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대세이 -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 젊은 꼰대, 낀대를 위한 에세이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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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저자 김정훈씨는 70년대생과 90년대생 사이에 끼어 여러 모로 애매한 처지인 80년대생을 낀 세대라 부르며, 그들을 위한 에세이를 모아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낀세대+오디세이", 즉 낀세대들이 이 험한 사회에서, 이미 기반을 잡은 70년대생과 밑에서 치받는 90년대생 사이에서 진로를 잃고 헤맨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에세이"에서 딴 제목이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오해하는 것도 어찌 보면 독자의 특권 중 하나이겠으며 사실 오해라고 볼 수만도 없습니다. 


저자는 이메일 계정을 처음 만들 때를 회상합니다. 내 이름을 내가 짓는다는 게 당시로서는 참 설레는 체험이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그 이후 세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책에도 나오지만 요즘은 인터넷 환경에 80년대생의 부모님들도 참 잘 적응하십니다. 유튜브 페북 이런 걸 자식 세대보다 더 잘 활용하고 더 심한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work라는 고지를 지키려는 80년대생과 life를 더 우선시하는 90년대생이 서로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게 회사다...(p36) 확실히, "저녁 있는 삶"을 더 중시하는 건 90년대생이 맞고 아마도 이런 가치를 지향하는 최초의 세대(한국에서는)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워크를 사수하려 드는 건 70년대생이고 여기서도 80년대생이 중간에 끼어 고생한다는 말씀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70이나 그 이전세대를 억울하게 대신해서 싸우는 게 80년대생이라는 관점에서 보시더군요. 하긴 본래 "낀 처지"의 설움이 그런 거죠. 윗선에 속하지도 못하면서 윗선의 가치를 수호하려 아랫사람과 싸워야 하는...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 80년대생에게는 라이프와 워크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합니다. 90년대생이야말로 워크와 라이프를 마치 "S극과 S극 사이의 자기장"처럼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양극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자 과연 그럼 세월이 지나 현재의 90년생이 열 살 정도 더 먹게 되면, 이제는 라이프와 워크의 불가분성을 인식하고 지키려 드는 현재의 80년대생 가치관에 수렴하게 될까요, 아니면 그들은 계속 지금의 스탠스를 유지하며 더 어린 세대를 더 깊이 있게 진심으로 이해하려 들까요?


"292513이라는 숫자를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p85)" 그런데 광고나 패션 등에 관심이 아예 없는 이라면 모를까 세대로서는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싶습니다. 당시에 꽤 화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지금 보면 참, 좋은 말로는 포스트모던하고 나쁜 말로는 무지성 같습니다만 여튼 저런 것도 한 세대 한 시대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게 맞지 싶습니다. 이어서 저자는 노티카, 페레지 같은 당시 개인적으로 혹은 세대 전체가 선망했던 브랜드들을 떠올리며 즐겁고 설레던 청춘 구간 전체를 회상합니다. 90년대생은 그저 자신이 특정 장소 특정 시간에 남긴 사진 등을 돌이켜볼 뿐 브랜드에 대한 어떤 투영, 애착 같은 건 덜할까요? 이런 건 브랜드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지금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특정 세대는 왜 저렇게 온점 땡땡땡을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고 슬쩍 비웃은 말이 간혹 나옵니다. 이른바 쉰내가 난다는 건데 이걸 저자는 CD 프롬프트 명령어 입력과 관계를 짓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사실 온점 세 개 찍는 건 엄연히 표준 문장 부호 사용법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여튼 요즘 세대는 말줄임을 잘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원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 표기의 사용 빈도는 세대를 가르는 표징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삐삐삐삐삐... 그르르르르... 전화선에다 56K 모뎀선을 꽂고 PC 통신을 할 때 나오는 신호음인데 사진 하나 받는 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요금은 요금대로 비쌉니다. 요즘처럼 기가 단위의 전용회선으로 하루종일 쓰고도 월 몇 만 원 정도의 정액요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확실히 축복이며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이 잘 갖춰진 점입니다. 인터넷을 하려면 전화를 쓰지 못하는! 불편한 촌극이 벌어지지만 일단 코드를 뽑고 꽂는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설렘과 기다림이 담겨 있었겠습니까. 


시티폰 이야기도 나옵니다. 호출기와 PCS 사이의 과도기 모바일 디바이스였는데 공중전화 부스 근처에서만 일단 통화가 가능하며 수신이 안 되고 송신만 되는 휴대용 공중전화에 가까웠고 그나마 잘 터지지도 않습니다. 초기 PCS폰 역시 밀집 장소에서 통화가 잘 안 되기도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고 하죠. 다양한 삐삐암호를 나열하면서 이것들 각각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설명해 주는데(p139에 문제가 나오고 답은 바로 뒤페이지에 나옵니다. 다 맞히면 천재 아니라 낀대 인정이라고 하십니다)... 지금 세대가 들으면 어휴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냐는 반응이나 나오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걸작 흑백 고전 <어페어 투 리멤버>를 보면 그냥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다 해결되었을 일이 그처럼이나 꼬여서 비극을 낳죠. 물론 그렇게 애틋한 면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습니다만. 


그런데 정말 저 문제를 다 맞히면 천재일까요? 만약 이게 한 수십 년 지나 국사 교과서 문제로 나오면 그걸 다 맞히는 애들은 정말 천재겠죠. 그런데 그 시대를 살던 이들은 저런 부호가 십대때 그 나름 로맨스, 친구와의 의리 등을 지키기 위한 절실한 수단이었기에 마치 20세기 초 전신수들이 모스 부호 외우는 만큼 아니었겠습니까. 


여튼 밑에서 치고올라오는 90년대생 후배들을 저자는 마냥 꺼림칙한 눈으로만 보는 걸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p152를 보면 "인맥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나 처음부터 철저한 계산으로 관리할 뿐인데 정으로만 이뤄지는 관계는 사회적관계와 구분하여 순도를 철저히 관리한다. 나는 이런 그들에게 한 표를 던진다"고 합니다. 사실 이게 맞는 거죠.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90년대 혹은 그 이후 세대를 두고 "프로젝트 세대"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다만 저자가 말하는 "회사를 거꾸로하면 사회가 된다(p152)"는 말도 잘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초4때 유치원 공연에 나가(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하이니 춤을 추었고 대학 신입생 때 서태지 춤을 춰서 선배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회고합니다. 음... 여튼 여기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앞세대는 X세대, 자신은 Y세대, 그리고 지금은 MZ세대라는 거죠. 요즘은 사진을 찍어도 온갖 필터를 거치는 게 기본입니다. 어쩌다 소셜 미디어를 구경하면 제가 알던 사람과 전혀 다른 이가 그 안에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온라인은 나를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산하는 곳이다.(p171)"라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지금 우리가 대체 월 하는 걸까 하는 아득함, 어색함, 이런 느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조금 뒤 p243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같이 읽어 보시면 좋겠네요. 


"마약 대신에 만약을 먹어 보면 어떨까?" 여기서 마약이라 함은 향정신성의약품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좀 독특하지만 낀대들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양학주라는 여성분의 예에서 나온 특별한 태도, 언행입니다. "요즘 여자애들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게 회사 기강 해이를 일으키는 줄 모르나봐?" 저자는 여기서 낀대들의 고질병, 즉 과도한 일반화와 틀에 박힌 꼰대식 사고를 지적합니다. 한 세대를 통째 매도하면 뭔가 어려운 일을 나 혼자 내 세대와 전체 공동체의 가치를 수호한 듯 뿌듯합니다. 이게 마약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사실 이건 낀대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30도 5060을 막 치켜세우면서 "40대들에게는 뭔 일이 있었기에 저모냥?"이냐면서 마구 폄하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건 과도한 일반화이며 무리한 매도죠. 물론 욕 먹을 건 먹어야 마땅합니다만 욕 먹는 사람과 같은 오류에 빠지는 사람은 이미 누굴 비판할 자격도 그 순간 잃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질 나쁜 마약을 끊어야 합니다. "(마약 아닌) 만약"은 여기서 역지사지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정립하여 열심히 키치의 삶을 살던 특정 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기보다는 그 역시 편안한 티셔츠처럼 걸치고 다닐 수 있는 하나의 핑계를 마련해 주었다고 해야겠죠. 이렇게 가벼운 대상을 분석하며(이미 분석이라는 게 자가당착입니다) 뭔문자를 쓴답니까. 다만 당시의 신세대들은 어른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을 해 줘야 하니까 저걸 편하게 입에 올리고 다녔을 뿐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래도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고 설명충이 되는 게 하나의 본성이라는 걸 다시 깨닫고는 또 이런저런 말이 많아지는 게 트렌드가 되네요. 하지만 세대를 넘어 심지어 종(種)의 차이도 뛰어넘는 건 바로 소통이고 정(情)의 교감입니다. 이걸 계산이 완전히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멸종하고 세계도 사라집니다. 그러니 쟤들을 쟤들로 보지 말고 그냥 나이 어린 친구들로 여기고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친할 필요까진 없지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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