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 던져진 존재들을 위한 위로
민이언 지음, 제소정 그림 / 디페랑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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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인생 가는 길에 꽃잎만 좍 깔렸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불운, 이 불운이라는 불청객은 우리 갈 길에 시도때도없이 끼어듭니다. 끼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비껴가지를 않습니다. 말하자면 길막을 하고 아예 앞에 드러눕는 셈이죠. 일단, 왜 불운이 이러는지, 그 이유라도 알면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합니다. 그 다음에 불운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방도가 없는지 차근차근 생각을 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을지 살펴 봐야되겠는데요...


서양에는 "바로워즈(빌리는 자들)"라는 자그마한 귀신이 있어서 우리 물건을 수시로 빌려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좀 그렇게 찾으려 들면 죽어라고 눈에 안 띄다가 용무가 다 끝나면 나타나서 더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라버, 스틸러"가 아니라 "바로워"라고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쓰고 나서 돌려는 주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좀 다른 말을 합니다. p27을 보면 이런 귀신(?)이 설치는 이유는 평소에 우리가 불성실해서라는 겁니다. 평소에, 좀 평소에 우리가 물건을 체계 있게, 나중에도 기억이 잘 나게끔 정돈을 해 두면 그런 일이 벌어지질 않고, 또 나중에 큰 혼란, 불편이 빚어지는 건 이런 게으름, 불성실에다가 나비 효과가 덧붙여져 아예 수습이 안 될 만큼 커진다는 뜻입니다. 


노인분들은 참 당신들 이야기를 자주 하십니다. 한참을 자신 인생 역정 스토리를 털어 놓으시는데... 누가 보면 젊은이(대화 상대)가 먼저 뭘 물어 본 줄이나 착각하지만 사실 혼자서 그리 신 나게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와... 이 이야기 대체 언제 끝나나.... 저자 역시 헬스장에서 전직 수학 교사 한 분의 이야기를 그리 들어야 했습니다(p50). 그러던 어느날, 이분이 안 보이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 주어야 할 때에는 그런 고역이 또 없었으나, 막상 어느 정도 정이 든 상태에서 갑자기 안 오시니 불안한 거죠. 우리 일상에서는 그리 달갑잖게 여겼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내 삶의 작은 일부가 되어버린 것들이 많습니다. 성가시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정을 붙여도 보고 작은 의의라도 부여하면, 또 모르죠, 생각지도 못한 진로를 틀어 내게 행운을 가져다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렸을 때, 혹은 성인이 되어서도 거짓말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세상이 그리 빈틈을 보이지 않으므로, 작은 이익을 얻거나 게으름 피우려고 거짓말 하다간 그 대가를 몇 배로 치를 수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정직이 바로 최상의 책략"이라는 게 괜히 있겠습니까. 원칙대로 고지식하게 밀고나가는 게 답입니다. 그런데 어려서, 혹은 나이가 들어서도, 거짓말 한 게 요행히 안 들키고 넘어가는 일(p88)이 종종 있죠. 이때 그 거짓말로 얻은 이익이 커서가 아니라, 안 들키고 넘어갔다는 그 작은 통쾌감이 길티 플레저로 남곤 합니다. 소소한, 그저 정직하게만 살아서는 맛보지 못한 쾌감.... 저는 이런 게 나중에 큰 사달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 저런 사람은 곁에 결코 둬서는 안 되겠다 싶은 인간은, 바로 요런 데서 남들보다 더 큰 쾌감을 느끼는 부류입니다. 얻는 것도 별로 없다, 아니 잃는 바가 훨씬 큰 데도 틈만 나면 일단 훔치고 봅니다. 훔치는 그 순간의 쾌감이 워낙 커서 나중에 제 인생이 어떻게 박살날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우리 영혼에 이런 작은 습관은, 그게 아무리 작은 습관이라도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바보라서 그런 소소한 도둑질을 눈치 못 채고, 저 사람 영 아니다 싶은 걸 모르는 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척 해주는 건데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신이 똑똑해서 남을 속여 넘겼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자들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건 한순간입니다. 


야OO트는 아주 오래된 브랜드입니다. 판매방식도 독특한데 카트를 몰고 다니는 분들은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자영업자분들입니다. 우유 대리점하고도 비슷하지만 우유는 소매점에서 살 수 있는 반면 이 상품은 냉장 카트에서만 우리가 구입할 수 있는데 의외로 "음 항상 마주칠 수 있진 않아" 싶어서 마주칠 때마다 거리에서 구매하기도 합니다. 음... 여기서 저자는 어떤 철학(p112)을 발견하는데, 작은 용기에서만 마시는 게 감질이 나서 기냥 큰 용기에다가 따라 먹고 싶다... 저자님뿐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 정도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면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엔 어느 블리스 포인트라는 게 따로 있어서 그 임계점을 넘어가면 오히려 쾌감이 감소한다는 겁니다. 적정선에서 멈출 줄 아는 건 인생의 소중한 지혜 중 하나입니다. 한 페이지 뒤에 바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나옵니다. 


하우 아 유 제인? 파인 땡큐 앤드유? 주입식 교육의 폐해(p135)라고 지적되는 좋은 예이며 책에는 다른 예가 나오는데 아임 소리에 잇츠 오케이라고 답하는 대화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결례는 이쪽에서 했는데, 사과는 왜 저쪽에서 하는가?" 근데 뭐 이건, 일단 결례를 한 이쪽이 (결례를 했으니까) 먼저 사과를 하고, 또 저쪽은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하실 건 없었는데 과하게 사과를 받았으니 그 부분에 한해서 나도 사과를 한다, 뭐 이렇게 좋게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럼 사과를 받고 "음 그래, 니가 니 잘못한 줄은 아는구나, 그게 기특해서 니 사과를 받아는 주고 넘어갈게." 뭐 이러는 건 더 아니지 않겠습니까? 


여튼 저자가 말하는 건 이게 포인트가 아니라 고백과 거절의 문제입니다. "관심으로 다가갔지만 이걸 그저 (단순한) 호의로만 받아들이고 작은 친절에 오해의 썰을 늘어놓기도 한다.(p134)" 여기서 전자는 먼저 말을 건 이의 큰 애정을 상대방은 그저 무심히만 여긴 경우이며, 후자는 딱 그 반대입니다. 난감하죠. "정중한 거절 역시 진심이니 누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미안합니다. -아뇨, 제가 죄송하죠"라는 대화에서, 처음의 "미안합니다"는, 고백했으나 거절 당한 사람이 하는 소리고, 뒤의 "죄송하다"는 그 거절한 사람이 정말 미안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둘 다 진심이다 이거죠. 그런데 이럴 것 같으면 둘 다 쿨하게 넘어가면 딱 좋겠으나 또 사람 감정이라는 게 아주 유치해서 그렇지를 못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좋은 약이라도 처방 받고 구간을 정해서 싹 잊는 게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영어에 laconic이라는 말이 있는데 딱 할 말만 하고 마는 그런 스타일을 가리키는 형용사입니다. 책에서는 "심장을 도려내고 싶어요라는 말에 그러세요!라는 딱 한 마디 대꾸만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어서 저자는 헤밍웨이의 글쓰기 스타일을 논하는데 저런 걸 두고 하드보일드라고 불렀죠. 사실 헤밍웨이의 작품은 번잡한 수식이 없어서 고교, 아니 중학교 영어 교재로 쓰기에도 좋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간단한 말로 천 가지 심경을 함축하는 공력이 숨었지만 그런 재주는 십억에 한 명이 부릴까 말까한 천재의 영역이며 보통 사람이 어설프게 따라할 게 결코 아닙니다. "세월은 세월대로 야속하게 흘러가고 기억은 기억대로 질기게 들러붙는다(p156)." 아마 실연의 아픔을 겪어 본 이라면 책의 이 구절이 아주 절절하게 와 닿을 듯합니다. 


이 책은 민이언 작가님이 글을 쓰고 제소정 작가님의 그림이 중간중간에 나옵니다. 일러스트라기보다는 독립된 작품들을 적절한 여백에 소개하는 식인데 실제로도 작품을 찍은 사진에 가깝습니다. 제가 참 의외라고 여긴 건 pp. 218~219에 수록된 <곤죽산>이란 작품인데, 이 그림은 "시련 속에 놓여 있었던 것"이란 민 작가님 글과 함께 독자를 만납니다. "학창 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조산 운동..." 음... 곤죽산(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도 물론 조산운동의 산물이며 신생대 3기(요즘은 용어가 바뀌어 팔레오기 네오기로 나뉘었습니다만), 혹은 4기에 만들어진지라(그렇겠죠? 모르긴 해도) 아마도 나이가 많고 완만할 것입니다. "이미 그 압력들을 견뎌 내느라 높아지고 깊어졌을 테니" 어디 그뿐입니까. 풍화작용까지 다 겪어내느라 이제는 완만하고 조신하기까지 합니다. 그림을 보십시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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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육아 필살 생존기
김희연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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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란 너무나 힘들고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일입니다. 그저 사랑과 정성만 있다고 잘 진행되는 게 결코 아니며, 혹 아이 울음 소리가 자주 들린다고 하여 타인이 "저 부모가 아이한테 소홀한가 보군" 같은 짐작을 함부로 할 게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살뜰히 아이를 돌본다 해도 아이 기분은 맞추기 힘들며, 또 설령 순한 아기라고 해도 탈이 안 나는 건 또 아닙니다. 아이 돌봄이란 일이 너무도 힘들기에, 도대체 원시 시절부터 우리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어떻게 이 단계까지 진화, 아니 기초적인 생존이라도 해 왔는지 궁금해지까지 합니다. 기적 같기까지 합니다. 모든 부모는 위대하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걸 해 내 온 셈입니다. 그러니 이 책 저자 같은 (극히 드문) 분이 혹 "명랑" 육아를 한다 해도, 그 뒤에 "필살 생존"이라는 살벌한 한정어가 따라 붙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요즘 "독박육아"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데 이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데 젊은(대체로는요) 초보 엄마한테 혼자 맡길 수가 없습니다. 아빠는 대개 육아가 엄마 책임이라 여겨 너무도 육아에 소홀한 게 보통입니다. 애초에 엄마든 아빠든 혼자 힘으로 할 수가 없는데 혼자 하라고 하니 이게 독박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저자는 운이 좋은 분인지도 모릅니다(육아는 부모 공동 책임이라는 [당연한] 전제 하에). 아빠(물론 저자의 남편이기도 하죠)는 (저자의 아이한테) 정말 좋은 아빠 노릇을 해 주었으며 저자는 자신 부부를 "육아 어벤저스"라고 재미있게 자평합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호흡이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고 때때로 나오는 잔소리도 ASMR로 받아들일 만큼 인위적인 노력도 개입해야 했나 봅니다. 여튼 전쟁과도 같은 육아를 이처럼 흥겹게 추임새 넣어 가면서 진행한 건 대단한 "능력"이며 부부 간의 진정한 사랑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현상이겠습니다. 


아이를 기계적으로 케어한다고 다가 아니라(이것만으로도 무척 힘들지만) 그걸 넘어 추가로 아이와 교감을 수시로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책 p26 이하에는 몇 가지 요령이 나오는데 1) 아기 소리 무조건 따라하기 2) 뜬금없이 깜짝 놀라며 감탄하기(!) 3) 온몸에 차례차례 뽀뽀하기 4) 온몸 간지르기 & 배방귀 5) 눈빛(으로) 탁구하기 (첵에는 오?엥?롸?하는 표정도 권장한다고 나옵니다) 6) 아기 귀에 속삭이기 바람넣기 7) 엄마의 모든 행동에 흥 스피릿 넣기 등입니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하는 엄마를 자주 보며 그게 정상이라고는 생각해 왔습니다만 그건 그냥 엄마가 아기가 좋으니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이게 교감하기 위한 (어느 정도) 필수 행동이라는 건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게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겠으나 그게 여러 이유로 잘 안 되는 엄마들도 있을 건데 이걸 지식으로라도 알아서 육아에 실천하셔야 하겠습니다. 엄마가 어떤 이유로라도 이게 힘들다면 아빠라도 대신 아기한테 해 줘야겠네요. 그리고 책 읽으면서 "흥 스피릿" 같은 말을 쓰시는 걸 보고 저자가 진짜 명랑 육아를 하시는 분이구나 실감했습니다. 


저는 뽀로로를 잘 모르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이 캐릭터가 엄청 인기라는 건 뉴스 보도 등을 통해(혹은 책을 읽고) 알았습니다. 사실 이 독후감을 쓰는 지금도 예컨대 사지선다형으로 다음 중 뽀로로를 고르라는 문제가 나온다면 풀 자신이 없습니다. 캐릭터는 귀여울 줄 알았는데 이 책에 의하면 키가 180cm이 넘고 그 중 얼굴 크기만 90cm이라는, 황금 비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뽀통령으로 꼽힌다는 이 캐릭터를 아이한테 자주 노출시키고 감성 훈련을 시키는 데에 (이 저자님처럼) 아주 열심이면 정말 뽀로로 하나를 보고도 p15 이하에서처럼 열렬한 뽀로로론(論)이 나오겠다 싶었습니다. 아이 낳으시기 전에는 큰 관심 없으셨겠죠? 저는 이 부분을 읽고 (좀 오버해서) 나중에 아빠가 되면 아 난 뽀로로도 모르는데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뭐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교육학에는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게 있다(p30)."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이처럼 현실에서 실천하면서 그 실천적 의의를 다시 새기는 건 확실히 서로 다른 일입니다. "뼈가 탈골되도록 춤도 춘다.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엄마" 정말 그렇죠? 이렇게 열정적인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커서 자신 역시 생을 긍정적으로 보고 온갖 시련도 이겨 내며 자신만의 성취를 이뤄 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런 말, 표현은 정말로 당사자가 그런 사람, 개성이기에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겁니다. 엄마는 돈 많은 엄마, 예쁜 엄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처럼 열정과 올바른 꿈을 아이한테 어려서부터 암암리에-아니 표현이 좋지 않네요-, 감각적으로,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정신과 몸에 배게 하는 엄마가 정말 최고인 듯합니다. 


"엄마 나랑 토끼 놀이해요.(p54)" 아무리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라고 해도 "14시간 중 13시간을" 토끼로 살아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는 푸념이 책에 나옵니다. 토끼놀이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럴 것 같습니다. 참 이 책은 정말 독특한 게, 와 이 구절은 정말로 이런 심정에서 썼겠다 싶은 느낌이 지면 밖으로 다 전해져 옵니다. 저자의 목소리를 행여 한 번 짧게라도 혹 들어봤다면 아마 오디오북처럼 음성 지원이 되는 느낌일 듯합니다. 


"벤 다이어그램의 중간점(p113)"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교집합(인터섹션)이라 배운 바로 그것이죠.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집에서 아무리 아이를 조용히 재우려 해도 소리가 일시에 딱 안 멈춰진다는 겁니다. 창 밖에서 나는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등 육아를 위해 정작 평소에 무심히 지나쳤던 소리들에 비로소 집중하게 되면 와 아이가 조용히 잘 수 있는 환경 만드는 게 무지 힘들다는 걸(아니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집합이 두 개뿐이면 좋은데 백 개가 넘고 그 백 개의 소리가 일시에 조용해지는게 중간점입니다.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급이죠 거의. 아이 하나 재우는 게 이렇게 힘들고,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는 건 거의 조물주의 천지창고급입니다. 휴~~~~~


비데 쓰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조준이 그리 쉽지는 않고 민감한 분들은 더 힘들어합니다. 일일이 샤워로 씻어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이 해 내는데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사실 대충 적응하고 넘어가는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p155에서 아기 비데를 쓰다 중고로 팔아버렸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잘 알 것 같습니다. 이런 상품은 게으르고 진정성 없는 엄마들한테 맞지 싶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아기는 나를 닮았다(p140)."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아이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이와 밀접 교감하다 보니 아이가 어떤 성격인지 그게 나와 닮았는지 아닌지 벌써 이렇게 감이 오는 겁니다. 심지어 무의식 중에 묻혀 있던 자신의 유아 시절 모습도 떠오르는 겁니다. 뭐 아닐 수도 있죠. 다 크고 보니 나하곤 전혀 안 닮은 아이가 내 앞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착각일 수도 있으나 이렇게 몰입을 해야 아이가 제대로 크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율욕구와 애정욕구의 길항관계도 우리 독자들이 꼭 읽어 봐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요즘은 그게 부동산이든, 요수수든, 야구든 같은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여 그 정보와 느낌만 공유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세상입니다. 정보가 설령 없어도 그저 걱정하고 좋아하는 느낌만 공유해도 한시름 덜어지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육아도 아마 유익한 카페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좀 타의 모범이 되어야할 엄마가 육필로 절절히 쓴 책은 그것대로 따로 읽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의 자연스러운 흥과 애정이 잘 묻어나는 책이라서 읽기만 해도 아빠(혹은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질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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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세이 -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 젊은 꼰대, 낀대를 위한 에세이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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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저자 김정훈씨는 70년대생과 90년대생 사이에 끼어 여러 모로 애매한 처지인 80년대생을 낀 세대라 부르며, 그들을 위한 에세이를 모아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낀세대+오디세이", 즉 낀세대들이 이 험한 사회에서, 이미 기반을 잡은 70년대생과 밑에서 치받는 90년대생 사이에서 진로를 잃고 헤맨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에세이"에서 딴 제목이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오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독자의 특권 중 하나이겠으며 사실 오해라고 볼 수만도 없습니다. 


저자는 이메일 계정을 처음 만들 때를 회상합니다. 내 이름을 내가 짓는다는 게 당시로서는 참 설레는 체험이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그 이후 세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책에도 나오지만 요즘은 인터넷 환경에 80년대생의 부모님들도 참 잘 적응하십니다. 유튜브 페북 이런 걸 자식 세대보다 더 잘 활용하고 더 심한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work라는 고지를 지키려는 80년대생과 life를 더 우선시하는 90년대생이 서로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게 회사다...(p36) 확실히, "저녁 있는 삶"을 더 중시하는 건 90년대생이 맞고 아마도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최초의 세대(한국에서는)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워크를 사수하려 드는 건 70년대생이고 여기서도 80년대생이 중간에 끼어 고생한다는 말씀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70이나 그 이전세대를 억울하게 대신해서 싸우는 게 80년대생이라는 관점에서 보시더군요. 하긴 본래 "낀 처지"의 설움이 그런 거죠. 윗선에 속하지도 못하면서 윗선의 가치를 수호하려 아랫사람과 싸워야 하는...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 80년대생에게는 라이프와 워크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합니다. 90년대생이야말로 워크와 라이프를 마치 "S극과 S극 사이의 자기장"처럼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양극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자 과연 그럼 세월이 지나 현재의 90년생이 열 살 정도 더 먹게 되면, 이제는 라이프와 워크의 불가분성을 인식하고 지키려 드는 현재의 80년대생 가치관에 수렴하게 될까요, 아니면 그들은 계속 지금의 스탠스를 유지하며 더 어린 세대를 더 깊이 있게 진심으로 이해하려 들까요?


"292513이라는 숫자를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p85)" 그런데 광고나 패션 등에 관심이 아예 없는 이라면 모를까 세대로서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싶습니다. 당시에 꽤 화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지금 보면 참, 좋은 말로는 포스트모던하고 나쁜 말로는 무지성 같습니다만 여튼 저런 것도 한 세대 한 시대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게 맞지 싶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노티카, 페레지 같은 당시 개인적으로 혹은 세대 전체가 선망했던 브랜드들을 떠올리며 즐겁고 설레던 청춘 구간 전체를 회상합니다. 90년대생은 그저 자신이 특정 장소 특정 시간에 남긴 사진 등을 돌이켜볼 뿐 브랜드에 대한 어떤 투영, 애착 같은 건 덜할까요? 이런 건 브랜드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지금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특정 세대는 왜 저렇게 온점 땡땡땡을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고 슬쩍 비웃은 말이 간혹 나옵니다. 이른바 쉰내가 난다는 건데 이걸 저자는 CD 프롬프트 명령어 입력과 관계를 짓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사실 온점 세 개 찍는 건 엄연히 표준 문장 부호 사용법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여튼 요즘 세대는 말줄임을 잘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원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 표기의 사용 빈도는 세대를 가르는 표징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삐삐삐삐삐... 그르르르르... 전화선에다 56K 모뎀선을 꽂고 PC 통신을 할 때 나오는 신호음인데 사진 하나 받는 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요금은 요금대로 비쌉니다. 요즘처럼 기가 단위의 전용회선으로 하루종일 쓰고도 월 몇 만 원 정도의 정액요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확실히 축복이며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이 잘 갖춰진 점입니다. 인터넷을 하려면 전화를 쓰지 못하는! 불편한 촌극이 벌어지지만 일단 코드를 뽑고 꽂는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설렘과 기다림이 담겨 있었겠습니까. 


시티폰 이야기도 나옵니다. 호출기와 PCS 사이의 과도기 모바일 디바이스였는데 공중전화 부스 근처에서만 일단 통화가 가능하며 수신이 안 되고 송신만 되는 휴대용 공중전화에 가까웠고 그나마 잘 터지지도 않습니다. 초기 PCS폰 역시 밀집 장소에서 통화가 잘 안 되기도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고 하죠. 다양한 삐삐암호를 나열하면서 이것들 각각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설명해 주는데(p139에 문제가 나오고 답은 바로 뒤페이지에 나옵니다. 다 맞히면 천재 아니라 낀대 인정이라고 하십니다)... 지금 세대가 들으면 어휴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냐는 반응이나 나오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걸작 흑백 고전 <어페어 투 리멤버>를 보면 그냥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다 해결되었을 일이 그처럼이나 꼬여서 비극을 낳죠. 물론 그렇게 애틋한 면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습니다만. 


그런데 정말 저 문제를 다 맞히면 천재일까요? 만약 이게 한 수십 년 지나 국사 교과서 문제로 나오면 그걸 다 맞히는 애들은 정말 천재겠죠. 그런데 그 시대를 살던 이들은 저런 부호가 십대때 그 나름 로맨스, 친구와의 의리 등을 지키기 위한 절실한 수단이었기에 마치 20세기 초 전신수들이 모스 부호 외우는 만큼 아니었겠습니까. 


여튼 밑에서 치고올라오는 90년대생 후배들을 저자는 마냥 꺼림칙한 눈으로만 보는 걸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p152를 보면 "인맥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나 처음부터 철저한 계산으로 관리할 뿐인데 정으로만 이뤄지는 관계는 사회적관계와 구분하여 순도를 철저히 관리한다. 나는 이런 그들에게 한 표를 던진다"고 합니다. 사실 이게 맞는 거죠.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90년대 혹은 그 이후 세대를 두고 "프로젝트 세대"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회사를 거꾸로하면 사회가 된다(p152)"는 말도 잘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초4때 유치원 공연에 나가(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하이니 춤을 추었고 대학 신입생 때 서태지 춤을 춰서 선배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회고합니다. 음... 여튼 여기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앞세대는 X세대, 자신은 Y세대, 그리고 지금은 MZ세대라는 거죠. 요즘은 사진을 찍어도 온갖 필터를 거치는 게 기본입니다. 어쩌다 소셜 미디어를 구경하면 제가 알던 사람과 전혀 다른 이가 그 안에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온라인은 나를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산하는 곳이다.(p171)"라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지금 우리가 대체 월 하는 걸까 하는 아득함, 어색함, 이런 느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조금 뒤 p243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같이 읽어 보시면 좋겠네요. 


"마약 대신에 만약을 먹어 보면 어떨까?" 여기서 마약이라 함은 향정신성의약품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좀 독특하지만 낀대들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양학주라는 여성분의 예에서 나온 특별한 태도, 언행입니다. "요즘 여자애들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게 회사 기강 해이를 일으키는 줄 모르나봐?" 저자는 여기서 낀대들의 고질병, 즉 과도한 일반화와 틀에 박힌 꼰대식 사고를 지적합니다. 한 세대를 통째 매도하면 뭔가 어려운 일을 나 혼자 내 세대와 전체 공동체의 가치를 수호한 듯 뿌듯합니다. 이게 마약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사실 이건 낀대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30도 5060을 막 치켜세우면서 "40대들에게는 뭔 일이 있었기에 저모냥?"이냐면서 마구 폄하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건 과도한 일반화이며 무리한 매도죠. 물론 욕 먹을 건 먹어야 마땅합니다만 욕 먹는 사람과 같은 오류에 빠지는 사람은 이미 누굴 비판할 자격도 그 순간 잃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질 나쁜 마약을 끊어야 합니다. "(마약 아닌) 만약"은 여기서 역지사지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정립하여 열심히 키치의 삶을 살던 특정 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기보다는 그 역시 편안한 티셔츠처럼 걸치고 다닐 수 있는 하나의 핑계를 마련해 주었다고 해야겠죠. 이렇게 가벼운 대상을 분석하며(이미 분석이라는 게 자가당착입니다) 뭔문자를 쓴답니까. 다만 당시의 신세대들은 어른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을 해 줘야 하니까 저걸 편하게 입에 올리고 다녔을 뿐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래도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고 설명충이 되는 게 하나의 본성이라는 걸 다시 깨닫고는 또 이런저런 말이 많아지는 게 트렌드가 되네요. 하지만 세대를 넘어 심지어 종(種)의 차이도 뛰어넘는 건 바로 소통이고 정(情)의 교감입니다. 이걸 계산이 완전히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멸종하고 세계도 사라집니다. 그러니 쟤들을 쟤들로 보지 말고 그냥 나이 어린 친구들로 여기고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친할 필요까진 없지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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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학 선언 - 노사 현장에서 만나는 노동법 이야기
이동만 지음 / 청년정신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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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은 그 어느 법보다도 수학을 널리 사용하여 세련되었다." "노동법이 수리학의 지혜를 사용하고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p9)." "노동법은 정체성이 없어 보이지만 분명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의학과 공학의 도움 없이 노동법은 존재할 수 없다." 독자인 저도 학부 시절 두꺼운 볼륨을 한 (다른 학교의) 김형배 교수님이 쓴 노동법 교과서를 김유성 교수님의 지도로 (김유성 교수님 저서는 좀 뒤에 출간되었더랬습니다) 일천하게나마 공부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여튼 이처럼 많은 학문이 "노동학"에 기여하므로 노동학은 학제적 영역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외에도 임금론, 보건론, 노사관계론 등이 노동학의 주요 부분을 구성합니다. "임금론" 빼고는 다 들어 본 듯합니다. 노사관계론도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두루 포괄하는데 형법 영역이 아니면서도 행정형벌이 다양하게 규정된 것도 이 부문의 특징 아닐까 싶습니다. 제척기간 등 본래 민법의 개넘이었던 것도 나옵니다. 노동법의 이념은 "누구와 싸워 누구를 쓰러뜨리려는 게 아니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노사간의 평화와 균형"이라는 점도 저자는 강조합니다. 


"노동법은 근로자 보호와 사용자 권리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p47)" 또 "국민의 자격 차원에서 근로자 보호는 노동법이 아니라 사회복지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는 수십 년 전 사회의 법의식과 크게 달라진 부분입니다. 노동법은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거죠. p51의 표를 보면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제정되었다고 나옵니다. 그처럼이나 오래되었다는 것도 놀랍고, 제정된 지 수십 년 동안 준수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21세기 들어서도 꾸준히 많은 개별법률들이 제정되었고 이를 통해 근로자의 사람다운 삶이 미진하나마 향상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p53에는 제정 목정, 보호 대상에 따라 다시 짠 노동법률의 분류표가 나옵니다. 또 국가기관뿐 아니라 지자체가 이에 적극 개입하게 된 과정도 서술됩니다. 


과거에는 근로기준법 단행법 딸랑 하나가 근로자의 보호를 위한 기능을 혼자 수행하다시피했습니다. 사실 근로기준법은 개별적 근로관계법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최저임금법 등이 "독립(p57)"되었다고 저자는 표현합니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 보호를 위해 더 좋을 것 같지만 저자는 반대로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퇴직급여보장법 등은 도로 근로기준법으로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로기준법은 해체가 아니라 발전적 재정비, 통합이 되어야 옳다는 것입니다. 또 "공정인사지침" 역시 재조명을 받아 살아있는 규범으로 재탄생하길 바란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수학의 힘을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데 연장근로수당의 통상 임금 포함 여부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던 어느 현장에서 노조위원장의 도움 요청을 멋지게 소화한 경험담을 들려 줍니다(p75). "도대체 계산을 시작조차 할 수 없어요." 저자는 노조 기존 입장의 98억원을 넘어 300억원이 새로 포함된 금액을 2일만에 계산하여 노조 측을 놀라게 했습니다(사용자 측은 더 놀랐겠죠). 엑셀의 힘.... 아마 어떤 독자들은 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는데 당연 이 이야기는 15년 전 사정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뭐... 


"근로자의 뜻을 알면 노동법을 마스터한 것(p100)" 사실 법은 해석을 둘러싼 투쟁이며 비단 노동법뿐 아니라 모든 법은 당사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해석이 갈립니다. 해석이 한번 정해져도 시대가 바뀌면 또 그 해석 역시 바뀌기도 합니다. "사용자가 노동법을 비난하기만 들면 (오히려) 노동법의 노예가 되고 노동법에 당하게 된다(p105)."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기업인이 세법, 기타 공정거래법류를 적대시하면 큰코다치는 법입니다. 욕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공부를 해야 합니다. 범죄자는 형법에 도통해야 잡히지 않는 법입니다(이건 아닌가...).


1980년대 말에는 사측이 "상여금은 그저 상여금일 뿐 통상임금이 될 수 없다"는 게 절대 도그마였고 이를 둘러싸고 엄청난 싸움이 벌이지기도 했습니다. 얼핏 들어서는 맞는 말처럼도 들립니다. 상여금은 보너스죠. 보너스는 그저 어쩌다 추가 성과가 났을 때 시혜로 주는 금액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현재는 큰일 날 소리이며, p120에는 연간 상여금을 월간 상여금으로 지급 못하게 막는 방법까지 나옵니다. 정교한 이론과 논리 구사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법 개정이 이런 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건 이제 보수 성향 정당도 노동계 인사가 대거 참여하여 노동자의 입장에서 입법이 이뤄질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그처럼이나 바뀌고 있는 것이고 많은 이들의 눈물 겨운 투쟁 그 성과이겠습니다. 


p151 이하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영역 설명이 나옵니다. 산재는 정말 내용이 어렵고 그간 많은 사례가 축적되어 부단히 입법이 이뤄지므로 공부가 꾸준히 필요합니다. 특히 p151의 표가 멋지게 정리되었으므로 방대한 내용을 공부하기 전 일단 생기초 개념이라도 잡는 데에 유리합니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제도도 수십 년 동안 절대 원칙처럼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노조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원칙이 아니게 되었으며 타임오프 제도, 근로 면제 시간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그 의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이 문제는 호봉제 임금 산정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아칙도 노사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븐 할둔은 과거 사라센 문명이 세계 첨단을 이끌 때 등장했던 지성으로서 그의 <역사서설>은 지금도 고전으로 꼽힙니다. p191에서 저자는 "과거 20대 중반에 삼성세계고전전집(저자는 삼성문고라고 하시는데 글쎄요) 중에 그 책이 있어 읽었다"고 하시는데, 혹시 기숙사에 책 팔러온 어느 여직원분한테 사신 것 아닌가요? ㅋㅋ 혀여튼 이런 고전까지 인용되는 점, 또 무려 이븐 할둔이 수백 년 전 근로자의 태도지향을 논했다는 점에 다시 한 번 크게 놀랐습니다. 이븐 할둔이 조직론, HR에도 소양이 깊었다니! 


어떤 원칙이건 금과옥조 무수정으로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지혜와 융통성으로 운용되어야 하며, 다만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가 엄존하는 한 문면을 무시하고 현실의 힘에 맹종하기보다 가능하면 해석의 묘를 살려야 합니다. 사람의 온갖 지혜가 동원되어 노사 분쟁이라는 첨예한 영역에 평화롭고 이성적인 해결의 과정이 경이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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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고 음미하는 삶에 대하여 - 온전한 내 삶을 위해 자존감과 마음근력을 키우는 방법
김권수 지음 / 포춘쿠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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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대해서도 그 고마움을 알고 행복을 그로부터 찾아내는 사람이라야 큰 것도 누릴 자격이 생기는 법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온갖 재난, 전쟁, 굶주림, 범죄 등으로 이유 없이 피해를 겪고 고통을 느끼며 목숨까지 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것도 전혀 아닌데 말입니다. 치안이 안정되어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 우리 나라이지만 당장 요소수가 없어 내일 생계 유지 수단이 막연해진 분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평상심을 찾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안히 살았는지에 대한 고마움을 새기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누리고 음미하는 삶은 불완전한 현재에 살아 숨쉬는 자신과 관계, 환경의 단면을 허용하고 수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p18)." 참으로 심오한 말입니다. 세상이 철두철미, 이치와 논리와 정의에 의해 작동한다면 우리는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한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질서와 문명은 모순투성이이며 우리는 시스템에 의해 언제든 억울한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아담괴 이브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냐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 속의 사슴, 토끼, 여우, 늑대, 호랑이 할 것 없이 모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죽을 고생들을 하며, 느닷 기근이나 홍수, 산불 등으로 목숨을 잃곤 합니다. 이처럼이나 우리 환경은 부조리하고 불완전하니, 우리에게 그저 주어진 작은 것들이나마 얼마나 감사하게 주어진 것인지 우리는 겸손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세상을 탓할 게 아니라 완벽함에 길들여진 내 자신의 감각을 탓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의 말입니다. 왜 나한테 이게 없냐고 원망할 게 아니라 이 정도나 가진 게 어디냐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맞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물론 물리법칙에 의해 움직이지만, 우리가 행복하다, 또는 고통스럽다 느끼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감각에 달렸습니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당신의 느낌, 감각 등을 점검하고 길들일 것을 독자에게 촉구합니다. 똑같은 걸 경험해도 내 감각이 그걸 불편하게 여기거니 눈이 터무니없이 높아져 있으면 그때부터 불행의 폭포수가 밀려옵니다. 반대로 이만큼 주어진 게 그저 고맙고 행운이다 싶으면 그때부터 행복감, 만족감이 밀려옵니다. 다른 사람의 평판은 그가 나보다 잘났건 못났건 전혀 신경 쓸 바 아닙니다. 못난 사람은 못났으니 그저 불쌍하게 여기면 되며, 잘난 사람은 그가 잘난 데 내가 예전에 보태 준 게 있습니까? 그 사람도 잘나고 싶어서 잘난 게 아닌데 내가 왜 배아파하겠습니까?


"마음챙김은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p65)" 여기서 판단이라는 건, 나의 주관적 기대, 선입견, 이런 걸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내 멋대로 "앞으로 10초 안에 바뀌어라"며 기대를 하는데 20초 넘게 걸렸다, 이러면 아 왜 내 기대는 실현이 되는 법이 없을까? 라며 그 순간 불만과 원망으로 마음이 가득합니다. 현실은 그저 20초일 뿐인데 만약 그 순간 지나가는 미녀라도 구경하고 있었으면 아 왜 20초밖에 시간이 안 걸리며 또 화가 났을 것입니다. 공연한 의미를 부여하고 비합리적인 기대를 미리 거니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겠습니까? 


"가장 잘 누리는 웰빙 투자는 바로 감정 조절 능력(p99)" 진짜 맞는 말씀입니다. 잡곡도 많이 먹고 운동도 많이 하고... 이래야 신체에 탈이 안 생기고 병을 멀리할 수 있지만, 이래 봐야 내 마음이 매번 지옥이고 기대치가 충족 안 되어 짜증이 나고 이러면 암만 좋은 걸 먹어봐야 암이 절로 내 몸에 돋아납니다. 열심히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멍청하게 넋을 놓고 살라는 게 아니라 애초에 무리한 걸 막 추구하고 자신을 들들 볶아 봐야 나아지는 게 없다는 뜻이죠. 실제로 조직에서 출세를 할 때도 감정 조절이 되어야 실수를 안 하고 타인의 반응(동기)과 전체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냥 호구로 살라는 게 아니죠. 또 감정 조절이 되는 사람은 상황의 객관화가 가능해져서 이런저런 스트레스 상황을 자신이 미연에 방지하고 통제할 수 있습니다. 가래로 막을 걸 미리 호미로 막는 거죠. 


"이거 아니면 안돼!" 감정이, 생각이 경직된 사람은 매사가 이렇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반드시 이루겠다며 투지를 불태우는 건 좋습니다. 그것하고, 비합리적으로 집착하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통제 못하는 게 훨씬 많고, 목표가 혹 어그러지면 빨리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책에서는 이걸 유연성(p123)이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고 했는데 이런 사람은 바른 현실 수용에 따라 유연하게 대안을 또 잘 찾습니다. 이게 참다운 생존 능력입니다. 


"감정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라(p163)" 바로 이것이 행복해지는 첫걸음입니다. 제가 요즘 읽는 책에는 공교롭게도 "나를 일정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 "그러면서 어린이처럼 달래 줘라" "그저 거리를 두고 아 얘는 지금 이렇구나 하고 느끼기만 해도 벌써 네 마음이 편해진다" 같은 걸 주문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 미쳐 날뀌는 감정이 바로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아 왜 내가 이런 상처를 입어야 하냐며 분해 죽을 지경입니다. 왜 내가 모욕을 당해야 하냐고! 그런데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장, 더워서 땀을 흘리는 피부, 이런 걸 다 일일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정도 마찬가지, 어찌 일시적으로 이성을 잃고 날뛰는 감정이 곧 내 자신이겠습니까? 그렇게 허술하게, 덜 수양된 상태로 살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거리를 두십시오. 아프고 상처 받은 건 내 자신이 아니라 나의 일시적 감정일 뿐입니다. 


요즘은 누구누구하고 손절해야겠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주식 용어인데 처음에 매수할 때는 기대를 가졌으나 계속 손해만 나니, 손해가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더 손해가 커지기 전에 매도한다는 뜻이죠. 이 책에서는 말합니다. "인연을 함부로 맺지 말라(p181)."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나 내 세계에 들여 놓으면, 그 중에는 나한테 해만 끼치거나 나를 이용만 하려는 자가 반드시 있어서 내 인생을 망치려 듭니다. 그런 사람은 좀 손해다 싶어도 나한테 지금 이 정도만 손해를 끼친 상태에서 끊어 내어야 합니다. "분별력과 용기가 있어야 가지도 치고 관계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관계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 저자의 말입니다. 


"일상의 작은 성공을 음미하고 고맙게 여겨라." 그저 작은 고마워하라는 게 아니라, 저자는 음미하라고 합니다. 비싼 와인을 마실 때 벌컥벌컥 들이키고 갈증만 해소하지 않습니다. 음미, 이 속에 답이 있습니다. 그 크기는 작을망정 그 깊이와 밀도는 그 안에 우주를 품습니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워도 내가 가진 작은 것에 깊이 침잠하며 참맛을 음미할 때 우리는 세상의 제왕이 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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