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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투자 가문의 비밀 - 월가의 전설 데이비스 가문의 시간을 이기는 투자 철학
존 로스차일드 지음, 김명철 외 옮김, 이상건 감수 / 유노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저자는 존 로스차일드이고 작년에 타계한 저술가, 투자가, 저널리스트입니다. 그의 저작이 우리 나라에도 여럿 번역되어 있으므로 이름이 익숙할 것입니다. 로스차일드 하면 나폴레옹 전쟁 당시 시세조종으로 큰 돈을 벌었고,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에게 거액을 대부하여 수에즈 운하를 짓게 한 그 은행가 가문을 대뜸 떠올리겠습니다. 지금 이 책 저자 로스차일드는 교육자 가문 출신이었고 거액의 투자를 일상처럼 행하던 초 금수저 소생은 아닙니다(촌수가 매우 멀죠). 하지만 그의 빼어난 저작은 이미 많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영감을 주었고 피터 린치와 실제 협업하여 뛰어난 성과를 올린 적도 있는, 유능한 실전 투자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 p11을 보면 미래에셋 상무 이상건 씨의 감수사가 나옵니다. 그의 평가에 의하면 "단순한 가족사 이상의 것을 담았으며, 대공황, 2차대전, 오일쇼크, IT버블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배경으로 모두 반영되다시피한, 미국, 세계 경제사의 압축판"이라고 합니다. 읽으면서 과연 그런 느낌이 들었고, 어떻게 한 가문이 개인의 생을 살았다기보다 역사 자체를 이처럼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전율로 다가왔습니다. 가문사가 아니라 경제사, 세계사라고 해도 됩니다.
이상건 상무의 감수사 앞에 무려 피터 린치의 추천사가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존 로스차일드와 오랜 동안 동업자 관계였으므로 그가 저술한 어떤 책이라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습니다만, 특히 이 책에 대해 그가 쏟는 애정은 각별합니다. 피터 린치가 피델리티 마젤란 펀드(p6)에서 일할 때 그는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셸비 데이비스를 몇 번 만난 적 있다고 회고합니다. 피터 린치 자신의 기법을 셸비 데이비스 본인은 물론 아들, 손자까지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다고도 하며 은근 플렉싱을 하는 대목(p6)이 있어서 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피터 린치는, 자신은 그 당시 셸비 데이비스와 투자 스타일이 분명히 달랐다고도 회고합니다. 이 말을, p7, p8 두 군데에 걸쳐 강조합니다. 마젤란 펀드 재임 당시 피터 린치 자신은 고수익(年 15% 이상)이 분명히 나올 전망을 갖춘 종목에 투자를 했으나, 이 책의 주인공 셸비 데이비스는 대신 안정적이고 꾸준한 低yield 종목을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여튼 피터 린치는 이 짧지 않은 추천사에서 두 가지를 힘을 주어 주장합니다.
1) 자신이 잘 아는 종목에 투자하라.
2) 역사를 모르는 무지한 자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스타일이 사뭇 달랐던 셸비 데이비스(이 책 주인공)과 피터 린치 자신이 확실한 공통점으로 지녔던 투자 철학이라고 그의 주장을 요약해도 될 것입니다. 2)는 현재 젊은 나이에 여의도에서 꽤 고수익을 올리는 어떤 전문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기도 해서 친숙합니다.
개인적으로 워런 버핏의 두 권짜리 두꺼운 회고록 <스노볼>을 무척 유익하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존 로스차일드는 저자 서문에서 이 책 주인공 셸비 데이비스와 워런 버핏 사이의 공통점(p17)을 지적합니다. 참고로, 저자 존 로스차일드는 셸비 데이비스의 아들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를 만나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부친의 인생 역정을 청취했는데 부자(父子)가 이름이 같으므로 이 책에서는 부친을 데이비스, 아들은 셸비로 가리킵니다. 이 독후감에서는 부친을 셸비 데이비스, 그 아들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로 꼬박꼬박 지칭하겠습니다.
앞서 피터 린치가 회고하기를 셸비 데이비스가 꾸준한 종목을 선호했다고 하나, 워런 버핏이나 셸비 데이비스나 남들 눈에 잘 안 띄어도 자신들의 안목으로 장래 수익성이 확실해 보이면 태도가 확 달라졌다고 합니다. 기관 투자가들이 "진부하고 답답한(p18)" 종목이라며 기피한 보험주를 1947년에 주목하여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버핏도 셸비 데이비스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투자를 감행(p7, p19, p24)했는데 이게 당시에 대박을 친 것입니다. 꾸준한 저수익 종목은 평소에 수익 방어용으로 선택하는 거고, 매번 안정 위주로만 투자해서야 어떻게 그들처럼 거액을 모을 수 있었겠습니까. 실제로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안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셸비 데이비스(1세대)는 지독할 만큼 구두쇠였다고 합니다. 절대 바닷가재나 생과일 주스를 레스토랑에서 주문하지 말고, (돈이 웬만큼 모인 상황이었으나) 뒤뜰에 수영장을 마련하지 말 것이며 정 하고 싶으면 "직접 구덩이를 파라"고 일렀답니다(p25). 그가 자녀와 손자들에게 가르친 건 첫째 근검, 둘째 자립심, 셋째가 과소비 금지였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성년이 되고도 자녀들이 집에 그런 거금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니...
아들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2세대)는 사립 고교, 프린스턴 대학을 나와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는 그 부친도 마찬가지여서 카펫 제조업자의 딸 캐트린 와서먼(주니어의 모친)이 셸비 데이비스에게 조달한 초기 자금이 쏠쏠한 시드머니 역할을 했다(p18, p42)고 책에 나옵니다. 뉴욕은행에 8년 근무한 후 자신의 사업(뮤추얼 펀드)을 시작했는데 부친이 보험주만 고집한 것과 달리 그는 업종을 넓혔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약세장 때문에 손실도 적잖게 보았다고 합니다. 이후 기업 재평가에 눈을 돌려 약세장에서 저평가 기업을 헐값에 매수해 들였으며 이것이 큰 효과를 보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하네요. 이 무렵 부친 셸비 데이비스는 스위스 대사도 역임했다(p26)고 나옵니다. 스위스는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대학원 다니기 전 그 여친 캐틀린과 함께 여름학교(p49)를 다닌 적이 있는 나라, 또 박사학위를 밟기 위해 대학원(제네바)을 다닌 나라이기도 합니다.
가업은 현재 크리스, 앤드루 등 3세대인 손자가 물려받았는데 이들도 어렸을 적 할아버지 집에서 요리사, 운전 기사로 일하는 등 자립심과 절약을 가르치는 풍조는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지독하게 이어집니다. 말이 가업을 물려받은 거지 2세대인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 3세대인 크리스, 앤드루 등도 젊어서 자신만의 펀드를 운용했고, 특히 2세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직원으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도 거절할 만큼 독립심이 강했다고 합니다(다른 이유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충분한 보수를 안 줄 것 같아서라고도 하네요). 또 뉴욕은행에서 계속 근무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기어이 퇴직하고 자기 펀드를 만들었을 만큼 도전 정신 또한 대단했습니다(이때 부친은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창의력이 생명이라 여겨 구태여 MBA 과정을 밟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셸비 데이비스 부자(父子) 모두 학부 전공이 역사학이었고, 금융공학 등은 독학으로 마스터했다고 합니다.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청년 시절이었을 때 에드거 로렌스 스미스라는 저술가가 처음으로 "분산 투자의 유효성"을 체계적으로 설파하여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당시 투자 통념을 깼다(p40, p61)고 저자 존 로스차일드는 말합니다. p6의 피터 린치 서문을 보면 역시 그도 셸비 데이비스가 분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저 에드거 로렌스 스미스의 책을 당시(1924)에 셸비 데이비스가 실제 읽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저자의 추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세대 셸비 데이비스의 아버지 조지 데이비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당시 진짜 돈을 번 사람들은 금광 발견자가 아니라, 식료품이 다 떨어져 허덕거리는 채굴자들에게 통조림 등 보급품을 대던 장사치들이라고 하죠. 조지 데이비스도 반 세기 뒤 앨러스카 골드러시 당시 말에게 먹일 여물을 조달하여 청년 시절 큰 돈을 벌었습니다. 이 사람도 자기 아들(1세대 셸비 데이비스), 자기 손자(2세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처럼 프린스턴을 나왔으며 전공은 건축이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주식, 채권 투자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하네요(p36).
조지 데이비스 역시 상원의원 가문 출신이었으므로 처음부터 풍족한 출발이긴 했으나 언제나 아들에게 근검절약을 가르쳤는데 덕분에 대공황 당시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넘겼다고 합니다. 조지 데이비스는 어린 아들(1세대 셸비 데이비스)에게, 1차 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신문을 거리에서 팔게 할 정도였다고 하니 가정교육의 지독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에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1909년생이라고 나오니(p33), 1차 대전 종전 무렵이면 아이가 고작 열 살도 안 될 무렵입니다. 세상에.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프린스턴 출신 엘리트이긴 했으나 숙맥(p42)에 가까웠고, 이를 알아본 캐트린 워서먼은 이 청년이 자신이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는 결코 접근하지 않으리라는 걸 눈치챘다고 합니다. 이 무렵만 해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자신의 부친 조지처럼 증권 투자에는 무지했다고 하네요(p40). 캐트린 와서먼은 아주 부유한 가문 출신(반면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이무렵 대공황이었던 데다 부친 조지의 감이 떨어져 가세가 기욺)이어서 그야말로 "여성스러운 소양 교육" 외에는 아무 훈련을 못 받았는데도 자진해서 책 외판원 일을 한 후 창의적인 기법을 통해 돈도 많이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단한 아내가 있었으니 부창부수였다고나 해야죠. 단, 셸비 데이비스는 4대째 명문이었지만 와서먼 가문은 캐트린의 부친 요셉이 이주민이고 창업주(직물 제조-소매업)였습니다. 요셉 와서먼은 대공황 시기 사업을 정리하고 대신 다들 꺼리던 정부 채권에 대거 투자했는데 이것이 그의 재산을 지켜 줬습니다. 또 본디 증권에 무관심했던 청년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장인의 이런 패턴을 보고 뭔가를 배웠을 수도 있습니다.
"증시든 보험주든 신혼부부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p57)." 제네바에서 박사학위를 밟을 때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라디오 리포터를 하며 경력도 만들 겸 돈을 벌었고, 부부가 여행을 하기라도 하면 그동안 사용하지 않을 방세 내기가 아까워 임차료를 돌려받았고(!) 이 덕분에 새로 집 알아 보느라 수고를 들였다고 하니 참 지독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저널리즘 관련 일자리를 얻기 힘들었는데 대공황과 2차 대전 발발의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도쿄 신문사에도 취업을 시도했다고 합니다(p64). 이랬던 그는 처남 빌 와서먼의 권유로 현장 전문가 겸 통계사로 월스트리트에 마지못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 캐트린 와서먼은 부친 요셉을 닮았는지 돈 무서운 줄 알고 열심히 벌고 아끼는 타입이었으나 빌 와서먼은 모친 에디스를 닮았는지 과시적 소비를 일삼았고 대신 한방의 투자 성공으로 언제나 위기에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런 유형이 꼭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