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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학 선언 - 노사 현장에서 만나는 노동법 이야기
이동만 지음 / 청년정신 / 2021년 10월
평점 :
"노동법은 그 어느 법보다도 수학을 널리 사용하여 세련되었다." "노동법이 수리학의 지혜를 사용하고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p9)." "노동법은 정체성이 없어 보이지만 분명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의학과 공학의 도움 없이 노동법은 존재할 수 없다." 독자인 저도 학부 시절 두꺼운 볼륨을 한 (다른 학교의) 김형배 교수님이 쓴 노동법 교과서를 김유성 교수님의 지도로 (김유성 교수님 저서는 좀 뒤에 출간되었더랬습니다) 일천하게나마 공부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여튼 이처럼 많은 학문이 "노동학"에 기여하므로 노동학은 학제적 영역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외에도 임금론, 보건론, 노사관계론 등이 노동학의 주요 부분을 구성합니다. "임금론" 빼고는 다 들어 본 듯합니다. 노사관계론도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두루 포괄하는데 형법 영역이 아니면서도 행정형벌이 다양하게 규정된 것도 이 부문의 특징 아닐까 싶습니다. 제척기간 등 본래 민법의 개넘이었던 것도 나옵니다. 노동법의 이념은 "누구와 싸워 누구를 쓰러뜨리려는 게 아니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노사간의 평화와 균형"이라는 점도 저자는 강조합니다.
"노동법은 근로자 보호와 사용자 권리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p47)" 또 "국민의 자격 차원에서 근로자 보호는 노동법이 아니라 사회복지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는 수십 년 전 사회의 법의식과 크게 달라진 부분입니다. 노동법은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거죠. p51의 표를 보면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제정되었다고 나옵니다. 그처럼이나 오래되었다는 것도 놀랍고, 제정된 지 수십 년 동안 준수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21세기 들어서도 꾸준히 많은 개별법률들이 제정되었고 이를 통해 근로자의 사람다운 삶이 미진하나마 향상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p53에는 제정 목정, 보호 대상에 따라 다시 짠 노동법률의 분류표가 나옵니다. 또 국가기관뿐 아니라 지자체가 이에 적극 개입하게 된 과정도 서술됩니다.
과거에는 근로기준법 단행법 딸랑 하나가 근로자의 보호를 위한 기능을 혼자 수행하다시피했습니다. 사실 근로기준법은 개별적 근로관계법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최저임금법 등이 "독립(p57)"되었다고 저자는 표현합니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 보호를 위해 더 좋을 것 같지만 저자는 반대로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퇴직급여보장법 등은 도로 근로기준법으로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로기준법은 해체가 아니라 발전적 재정비, 통합이 되어야 옳다는 것입니다. 또 "공정인사지침" 역시 재조명을 받아 살아있는 규범으로 재탄생하길 바란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수학의 힘을 책 곳곳에서 강조하는데 연장근로수당의 통상 임금 포함 여부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던 어느 현장에서 노조위원장의 도움 요청을 멋지게 소화한 경험담을 들려 줍니다(p75). "도대체 계산을 시작조차 할 수 없어요." 저자는 노조 기존 입장의 98억원을 넘어 300억원이 새로 포함된 금액을 2일만에 계산하여 노조 측을 놀라게 했습니다(사용자 측은 더 놀랐겠죠). 엑셀의 힘.... 아마 어떤 독자들은 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는데 당연 이 이야기는 15년 전 사정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뭐...
"근로자의 뜻을 알면 노동법을 마스터한 것(p100)" 사실 법은 해석을 둘러싼 투쟁이며 비단 노동법뿐 아니라 모든 법은 당사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해석이 갈립니다. 해석이 한번 정해져도 시대가 바뀌면 또 그 해석 역시 바뀌기도 합니다. "사용자가 노동법을 비난하기만 들면 (오히려) 노동법의 노예가 되고 노동법에 당하게 된다(p105)."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기업인이 세법, 기타 공정거래법류를 적대시하면 큰코다치는 법입니다. 욕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공부를 해야 합니다. 범죄자는 형법에 도통해야 잡히지 않는 법입니다(이건 아닌가...).
1980년대 말에는 사측이 "상여금은 그저 상여금일 뿐 통상임금이 될 수 없다"는 게 절대 도그마였고 이를 둘러싸고 엄청난 싸움이 벌이지기도 했습니다. 얼핏 들어서는 맞는 말처럼도 들립니다. 상여금은 보너스죠. 보너스는 그저 어쩌다 추가 성과가 났을 때 시혜로 주는 금액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현재는 큰일 날 소리이며, p120에는 연간 상여금을 월간 상여금으로 지급 못하게 막는 방법까지 나옵니다. 정교한 이론과 논리 구사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법 개정이 이런 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건 이제 보수 성향 정당도 노동계 인사가 대거 참여하여 노동자의 입장에서 입법이 이뤄질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그처럼이나 바뀌고 있는 것이고 많은 이들의 눈물 겨운 투쟁 그 성과이겠습니다.
p151 이하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영역 설명이 나옵니다. 산재는 정말 내용이 어렵고 그간 많은 사례가 축적되어 부단히 입법이 이뤄지므로 공부가 꾸준히 필요합니다. 특히 p151의 표가 멋지게 정리되었으므로 방대한 내용을 공부하기 전 일단 생기초 개념이라도 잡는 데에 유리합니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제도도 수십 년 동안 절대 원칙처럼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노조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원칙이 아니게 되었으며 타임오프 제도, 근로 면제 시간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그 의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이 문제는 호봉제 임금 산정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아칙도 노사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븐 할둔은 과거 사라센 문명이 세계 첨단을 이끌 때 등장했던 지성으로서 그의 <역사서설>은 지금도 고전으로 꼽힙니다. p191에서 저자는 "과거 20대 중반에 삼성세계고전전집(저자는 삼성문고라고 하시는데 글쎄요) 중에 그 책이 있어 읽었다"고 하시는데, 혹시 기숙사에 책 팔러온 어느 여직원분한테 사신 것 아닌가요? ㅋㅋ 혀여튼 이런 고전까지 인용되는 점, 또 무려 이븐 할둔이 수백 년 전 근로자의 태도지향을 논했다는 점에 다시 한 번 크게 놀랐습니다. 이븐 할둔이 조직론, HR에도 소양이 깊었다니!
어떤 원칙이건 금과옥조 무수정으로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지혜와 융통성으로 운용되어야 하며, 다만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가 엄존하는 한 문면을 무시하고 현실의 힘에 맹종하기보다 가능하면 해석의 묘를 살려야 합니다. 사람의 온갖 지혜가 동원되어 노사 분쟁이라는 첨예한 영역에 평화롭고 이성적인 해결의 과정이 경이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