 쪽으로 가야지 보험에서 다른 걸 기대하면 안 된다(p214)." 


2금융권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율이 높으니까 법이 지켜 주는 5천만원 한도에서는 들어 두는 편이 나을 수 있죠. BIS 8% 기준을 반드시 챙기고(p78), 고정이하여신비율도 눈여겨 본 후에 어느 저축은행을 고를지 결정해야 합니다. p83에는 이자에 붙는 세금 (유리한) 순서가 나오는데 반드시 숙지해야 할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비과세 저율과세 분리과세 일반과세... 이런 건 보자마자 그냥 외워야 합니다. 


휴대하기 편하게 적절히 작은 사이즈, 두껍지도 않은 책 한 권에 딱 진짜 필요한 정보만 다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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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 너머 - 반드시 이기는 약자의 전략
임종득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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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나 싸움에 있어서 출발점에서부터 뭔가 약한 구석을 안고 레이스를 시작하면 좀처럼 역전이 어렵습니다. 언더독에게 동정의 시선이 몰리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강약이 부동"인 법이라서 약자는 그저 약자인 채로 끝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는 게 당연한 듯했던 약자가 의외로 승부를 뒤집는 수가 있습니다. 남의 몫을 빼앗으려는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시장에서 자금이나 기타 보유한 자원이 월등하고, 처음부터 점유율도 높았던 탑독을 언더독이 추월하기란 거의 가망이 없는데도 그걸 해내는 기업이 있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요.


저자는 움직일 수도 없고, 포식자에 맞설 마땅한 방법이 없는 식물이, 스스로의 몸을 맛 없게 만들어서 쉽사리 동물에 먹히지 않게 진화한 예를 듭니다. 마치 M&A 시장에서 피인수의 위기에 몰린 기업이 쓰곤 하는 포이즌 필 전략과도 비슷합니다. 버섯(균류이기는 하지만)을 즐겨 먹는 인간 입장에서 저 비유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란체스터 법칙이란 강자가 약자를 이길 때 피해의 차이도 전력 차 이상으로 적다는 내용으로서, 약자는 지기 쉬울 뿐 아니라 져도 처참하게 패하기 쉽다는 씁쓸한 결론인데,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가 이길 수 있는 필살기를 여러 사례에서 추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지기는 했으나 300명의 스파르타 결사대가 테모필라이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오래 막을 수 있었던 건 지형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협곡에서는 아무리 수가 많아도 그 우위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저자는,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도 있으며 그 싸움을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벌여 승부를 벌이는 걸 핵심으로 꼽습니다(p32, p68). 저게 막연한 말 같아도 우리 독자들은 벌써 감이 오는 바가 있죠. 


성능이 나쁜 전투기로 오히려 전력 우위에 있던 상대를 제압한다? 불가능한 목표 같으나 한국전 당시 미군이 실제로 이걸 이뤘다고 합니다(p80). 핵심은, 상황 변화를 면밀히 판단하고 수시로 전술을 바꿔 가며 전투에 임했던 건데, 실제로 F-86이 미그기보다 성능이 나빴으나 유독 넓은 시야 확보, 유압 제어 방식의 유연성 등이 조종사로 하여금 전술을 자주 바꾸게 돕는 장점이었고, 이것이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책에서는 이처럼 결정을 자주 빨리 내릴 수 있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보며, 이걸 OODA주기를 짧게 잡는 방식이라고 정의합니다. 8년 전 개인적으로 <정상을 훔쳐라>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적 있는데 거기서도 이 OODA 사이클이 나옵니다. 이 책에서는 크리스 주크 등이 쓴 <최고의 전략은 무엇인가>를 인용합니다. 


의사 결정의 신속함과 (적절한) 전략전술변경의 중요성은 p114 이하의 제록스와 애플 사례에서도 나타납니다. 제록스는 당시 애플에 비해 훨씬 큰 기업이었고 보유한 자원도 우수했기에 심지어 먼저 개발하기까지 한 마우스 입력법(명령어 타자가 아닌)을 갖고 엄청난 성공을 먼저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의사 결정 구조가 관료적이었으며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던 제록스는 이걸 활용할 생각을 못 했고, 마침 애플에서 해고되어 절치부심하던 잡스가 이에 주목했습니다. 마우스의 저가화에 성공한 그는 결국 맥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적의 단열진 중앙을 돌파하라(p141)." 저자는 예비역 장군 답게 근대 전쟁사의 중요 사건으로부터도 교훈을 이끌어냅니다. 전력 자체가 우세한데다 함의 크기도 크니 일반적인 패턴대로 프랑스 함대는 단열진으로 나왔습니다. 이에 영국의 넬슨 제독은 종열진으로 맞섰는데 전례가 없는 변칙 전술로서 무모하기까지 한 시도였죠. 넬슨이 노린 건 적군이 일단 병력도 많은데다 연합 함대라서 지휘체계가 그리 일사불란하지 않고 의사결정도 오래걸릴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저 변칙으로 나와서 상대의 당황만을 노린 게 아니라 디테일까지 구상하며 행여 벌어질 수 있는 아군끼리의 충돌을 막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고안했습니다. 근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넬슨은 구국의 영웅(p145)이 되었습니다. 


1968년 베트콩은 대규모의 구정 공세(p213)를 벌입니다. 딴에는 기습이었으나 전력이 워낙 열세라서 결국 베트콩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습니다. 그들도 이를 알았으나 감행한 것인데, 이 이유는 비록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나 미군 측은 이 전투를 계기로 머나먼 이국에서의 전쟁 수행에 의욕을 잃습니다. 극성스럽고 예측 불허인 적을 맞아 뭐하러 먼 곳에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미국 본토에서는 반전 여론이 거세게 일어 결국 5년 후 미국은 베트남에서 발을 빼게 됩니다. 전투에서 지고도 전쟁에서 이긴 고전적 사례입니다. 보응우옌지압의 놀라운 전술은 p472에도 다른 것이 하나 소개됩니다. 


무하마드 알리(p220)는 한때 한 대도 맞지 않고 상대의 펀치를 피해 가며 자신은 불꽃 같은 연타를 퍼부어 상대를 제압하던 무적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랬다고는 하나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고, 알리 같은 아웃복서는 조지 포먼 같은 강펀치형 선수에 예나 지금이나 약한 경향이 있으며 더군다나 포먼은 이제 고작 이십대 중반이었습니다. 열 살이나 어린 데다 역대 최고의 주먹을 가진 포먼에 맞서 알리는 노련하게 스스로 코너로 몰려 포먼의 펀치를 막고 로프에 기대어 충격을 흡수했습니다. 무수히 알리를 때렸으나 정타가 없어 결국 때리다 지친 포먼은 종반으로 갈수록 허점을 노출했는데 그는 원래 상대가 누구든 초장에 승부를 내던 선수였으므로 체력 소모가 빨리 왔습니다. 이때를 노려 잠시 가드가 내려간 포먼에 알리는 정타를 적중시켜, 원래 이길 수 없던 상대를 한큐에 잡았습니다. 포먼은 제대로 정타를 맞은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상대가 얼마나 뛰어난 전술을 구사했는지 깨닫고 더 이상의 승부를 포기하다시피 했습니다. 스스로도 말했듯이 주먹의 강함보다 전술의 위대함에 굴복한 사례죠. 


그러니 결국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상대의 단점(위에서는, 포먼이 오랜 시간 시합을 뛴 적이 없다는 점)과 자신의 장점을 적절히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은 손자병법에 나오죠. p31에서 저자는 해당 고전에 나오는 병자(兵者)의 개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또 p39에서 저자는 손무가 상지상책으로 꼽았던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합니다. 그가 장성 출신이므로 현역 시절에도 이 방법, 아군의 손실도 없고 심지어 적측에도 손해가 없으니 인도적 측면에서도 당당한 승리의 방법이란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또한 적측의 움직임을 수시로 살펴 정확히 예측한 후 그에 따라 자유자재로 전술을 바꿔 가며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야전사령관 자질이라는 손자의 주장에 찬성합니다(p340). 여기애서 드는 예는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며 터키 군의 아카바를 점령한 영국인 로렌스의 경우입니다. 


청야전략은 대표적인,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전략(p391)입니다. 쿠두조프 장군도 그 많은 욕을 먹어 가면서 나폴레옹을 상대로 야전을 벌이지 않고 모스크바를 스스로 비워서 적군의 보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파비우스 역시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 침략해 들어오자 정면 결전을 피하고 도망다녀 결국 막강한 적이 와해되게 촉진했으며, 우리 민족도 북방의 강한 적을 맞아 튼튼한 성 안에서 장기 농성하며 결국 적을 패퇴시킨 일이 많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이 책에 많은 사례가 소개되죠. 


어떤 특성이 자신의 강점일까요? 저자는 세 개의 키워드를 듭니다. 그것은 성공, 반복, 만족(p257)입니다. 다윗은 불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맞서 그의 약점을 잘 파고들기도 했지만, 돌팔매라는 그만의 장기를 최대한 활용한 덕도 컸습니다. 손에 익은 무기가 최상의 무기라는 겁니다. 이것의 선순환을 통해 순발력, 성실, 소통 증진의 결과가 계속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이렇게 일단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약자와 강자의 부동 포지션에 근본적 요동이 발생하고 결국 의외의 역전이 벌어지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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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게임 3 - 혁명의 시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71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박우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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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지니어스 게임 2권 - 속임수>를 읽고 짧은 독후감( https://blog.aladin.co.kr/773561189/12635728 )을 남겼더랬습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해도 그에 걸맞은 선의지가 없으면 공동체에 도움은커녕 해악이나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쉽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세 명은 "일단" 참 착한 아이들입니다. 머리도 좋고 사리분별도 바르고... 또래들한테 참 인기가 많을 듯한 타입입니다. 


2권 리뷰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이 세계에서 진정한 초능력은 "망(the net)에 대한 이해와 활용 실력"이며 주인공들(나아가 인류 전체)에 가해진 시련과 도전도 그 원천은 망(을 이용한 세력)입니다. 어린 나이에 수학 실력이 가장 창의력과 순발력을 빛내듯, 어른보다 훨씬 깊은 지식과 순간적인 판단력의 정확함으로 세 주인공은 온갖 난관을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헤쳐나갑니다. 


아주 예전 컨텐츠들, 즉 NBC TV 시리즈 <원더우먼>이라든가 초창기 숀 코너리 주연 007 영화라든가 23년 전 <투모로우 네버 다이즈> 같은 걸 보면 마오 치하의(혹은 다른 지도자가 영도하는) 중국이 거대한 악의 세력으로 세팅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에서도 알고보니 오해였고, 자유 진영과 중국을 이간질하여 세계 대전을 촉발하려는 제3의 악당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 지니어스 게임 시리즈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물론 1권부터 이 세계의 메인 빌런 노릇을 하는 키란이 그것 비슷한 포지션입니다. 


"카이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가장 똑똑하고 가장 이타적인 사람이야(p23)."라든가 "카이는 여전히 멋있어 보였다(p59)." 같은 문장을 보면 렉스는 여전히 카이, 즉 페인티드 울프에 꽂혀 있습니다. 보통 여주가 남주한테 강렬한 호감과 의존하는 마음을 품기는 해도, 그 반대로 남자애가 여자애의 리더십에 끌려 먼발치에서 사모의 마음을 키우는 건 드문데 여튼 여기선 사정이 이렇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 중 센터 위치인 카이가 중국계이다 보니(?) 중국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며 경극에 대한 설명도 눈에 띕니다. 그저 오페라가 아니라 극 공연이 담을 수 있는 모든 매력을 다 담은 것이다... 서양의 서커스와도 비슷하지만 서커스처럼 유치하지 않다.... 어쩌면 (경극에 호의적인 입장에서라면) 핵심을 찌른 요약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뿐만 아니라 "일석이조" 등 중국식 격언도 종종 인용됩니다. "육즙 가득한 만두"가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발상도 재미있고 매혹적입니다. 


비록 메인 빌런은 키란이지만 저는 사실 이 암울한 상황이 풍자하는 건 개인의 삶을 일일이 통제하고 감시하는 중국 같은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방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국가의 자원을 독점하며 개인을 향해 압도적인 위력을 행사하는 중국 같은 나라 앞에, 이런저런 작은 사이즈의 자유 진영 국가들은 마치 이 소설의 세 주인공처럼 청소년 같은 신세 아닐까요. 물론 청소년이라고는 해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하며 그 총기와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자유로운 정신과 (강요가 아닌)진정한 연대의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현 국제정세의 은유처럼 읽힙니다.


"굶어 죽을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 그러나 서유럽 사회라고 해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양극화가 끝도 없이 심해진다는 점입니다. 소설 속 세 주인공은 키란의 음모 획책에 대해 이처럼이나 단호하고 집요하게 반대하며 레지스탕스, 사보타주를 펼치지만, 그가 주장하는 궁극의 목적 자체에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합니다. "모든 계정과 화폐가 삭제되지. 세계는 처음으로 리셋되며 평등은 완전히 달성되는 거야." 살짝 그 내세운 모토가 다르긴 하지만 2008년작 영화 <다이하드 4.0>의 상황과도 좀 비슷합니다. 그러나 세 주인공은 "그 목표가 옳을 수 있을망정 그 수단방법이 너무도 나쁘기에" 키란과 "터미널"에 대해 단호히 반대합니다. 


"(사실은) 내가 네 애비다." 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라고도 하는 어느 SF 고전에서의 대사처럼, 이 3권에서 드디어 OO가 OOO에게 제 정체를 드러냅니다. "미안하다." OO 역시도 터미널의 대의 자체가 옳다고 여겼기에 거기에 동참한 것입니다. 하지만 OOO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하늘처럼 믿고 따른(1, 2권에 심심하면 나오는 표현이었죠) OO이 터미널의 일원이었다니! 그런데 저는 눈치가 빨라서 2권의 그 좀 뜬금없는 등장에서부터 얘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과연.... ㅎㅎ


혁명은 특히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하는 최음제입니다. 내 한 몸 바쳐 숱한 민중을 구하고 정의의 사도로 세상 앞에 등장한다! 허나 그 과정에서 어떤 다른 가치들이 희생될지 젊고 미숙한 정신으로서는 아직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 저러는 건 그나마 이해가 되는데, 이 세상에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정신 못 차리는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의명분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혼자 모든 가치와 권력을 독식하려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에고의 핑곗거리일 수 있습니다. 


지니어스 게임 3부작이 일단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2018년에 이미 완결이 났으나 한국어판으로는 아쉽게도 이제서야 완역 소개된 건데 레오폴드 가우트가 그 끼를 주체 못 하고 아마 다시, 어떤 포맷으로든 카이, 툰데, 렉스의 뒷이야기를 들려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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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도시의 아이들 2 - 난파선의 섬 바다 도시의 아이들 2
스트루언 머레이 지음, 마누엘 슘베라츠 그림, 허진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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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도시의 아이들> 1권을 미처 못 읽고 2권부터 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1권을 미리 못 읽어 둔 게 크게 후회가 되었는데 나중에 챙겨 읽을 생각입니다. 후속 이야기가 그 자체로 재미있으면 앞 이야기가 독자 머리에서 절로 상상되거나, 나중에 내 상상과 실제 이야기를 대조하는 재미가 하나 생기기 때문에 저에게는 상관 없었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혹 1권을 안 읽었다면 미리 읽어 두고 이 2권을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사실 당연하지만).


제가 원서를 잠시 찾아 보니 원제목은 Orphans of the tide더군요. 영어 orphan은 "고아"라는 뜻 외에도 약간 다른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저 문구가 참 멋이 있는데(물론 두 주인공이 여기서 문자 그대로의 orphan이기도 합니다), 우리말로는 아무래도 좀 그렇다 보니 저렇게 번역된 것 같습니다. 아주 예전 아동 문학으로 린드그렌이 지은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라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문학 작품 제목에 "고아"가 대뜸 쓰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 아동문학에는 "고아" 혹은 나중에서야 친부모와 재회하는 고아들이 참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했죠 ㅎㅎ


모험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부당하게도 절망적인 상황에 던져진 후 이 난관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가는 그 과정이 감동적으로 설정됩니다. 여기서는 세스(Seth)와 엘리(Ellie)가 두 주인공인데 세스와 엘리는 각각 남자애, 여자애입니다. 음.... 세스는 아마 1권에서도 분명히 그런 묘사가 나왔겠지만 잘생기고 키도 훤칠하고 판단력도 뛰어난, 나무랄 데 없는 매력을 두루 갖춘 아이입니다. 재미있는 건 엘리가 약간 미숙하고 정서가 다소 불안하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물론 동반자인(그랬으면 하는) 세스가 리드도 잘 해주고 (성별은 다르지만) 롤모델을 보면서 성숙해나가는 과정 역시 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이겠고요. 


2권에서 천신만고 끝에 "난파선의 섬(Shipwreck Island)"에 두 주인공이 도착합니다. 이곳 주민들은 그 이름도 정확히 알 수 없는(원래 귀족, 왕 등은 재위시에는 그 신민, 영민들이 이름을 잘 모릅니다) 여왕을 몹시도숭배합니다. 2권 챕터 2의 제목은 "찬미하라"인데 원서에서는 "praise her", 이 번역서의 본문 중에서는 "여왕을 찬미하라"라고 그 목적어가 누구인지 더 분명히 나옵니다. 그저 "여왕을 칭찬(찬미)하라"는 제안이나 명령이 아니라 거의 종교적 주문처럼 쓰입니다. 


세스와 엘리가 만나는 거의 모든 주민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심하게 비하하고 여왕에 대해 맹목적인 찬양을 보내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섬의 분위기는 정상이 아닙니다. 정말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군주는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중에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식이죠. 그런데 놀라운 건 저 정체불명의 여왕이라는 자가 실제로 병자를 낫게 하는 등 기적 비슷한 것을 행한다(혹은, 그런 소문이 주민들 사이에 압도적 위력을 갖고 통한다)는 것입니다. 여튼 이렇게 여왕의 권능과 평판이 섬에서 대단하니 두 주인공의 마음도 일단 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소설 세계관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신이 아닌) 화신"이라는 존재입니다. 대표적으로 p53, 또 p78 같은 곳에서입니다. 제가 원서를 찾아 보니 이것은 Vessel(소설 중에서 대문자로 시작하여 씁니다)이라고 나오더군요. 저 단어는 무엇을 담는 용기 같은 뜻이지만, 이 맥락에서 "어떤 기운, 정신, 혹은 다른 초자연적 존재(신) 등을 담고 있는 겉모습, 껍데기"라는 뜻으로 쓰이므로 그 안에 무엇을 분명히 화체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말 제목 "화신(化神)"이 무척 적절한 번역이며, "신이 아니라 화신이야!" 같은 대사도 심지어 라임까지 딱딱 맞으니 더욱 절묘합니다. 


엘리는 분명 이성으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만큼인 세스에 대해 끌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동시에 그녀는 현재 가장 가까이 그를 곁에 두고 있지만 혹 이 완벽한 남자애가 다른 무엇에 끌려 자신과 멀어지지 않을지 무척 불안해합니다. 이런 미묘한 심리까지 같이 추적해 가는 게 소설을 읽는 또하나의 재미였습니다. 


세스는 원래 똑똑한 아이이며, 엘리도 궁정에서 만난 케이트라는 어린 시녀한테서 "사실 여왕이 그리 좋은 분이 아님"을 전해 듣고 뭔가 슬슬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엘리는 여왕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자신만의 능력을 그 앞에서 과시해 봐야지 같은 소박한 희망에 들뜨기까지 했는데... 아직 여러 모로 미숙해서 순진한 구석이 많은 엘리만의 개성입니다. 


누군가가 화신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까요? 케이트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p154에 자세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나이가 많아지면 현시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 그들의 영혼에 깃들어 있던 신이 날개 달린 형체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화신 중에는 악마를 품은 것도 있는데 p220 같은 곳을 보면 나옵니다. 


진실이란 누구도 그 전면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양파처럼, 한 꺼풀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진상이 드러나는데... 스포 때문에 여기 자세히 적지는 못하지만 이제 섬의 정세는 혁명 같은 것을 앞두고 로렌이 등장하여 훨씬 복잡한 긴장을 유발합니다. 그저 마법적 지식이나 등장인물의 매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처럼 (가공의) 정치적 색채까지 가미한 덕에 마치 예전 알렉산드르 뒤마의 낭만주의 고전을 읽는 듯한 재미도 쏠쏠합니다. 빨리 3권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고 저는 그 와중에 1권을 구해 찬찬히 읽고 싶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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