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조용한 침공 - 대학부터 정치, 기업까지 한 국가를 송두리째 흔들다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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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국은 그 전 시기 마오 주석이 빚은 광범위한 실책의 폐허 위에서 조용히 실력을 닦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도광양회라는 말을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하게 만든 게 덩샤오핑이 걸은 그 당시의 노선이었습니다.

2012년 중국 주석으로 뽑힌 시진핑은 그전과는 달리,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전혀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이를 구체화한 정책을 실제로 펼쳤습니다. "중국몽"이라는 단어는 예비역 대령이자 군사학 교수(p45)인 류밍푸의 한 베스트셀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언제든 거침 없이 싸울 준비가 된 사자의 우두머리가 바로 시진핑이다." 그의 말입니다.

이들의 전략은 공연한 군비 대결에 힘을 빼지 않고, 경제적 실리를 차근차근 다져 기존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과거 미-소 양국이 냉전을 펼칠 때는, 미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련과 무한 군비 경쟁을 펼치다가 저유가 쇼크를 견디지 못한 소련이 나가떨어짐으로 해서 결말이 났었습니다. 중국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군비 확충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데(p47), 어쩌다 뉴스에 중국산 최신 미사일이나 항모 건조 소식 같은 게 들리면 세계는 긴장하게 됩니다. 여튼 구 소련과는 이처럼 전략 방향성이 다르므로 아직은, 예컨대 함대의 전력 같은 게 미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며, 이 때문에 푸틴의 러시아와 부분적으로 협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여튼 전략가인 류밍푸(劉命福)는 화평굴기, 즉 비군사적 수단으로 세계 지배를 추구하겠다는 건데 이를 위해 그는 "중국의 전통적 가치"라든가 중국식 소프트파워를 세계에 퍼뜨려 현재 미국의 그것이 가지는 지위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폴 키팅 호주 총리 같은 이는 저자가 "중국의 대외 선전에 넘어간 고위 인사"로 평가하는데, 키팅 전 총리의 말은 "중국은 구 소련과 달리 국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애 쓰는 나라가 아니며, 자신의 영역 안에 머무는 나라"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중국이 품는 야욕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중국은 대체로 동아시아 일대를 "천하"로 규정하고 그 안에서 패권자로 군림하려 들었지, 그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애써 무관심하려 했으며 그래서 특히 명나라의 대외 정책은 영락제 이후로는 쇄국 정책으로 평가 받았던 것입니다. 로마나 페르시아,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아바스 등)이 얼마나 팽창적이었는지와는 대조되죠. 문제는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중국이 자신의 영역으로 여겨 온 범위에 포함이 된다는 겁니다.

후진타오는 주석 재임 시절 적어도 현재의 시진핑보다는 훨씬 온건한 노선이었다고 여겨지지만 2003년 그가 호주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보면 명 영락제 시절 정화의 원정 당시 멀리 태평양을 건너 호주에까지 중국인들이 도착하여 문명을 일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p52).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에서 지금 봐도 충격적이긴 합니다.

사실 더 충격인 건, 이 무렵에 벌써 호주 국민들은 중국이 자신들과 역사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며 경각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최근까지도 계속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폴 키팅이 총리가 된 것도 저 후 주석의 발언보다 더 뒤의 기간입니다. 그래도 한국은 중국 측의 "동북 공정" 소식이 들리자마자 종전의 우호적 분위기가 돌변했었고 이게 벌써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중국은 사실 호주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약간 동양인과 비슷한 외모 특성이 있다는 이유로, 아득한 옛날 용감한 중국인 몇이 태평양을 건너가 북미에 자리한 후손이라고까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플로그룹의 연구를 통해 시베리아에서 코카서스 인종과 동아시아 일부(중국인인지 몽골인인지 한국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가 혼혈이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 베링 해협을 건너 북미로 이주한 걸로 밝혀졌습니다.

"중국인협회 연합은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중에도 조국의 위엄과 이익을 잊지 않을 것이며, 반중 단체와 반중 활동에 맞서기 위해 다양한 모임을 조직한다....(p67)." 이상은 호주 멜버른의 어느 중국인 단체가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그들의 목표이며, 이 정도쯤 되면 이 단체가 호주 재중 교포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그를 넘어 중국 정부의 간첩 노릇을 하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입니다. 꽤 오래 전 대만과 홍콩의 독자적인 노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한국의 서울에서 중국 대학생(유학생)들이 공개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해 무엇이 이로운 방향인지 주장하거나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표현 방법이 폭력을 타인에게 행사하는 식이 되어서는 당연히 안 되며 이런 행동이 타국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이뤄진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p71에는 "중국 민족이 아니라 중국 인종이라는 표현을 써야 옳다"는 말도 나옵니다(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이익을 거리낌없이 무시할 수 있다고 밝히는 점도 놀랍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도 금기시되는 "인종"의 명분과 범주화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것도 놀랍습니다. p144를 보면 이미 1989년 천안문 사건(며칠 전 32주년이 지났습니다) 직후에 "민주화 운동 참여"를 목적으로 호주에 건너온 양동동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은 비자만 받고 나서 이후 전혀 민주화운동에 간여치 않고 거꾸로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열중했다고 나옵니다. 겉으로 내세우는 말과 명분을 전혀 믿을 수가 없다는 것도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입니다.

기자는 언제 어디서건 진실을 독자에게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화통신의 경우 "반드시 마르크스주의의 가치를 터득해야 한다"는 규범을 따르는 기관이라고 나옵니다(p168). 그러나 문제는 중국의 기자와 언론인뿐이 아닙니다. 호주의 중견 언론인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에 달하는 이들은 중국 현지에 초청 받아 극진한 대접을 받고 "감동받아" "한국이나 일본은 우리가 결코 경험하지 못할 중국의 멋진 점심을 즐길 것"이라며 아마도 자신들 호주인들 역시 하루빨리 중국몽에 동참해야 할 것임을 촉구하는 듯한 주장을 합니다. 소름이 끼치지만 이게 어디 호주 언론인들의 처지에 한정되는 이야기겠습니까? 한국 기자도 이런 "대접"을 받고 "감동"을 받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뭐 이 와중에도 "숨어 있는 1984(조지 오웰의 소설)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이도 있고, 언젠가는 저들 중국인들이 호주의 "귀싸대기를 날릴 것"을 예견하는 이도 있습니다. 애초에 의도가 불불명한 대접을 받고 자신의 영혼을 더립히는 일 자체가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p199에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어디까지나 이는 중국 정부가 깊이 개입하거나 주도하는 관영 사업이며, 개인이 다른 나라 다른 사업가들과 동등한 레벨에서 참여하거나 개인 수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와 같게 취급될 수 없습니다. 호주는 사실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그간 이익을 본 바도 적지 않으므로, 예컨대 남중국해 사안에 대해 호주가 다른 목소리라도 내면 배은망덕하다거나, 심지어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중국 네티즌도 있다고 합니다(p211). "야만"의 표준과 잣대는 대체 무엇일까요?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유럽 연합의 형성 과정을 보며 "이게 사람 사는 참모습이 아니겠나"며 감탄한 적 있습니다. 그 정도로 유럽연합은 현존하는 정치 단위 중 매우 진보 성향인 편이며 사민주의 가치를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실천하는 경향입니다. 그래서 인권유린이나 소수자에 대한 박해를 누구보다도 앞서 강력하게 규탄하는데, 제 목소리를 일부 회원국의 반대에 부딪혀 못 낼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는 우리도 다 잘 알듯 2012년경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적 있는데 이때 중국이 크게 도와줬습니다. 이후 그리스는 EU 안에서 중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저지하고 나서는 편입니다. 치프라스 총리는 아주 자주 베이징을 방문하며 "거의 성지 순례를 하는 것 같다"는 게 이 책의 입장입니다(p229).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특정 인종,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개인에게 혐의를 두고 수사기관이 집요하게 추적하는 걸 "인종 프로파일링"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엘리멘트리>에도 왓슨(드라마 여주이자, 범죄자 잡으러 다니는 자문인)이 일종의 인종 프로파일링을 기관으로부터 당하는 장면이 시즌 4에 나옵니다(나중에 풀려나기는 합니다). 기소가 유력한 사건인데도 인종 프로파일링의 위법성을 이유로 이것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미국에는 많다고 하며 참으로 부럽습니다. 이래야 선진국이지요. 그런데 중국은 ㅎㅎ 국가 자체가 "인종, 민족 프로파일링에 기반하여(p263)" 모든 공적 활동을 전개하다시피합니다. 이 역시 (반대의 이유에서) 놀라운 일입니다.

호주중국 국제 인재 교류협회는 이름만 보면 엄청 중요한 일을 하는 바람직한 단체 같지만 사실은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간첩 에이전시나 다를 바 없습니다. 현지(여기서는 호주)에 이주한지 얼마나 되었든 간에 재외 중국 교포, 즉 화교는 중국에 정체성을 어느 정도는 두게 되어 있는데, 특히 연구 기관 등에 근무하는 중국계 과학자와 집중 교류하면서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게 이들의 일입니다. "외국인이 중국을 섬기도록 하라(p306)" 중국전자과기집단의 경우 "인민해방군의 이익을 위해 민간 전자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목표라며 대놓고 표방합니다.

얼마 전 공자학원에 대한 한국, 일본의 반감이 증가한다는 외신이 나온 적 있는데 이 책 p323에 관련 언급이 나옵니다(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과연 공자학원에 관심이나 있는지, 경각심을 가지는지는 의문입니다). 첵에도 나오지만 문혁 당시 마오가 공자의 묘를 파헤치고 대대적인 반 유교 활동을 전개한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일 뿐입니다. 공자의 고결한 정신과는 달리 공자학원은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중국 정부의 선전 활동에만 열심"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닝보유업은 생산일자를 속이는 등 호주 현지 법규를 어겨 가며 우유를 생산해 왔습니다.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건 아마도 호주 정관계에 연줄이 있어서였을 것이라고 책에서는 주장합니다(p345). 이렇게 된 건 일찍부터 호주와 중국 사이에 FTA가 맺어졌기에 가능했던 점도 있습니다. "신까지도 포섭하라"는 말도 나오는데 호주에는 이른 시기부터 중국계들이 진출했고 이들 중 일부는 기독교를 믿으며 중국 당국의 관심은 이들의 포섭에 향해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전자과기집단은 특히 안면인식기술을 이용하여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사찰하고 감시하는 데 공헌합니다. 스마트시티 사업은 어느 나라나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나 이에는 빅데이터의 효율적인 관리가 필수적인데 중국의 해당 집단은 전혀 통제를 받지 않고 이런 데이터를 취급합니다. EU에서 몇 년 전 미국의 저커버그를 불러 혼을 낸 적도 있지만 개인정보의 광범위한 취급은 그만큼 큰 위험이 따르는 작업이고 과정입니다. 전체주의 체제는 이런 점에서도 디지털 사회의 취약점과 결합하기 쉽습니다.

중국이란 나라는 과연 우리 한국에게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이 책은 주로 호주에서의 상황을 중심으로 분석을 행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중국도 무섭지만 중국의 장단에 놀아나며 자국의 이익을 해치고 서 푼의 뇌물에 영혼을 파는 호주인들이 더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중국 욕할 것 하나도 없고, 21세기에도 이런 변형된 사대주의와 패배주의의 확산 공작이 (그것도 백인종을 상대로)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뭐 따지고 보면 중국이야 중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뛸 뿐인데 그걸 어떻게 비난하겠습니까. 정신 못 차리고 나라를 파는 매국노들이 (어느 나라에서나) 진짜 범죄자들이지요. (이 독후감을 쓰는 저를 포함하여) 방관자의 책임도 덜할 거 없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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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자본주의의 배신 - 주주 최우선주의는 왜 모두에게 해로운가
린 스타우트 지음, 우희진 옮김 / 북돋움coop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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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시스템적 취약점을 지적하는 논의는 심지어 마르크스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시스템은 허술한 곳을 보완하며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셰어홀더가 아니라 스테이크홀더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기업에도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주장도 꽤 오래 전부터 있었고 故 린 스타우트 교수의 이 저작도 9년 전에 출판되어 큰 반향을 불렀던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강수돌 고대 교수 같은 분이 이 주장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p31에는 딥워터호라이즌의 파멸적 사고(事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 이 책이 나올 무렵에는 없었겠으나 그 후 이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도 만들어졌고 요즘도 케이블 채널에서 자주 방영하는 편입니다(같은 제목). 또, 요즘(특히 요 몇 달)은 한국 조선 해양주가 아주 잘나가는 편이지만 한때 아주 긴 암흑기가 있었는데 조선 해양업의 불황 요인 말고도 한국 조선업계가 해양 플랜트 제조에 운명을 걸고 엄청난 투자를 했으나 저 딥워터호라이즌 사고 때문에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해양플랜트로 앞으로 수십 년 먹거리를 마련하려던 비전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거죠. 당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은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고 정몽준 씨도 정치적 실책 외에 이게 큰 영향을 끼쳤더랬습니다.

이 한국어판에서는 셰어홀더 밸류((shareholder value. 이 책 원제의 일부이기도 한)를 "주주가치"라고 번역합니다.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 "인센티브(p34)의 망령" 때문에 기업은 여러 무리수를 두게 되고 구제기관과 입법의원들에게 로비하여 "CDS, 기타 여러 고위험 파생상품에 회사가 투기하게 하여 단기에 고소득을 올리(p34)"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로비에 든 금액의 본전을 뽑고도 남는 거죠. 이런 사고방식은 "주주 최우선주의"라 불렸는데 저자는 이 용어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합니다. 왜? 주주 절대주의, 혹은 주주 독재주의라 부르는 게 더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는군요. 주주 최우선주의의 원어는 "셰어홀더 프라이머시(shareholder primacy)"입니다(p36).

그래서 저자는 셰어홀더 밸류가 아닌, 스테이크홀더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 필요(p36)하다는 것인데 물론 故 린 스타우트 교수가 당시에 최초 주장한 건 아니고 저자 역시 "일부 학자와 사회 운동가의 주장"이라며 유보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회 운동가만이 옹호하는 게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잭 웰치 같은 사람도 "주주가치는 가장 멍청한 개념"이라며 비판한 적 있다고 합니다. 마치 1차 대전이 끝난 후 역전의 명장들이 "전쟁이야말로 인류가 벌이는 가장 멍청한 짓"이라며 깊이 회의적 태도를 표현한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전쟁이다 투기적 기업행위이다 등으로부터 가장 이익을 크게 보고 실제 능력을 발휘한 사람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까 설득력이 더하죠.

여튼, '일부 학자와 사회 운동가의 주장"은 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으로 구체화, 체계화, 종합화되며 p127에 일부가 요약되고 이후 책 2부에 상세히 펼쳐집니다. p127을 여기 잠시만 요약하면

1) 주주가치 지상주의는 주주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2) 통념과 달리 기업은 실재(實在) 단위이며, 오히려 주주가 허구이다.
3) 주주의 이해, 관심은 통일되지 않으며 실증적 데이터로부터 오히려 이쪽을 예외가 아닌 정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저자는 "이제는, 주주 가치적 사고가 심지어 주주 자신들에게조차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p42)."는 가능성에 주목하자고 합니다. 일단 단일한 주주 개념조차도 의문이 있습니다. 책에 나오듯 어떤 사람은 단기 차익을 노리고 해당 주식을 보유하며, 어떤 사람은 장기 투자 목적입니다. 과연 수많은 주주들 중 누구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까? 마치 정치인들이 "국민의 목소리 대변"을 내세우지만 국민도 의견이 천차만별인데 대체 누굴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가 모호하듯 말입니다.

저자는 이어 저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 같은 것은 어떤 특정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그러면 그 사람에게만 민형사 책임을 물리면 됩니다). 잘못된 사고(思考. idea)의 책임(p46)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회 통념이 잘못된 채 계속 머물러 있으면 같은 사고가 (설령 누구한테 호되게 책임을 물린다 해도)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뜻입니다.

왜 주주가치 절대의 사상이 이처럼 만연하게 되었는가? 20세기 초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사회 이념 중 하나로 대두하면서입니다. 대주주를 겸한 경영자는 이익 창출 외에 기업 지배 구조 강화, 혹은 비자금 형성, 은닉 등 다른 목적(p58)에 신경 쓴다면 이는 대리인 비용을 발생시켜 결국 기업을 부실화하고 투자자에게 배임이 된다는 건데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도 다 나올 만큼 유명한 이론입니다.

그러니 대주주 겸 경영자(이른바 "오너")의 전횡을 막고 기업 자체의 내실을 다져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전문 경영인" 제도를 도입하여 가문 경영의 악폐를 방지하고 성과만을 극대화하여 경쟁력을 높인다는 생각 역시 흠 잡을 데 없이 여겨졌고(책에는 1970년대 밀턴 프리드먼의 유명한 말도 인용됩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기아자동차가 김선홍 회장에 의해 경영될 때 기적 같은 모범 풍조로 칭송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문 경영인 제도도 이른바 이해상충 대리인 이슈가 있죠(p144도 참조). 조금 뒤 p83에는 "주인-대리인 모델"에 의해서"도" 주주가치 절대주의는 잘못이라고 저자는 논증합니다. 이 논증은 pp.89~106인 제3장에서 아주 자세히 전개됩니다.

저자는 코넬 로스쿨 교수였는데 지금 이 주주가치 절대시 사조는 시카고 학파에서 주도해서 퍼뜨렸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 무렵 크게 성행한 게 "법경제학"이었는데 이 학문으로 학위를 따 귀국한 교수님들은 지금도 꽤 보수적인 스탠스입니다. pp.64~65에서 저자는 "사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입법이나 학문적 태도는 이 주주가치 지상주의라는 걸 공식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분은 원문이 모호한 걸 역자가 맥락을 분명히해서 옮기고 있습니다. 한스만과 클락만의 글 <기업법 역사의 종말>은 p63, p87, p127(이 페이지는 뒤 색인에 빠져서 제가 추가합니다) , p163 등에서 여러 번 거론되고 때로는 일반의 "오해"를 (이 저자가) 바로잡는 맥락에서 인용됩니다.

세어홀더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사상은 아주 최근의 것이 아닙니다. 닷지 대 포드 사건은 20세기 초반에 있었는데 법원은 주주인 닷지 형제의 이익을 더 중시하여 포드 사에 배당금 지급을 명령했습니다. 저자는 널리 인용되는 이 사건이 결코 주주이익 지상주의가 아님을 지적(p72)하며, 당시 포드는 비상장기업이었음을 환기합니다. 상장기업, 즉 공개기업은 이와는 전혀 다른 논리(첵에서는 전혀 다른 종[種]이라는 말도 나옵니다)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개"기업이라야 그에 따른 사회적 이해(stake) 관계자가 (더 넓은 범위로) 있을 수 있겠죠. p76에는 유노컬 vs 메사페트롤리엄 사건을 거론하며 판결문에 "주주 외의 구성원에게 끼치는 영향 고려 가능"이라는 문구를 인용합니다. 이 구성원 개념에, 저자는 "어쩌면(p77)" 사회 공동체 전체를 포함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 주인 대리인 모델에서도 주주가치절대주의는 틀렸는가? 첫째 주주는 기업 자체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아주 제한된 권리인 주식 몇 주를 소유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블랙 앤 숄즈 모형은 주주와 채권자의 관계가, 옵션(풋 앤 콜)을 사고팔 뿐이라는 점을 논증하여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 이론의 함의를 저자는 "주주가 독점적으로 기업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채권자도 그 유사의 권리가 있다"로 해석합니다.

둘째로 주주를 "잔여재산 청구권자"로 정의하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사회가 지급을 결의해야 주주가 돈을 받을 수 있는데 당연히 무제한의 청구권 같은 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정의에서 핵심은 "잔여재산" 즉 최후순위라는 것인데 저자가 너무 "청구권"에만 초점을 두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독자로서 조금 듭니다.

셋째로 의결권, 소송권, 주식 처분권은 아주 제한된 권리일 뿐이므로 이걸 가지고 "주주는 주인, 이사회는 대리인"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선관주의 의무(fiduciary duty) 위반을 소인으로 한 소송권 역시 그리 적용 범위가 크지는 않다고 합니다. 일반 투자자는 그저 합리적 무관심(p117)에 빠져 있기에 주주 행동주의(p101)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물론 책에서 논의되는 기술적 설명은 모두 타당하지만 그것만으로 주인 - 대리인 관계가 간단히 부정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게 독자로서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또 앞의 둘째 논거에서도 그러했으나, 저자는 어차피 이 역시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는 "이사회"의 권능과 자격에 대해 좀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냐 하는 느낌을 저 개인적으로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교수는 기업의 사외 이사로 의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겠으니 말입니다.

IT 혁명으로 인해 종래의 정보 비대칭성 이슈는 상당 부분 변모를 겪었고 많은 이들이 종전보다 더 쉽게 증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정보 비대칭성 이론은 증시만을 설명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특정 정보는 특정 이유로 인해 늦게, 불편한 채널로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차익거래(알비트리지)라는 게 현실에서 잘 실현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이번 비트코인 폭등 사태 때 왜 한국에서만 유독 프리미엄(이른바 김프)가 붙어 거래되었는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행동금융학은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이유로 의사 결정을 하는 수많은 패턴을 보여 줍니다. 행동금융학은 일반 대중들도 잘 아는 행동경제학의 일부이죠.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표현도 p146에서 씁니다.

주식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주가는 기업의 미래 가치 반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바로 어닝 서프라이즈 발표가 나도 사람들이 해당 주식을 팔아치우기도 하며, 반대로 어닝 쇼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그리 크게 떨어지지 않기도 하는 게 다 이 때문이죠. 이 때문에, 경영자는 단기 투자자(장기 투자자가 아닌)들과 매우 불건전한 공조를 형성(p150)한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CEO가 단타쟁이들 좋은 일 시키려고 기업 내실을 다질 생각은 않고 회계 조작이나 이슈몰이를 통해 주가 부양에만 골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뭐 이 말도 맞는 게, 우리나라에서도 네티즌들이 네이버 일부 종토방 같은 데서 "저분은 사업은 안 하고 주식장사만 한다"며 비판하곤 하는 게 다 이런 걸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적어도 저자의 이 지적은 지극히 타당하며, "장기 투자자와 단기 투자자의 이해가 갈릴 경우 이는 다이너마이트를 미끼로 삼은 낚시와 같다(p116, p151)"는 멋진 말로 요약됩니다. 이 악영향이 거시 경제에의 손실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우리가 "락인(lock-in)"이라고 할 때 보통 한국 증권가에서는 기관투자가나 대주주의 보호예수물량만을 가리키지만 사실 이 말은 그보다 훨씬 뜻이 넓죠. 저자는 마거릿 M 블레어 교수를 인용(p157)하여 "투자자의 돈은 자유롭지가 않고 기업법인에 묶인(=락인) 것"이라고 하는데 이 마거릿 블레어 교수는 밴더빌트 로스쿨에 재직 중인 분입니다.

저자는 사후(ex post)의 결정이 사전(ex ante)와 동일하게끔, 마치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묶여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처럼, 일부 주주들이 초심을 지키며 다른 주주나 채권자, 일반 대중의 이해를 침훼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제6장에서 논합니다. 즉 저 앞 p101에서 거론된 주주의 3대 권리 중 주식 처분권을 제한하자는 거죠. 쉽게 말해서 일반 대중도 기관투자자나 대주주처럼 락인을 걸자는 겁니다. 이게 저 앞 p124에서 저자가 암시한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p103에서 저자는 적대적 인수합병 역시 경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었죠. 저명한 변호사인 마틴 립턴은 포이즌 필 창안자 중 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미 고령인데 "우버의 기업 변호사(p103, p146)"라는 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이렇게 락인을 강화하면 증시 전체가 위축될 위험이 있고, 채권과 주식 사이의 제도적 구별이 모호해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채권도 거래 자체는 아주 자유롭죠.

대부분의 주주는 사이코패스도 아니고(p197) 하이드씨(p199)도 아닙니다. "실재하지도 않는 주주"의 허상에 갇힐 게 아니라, 선의를 가진 대다수의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이 협업하여 진정한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낳자는 게 저자의 제안인 듯합니다. p212에서는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인용하여 "주주 가치라는 신화"를 다시 공박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일관되게, "기업은 실재하며 주주가 허상"이라고 하지만, p207에서는 리젯 대 리 판결에서 브랜다이스 판사가 "상장기업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라 부른 걸 두고는 거꾸로 주주 개념의 허상성을 지적한 걸로 해석하는 듯합니다.

"주주 가치 이데올로기는 주주를 가장 낮은 수준의 인간으로 취급한다(p213)." 즉 이 관념이 장기투자자가 아니라 변덕스러운 기회주의자, 단타쟁이에 더 초점을 두고 있음을 저자는 지적하는 거죠. p223에서는 케인즈의 유명한 말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를 거론하는데 여기서도 저자는 "죽은 경제학자가 남긴 아이디어의 끈덕진 생명력"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인용하는 겁니다. 토드 부크홀츠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 책에는 SRI 펀드가 여러 번 거론되는데 원서 출간 연도가 2012년임을 감안해야겠습니다. 요즘 같으면 ESG펀드를 이야기했을 겁니다. 아무튼 이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요즘 트렌드 중의 하나이니 일반 독자나 투자자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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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투자 가문의 비밀 - 월가의 전설 데이비스 가문의 시간을 이기는 투자 철학
존 로스차일드 지음, 김명철 외 옮김, 이상건 감수 / 유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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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존 로스차일드이고 작년에 타계한 저술가, 투자가, 저널리스트입니다. 그의 저작이 우리 나라에도 여럿 번역되어 있으므로 이름이 익숙할 것입니다. 로스차일드 하면 나폴레옹 전쟁 당시 시세조종으로 큰 돈을 벌었고,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에게 거액을 대부하여 수에즈 운하를 짓게 한 그 은행가 가문을 대뜸 떠올리겠습니다. 지금 이 책 저자 로스차일드는 교육자 가문 출신이었고 거액의 투자를 일상처럼 행하던 초 금수저 소생은 아닙니다(촌수가 매우 멀죠). 하지만 그의 빼어난 저작은 이미 많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영감을 주었고 피터 린치와 실제 협업하여 뛰어난 성과를 올린 적도 있는, 유능한 실전 투자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 p11을 보면 미래에셋 상무 이상건 씨의 감수사가 나옵니다. 그의 평가에 의하면 "단순한 가족사 이상의 것을 담았으며, 대공황, 2차대전, 오일쇼크, IT버블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배경으로 모두 반영되다시피한, 미국, 세계 경제사의 압축판"이라고 합니다. 읽으면서 과연 그런 느낌이 들었고, 어떻게 한 가문이 개인의 생을 살았다기보다 역사 자체를 이처럼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전율로 다가왔습니다. 가문사가 아니라 경제사, 세계사라고 해도 됩니다. 


이상건 상무의 감수사 앞에 무려 피터 린치의 추천사가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존 로스차일드와 오랜 동안 동업자 관계였으므로 그가 저술한 어떤 책이라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습니다만, 특히 이 책에 대해 그가 쏟는 애정은 각별합니다. 피터 린치가 피델리티 마젤란 펀드(p6)에서 일할 때 그는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셸비 데이비스를 몇 번 만난 적 있다고 회고합니다. 피터 린치 자신의 기법을 셸비 데이비스 본인은 물론 아들, 손자까지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다고도 하며 은근 플렉싱을 하는 대목(p6)이 있어서 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피터 린치는, 자신은 그 당시 셸비 데이비스와 투자 스타일이 분명히 달랐다고도 회고합니다. 이 말을, p7, p8 두 군데에 걸쳐 강조합니다. 마젤란 펀드 재임 당시 피터 린치 자신은 고수익(年 15% 이상)이 분명히 나올 전망을 갖춘 종목에 투자를 했으나, 이 책의 주인공 셸비 데이비스는 대신 안정적이고 꾸준한 低yield 종목을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여튼 피터 린치는 이 짧지 않은 추천사에서 두 가지를 힘을 주어 주장합니다. 


1) 자신이 잘 아는 종목에 투자하라. 

2) 역사를 모르는 무지한 자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스타일이 사뭇 달랐던 셸비 데이비스(이 책 주인공)과 피터 린치 자신이 확실한 공통점으로 지녔던 투자 철학이라고 그의 주장을 요약해도 될 것입니다. 2)는 현재 젊은 나이에 여의도에서 꽤 고수익을 올리는 어떤 전문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기도 해서 친숙합니다.


개인적으로 워런 버핏의 두 권짜리 두꺼운 회고록 <스노볼>을 무척 유익하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존 로스차일드는 저자 서문에서 이 책 주인공 셸비 데이비스와 워런 버핏 사이의 공통점(p17)을 지적합니다. 참고로, 저자 존 로스차일드는 셸비 데이비스의 아들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를 만나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부친의 인생 역정을 청취했는데 부자(父子)가 이름이 같으므로 이 책에서는 부친을 데이비스, 아들은 셸비로 가리킵니다. 이 독후감에서는 부친을 셸비 데이비스, 그 아들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로 꼬박꼬박 지칭하겠습니다. 


앞서 피터 린치가 회고하기를 셸비 데이비스가 꾸준한 종목을 선호했다고 하나, 워런 버핏이나 셸비 데이비스나 남들 눈에 잘 안 띄어도 자신들의 안목으로 장래 수익성이 확실해 보이면 태도가 확 달라졌다고 합니다. 기관 투자가들이 "진부하고 답답한(p18)" 종목이라며 기피한 보험주를 1947년에 주목하여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버핏도 셸비 데이비스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투자를 감행(p7, p19, p24)했는데 이게 당시에 대박을 친 것입니다. 꾸준한 저수익 종목은 평소에 수익 방어용으로 선택하는 거고, 매번 안정 위주로만 투자해서야 어떻게 그들처럼 거액을 모을 수 있었겠습니까. 실제로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안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셸비 데이비스(1세대)는 지독할 만큼 구두쇠였다고 합니다. 절대 바닷가재나 생과일 주스를 레스토랑에서 주문하지 말고, (돈이 웬만큼 모인 상황이었으나) 뒤뜰에 수영장을 마련하지 말 것이며 정 하고 싶으면 "직접 구덩이를 파라"고 일렀답니다(p25). 그가 자녀와 손자들에게 가르친 건 첫째 근검, 둘째 자립심, 셋째가 과소비 금지였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성년이 되고도 자녀들이 집에 그런 거금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니...


아들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2세대)는 사립 고교, 프린스턴 대학을 나와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는 그 부친도 마찬가지여서 카펫 제조업자의 딸 캐트린 와서먼(주니어의 모친)이 셸비 데이비스에게 조달한 초기 자금이 쏠쏠한 시드머니 역할을 했다(p18, p42)고 책에 나옵니다. 뉴욕은행에 8년 근무한 후 자신의 사업(뮤추얼 펀드)을 시작했는데 부친이 보험주만 고집한 것과 달리 그는 업종을 넓혔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약세장 때문에 손실도 적잖게 보았다고 합니다. 이후 기업 재평가에 눈을 돌려 약세장에서 저평가 기업을 헐값에 매수해 들였으며 이것이 큰 효과를 보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하네요. 이 무렵 부친 셸비 데이비스는 스위스 대사도 역임했다(p26)고 나옵니다. 스위스는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대학원 다니기 전 그 여친 캐틀린과 함께 여름학교(p49)를 다닌 적이 있는 나라, 또 박사학위를 밟기 위해 대학원(제네바)을 다닌 나라이기도 합니다. 


가업은 현재 크리스, 앤드루 등 3세대인 손자가 물려받았는데 이들도 어렸을 적 할아버지 집에서 요리사, 운전 기사로 일하는 등 자립심과 절약을 가르치는 풍조는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지독하게 이어집니다. 말이 가업을 물려받은 거지 2세대인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 3세대인 크리스, 앤드루 등도 젊어서 자신만의 펀드를 운용했고, 특히 2세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직원으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도 거절할 만큼 독립심이 강했다고 합니다(다른 이유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충분한 보수를 안 줄 것 같아서라고도 하네요). 또 뉴욕은행에서 계속 근무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기어이 퇴직하고 자기 펀드를 만들었을 만큼 도전 정신 또한 대단했습니다(이때 부친은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창의력이 생명이라 여겨 구태여 MBA 과정을 밟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셸비 데이비스 부자(父子) 모두 학부 전공이 역사학이었고, 금융공학 등은 독학으로 마스터했다고 합니다.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청년 시절이었을 때 에드거 로렌스 스미스라는 저술가가 처음으로 "분산 투자의 유효성"을 체계적으로 설파하여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당시 투자 통념을 깼다(p40, p61)고 저자 존 로스차일드는 말합니다. p6의 피터 린치 서문을 보면 역시 그도 셸비 데이비스가 분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저 에드거 로렌스 스미스의 책을 당시(1924)에 셸비 데이비스가 실제 읽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저자의 추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세대 셸비 데이비스의 아버지 조지 데이비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당시 진짜 돈을 번 사람들은 금광 발견자가 아니라, 식료품이 다 떨어져 허덕거리는 채굴자들에게 통조림 등 보급품을 대던 장사치들이라고 하죠. 조지 데이비스도 반 세기 뒤 앨러스카 골드러시 당시 말에게 먹일 여물을 조달하여 청년 시절 큰 돈을 벌었습니다. 이 사람도 자기 아들(1세대 셸비 데이비스), 자기 손자(2세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처럼 프린스턴을 나왔으며 전공은 건축이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주식, 채권 투자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하네요(p36). 


조지 데이비스 역시 상원의원 가문 출신이었으므로 처음부터 풍족한 출발이긴 했으나 언제나 아들에게 근검절약을 가르쳤는데 덕분에 대공황 당시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넘겼다고 합니다. 조지 데이비스는 어린 아들(1세대 셸비 데이비스)에게, 1차 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신문을 거리에서 팔게 할 정도였다고 하니 가정교육의 지독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에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1909년생이라고 나오니(p33), 1차 대전 종전 무렵이면 아이가 고작 열 살도 안 될 무렵입니다. 세상에.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프린스턴 출신 엘리트이긴 했으나 숙맥(p42)에 가까웠고, 이를 알아본 캐트린 워서먼은 이 청년이 자신이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는 결코 접근하지 않으리라는 걸 눈치챘다고 합니다. 이 무렵만 해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자신의 부친 조지처럼 증권 투자에는 무지했다고 하네요(p40). 캐트린 와서먼은 아주 부유한 가문 출신(반면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이무렵 대공황이었던 데다 부친 조지의 감이 떨어져 가세가 기욺)이어서 그야말로 "여성스러운 소양 교육" 외에는 아무 훈련을 못 받았는데도 자진해서 책 외판원 일을 한 후 창의적인 기법을 통해 돈도 많이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단한 아내가 있었으니 부창부수였다고나 해야죠. 단, 셸비 데이비스는 4대째 명문이었지만 와서먼 가문은 캐트린의 부친 요셉이 이주민이고 창업주(직물 제조-소매업)였습니다. 요셉 와서먼은 대공황 시기 사업을 정리하고 대신 다들 꺼리던 정부 채권에 대거 투자했는데 이것이 그의 재산을 지켜 줬습니다. 또 본디 증권에 무관심했던 청년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장인의 이런 패턴을 보고 뭔가를 배웠을 수도 있습니다. 


"증시든 보험주든 신혼부부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p57)." 제네바에서 박사학위를 밟을 때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라디오 리포터를 하며 경력도 만들 겸 돈을 벌었고, 부부가 여행을 하기라도 하면 그동안 사용하지 않을 방세 내기가 아까워 임차료를 돌려받았고(!) 이 덕분에 새로 집 알아 보느라 수고를 들였다고 하니 참 지독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저널리즘 관련 일자리를 얻기 힘들었는데 대공황과 2차 대전 발발의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도쿄 신문사에도 취업을 시도했다고 합니다(p64). 이랬던 그는 처남 빌 와서먼의 권유로 현장 전문가 겸 통계사로 월스트리트에 마지못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 캐트린 와서먼은 부친 요셉을 닮았는지 돈 무서운 줄 알고 열심히 벌고 아끼는 타입이었으나 빌 와서먼은 모친 에디스를 닮았는지 과시적 소비를 일삼았고 대신 한방의 투자 성공으로 언제나 위기에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런 유형이 꼭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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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픈 이유는 날씨 때문입니다
후쿠나가 아츠시 지음, 서희경 옮김 / 소보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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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뉴스를 봤는데 미국인들이 코로나19 확산세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편안함을 느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번 코로나 유행 훨씬 전부터 꽃가루 알레르기(이 책 pp.42~47)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그래서인지 날씨와환경, 그리고 개인의 건강 사이 상관 관계에 대해 우리보다 관심이 더 컸던 듯합니다.

이 책도 기상과 보건 간의 영향에 대해 특별히 많은 연구를 하신 일본인 저자가 쓴 건데요. 저자의 약력은 뇌신경외과 전문의, 기상 예보사, 뇌졸중 전문의, 타치가와 병원 신경외과 의장, 법무박사 등 다채롭고 화려합니다(앞 책날개). 경력도 경력이거니와 이런 스펙을 쌓으려면 머리가 얼마나 좋아야 할지 아찔해지기까지 합니다.

저온 저기압일 때 통증이 심해진다(p30). 이유는 아주 명쾌합니다. 주변 온도가 내려가면 사람의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칼로리를 소비해서 체온을 맞춥니다. 이때 영양이 많이 축적되어 있으면 모르지만, 아니라면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예전 사람들이 평소에 잘 먹고 잘 살아서 뚱뚱해진 체격에 호감을 느끼던 게 다 이유가 있었네요. 면역력이 떨어지면 "관절과 신경 주위에 숨어 있던 바이러스가 증식하면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그 결과 관절통이 생긴다(p31)."고 나옵니다. 그러니 노인분들이 요즘 그렇게 면역력 면역력 하면서 우슬이니 뭐니 하는 걸 챙겨 드시는 거죠. 물론 그런 걸 꼭 먹어야 면역력이 강해지는 건 아니지만.

그럼 저기압은 왜 문제인가? "(주변)기압이 떨어지면 (이에 맞춰 체내 기제가 작동하여) 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고 그 때문에 통증을 심하게 느낀다(p31)"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제 생각인데 이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크게 해당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여태 살면서 나쁜 자세 때문에 목, 발이 아픈 적은 있었으나 저기압하고는... 글쎄요...

병 중에 안 무섭고 안 아파 보이는 병이 없겠으나 제 생각에는 사람이 숨을 못 쉴 지경까지 가면 한순간의 안식도 없지 싶어서 천식이 참 무서운 병처럼 보입니다. 책에서는 특히 고령자 사망률이 증가한다며 우려를 표시(p50)하는데 진통제의 잦은 사용, 찬 대기의 기도(氣道) 자극 같은 게 고령자 천식의 원인(p49)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코로나 19 같은 것도 중증 환자의 경우 호흡기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고령자가 숨이 넘어갈 만큼 고통스럽게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저런 상태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들 합니다. 중증 천식 역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 고령자는 심장병, 고혈압까지 동반하여 앓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각별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가족이 잘 돌봐 드려야 하며, 규칙적인 생활과 식단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나옵니다.

약간 실망스러운(?) 정보도 전달해 주는데, 양치질이 건강에 좋다고 그렇게나 어려서부터 교육 받았건만, 적어도 "독감 예방"에는 큰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독감 바이러스가 워낙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이라네요(p60). 양치질이 "독감에" 효과를 보려면 20분에 한 번 정도 계속해야 한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양치질의 효능을 개인적으로 믿는다고 하시는데 우리들 독자들도 다 마찬가지 생각 아닐까 싶습니다. 꼭 독감 아니라 해도 일단 많은 다른 세균이 죽는 게 어디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도움이 된 정보 중 하나가 "구강 속의 바이오필름을 제거하자"였는데 우리들의 입 안은 세균, 미생물들로 이뤄진 얇은 막이 입 전체에 고루 퍼져 있다고 합니다. 이건 그저 입 안을 헹구는 정도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걸 방치하면 치과 질환(충치나 잇몸병 등), 구취를 유발할 뿐 아니라, 이걸 삼킬 경우 폐렴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하니 무섭습니다. 어떻게 없애느냐? 저자가 강조하는 방법은 액체 치약을 이용한 구강세정인데, 이 액체 치약의 범주 안에 리XXX린 같은 세정제도 포함되는지는 책만 봐선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잦은 칫솔질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역시 젊은 사람들은 별 해당이 없으나 특히 여름철 한창 더울 때 노인들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자주 나옵니다. 통틀어 온열질환이라 부르는데 저자는 이 원인을 "인간이 항온동물인 까닭"이라 요약합니다.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다 보니 갑자기 주변 온도가 높아지면 몸이 이걸 균형을 맞추느라 몸에 탈이 날 수밖에 없죠. 수분을 자주 공급하고, 모자나 양산을 쓰며(그래서 노인분들이 그저 멋내려고 양산을 쓰는 게 아니죠), 알코올과 커피를 삼가라고 합니다(p74).

수분 섭취 관련, 맥주는 과연 수분 섭취에 도움이 될까요? 저자에 따르면 "완전한 역효과를 낸다(p106)"고 합니다. 모든 알코올류는 탈수 효과가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 잘못하면 생명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보리차는 예외이지만 차 종류 중 상당수가 요로 결석과 관련이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p88에 보면 오존 때문에 피부암, 백내장 환자가 증가한다는 뉴스와그 대응책이 자세히 나옵니다. 그런데 이 페이지를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증가한다"고 해서, 그저 번역만 한 게 아니라 한국의 사정도 업데이트해서 책에 수록한 것 같습니다. 역시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자외선 차단 크림과 비타민 C의 꾸준한 섭취입니다.

저자는 특히 뇌졸중 전문의입니다. 이 뇌졸중 역시 저자는 "기상병(p94)"이라고 단언합니다.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염분 섭취를 줄이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피해야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특히 동맥경화가 상당히 진행된 이들은 혈압을 자율로 조절할 수 없으므로 날씨가 추워지면 혈관 파열 등이 쉽게 일어난다고 합니다(p97). 이 모든 설명이, 책 앞에서 제시한 "인간은 항온동물이라 주변 온도의 변화에 민감히 대응해야 한다"는 명제 하나에서 다 도출된다는 게 놀랍죠. 이 책은 유익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이 일관되게 잘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공부로 따지면 개별 지식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 어떤 스토리, 맥락으로 다 연결시켜 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특히 저자는 뇌졸중 전문의이다 보니, 뇌경색, 뇌혈전, 뇌색전, 뇌출혈 등 비슷비슷한 병명, 증상을 명쾌히 구별하여 설명(pp.98~101)합니다. 이 부분 설명이 일반인 입장에서 이해하기가 참 편하기 때문에 관련 질환이 있거나 걱정되시는 분들이 특히 참조할 만합니다. p122 이하에 보면 특히 "추운 날에는 그저 집안일만으로도 위험하다"고 하니 잘 읽어 보셔야 할 듯합니다.

pp.128~129에 보면 일본에 왜 이렇게 뇌신경외과 전문의가 많은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습니다. 1966년에 일본에서 제도로 확립이 되었고, 유독 일본에 이쪽 관련 환자가 많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이렇게 양성되었다고 합니다. 전공의 위에는 지도의라는 직책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지도전문의가 있죠. 차이는 좀 있겠습니다만.

p144 이하 제4장은 기상 정보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집니다. 물론 건강 연관 내용이지만 우리가 예사로 넘기곤 하는 날씨 정보도 사실 그 중에서 내 건강과 관련된 부분을 따로 잘 추려내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특히 p151의 미세먼지 관련 설명이 유익합니다. p172에는 특히 저자가 왜 "기상예보사 자격증"에 도전했는지에 대해 회고가 있습니다.

가벼운 편두통(p34)에서 중증 뇌혈관질환(이 책 3장)까지, 해당 분야에 대해 확실한 정견을 가진 저자가, 쉽고 자세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곤 하는 질병에 대해 유익한 설명을 해 줘서 좋았습니다. 책도 예쁘게 만들어서 수시로 펴 보게 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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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취미세요? - 걱정을 사서 하는 당신을 위한 잡걱정 퇴치술
세라 나이트 지음, 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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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지만 우리는 대부분 걱정을 달고 삽니다. 나이키의 예전 광고 문구 "Just Do It!"도 알고 보면 걱정이라는 정신 작용의 비효율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에 내실 있게 미래를 준비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고 또 그게 옳지만, 우리 마음이 그리 편하게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누구나 살면서 거지 같은 일을 겪는다. 다만 거기에 더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면 되지 않겠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p16)." 저자의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런 말도 나오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공감이 많이 되더군요.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그리 나쁜 상황은 뭐 아니네. '- 세상에 이런 허튼소리도 없다. 아무리 선의로 이런다 해도 말이다." 진짜 그렇습니다. 허튼소리일 뿐 아니라 무책임하기까지 합니다. 다 잘된다니 자기 일 아니라고 말 함부로 한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어의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될 것 같으면 뭐하러 애초에 걱정을 하겠습니까? 그나마 걱정을 하고 있는 중에 그 걱정하던 나쁜 일을 당하면 마음의 준비가 된 덕에 타격을 덜 받는 면마저 있습니다. 무방비상태에서 일이 터지면 얼마나 대미지가 더 크겠습니까? 이 책을 읽기 전에 저는 이 책 역시도 "다 잘될 거야" 류의 무책임한 소리를 할 줄 알았으나 저자의 저 말을 읽고 믿음이 강하게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이어 저자는 카테고리를 나눠 설명합니다.

1) 어떤 일은 정말로 잘된다.
2) 때로는 그렇지 않다.
3) 그렇게 나쁘진 않은데 당신이 과민반응한다.
4) 진짜 상황이 심각하게 안 좋은데 당신이 둔감한 경우도 있다!

이어 저자는 자신이 이렇게 독자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1) 괜찮을 거라고 믿으면 당장은 기분이 좀 괜찮겠으나 달라지는 게 없고, 심지어 대개는 기분도 그리 좋아지지 않는다! (진짜 맞는 말)
2)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나, 이에 대처하는 당신의 행동은 당신이 통제 범위 안에 있다.
3)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
4) 상상하는 일 중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난 확률이 낮다.
5) 어떤 건 막을 수도 있고, 어떤 건 나쁜 결과를 완화할 수 있다.
6) 어떤 일은 당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으므로, "걱정이 쓸데없음"을 먼저 인정한 후 그저 잊어야 한다.

저자는 이어서 "①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걱정"과 "②그 일에 실제로 일어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구별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게 잘못된 이유는, ②를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①을 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책 내용을 보면 키가 150cm를 좀 넘는 아담한 여성분인 듯합니다)는 남편과 함께 도미니카 공화국에 이주한 후 새로 살게 된 집에서 타란툴라 독거미를 마주했습니다. 이때 저자는 매우 놀랐으나 곧이어 녀석은 다리가 하나 없다, 우리 부부는 놀러갈 계획이 있고 거기에 더 충실해야 한다,  집에 이미 들어온 독거미를 내몰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등을 생각하고, 힘든 일(살살 독거미를 몰아 물통에 가둔 후 숲에 풀어 줌)은 남편에게 시킨 뒤 자신은 예정되었던 보트 여행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패닉 상태에 빠져 "집을 불태운다든가 하는 짓(전에 부동산 중개인 앞에서 그렇게 되뇌곤 했답니다)"은 전혀 쓸데없음도 자신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고요. 걱정과 비이성적인 반응, 그에 따른 극단적인 행동(불을 지름)은 아마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 주말을 완전히 망쳤을 겁니다.

저자는 이미 많은 책을 발간했고 그 중에는 실용적 충고를 하느라 다소 거친 표현이 들어간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독자들은 "(안티히어로가 아니라) 안티구루"라고 그녀를 부른다는데 자신은 그 별명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는군요.

유리 멘탈, 멘붕의 얼굴(p124:6)에는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p49)

불안, 슬픔, 분노, 회피.

이 네 가지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가르쳐 주는 게 책의 핵심(책 저 뒤 제4장 p248부터 체계적인 대처법이 나옵니다)인데 그 전에 일단 "멘붕자원(p62)"이 뭔지를 알고 이를 멘붕에 대처하는 자원으로 쓸 줄을 알아야 한다네요. 그것은 시간, 에너지, 돈, 그리고 (타인, 즉 친구나 가족 등의) 호의입니다. 그리고 걱정이 생겼을 때 즉시, 즉시 통제할 수 있는 건 바로 "감정적 반응"이라고 합니다.

일단 어떤 일이 걱정 "레이다"에 포착되더라도 어떤 건 발생 가능성이 아주 낮고, 어떤 건 아주 높은 게 있다고 합니다. 이걸 저자는1~5등급으로 나눕니다. 설령 이 중 5등급, 즉 아주 가능성이 높은 것이라고 해도, 이미 벌어지거나 임박한 것보다는 후순위로 밀라고 저자는 조언하네요(p105). "먼 일의 예"로는 "언젠가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 임박한 일의 예로는 "회의에서 했던 부적절한 농담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등입니다. 백내장 수술 같은 건 물론 큰 수술이긴 하나 이제는 위험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에서 너무 큰 걱정은 필요 없지 싶습니다.

멘붕 자원을 시간, 에너지, 돈으로 저자는 앞에서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정말로 자신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일(p114)에 대고 절대, 자원(한정된)을 낭비하지 말라고 합니다. pp.114~121에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예가 죽 나옵니다. 민주주의의 붕괴(ㅋ), 정리해고, 이가 몽땅 빠지는 일, 못생긴 아이 출산 등. 마지막 것은 정말로 많은 산모들이 걱정하는 일이지만, 걱정한다고 뭐가 바뀌는 게 아니고 산모나 의사 그 누구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미래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은 어떨까요? 이건 노력하기에 따라 예방이 가능할 수도 있죠(이것 관련 조금 뒤 p147에 유익한 충고가 하나 나옵니다). 통제가 가능한 범주에 속합니다. 이가 빠지는 건 꿈에 나오면 통제와 관련된 쪽으로 해몽을 보통 하는데 저자도 이런 해몽 상식(?)에 대해 농담을 곁들여 언급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가 내내 강조하는 건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받아들이"는 게 "엿 같은 일을 기뻐하라"는 게 아니고(p125), 그저 그 일은 이미 일어났으니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을 "이해하라"는 거라고 하네요. pp.114~121에 제시된 절대 질문에 대해(=내가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가?) 모두 "아니요"라고 대답이 나왔다면 그게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증거라고 합니다.

역으로 타인의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 주면서 나의 걱정을 더는 방법(p130)도 있다고 합니다(아주 자세한 내용은 p251에 나옵니다). 혹은, 지금은 잠을 자는 게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라든가...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이유는, 걱정거리를 오늘의 나보다는 내일의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인데, 그 "내일의 나"를 좀 더 좋은 출발선상에 세우는 게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는 거죠. 여튼, "내가 이 시점에서 '그나마' 내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이익이 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가?"가 핵심일 듯합니다. p139에는 나에게 걱정거리를 준 그놈에게 복수하기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언제나 이걸 해결하는 전제가 되는 건, 걱정거리를 "발생 가능성에 따라 1~5등급으로 나누는 작업"입니다.

걱정을 해도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걱정하면 어떨까요? 저자가 명명하기로는 이것이 PHEW 기법이라고 하는데 p147에 자세히 설명됩니다. 이 일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정말 조금이라도 관련된 실천을 하면서 걱정도 덜고 아주 작게나마 결과를 통제하기 위해 노력도 하라는 건데요. 예를 들어 태어날 아기가 못생길까 걱정되면 옛 사람들 충고대로 좋은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고, 좋은 음악을 듣거나 잘생긴 사람들 사진을 하루에 몇 분씩이라도 보거나... 물론 이런다고 못생긴 아이를 낳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말 0.0000000000001%이라도 영향을 줄지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마음을 좀먹는 것보다는 낫겠죠.

읽으면서 이 점도 많이 공감이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실제(객관적) 상황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고 믿으며 산다"고 합니다. 이걸 파국화라고 부른다고 하네요(p171). 이게 습관이 되면, 1등급 사건을 5등급 사건으로 만들어 실제로 내 자신이 "통제"하여 내 앞에 부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불안이 초래하는 생각 과잉이, 혼자서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도미노를 저 혼자 쓰러지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그리도 강조하나 봅니다.

2장에서 "감정 강아지를 우리에 가두는 방법"을 가르쳤다면, 3장에서는 "이성의 고양이를 움직이게", 즉 "상황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재앙이 터지면 물론 가장 좋은 건 "완전 복구"이나 때로는 차선책에 만족하고, 어떤 경우는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기본 생존)에 만족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정신을 차리고(사전 행동), 그 후에 "대처(사후 행동)"를 해야 합니다(p191).

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최악보다는 그래도 차악이 나음을 납득해야 합니다. 이 3장에서 상황 파악, RIO(realistic ideal outcome. p35, p187, p197.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결과 판단), 트리아지(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응급처치. p193, p200)의 3단계가 기본적인 프레임입니다. 항상 유연성(p205)을 잊지 않아야 하고, 모든 것은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는 점(p211)도 명심하라고 합니다. RIO의 구체적인 예는 4장에서 하나하나 예시를 들며 "당신의 RIO는 무엇인가를 놓고 두 개 중 하나를 고르게 합니다. 정답이라는 건 없고, 화살표 알고리즘처럼 자신이 고른 답을 따라가면 뒤의 페이지(pp.268~308)에 각각의 해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부분은 역시 "걱정의 등급 나누기"였는데 등급을 나누고 보면 최소한의 견적이 나오고 그때부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럭저럭 헤쳐나갈 만한 난감한 일(p214)", "삶을 삐걱이게 하는 짜증나는 일(p219)", "일상을 무너뜨리는 괴로운 일(p228)" 등으로 나누고, 그에 해당하는 다양한 예를 제시하는데 재미도 있고 실제 이런 일이 닥치면 어느 정도는 누구나 써먹을 수 있는 "심리적 도구(p244)"이기도 했습니다.

걱정을 버리면 그때부터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p310). 이 책에서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제공해도, 내가 내 문제에 대해 "어디서 돈이 한 십억만 공짜로 생겼으면 좋겠다" 같은 비현실적인 해답만 염두에 둔다면 고민과 걱정이 그칠 날이 없을 겁니다. 최대한 걱정과 고민을 내가 다룰 수 있는 유순한 상태로 만들어야 하고, 타조 상태(문제를 무조건 회피하려는 태도)를 벗어나야 하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서 가능한 한 나쁜 결과를 돌려놓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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