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 게임 3 - 혁명의 시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71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박우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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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지니어스 게임 2권 - 속임수>를 읽고 짧은 독후감( https://blog.aladin.co.kr/773561189/12635728 )을 남겼더랬습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해도 그에 걸맞은 선의지가 없으면 공동체에 도움은커녕 해악이나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쉽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세 명은 "일단" 참 착한 아이들입니다. 머리도 좋고 사리분별도 바르고... 또래들한테 참 인기가 많을 듯한 타입입니다. 


2권 리뷰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이 세계에서 진정한 초능력은 "망(the net)에 대한 이해와 활용 실력"이며 주인공들(나아가 인류 전체)에 가해진 시련과 도전도 그 원천은 망(을 이용한 세력)입니다. 어린 나이에 수학 실력이 가장 창의력과 순발력을 빛내듯, 어른보다 훨씬 깊은 지식과 순간적인 판단력의 정확함으로 세 주인공은 온갖 난관을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헤쳐나갑니다. 


아주 예전 컨텐츠들, 즉 NBC TV 시리즈 <원더우먼>이라든가 초창기 숀 코너리 주연 007 영화라든가 23년 전 <투모로우 네버 다이즈> 같은 걸 보면 마오 치하의(혹은 다른 지도자가 영도하는) 중국이 거대한 악의 세력으로 세팅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에서도 알고보니 오해였고, 자유 진영과 중국을 이간질하여 세계 대전을 촉발하려는 제3의 악당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 지니어스 게임 시리즈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물론 1권부터 이 세계의 메인 빌런 노릇을 하는 키란이 그것 비슷한 포지션입니다. 


"카이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가장 똑똑하고 가장 이타적인 사람이야(p23)."라든가 "카이는 여전히 멋있어 보였다(p59)." 같은 문장을 보면 렉스는 여전히 카이, 즉 페인티드 울프에 꽂혀 있습니다. 보통 여주가 남주한테 강렬한 호감과 의존하는 마음을 품기는 해도, 그 반대로 남자애가 여자애의 리더십에 끌려 먼발치에서 사모의 마음을 키우는 건 드문데 여튼 여기선 사정이 이렇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 중 센터 위치인 카이가 중국계이다 보니(?) 중국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며 경극에 대한 설명도 눈에 띕니다. 그저 오페라가 아니라 극 공연이 담을 수 있는 모든 매력을 다 담은 것이다... 서양의 서커스와도 비슷하지만 서커스처럼 유치하지 않다.... 어쩌면 (경극에 호의적인 입장에서라면) 핵심을 찌른 요약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뿐만 아니라 "일석이조" 등 중국식 격언도 종종 인용됩니다. "육즙 가득한 만두"가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발상도 재미있고 매혹적입니다. 


비록 메인 빌런은 키란이지만 저는 사실 이 암울한 상황이 풍자하는 건 개인의 삶을 일일이 통제하고 감시하는 중국 같은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방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국가의 자원을 독점하며 개인을 향해 압도적인 위력을 행사하는 중국 같은 나라 앞에, 이런저런 작은 사이즈의 자유 진영 국가들은 마치 이 소설의 세 주인공처럼 청소년 같은 신세 아닐까요. 물론 청소년이라고는 해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하며 그 총기와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자유로운 정신과 (강요가 아닌)진정한 연대의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현 국제정세의 은유처럼 읽힙니다.


"굶어 죽을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 그러나 서유럽 사회라고 해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양극화가 끝도 없이 심해진다는 점입니다. 소설 속 세 주인공은 키란의 음모 획책에 대해 이처럼이나 단호하고 집요하게 반대하며 레지스탕스, 사보타주를 펼치지만, 그가 주장하는 궁극의 목적 자체에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합니다. "모든 계정과 화폐가 삭제되지. 세계는 처음으로 리셋되며 평등은 완전히 달성되는 거야." 살짝 그 내세운 모토가 다르긴 하지만 2008년작 영화 <다이하드 4.0>의 상황과도 좀 비슷합니다. 그러나 세 주인공은 "그 목표가 옳을 수 있을망정 그 수단방법이 너무도 나쁘기에" 키란과 "터미널"에 대해 단호히 반대합니다. 


"(사실은) 내가 네 애비다." 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라고도 하는 어느 SF 고전에서의 대사처럼, 이 3권에서 드디어 OO가 OOO에게 제 정체를 드러냅니다. "미안하다." OO 역시도 터미널의 대의 자체가 옳다고 여겼기에 거기에 동참한 것입니다. 하지만 OOO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하늘처럼 믿고 따른(1, 2권에 심심하면 나오는 표현이었죠) OO이 터미널의 일원이었다니! 그런데 저는 눈치가 빨라서 2권의 그 좀 뜬금없는 등장에서부터 얘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과연.... ㅎㅎ


혁명은 특히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하는 최음제입니다. 내 한 몸 바쳐 숱한 민중을 구하고 정의의 사도로 세상 앞에 등장한다! 허나 그 과정에서 어떤 다른 가치들이 희생될지 젊고 미숙한 정신으로서는 아직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 저러는 건 그나마 이해가 되는데, 이 세상에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정신 못 차리는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의명분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혼자 모든 가치와 권력을 독식하려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에고의 핑곗거리일 수 있습니다. 


지니어스 게임 3부작이 일단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2018년에 이미 완결이 났으나 한국어판으로는 아쉽게도 이제서야 완역 소개된 건데 레오폴드 가우트가 그 끼를 주체 못 하고 아마 다시, 어떤 포맷으로든 카이, 툰데, 렉스의 뒷이야기를 들려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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