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도시의 아이들 2 - 난파선의 섬 바다 도시의 아이들 2
스트루언 머레이 지음, 마누엘 슘베라츠 그림, 허진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다 도시의 아이들> 1권을 미처 못 읽고 2권부터 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1권을 미리 못 읽어 둔 게 크게 후회가 되었는데 나중에 챙겨 읽을 생각입니다. 후속 이야기가 그 자체로 재미있으면 앞 이야기가 독자 머리에서 절로 상상되거나, 나중에 내 상상과 실제 이야기를 대조하는 재미가 하나 생기기 때문에 저에게는 상관 없었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혹 1권을 안 읽었다면 미리 읽어 두고 이 2권을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사실 당연하지만).


제가 원서를 잠시 찾아 보니 원제목은 Orphans of the tide더군요. 영어 orphan은 "고아"라는 뜻 외에도 약간 다른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저 문구가 참 멋이 있는데(물론 두 주인공이 여기서 문자 그대로의 orphan이기도 합니다), 우리말로는 아무래도 좀 그렇다 보니 저렇게 번역된 것 같습니다. 아주 예전 아동 문학으로 린드그렌이 지은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라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문학 작품 제목에 "고아"가 대뜸 쓰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 아동문학에는 "고아" 혹은 나중에서야 친부모와 재회하는 고아들이 참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했죠 ㅎㅎ


모험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부당하게도 절망적인 상황에 던져진 후 이 난관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가는 그 과정이 감동적으로 설정됩니다. 여기서는 세스(Seth)와 엘리(Ellie)가 두 주인공인데 세스와 엘리는 각각 남자애, 여자애입니다. 음.... 세스는 아마 1권에서도 분명히 그런 묘사가 나왔겠지만 잘생기고 키도 훤칠하고 판단력도 뛰어난, 나무랄 데 없는 매력을 두루 갖춘 아이입니다. 재미있는 건 엘리가 약간 미숙하고 정서가 다소 불안하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물론 동반자인(그랬으면 하는) 세스가 리드도 잘 해주고 (성별은 다르지만) 롤모델을 보면서 성숙해나가는 과정 역시 독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이겠고요. 


2권에서 천신만고 끝에 "난파선의 섬(Shipwreck Island)"에 두 주인공이 도착합니다. 이곳 주민들은 그 이름도 정확히 알 수 없는(원래 귀족, 왕 등은 재위시에는 그 신민, 영민들이 이름을 잘 모릅니다) 여왕을 몹시도숭배합니다. 2권 챕터 2의 제목은 "찬미하라"인데 원서에서는 "praise her", 이 번역서의 본문 중에서는 "여왕을 찬미하라"라고 그 목적어가 누구인지 더 분명히 나옵니다. 그저 "여왕을 칭찬(찬미)하라"는 제안이나 명령이 아니라 거의 종교적 주문처럼 쓰입니다. 


세스와 엘리가 만나는 거의 모든 주민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심하게 비하하고 여왕에 대해 맹목적인 찬양을 보내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섬의 분위기는 정상이 아닙니다. 정말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군주는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중에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식이죠. 그런데 놀라운 건 저 정체불명의 여왕이라는 자가 실제로 병자를 낫게 하는 등 기적 비슷한 것을 행한다(혹은, 그런 소문이 주민들 사이에 압도적 위력을 갖고 통한다)는 것입니다. 여튼 이렇게 여왕의 권능과 평판이 섬에서 대단하니 두 주인공의 마음도 일단 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소설 세계관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신이 아닌) 화신"이라는 존재입니다. 대표적으로 p53, 또 p78 같은 곳에서입니다. 제가 원서를 찾아 보니 이것은 Vessel(소설 중에서 대문자로 시작하여 씁니다)이라고 나오더군요. 저 단어는 무엇을 담는 용기 같은 뜻이지만, 이 맥락에서 "어떤 기운, 정신, 혹은 다른 초자연적 존재(신) 등을 담고 있는 겉모습, 껍데기"라는 뜻으로 쓰이므로 그 안에 무엇을 분명히 화체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말 제목 "화신(化神)"이 무척 적절한 번역이며, "신이 아니라 화신이야!" 같은 대사도 심지어 라임까지 딱딱 맞으니 더욱 절묘합니다. 


엘리는 분명 이성으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만큼인 세스에 대해 끌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동시에 그녀는 현재 가장 가까이 그를 곁에 두고 있지만 혹 이 완벽한 남자애가 다른 무엇에 끌려 자신과 멀어지지 않을지 무척 불안해합니다. 이런 미묘한 심리까지 같이 추적해 가는 게 소설을 읽는 또하나의 재미였습니다. 


세스는 원래 똑똑한 아이이며, 엘리도 궁정에서 만난 케이트라는 어린 시녀한테서 "사실 여왕이 그리 좋은 분이 아님"을 전해 듣고 뭔가 슬슬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엘리는 여왕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자신만의 능력을 그 앞에서 과시해 봐야지 같은 소박한 희망에 들뜨기까지 했는데... 아직 여러 모로 미숙해서 순진한 구석이 많은 엘리만의 개성입니다. 


누군가가 화신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까요? 케이트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p154에 자세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나이가 많아지면 현시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 그들의 영혼에 깃들어 있던 신이 날개 달린 형체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화신 중에는 악마를 품은 것도 있는데 p220 같은 곳을 보면 나옵니다. 


진실이란 누구도 그 전면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양파처럼, 한 꺼풀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진상이 드러나는데... 스포 때문에 여기 자세히 적지는 못하지만 이제 섬의 정세는 혁명 같은 것을 앞두고 로렌이 등장하여 훨씬 복잡한 긴장을 유발합니다. 그저 마법적 지식이나 등장인물의 매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처럼 (가공의) 정치적 색채까지 가미한 덕에 마치 예전 알렉산드르 뒤마의 낭만주의 고전을 읽는 듯한 재미도 쏠쏠합니다. 빨리 3권도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고 저는 그 와중에 1권을 구해 찬찬히 읽고 싶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