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 너머 - 반드시 이기는 약자의 전략
임종득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경쟁이나 싸움에 있어서 출발점에서부터 뭔가 약한 구석을 안고 레이스를 시작하면 좀처럼 역전이 어렵습니다. 언더독에게 동정의 시선이 몰리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강약이 부동"인 법이라서 약자는 그저 약자인 채로 끝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는 게 당연한 듯했던 약자가 의외로 승부를 뒤집는 수가 있습니다. 남의 몫을 빼앗으려는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시장에서 자금이나 기타 보유한 자원이 월등하고, 처음부터 점유율도 높았던 탑독을 언더독이 추월하기란 거의 가망이 없는데도 그걸 해내는 기업이 있습니다. 그 비결이 뭘까요.


저자는 움직일 수도 없고, 포식자에 맞설 마땅한 방법이 없는 식물이, 스스로의 몸을 맛 없게 만들어서 쉽사리 동물에 먹히지 않게 진화한 예를 듭니다. 마치 M&A 시장에서 피인수의 위기에 몰린 기업이 쓰곤 하는 포이즌 필 전략과도 비슷합니다. 버섯(균류이기는 하지만)을 즐겨 먹는 인간 입장에서 저 비유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란체스터 법칙이란 강자가 약자를 이길 때 피해의 차이도 전력 차 이상으로 적다는 내용으로서, 약자는 지기 쉬울 뿐 아니라 져도 처참하게 패하기 쉽다는 씁쓸한 결론인데,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가 이길 수 있는 필살기를 여러 사례에서 추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지기는 했으나 300명의 스파르타 결사대가 테모필라이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오래 막을 수 있었던 건 지형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협곡에서는 아무리 수가 많아도 그 우위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저자는,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도 있으며 그 싸움을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서 벌여 승부를 벌이는 걸 핵심으로 꼽습니다(p32, p68). 저게 막연한 말 같아도 우리 독자들은 벌써 감이 오는 바가 있죠. 


성능이 나쁜 전투기로 오히려 전력 우위에 있던 상대를 제압한다? 불가능한 목표 같으나 한국전 당시 미군이 실제로 이걸 이뤘다고 합니다(p80). 핵심은, 상황 변화를 면밀히 판단하고 수시로 전술을 바꿔 가며 전투에 임했던 건데, 실제로 F-86이 미그기보다 성능이 나빴으나 유독 넓은 시야 확보, 유압 제어 방식의 유연성 등이 조종사로 하여금 전술을 자주 바꾸게 돕는 장점이었고, 이것이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책에서는 이처럼 결정을 자주 빨리 내릴 수 있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보며, 이걸 OODA주기를 짧게 잡는 방식이라고 정의합니다. 8년 전 개인적으로 <정상을 훔쳐라>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적 있는데 거기서도 이 OODA 사이클이 나옵니다. 이 책에서는 크리스 주크 등이 쓴 <최고의 전략은 무엇인가>를 인용합니다. 


의사 결정의 신속함과 (적절한) 전략전술변경의 중요성은 p114 이하의 제록스와 애플 사례에서도 나타납니다. 제록스는 당시 애플에 비해 훨씬 큰 기업이었고 보유한 자원도 우수했기에 심지어 먼저 개발하기까지 한 마우스 입력법(명령어 타자가 아닌)을 갖고 엄청난 성공을 먼저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의사 결정 구조가 관료적이었으며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던 제록스는 이걸 활용할 생각을 못 했고, 마침 애플에서 해고되어 절치부심하던 잡스가 이에 주목했습니다. 마우스의 저가화에 성공한 그는 결국 맥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적의 단열진 중앙을 돌파하라(p141)." 저자는 예비역 장군 답게 근대 전쟁사의 중요 사건으로부터도 교훈을 이끌어냅니다. 전력 자체가 우세한데다 함의 크기도 크니 일반적인 패턴대로 프랑스 함대는 단열진으로 나왔습니다. 이에 영국의 넬슨 제독은 종열진으로 맞섰는데 전례가 없는 변칙 전술로서 무모하기까지 한 시도였죠. 넬슨이 노린 건 적군이 일단 병력도 많은데다 연합 함대라서 지휘체계가 그리 일사불란하지 않고 의사결정도 오래걸릴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저 변칙으로 나와서 상대의 당황만을 노린 게 아니라 디테일까지 구상하며 행여 벌어질 수 있는 아군끼리의 충돌을 막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고안했습니다. 근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넬슨은 구국의 영웅(p145)이 되었습니다. 


1968년 베트콩은 대규모의 구정 공세(p213)를 벌입니다. 딴에는 기습이었으나 전력이 워낙 열세라서 결국 베트콩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습니다. 그들도 이를 알았으나 감행한 것인데, 이 이유는 비록 승리를 거두었다고는 하나 미군 측은 이 전투를 계기로 머나먼 이국에서의 전쟁 수행에 의욕을 잃습니다. 극성스럽고 예측 불허인 적을 맞아 뭐하러 먼 곳에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미국 본토에서는 반전 여론이 거세게 일어 결국 5년 후 미국은 베트남에서 발을 빼게 됩니다. 전투에서 지고도 전쟁에서 이긴 고전적 사례입니다. 보응우옌지압의 놀라운 전술은 p472에도 다른 것이 하나 소개됩니다. 


무하마드 알리(p220)는 한때 한 대도 맞지 않고 상대의 펀치를 피해 가며 자신은 불꽃 같은 연타를 퍼부어 상대를 제압하던 무적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랬다고는 하나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고, 알리 같은 아웃복서는 조지 포먼 같은 강펀치형 선수에 예나 지금이나 약한 경향이 있으며 더군다나 포먼은 이제 고작 이십대 중반이었습니다. 열 살이나 어린 데다 역대 최고의 주먹을 가진 포먼에 맞서 알리는 노련하게 스스로 코너로 몰려 포먼의 펀치를 막고 로프에 기대어 충격을 흡수했습니다. 무수히 알리를 때렸으나 정타가 없어 결국 때리다 지친 포먼은 종반으로 갈수록 허점을 노출했는데 그는 원래 상대가 누구든 초장에 승부를 내던 선수였으므로 체력 소모가 빨리 왔습니다. 이때를 노려 잠시 가드가 내려간 포먼에 알리는 정타를 적중시켜, 원래 이길 수 없던 상대를 한큐에 잡았습니다. 포먼은 제대로 정타를 맞은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상대가 얼마나 뛰어난 전술을 구사했는지 깨닫고 더 이상의 승부를 포기하다시피 했습니다. 스스로도 말했듯이 주먹의 강함보다 전술의 위대함에 굴복한 사례죠. 


그러니 결국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면 상대의 단점(위에서는, 포먼이 오랜 시간 시합을 뛴 적이 없다는 점)과 자신의 장점을 적절히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은 손자병법에 나오죠. p31에서 저자는 해당 고전에 나오는 병자(兵者)의 개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또 p39에서 저자는 손무가 상지상책으로 꼽았던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합니다. 그가 장성 출신이므로 현역 시절에도 이 방법, 아군의 손실도 없고 심지어 적측에도 손해가 없으니 인도적 측면에서도 당당한 승리의 방법이란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또한 적측의 움직임을 수시로 살펴 정확히 예측한 후 그에 따라 자유자재로 전술을 바꿔 가며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야전사령관 자질이라는 손자의 주장에 찬성합니다(p340). 여기애서 드는 예는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며 터키 군의 아카바를 점령한 영국인 로렌스의 경우입니다. 


청야전략은 대표적인,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전략(p391)입니다. 쿠두조프 장군도 그 많은 욕을 먹어 가면서 나폴레옹을 상대로 야전을 벌이지 않고 모스크바를 스스로 비워서 적군의 보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파비우스 역시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 침략해 들어오자 정면 결전을 피하고 도망다녀 결국 막강한 적이 와해되게 촉진했으며, 우리 민족도 북방의 강한 적을 맞아 튼튼한 성 안에서 장기 농성하며 결국 적을 패퇴시킨 일이 많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이 책에 많은 사례가 소개되죠. 


어떤 특성이 자신의 강점일까요? 저자는 세 개의 키워드를 듭니다. 그것은 성공, 반복, 만족(p257)입니다. 다윗은 불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맞서 그의 약점을 잘 파고들기도 했지만, 돌팔매라는 그만의 장기를 최대한 활용한 덕도 컸습니다. 손에 익은 무기가 최상의 무기라는 겁니다. 이것의 선순환을 통해 순발력, 성실, 소통 증진의 결과가 계속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이렇게 일단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약자와 강자의 부동 포지션에 근본적 요동이 발생하고 결국 의외의 역전이 벌어지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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