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휘둘리는 당신을 위한 심리수업 - 성숙한 어른으로 살기 위해 다져야 할 마음의 기본기
김세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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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자기 감정만 제대로 다스릴 수 있어도 큰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일단 피해갈 수 있을 듯합니다. 감정이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아마 사회에서 큰 성공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어떤 큰 성공까지를 바란다기보다, 다른 사람 앞에서 민망한 모습 보이지 않거나, 혹은 내 자신이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고 평정심만 유지해도 대만족이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그의 책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통해 "감각이 살아 있는 발을 잘 어루만져 준 빌이라는 친구 덕분에 절망의 끝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p27).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아 잘 모르긴 해도, 저자께서 아주 깊이 공감하셨기에 특별히 인용했을 듯합니다. 상황을 잘 모르긴 해도, 나보다 나의 아픈 구석에 더 잘 공감해 주는 친구가 (다소 엉뚱하게) 내 발을 만져 준다면 너무 고마울 듯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는 "또다른 나"라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빌 같은 친구를 둘 것"을 권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런 벗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우리는 적당히 친하고 적당히 먼 친구는 여럿 있어도 저 정도로 나를 공감해 주는 이가 곁에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당장 나부터가, 어떤 친구에게 그런 소중한 벗이 되고 있기 쉽지 않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는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반복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산책, 목공예, 뜨개질 같은 것입니다. 이게 그저 취미생활을 뜻하는 게 아니라(취미와 겹칠 가능성이 높지만), 이것만 하면 나의 좋은 감정, 기분, 살 맛, 혹은 예전의 좋은 추억(구 이성친구와의 교감이라든가)이 생각나고 도로 살아나는 행동이 반드시 누구한테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감정의 침체는 곧 무기력을 가져옵니다. 이 책 p49에 나오는 서연이는 공부, 엄마의 맥빠지게 하는 잔소리, 오빠와의 비교 때문에 무기력증에 걸렸습니다. 원래는 서연이도 공부를 곧잘했습니다만, 엄마의 욕심이 한도끝도 없고 잠시 폰 좀 들여다봤을 뿐인데 "그딴 식으로 할 거 같으면 다 집어치워라"는 극단적인 질책을 듣고 의욕이 다 사라졌습니다.

앞에서 저자는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반복"하라는 충고를 했는데 서연이에게는 반려견 보리의 털을 깎아 주게 했다네요. 저도 예전에 저희 모친이 개 털갈이를 도와 주셨는데 애가 아주 시원해하고 좋아하던 게 기억 납니다. 서연이도 아마 예전에 한 번 깎아 주니 보리가 엄청 좋아하던 기억 때문에 이걸 모멘텀으로 삼았을 겁니다. 엄마는 나한테 짜증을 내지만 나는 (거꾸로) 애한테 잘해준다, 뭐 이런 식으로 부정적 감정과 기억을 반대로 승화시키는 것 아닐지요. 아주 멋진, 극복의 사례인 듯하며, 사실 이런 어린 학생의 경우에는 본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엄마가 좀 더 따님에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할 듯합니다.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책 제목을 전에 본 적 있는데(읽지는 못했고요), 어떤 엄마의 경우 딸한테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물론 반대로 딸이 엄마한테 너무 마구 대하는 경우도 있죠(아주 많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반성하시길).

서로 한창 깨가 쏟아질 30대 부부 역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 직전까지 가기도 합니다. p74에는 선영- 준범 씨 부부 얘기가 나오는데 이분들은 마음뿐 아니라 물리적 상처까지 진행된 경우네요. 부부는 상대 배우자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한국인치고 경증이라도 이 "분노조절장애"가 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너무 자주, 또 비전문적으로, 이 핑계가 동원되는 것 같습니다. 뭐 말만 나왔다 하면 분노조절장애입니다. 상대가 비정상이라고 지탄하는 건지, 아니면 장애가 있으니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건지 헷갈립니다.

p76에 인용된 마셜 로젠버그의 말이 놀랍습니다. "(모든 분노에는) 목적이 있다." 즉 누가 분노를 표출하는 건 그만한 이유, 목적, 동기가 다 있다는 겁니다. 당사자 자신이 의식을 하든 못 하든 간에 말입니다. 이 사례에서 남편은 물론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만, 저자는 부인 역시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냐, 감정의 문제가 있다면 감정을 잘 달래어(타인이든 자신이든 마찬가지)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성급히" 이성(理性)을 불러서 감정을 잠재우려 하는 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고, 이 역시 "감정 발달이 저해된 결과"라는 겁니다. 사실 이성으로 빨리 복귀하는 것도 내 솔직한 감정을 무시하고 무작정 덮는 식은, 이미 가짜 이성인 거죠.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쿨병 같은 것?

이 부부의 사연은 책에서 비교적 길게 다뤄집니다. 준범씨는 아내에게 존중 받는 이슈에 대해 좀 민감한데 이는 어려서 그의 가정 환경에 일정 부분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영씨 역시 그리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 때문에 남편에게 이를 투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감정 통제와 치유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의 특정 체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p96에는 인생 곡선, 혹은 삶 그래프가 나오는데 내가 몇 살 때 무슨 일이 있었고... 이런 걸 그래프 상에 표시한 것입니다. 가로축은 누구나 이해가 되고, 세로축이 문제인데 이것은 감정의 긍정, 부정을 수치로 나타낸 거네요. 이분은 초등학교 이전까지 무척 행복한 기간이었다가 학교에 입학하며 서서히 긍정 지수가 낮아지고, 처음으로 마이너스 구간에 들어간 게 초5때 부모의 이혼이었으며, 고3때 다시 마이너스, 그리고 입학 결과 발표까지 마이너스를 유지합니다. 보통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놀러 다닌다고 즐거운 사람도 꽤 많은 걸 고려하면 이분은 그 시간이 참 괴로웠나 봅니다(수능 직후 기간이 플러스이긴 합니다).

"물리적 공간은 심리적 공간을 반영한다(p103)." 이 말은 윌라드 프릭의 <자기에로의 여행>에 나온다고 합니다. 저자는 내게 중요했던 집의 평면도를 생각해 내서 그려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 다음에, p107에 나오는 자기치유 질문에 답해 보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p107말고도 여러 세트의 자기치유 질문이 나오는데 독자는 이 책에 실린 여러 사례 중 자신과 가장 비슷한 케이스 끝에 나오는 질문 세트를 골라 시도해 보면 될 듯합니다.

p117에 나오는 딸 예은씨, 또 바로 뒤에 나오는 어떤 아버지의 경우 자신(의 부모)가 살았던 좋지 않은 경험을 결코 대물림해 줘서는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자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사례입니다. 앞의 사례는 딸, 뒤의 사례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체인 건 아마 실제 내담자가 그들이라서인 것 같습니다. 이들의 경우는 책임감이 너무 지나친 게 문제였던 듯합니다.

p157에는 "자기 관찰을 위한 다섯 가지 질문"이 나오는데 이는 필립파 페리의 <인생학교 정신>에서 재인용했다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하는 걸 1회로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습관을 들이라고 합니다. 이게 습관이 되면, "자기 관찰"이 (비로소) 시작된 거라는데, 우리가 이처럼 자신을 올바로 관찰하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우리가 과감히 우리의 민낯을 응시 못하고서 어떻게 상처가 저절로 운 좋게 낫길 바라겠습니까(물론 그런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긴 할 겁니다).

경애씨는 65세인데 아들을 잃고 현재 남편과 며느리, 손주 등과 함께 삽니다. 이분이 분노하게 된 건 아들의 묘지 이장 문제였는데, 가문에서 시아주버니가 남편과 이미 합의했다고 하며 아들 묘를 옮기고 땅을 팔라고 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 상담은 며느리가 예약한 것인데, 알고 보니 이런 표면적인 문제 말고도 며느라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그를 보상하려는 심리가 생전, 그리고 사후의 아들에 더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그러나 여전히 그 문중 어르신의 태도와 행동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아이콘택트인가 하는 예능이 인기였는데, 저자는 반드시 한번 "나 자신과 아이컨택"을 해보자고 합니다(p190). 병든 자기애가 아니라 참된 자기애를 갖기 위해 나와 눈을 마주치자고 합니다. 루이스 L 헤이의 <미러>에 이런 사례가 나온다고 하네요. 아무튼 내 마음을 내가 속일 수는 없습니다. 뭔가가 당당하거나 반대로 창피할 때 이걸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속이는 건 쉽지만, 세상 천지에 나만큼은 지금 내가 이걸 속이는 건지 아닌지 다 압니다. 내 안의 나를 자꾸 병들게 하지 말고, 나 자신에의 관찰을 통해 정직하게 내 감정을 만나 얘를 치유해 줘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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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하지 않고 행동 수정하는 ABA 육아법 : 문제행동편 - 행동분석전문가가 Q&A로 알려주는 문제행동 중재 방법
이노우에 마사히코 지음, 조성헌 그림, 민정윤 옮김, 홍이레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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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산모들이 노산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중국발 미세먼지나 환경호르몬 등 다른 원인 때문인지, 장애아, 자폐아, 과잉행동증후군 등 아동들과 부모님들께 다양한 고민이 생기는 듯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비율 정도는 있었는데 요즘은 한자녀 가정이 많고 양육에 더 정성을 들이다 보니 이런 예외적 현상이 우리 눈에 더 부각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떤 근본적인 방책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할 텐데 참 걱정입니다. 여튼 행동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동, 자폐아 등에게는 전문가들이 기존에 마련한 공신력 있는 프로그램과 처방약이 그나마 도움이 될 테니 부모님들이 잘 참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응용행동분석학, 임상심리학, 장애아심리학 전공이며 현재 돗토리대학원 임상심리학 교수라고 합니다(앞 책날개). 무지한 탓에 저는 처음에 ABA 육아법이라고 해서 저자(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론에 이름을 붙인 건가 착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고 Applied Behavior Analysis의 약칭, 즉 학문적으로 이미 튼튼한 베이스가 있는 이론체계였습니다. 응용행동분석은 pp.18~19에 아주 간단한, 그러나 핵심만 짚은 설명이 나옵니다.

p18에서는 ABA가 특히 "자폐아" 같은 발달장애 치료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 방법은 "모든 행동을 아주 잘게 쪼개어 효과적인 치료에 접근하며" "언어인지, 사회성 강화뿐 아니라 옷 입기, 양치" 등 일상적인 동작 하나하나에 도움이 되는 "포괄적인(comprehensive) 프로그램(p19)"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자폐아를 둔 부모님만을 위한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이상행동이다 과잉행동이다 하는 걸 자신의 아이가 보이곤 하는 부모님들 경우라면 두루 읽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 책의 편저자는 이오우에(井上)마사히코(雅彦) 교수 한 분이지만 pp.6~9에 나오는 추천사를 보면 추천사를 쓴 윤지은, 김수정, 허은정, 김명하, 홍준표, 한상민 여섯 분과, 옮긴이인 민정윤 소장은 모두 행동분석가(BCBA) 자격을 갖고 있네요.

BCBA가 뭔지를 몰라서 찾아 보니 Board Certified Behavior Analyst라고 구글에 나옵니다. behavior analyst는 이해가 되고 board-certified에서 어떤 board가 certify 해 준 걸까 더 읽어 보니 the Behavior Analyst Certification Board라고 합니다. 협회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하니 BCBA는 석사급, BCBA-D는 박사급입니다. 이 책 감수자 홍이레 고문, 또 위 여섯 명의 추천인 중 윤지은 교수, 허은정, 홍준표 세 분 등 모두 네 분이 이에 해당합니다. 독자들도 이런 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젊은 분들은 혹 진로를 그쪽으로 모색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CICS와 ICE 중, ICE의 NCCA 인증입니다.

일단 문제행동이 어떤 걸 가리키는지부터 잘 판단을 해야 합니다. 엄마들은 대개 아동행동 문제의 전문가들이 아닙니다. 아닌데도 성급히 특정 행동을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거나, 혹은 반대로 문제가  있는 행동을 예사로 봐 넘기곤 합니다. 문제행동이 문제행동인지 아닌지는 특정 상항의 맥락, 행동의 주체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므로 일단 책 p32에 나온 예시를 잘 읽어 본 후, 자세한 건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어떤 행동이 문제행동이라면 약화(퍼니시먼트. 줄이는 것), 소거(익스팅션. 더 늘어나지 않게 하는 것)를 해야 합니다(p36). 큰 소리로 울거나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다든가 하는 행동은 일단 문제행동으로 봐야 하며(더 확실한 건 전문가 상담이 필요), 처음에는 이런 제지를 위한 행동이 더 역효과를 부르기도 합니다(전문용어로 소거 폭발[익스팅션 버스트]이라 칭한다고 하네요). 소거 폭발시에는 부모님이 꾹 참고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절대 베풀어 주지 않아야 합니다. 해 주면 이는 강화(인포스먼트)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강화, 약화, 소거 이전에 이런 행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TV를 없앤다든가 다른 여가 활동을 마련) 이걸 "선행 중재(앤티씨던트 인터벤션)"라고 합니다.

질문을 하면 아이가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질문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걸 반향어(p51)라고 합니다. 항상 이게 문제행동이라는 법은 없으므로 이걸 그저 제지하기보다는 이를 대체할 바람직한 적절한 행동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벤션은 본래 "개입(p70)"이란 뜻이지만 책을 잘 읽어 보면 확실히 이 이론체계에서는 "중재"라는 번역이 맞는 듯합니다. 학문적 번역이 그렇게 된 데에는 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까요. 이 체계에서는 특히 ABC 기록이 중요한데 A는 앤티시던트(=선행행동), B는 비헤이비어(행동), C는 결과(칸시퀀스)이며 이를 시트(sheet)에 다 기록을 해 두어야 합니다(p62). 이 시트는 행동 관찰 시트이며, "전략 시트"는 따로 있는데 제3부에 자세히 설명됩니다.

행동관찰에는 아이의 행동을 자세히 기록하는 게 중요(p60)하며 그저 막연히 "아이가 너무 산만하다" 식으로 적어서는 안 됩니다. 기록을 할 때에는 긍정형으로 적어야 하며 부정형은 안 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긍정 부정이란 태도나 시각에 희망이 들어가고 여부가 아니라, "무엇을 구체적으로 했다"가 긍정이며, "무엇을 하지 않았다"가 부정 서술입니다. 이런 식의 부정 서술은 아무 소용이 없죠.

p78부터 전략 시트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옵니다. 행동 관찰 시트는 적는 내용이 자세해야 하고 시트 폼 자체는 단순하지만, 전략 시트는 행동 관찰 시트에 대응 전략이 추가되므로 형식이 더 복잡합니다. 작성이나 활용 방법 자체는 복잡하니 않으니 p79에 나온 예시를 직접 보고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저작권 때문에 이 독후감에서는 사진 생략). 특히 C, 결과란 체크에서 해당이 되는지 안 되는지 헷갈린다면 일단은 모두 체크하라고 합니다.

p126에는 경도의 지적장애가 있는 5세 아이를 둔 엄마의 상담이 나옵니다. 무모하고 집요(책의 표현입니다)한 요구를 하면, 물론 이는 강화(리인포스먼트)가 되므로 이걸 들어줘선 안 됩니다. 대신 "브로큰 레코드 방법"을 쓰라고 하는데, 당장 기분을 진정시켜 줄 수 있는 말을 되풀이하라는 거죠. 짜증을 낼 때는 일단 엄마가 다른 방으로 피하라고 하며, 간식을 주는 방식으로 진정시키면 짜증내기 행동의 강화가 되므로 안 된다고 합니다. 실제 이런 일을 겪으시는 부모님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하나의 상담례뿐 아니라 4부 150부 전체가 39개의 상담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방이 아주 구체적이므로 일단은 책에 나온 부분만 읽어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더 자세한 건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겠으나).


p162에는 이동 순서에 집착하는 아이에 대한 고민이 나옵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도 배우 잭 니콜슨이 이런 강박증이 있는 작가 역을 연기했었죠. 경도의 지적 장애가 있는 4세아라고 하는데 전문가의 해답은 이렇습니다. "특정 루트에 대한 집착이 평생 가지는 않는다. 한 발 물러서서 지켜 봐 주는 여유를 갖는다. 만약 특정 이동 지점이 위험하면 이는 적극적으로 말려야 하므로, 지도(간단한 그림지도) 등에 스티커를 붙이고 피하게 가르치며 피하는 행동을 하면 보상을 해줘야 한다" 등입니다.

ABA 방식의 가장 탁월한 점은 "아이의 행동 자체보다 그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감정과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초점을 두며, (그래서 이 이론 체계에서는) 행동의 형태보다는 기능이 중요하다고 합니다(p9의 한상민 전문가 추천사 중).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를 섬세하게 지도하는 데에는 이만큼이나 많은 수고가 들며, 그저 기저귀나 갈아입히고 끼니 밥이나 챙겨 주는 게 육아의 전부가 결코 아님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보상, 강화, 소거 등의 방법을 보니 어린이 양육은 거의 애완동물 키우는 만큼이나 잔인한 구석이 있습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안이하게 방치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의뢰를 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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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조용한 침공 - 대학부터 정치, 기업까지 한 국가를 송두리째 흔들다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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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국은 그 전 시기 마오 주석이 빚은 광범위한 실책의 폐허 위에서 조용히 실력을 닦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도광양회라는 말을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하게 만든 게 덩샤오핑이 걸은 그 당시의 노선이었습니다.

2012년 중국 주석으로 뽑힌 시진핑은 그전과는 달리,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전혀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이를 구체화한 정책을 실제로 펼쳤습니다. "중국몽"이라는 단어는 예비역 대령이자 군사학 교수(p45)인 류밍푸의 한 베스트셀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언제든 거침 없이 싸울 준비가 된 사자의 우두머리가 바로 시진핑이다." 그의 말입니다.

이들의 전략은 공연한 군비 대결에 힘을 빼지 않고, 경제적 실리를 차근차근 다져 기존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과거 미-소 양국이 냉전을 펼칠 때는, 미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련과 무한 군비 경쟁을 펼치다가 저유가 쇼크를 견디지 못한 소련이 나가떨어짐으로 해서 결말이 났었습니다. 중국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군비 확충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데(p47), 어쩌다 뉴스에 중국산 최신 미사일이나 항모 건조 소식 같은 게 들리면 세계는 긴장하게 됩니다. 여튼 구 소련과는 이처럼 전략 방향성이 다르므로 아직은, 예컨대 함대의 전력 같은 게 미국에 비해 크게 부족하며, 이 때문에 푸틴의 러시아와 부분적으로 협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여튼 전략가인 류밍푸(劉命福)는 화평굴기, 즉 비군사적 수단으로 세계 지배를 추구하겠다는 건데 이를 위해 그는 "중국의 전통적 가치"라든가 중국식 소프트파워를 세계에 퍼뜨려 현재 미국의 그것이 가지는 지위를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폴 키팅 호주 총리 같은 이는 저자가 "중국의 대외 선전에 넘어간 고위 인사"로 평가하는데, 키팅 전 총리의 말은 "중국은 구 소련과 달리 국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려 애 쓰는 나라가 아니며, 자신의 영역 안에 머무는 나라"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 말은 (중국이 품는 야욕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중국은 대체로 동아시아 일대를 "천하"로 규정하고 그 안에서 패권자로 군림하려 들었지, 그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애써 무관심하려 했으며 그래서 특히 명나라의 대외 정책은 영락제 이후로는 쇄국 정책으로 평가 받았던 것입니다. 로마나 페르시아,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아바스 등)이 얼마나 팽창적이었는지와는 대조되죠. 문제는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중국이 자신의 영역으로 여겨 온 범위에 포함이 된다는 겁니다.

후진타오는 주석 재임 시절 적어도 현재의 시진핑보다는 훨씬 온건한 노선이었다고 여겨지지만 2003년 그가 호주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보면 명 영락제 시절 정화의 원정 당시 멀리 태평양을 건너 호주에까지 중국인들이 도착하여 문명을 일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p52).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에서 지금 봐도 충격적이긴 합니다.

사실 더 충격인 건, 이 무렵에 벌써 호주 국민들은 중국이 자신들과 역사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며 경각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최근까지도 계속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폴 키팅이 총리가 된 것도 저 후 주석의 발언보다 더 뒤의 기간입니다. 그래도 한국은 중국 측의 "동북 공정" 소식이 들리자마자 종전의 우호적 분위기가 돌변했었고 이게 벌써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중국은 사실 호주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약간 동양인과 비슷한 외모 특성이 있다는 이유로, 아득한 옛날 용감한 중국인 몇이 태평양을 건너가 북미에 자리한 후손이라고까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플로그룹의 연구를 통해 시베리아에서 코카서스 인종과 동아시아 일부(중국인인지 몽골인인지 한국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가 혼혈이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 베링 해협을 건너 북미로 이주한 걸로 밝혀졌습니다.

"중국인협회 연합은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중에도 조국의 위엄과 이익을 잊지 않을 것이며, 반중 단체와 반중 활동에 맞서기 위해 다양한 모임을 조직한다....(p67)." 이상은 호주 멜버른의 어느 중국인 단체가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그들의 목표이며, 이 정도쯤 되면 이 단체가 호주 재중 교포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그를 넘어 중국 정부의 간첩 노릇을 하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입니다. 꽤 오래 전 대만과 홍콩의 독자적인 노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한국의 서울에서 중국 대학생(유학생)들이 공개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해 무엇이 이로운 방향인지 주장하거나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표현 방법이 폭력을 타인에게 행사하는 식이 되어서는 당연히 안 되며 이런 행동이 타국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이뤄진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p71에는 "중국 민족이 아니라 중국 인종이라는 표현을 써야 옳다"는 말도 나옵니다(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이익을 거리낌없이 무시할 수 있다고 밝히는 점도 놀랍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도 금기시되는 "인종"의 명분과 범주화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것도 놀랍습니다. p144를 보면 이미 1989년 천안문 사건(며칠 전 32주년이 지났습니다) 직후에 "민주화 운동 참여"를 목적으로 호주에 건너온 양동동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은 비자만 받고 나서 이후 전혀 민주화운동에 간여치 않고 거꾸로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열중했다고 나옵니다. 겉으로 내세우는 말과 명분을 전혀 믿을 수가 없다는 것도 이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입니다.

기자는 언제 어디서건 진실을 독자에게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화통신의 경우 "반드시 마르크스주의의 가치를 터득해야 한다"는 규범을 따르는 기관이라고 나옵니다(p168). 그러나 문제는 중국의 기자와 언론인뿐이 아닙니다. 호주의 중견 언론인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에 달하는 이들은 중국 현지에 초청 받아 극진한 대접을 받고 "감동받아" "한국이나 일본은 우리가 결코 경험하지 못할 중국의 멋진 점심을 즐길 것"이라며 아마도 자신들 호주인들 역시 하루빨리 중국몽에 동참해야 할 것임을 촉구하는 듯한 주장을 합니다. 소름이 끼치지만 이게 어디 호주 언론인들의 처지에 한정되는 이야기겠습니까? 한국 기자도 이런 "대접"을 받고 "감동"을 받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뭐 이 와중에도 "숨어 있는 1984(조지 오웰의 소설)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이도 있고, 언젠가는 저들 중국인들이 호주의 "귀싸대기를 날릴 것"을 예견하는 이도 있습니다. 애초에 의도가 불불명한 대접을 받고 자신의 영혼을 더립히는 일 자체가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p199에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어디까지나 이는 중국 정부가 깊이 개입하거나 주도하는 관영 사업이며, 개인이 다른 나라 다른 사업가들과 동등한 레벨에서 참여하거나 개인 수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와 같게 취급될 수 없습니다. 호주는 사실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그간 이익을 본 바도 적지 않으므로, 예컨대 남중국해 사안에 대해 호주가 다른 목소리라도 내면 배은망덕하다거나, 심지어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중국 네티즌도 있다고 합니다(p211). "야만"의 표준과 잣대는 대체 무엇일까요?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유럽 연합의 형성 과정을 보며 "이게 사람 사는 참모습이 아니겠나"며 감탄한 적 있습니다. 그 정도로 유럽연합은 현존하는 정치 단위 중 매우 진보 성향인 편이며 사민주의 가치를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실천하는 경향입니다. 그래서 인권유린이나 소수자에 대한 박해를 누구보다도 앞서 강력하게 규탄하는데, 제 목소리를 일부 회원국의 반대에 부딪혀 못 낼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는 우리도 다 잘 알듯 2012년경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적 있는데 이때 중국이 크게 도와줬습니다. 이후 그리스는 EU 안에서 중국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저지하고 나서는 편입니다. 치프라스 총리는 아주 자주 베이징을 방문하며 "거의 성지 순례를 하는 것 같다"는 게 이 책의 입장입니다(p229).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특정 인종,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개인에게 혐의를 두고 수사기관이 집요하게 추적하는 걸 "인종 프로파일링"이라고 합니다. 드라마 <엘리멘트리>에도 왓슨(드라마 여주이자, 범죄자 잡으러 다니는 자문인)이 일종의 인종 프로파일링을 기관으로부터 당하는 장면이 시즌 4에 나옵니다(나중에 풀려나기는 합니다). 기소가 유력한 사건인데도 인종 프로파일링의 위법성을 이유로 이것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미국에는 많다고 하며 참으로 부럽습니다. 이래야 선진국이지요. 그런데 중국은 ㅎㅎ 국가 자체가 "인종, 민족 프로파일링에 기반하여(p263)" 모든 공적 활동을 전개하다시피합니다. 이 역시 (반대의 이유에서) 놀라운 일입니다.

호주중국 국제 인재 교류협회는 이름만 보면 엄청 중요한 일을 하는 바람직한 단체 같지만 사실은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간첩 에이전시나 다를 바 없습니다. 현지(여기서는 호주)에 이주한지 얼마나 되었든 간에 재외 중국 교포, 즉 화교는 중국에 정체성을 어느 정도는 두게 되어 있는데, 특히 연구 기관 등에 근무하는 중국계 과학자와 집중 교류하면서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게 이들의 일입니다. "외국인이 중국을 섬기도록 하라(p306)" 중국전자과기집단의 경우 "인민해방군의 이익을 위해 민간 전자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목표라며 대놓고 표방합니다.

얼마 전 공자학원에 대한 한국, 일본의 반감이 증가한다는 외신이 나온 적 있는데 이 책 p323에 관련 언급이 나옵니다(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과연 공자학원에 관심이나 있는지, 경각심을 가지는지는 의문입니다). 첵에도 나오지만 문혁 당시 마오가 공자의 묘를 파헤치고 대대적인 반 유교 활동을 전개한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일 뿐입니다. 공자의 고결한 정신과는 달리 공자학원은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중국 정부의 선전 활동에만 열심"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닝보유업은 생산일자를 속이는 등 호주 현지 법규를 어겨 가며 우유를 생산해 왔습니다.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건 아마도 호주 정관계에 연줄이 있어서였을 것이라고 책에서는 주장합니다(p345). 이렇게 된 건 일찍부터 호주와 중국 사이에 FTA가 맺어졌기에 가능했던 점도 있습니다. "신까지도 포섭하라"는 말도 나오는데 호주에는 이른 시기부터 중국계들이 진출했고 이들 중 일부는 기독교를 믿으며 중국 당국의 관심은 이들의 포섭에 향해 있다는 뜻입니다.

중국전자과기집단은 특히 안면인식기술을 이용하여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사찰하고 감시하는 데 공헌합니다. 스마트시티 사업은 어느 나라나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나 이에는 빅데이터의 효율적인 관리가 필수적인데 중국의 해당 집단은 전혀 통제를 받지 않고 이런 데이터를 취급합니다. EU에서 몇 년 전 미국의 저커버그를 불러 혼을 낸 적도 있지만 개인정보의 광범위한 취급은 그만큼 큰 위험이 따르는 작업이고 과정입니다. 전체주의 체제는 이런 점에서도 디지털 사회의 취약점과 결합하기 쉽습니다.

중국이란 나라는 과연 우리 한국에게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이 책은 주로 호주에서의 상황을 중심으로 분석을 행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중국도 무섭지만 중국의 장단에 놀아나며 자국의 이익을 해치고 서 푼의 뇌물에 영혼을 파는 호주인들이 더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중국 욕할 것 하나도 없고, 21세기에도 이런 변형된 사대주의와 패배주의의 확산 공작이 (그것도 백인종을 상대로)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뭐 따지고 보면 중국이야 중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뛸 뿐인데 그걸 어떻게 비난하겠습니까. 정신 못 차리고 나라를 파는 매국노들이 (어느 나라에서나) 진짜 범죄자들이지요. (이 독후감을 쓰는 저를 포함하여) 방관자의 책임도 덜할 거 없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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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자본주의의 배신 - 주주 최우선주의는 왜 모두에게 해로운가
린 스타우트 지음, 우희진 옮김 / 북돋움coop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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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시스템적 취약점을 지적하는 논의는 심지어 마르크스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시스템은 허술한 곳을 보완하며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셰어홀더가 아니라 스테이크홀더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기업에도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주장도 꽤 오래 전부터 있었고 故 린 스타우트 교수의 이 저작도 9년 전에 출판되어 큰 반향을 불렀던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강수돌 고대 교수 같은 분이 이 주장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p31에는 딥워터호라이즌의 파멸적 사고(事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 이 책이 나올 무렵에는 없었겠으나 그 후 이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도 만들어졌고 요즘도 케이블 채널에서 자주 방영하는 편입니다(같은 제목). 또, 요즘(특히 요 몇 달)은 한국 조선 해양주가 아주 잘나가는 편이지만 한때 아주 긴 암흑기가 있었는데 조선 해양업의 불황 요인 말고도 한국 조선업계가 해양 플랜트 제조에 운명을 걸고 엄청난 투자를 했으나 저 딥워터호라이즌 사고 때문에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해양플랜트로 앞으로 수십 년 먹거리를 마련하려던 비전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거죠. 당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은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고 정몽준 씨도 정치적 실책 외에 이게 큰 영향을 끼쳤더랬습니다.

이 한국어판에서는 셰어홀더 밸류((shareholder value. 이 책 원제의 일부이기도 한)를 "주주가치"라고 번역합니다.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 "인센티브(p34)의 망령" 때문에 기업은 여러 무리수를 두게 되고 구제기관과 입법의원들에게 로비하여 "CDS, 기타 여러 고위험 파생상품에 회사가 투기하게 하여 단기에 고소득을 올리(p34)"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로비에 든 금액의 본전을 뽑고도 남는 거죠. 이런 사고방식은 "주주 최우선주의"라 불렸는데 저자는 이 용어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합니다. 왜? 주주 절대주의, 혹은 주주 독재주의라 부르는 게 더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는군요. 주주 최우선주의의 원어는 "셰어홀더 프라이머시(shareholder primacy)"입니다(p36).

그래서 저자는 셰어홀더 밸류가 아닌, 스테이크홀더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 필요(p36)하다는 것인데 물론 故 린 스타우트 교수가 당시에 최초 주장한 건 아니고 저자 역시 "일부 학자와 사회 운동가의 주장"이라며 유보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회 운동가만이 옹호하는 게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잭 웰치 같은 사람도 "주주가치는 가장 멍청한 개념"이라며 비판한 적 있다고 합니다. 마치 1차 대전이 끝난 후 역전의 명장들이 "전쟁이야말로 인류가 벌이는 가장 멍청한 짓"이라며 깊이 회의적 태도를 표현한 것과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전쟁이다 투기적 기업행위이다 등으로부터 가장 이익을 크게 보고 실제 능력을 발휘한 사람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까 설득력이 더하죠.

여튼, '일부 학자와 사회 운동가의 주장"은 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으로 구체화, 체계화, 종합화되며 p127에 일부가 요약되고 이후 책 2부에 상세히 펼쳐집니다. p127을 여기 잠시만 요약하면

1) 주주가치 지상주의는 주주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2) 통념과 달리 기업은 실재(實在) 단위이며, 오히려 주주가 허구이다.
3) 주주의 이해, 관심은 통일되지 않으며 실증적 데이터로부터 오히려 이쪽을 예외가 아닌 정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저자는 "이제는, 주주 가치적 사고가 심지어 주주 자신들에게조차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p42)."는 가능성에 주목하자고 합니다. 일단 단일한 주주 개념조차도 의문이 있습니다. 책에 나오듯 어떤 사람은 단기 차익을 노리고 해당 주식을 보유하며, 어떤 사람은 장기 투자 목적입니다. 과연 수많은 주주들 중 누구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까? 마치 정치인들이 "국민의 목소리 대변"을 내세우지만 국민도 의견이 천차만별인데 대체 누굴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가 모호하듯 말입니다.

저자는 이어 저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 같은 것은 어떤 특정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그러면 그 사람에게만 민형사 책임을 물리면 됩니다). 잘못된 사고(思考. idea)의 책임(p46)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회 통념이 잘못된 채 계속 머물러 있으면 같은 사고가 (설령 누구한테 호되게 책임을 물린다 해도)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뜻입니다.

왜 주주가치 절대의 사상이 이처럼 만연하게 되었는가? 20세기 초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사회 이념 중 하나로 대두하면서입니다. 대주주를 겸한 경영자는 이익 창출 외에 기업 지배 구조 강화, 혹은 비자금 형성, 은닉 등 다른 목적(p58)에 신경 쓴다면 이는 대리인 비용을 발생시켜 결국 기업을 부실화하고 투자자에게 배임이 된다는 건데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도 다 나올 만큼 유명한 이론입니다.

그러니 대주주 겸 경영자(이른바 "오너")의 전횡을 막고 기업 자체의 내실을 다져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전문 경영인" 제도를 도입하여 가문 경영의 악폐를 방지하고 성과만을 극대화하여 경쟁력을 높인다는 생각 역시 흠 잡을 데 없이 여겨졌고(책에는 1970년대 밀턴 프리드먼의 유명한 말도 인용됩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기아자동차가 김선홍 회장에 의해 경영될 때 기적 같은 모범 풍조로 칭송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문 경영인 제도도 이른바 이해상충 대리인 이슈가 있죠(p144도 참조). 조금 뒤 p83에는 "주인-대리인 모델"에 의해서"도" 주주가치 절대주의는 잘못이라고 저자는 논증합니다. 이 논증은 pp.89~106인 제3장에서 아주 자세히 전개됩니다.

저자는 코넬 로스쿨 교수였는데 지금 이 주주가치 절대시 사조는 시카고 학파에서 주도해서 퍼뜨렸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 무렵 크게 성행한 게 "법경제학"이었는데 이 학문으로 학위를 따 귀국한 교수님들은 지금도 꽤 보수적인 스탠스입니다. pp.64~65에서 저자는 "사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입법이나 학문적 태도는 이 주주가치 지상주의라는 걸 공식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분은 원문이 모호한 걸 역자가 맥락을 분명히해서 옮기고 있습니다. 한스만과 클락만의 글 <기업법 역사의 종말>은 p63, p87, p127(이 페이지는 뒤 색인에 빠져서 제가 추가합니다) , p163 등에서 여러 번 거론되고 때로는 일반의 "오해"를 (이 저자가) 바로잡는 맥락에서 인용됩니다.

세어홀더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사상은 아주 최근의 것이 아닙니다. 닷지 대 포드 사건은 20세기 초반에 있었는데 법원은 주주인 닷지 형제의 이익을 더 중시하여 포드 사에 배당금 지급을 명령했습니다. 저자는 널리 인용되는 이 사건이 결코 주주이익 지상주의가 아님을 지적(p72)하며, 당시 포드는 비상장기업이었음을 환기합니다. 상장기업, 즉 공개기업은 이와는 전혀 다른 논리(첵에서는 전혀 다른 종[種]이라는 말도 나옵니다)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개"기업이라야 그에 따른 사회적 이해(stake) 관계자가 (더 넓은 범위로) 있을 수 있겠죠. p76에는 유노컬 vs 메사페트롤리엄 사건을 거론하며 판결문에 "주주 외의 구성원에게 끼치는 영향 고려 가능"이라는 문구를 인용합니다. 이 구성원 개념에, 저자는 "어쩌면(p77)" 사회 공동체 전체를 포함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 주인 대리인 모델에서도 주주가치절대주의는 틀렸는가? 첫째 주주는 기업 자체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아주 제한된 권리인 주식 몇 주를 소유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블랙 앤 숄즈 모형은 주주와 채권자의 관계가, 옵션(풋 앤 콜)을 사고팔 뿐이라는 점을 논증하여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 이론의 함의를 저자는 "주주가 독점적으로 기업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채권자도 그 유사의 권리가 있다"로 해석합니다.

둘째로 주주를 "잔여재산 청구권자"로 정의하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사회가 지급을 결의해야 주주가 돈을 받을 수 있는데 당연히 무제한의 청구권 같은 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정의에서 핵심은 "잔여재산" 즉 최후순위라는 것인데 저자가 너무 "청구권"에만 초점을 두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독자로서 조금 듭니다.

셋째로 의결권, 소송권, 주식 처분권은 아주 제한된 권리일 뿐이므로 이걸 가지고 "주주는 주인, 이사회는 대리인"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선관주의 의무(fiduciary duty) 위반을 소인으로 한 소송권 역시 그리 적용 범위가 크지는 않다고 합니다. 일반 투자자는 그저 합리적 무관심(p117)에 빠져 있기에 주주 행동주의(p101)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물론 책에서 논의되는 기술적 설명은 모두 타당하지만 그것만으로 주인 - 대리인 관계가 간단히 부정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게 독자로서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또 앞의 둘째 논거에서도 그러했으나, 저자는 어차피 이 역시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는 "이사회"의 권능과 자격에 대해 좀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냐 하는 느낌을 저 개인적으로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교수는 기업의 사외 이사로 의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겠으니 말입니다.

IT 혁명으로 인해 종래의 정보 비대칭성 이슈는 상당 부분 변모를 겪었고 많은 이들이 종전보다 더 쉽게 증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정보 비대칭성 이론은 증시만을 설명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특정 정보는 특정 이유로 인해 늦게, 불편한 채널로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차익거래(알비트리지)라는 게 현실에서 잘 실현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이번 비트코인 폭등 사태 때 왜 한국에서만 유독 프리미엄(이른바 김프)가 붙어 거래되었는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행동금융학은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이유로 의사 결정을 하는 수많은 패턴을 보여 줍니다. 행동금융학은 일반 대중들도 잘 아는 행동경제학의 일부이죠.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표현도 p146에서 씁니다.

주식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주가는 기업의 미래 가치 반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바로 어닝 서프라이즈 발표가 나도 사람들이 해당 주식을 팔아치우기도 하며, 반대로 어닝 쇼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그리 크게 떨어지지 않기도 하는 게 다 이 때문이죠. 이 때문에, 경영자는 단기 투자자(장기 투자자가 아닌)들과 매우 불건전한 공조를 형성(p150)한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CEO가 단타쟁이들 좋은 일 시키려고 기업 내실을 다질 생각은 않고 회계 조작이나 이슈몰이를 통해 주가 부양에만 골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뭐 이 말도 맞는 게, 우리나라에서도 네티즌들이 네이버 일부 종토방 같은 데서 "저분은 사업은 안 하고 주식장사만 한다"며 비판하곤 하는 게 다 이런 걸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적어도 저자의 이 지적은 지극히 타당하며, "장기 투자자와 단기 투자자의 이해가 갈릴 경우 이는 다이너마이트를 미끼로 삼은 낚시와 같다(p116, p151)"는 멋진 말로 요약됩니다. 이 악영향이 거시 경제에의 손실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우리가 "락인(lock-in)"이라고 할 때 보통 한국 증권가에서는 기관투자가나 대주주의 보호예수물량만을 가리키지만 사실 이 말은 그보다 훨씬 뜻이 넓죠. 저자는 마거릿 M 블레어 교수를 인용(p157)하여 "투자자의 돈은 자유롭지가 않고 기업법인에 묶인(=락인) 것"이라고 하는데 이 마거릿 블레어 교수는 밴더빌트 로스쿨에 재직 중인 분입니다.

저자는 사후(ex post)의 결정이 사전(ex ante)와 동일하게끔, 마치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묶여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처럼, 일부 주주들이 초심을 지키며 다른 주주나 채권자, 일반 대중의 이해를 침훼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제6장에서 논합니다. 즉 저 앞 p101에서 거론된 주주의 3대 권리 중 주식 처분권을 제한하자는 거죠. 쉽게 말해서 일반 대중도 기관투자자나 대주주처럼 락인을 걸자는 겁니다. 이게 저 앞 p124에서 저자가 암시한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p103에서 저자는 적대적 인수합병 역시 경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었죠. 저명한 변호사인 마틴 립턴은 포이즌 필 창안자 중 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미 고령인데 "우버의 기업 변호사(p103, p146)"라는 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이렇게 락인을 강화하면 증시 전체가 위축될 위험이 있고, 채권과 주식 사이의 제도적 구별이 모호해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채권도 거래 자체는 아주 자유롭죠.

대부분의 주주는 사이코패스도 아니고(p197) 하이드씨(p199)도 아닙니다. "실재하지도 않는 주주"의 허상에 갇힐 게 아니라, 선의를 가진 대다수의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이 협업하여 진정한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낳자는 게 저자의 제안인 듯합니다. p212에서는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을 인용하여 "주주 가치라는 신화"를 다시 공박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일관되게, "기업은 실재하며 주주가 허상"이라고 하지만, p207에서는 리젯 대 리 판결에서 브랜다이스 판사가 "상장기업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라 부른 걸 두고는 거꾸로 주주 개념의 허상성을 지적한 걸로 해석하는 듯합니다.

"주주 가치 이데올로기는 주주를 가장 낮은 수준의 인간으로 취급한다(p213)." 즉 이 관념이 장기투자자가 아니라 변덕스러운 기회주의자, 단타쟁이에 더 초점을 두고 있음을 저자는 지적하는 거죠. p223에서는 케인즈의 유명한 말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를 거론하는데 여기서도 저자는 "죽은 경제학자가 남긴 아이디어의 끈덕진 생명력"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인용하는 겁니다. 토드 부크홀츠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 책에는 SRI 펀드가 여러 번 거론되는데 원서 출간 연도가 2012년임을 감안해야겠습니다. 요즘 같으면 ESG펀드를 이야기했을 겁니다. 아무튼 이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요즘 트렌드 중의 하나이니 일반 독자나 투자자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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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투자 가문의 비밀 - 월가의 전설 데이비스 가문의 시간을 이기는 투자 철학
존 로스차일드 지음, 김명철 외 옮김, 이상건 감수 / 유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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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존 로스차일드이고 작년에 타계한 저술가, 투자가, 저널리스트입니다. 그의 저작이 우리 나라에도 여럿 번역되어 있으므로 이름이 익숙할 것입니다. 로스차일드 하면 나폴레옹 전쟁 당시 시세조종으로 큰 돈을 벌었고,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에게 거액을 대부하여 수에즈 운하를 짓게 한 그 은행가 가문을 대뜸 떠올리겠습니다. 지금 이 책 저자 로스차일드는 교육자 가문 출신이었고 거액의 투자를 일상처럼 행하던 초 금수저 소생은 아닙니다(촌수가 매우 멀죠). 하지만 그의 빼어난 저작은 이미 많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영감을 주었고 피터 린치와 실제 협업하여 뛰어난 성과를 올린 적도 있는, 유능한 실전 투자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 p11을 보면 미래에셋 상무 이상건 씨의 감수사가 나옵니다. 그의 평가에 의하면 "단순한 가족사 이상의 것을 담았으며, 대공황, 2차대전, 오일쇼크, IT버블 등 굵직굵직한 사건이 배경으로 모두 반영되다시피한, 미국, 세계 경제사의 압축판"이라고 합니다. 읽으면서 과연 그런 느낌이 들었고, 어떻게 한 가문이 개인의 생을 살았다기보다 역사 자체를 이처럼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전율로 다가왔습니다. 가문사가 아니라 경제사, 세계사라고 해도 됩니다. 


이상건 상무의 감수사 앞에 무려 피터 린치의 추천사가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존 로스차일드와 오랜 동안 동업자 관계였으므로 그가 저술한 어떤 책이라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습니다만, 특히 이 책에 대해 그가 쏟는 애정은 각별합니다. 피터 린치가 피델리티 마젤란 펀드(p6)에서 일할 때 그는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셸비 데이비스를 몇 번 만난 적 있다고 회고합니다. 피터 린치 자신의 기법을 셸비 데이비스 본인은 물론 아들, 손자까지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다고도 하며 은근 플렉싱을 하는 대목(p6)이 있어서 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피터 린치는, 자신은 그 당시 셸비 데이비스와 투자 스타일이 분명히 달랐다고도 회고합니다. 이 말을, p7, p8 두 군데에 걸쳐 강조합니다. 마젤란 펀드 재임 당시 피터 린치 자신은 고수익(年 15% 이상)이 분명히 나올 전망을 갖춘 종목에 투자를 했으나, 이 책의 주인공 셸비 데이비스는 대신 안정적이고 꾸준한 低yield 종목을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여튼 피터 린치는 이 짧지 않은 추천사에서 두 가지를 힘을 주어 주장합니다. 


1) 자신이 잘 아는 종목에 투자하라. 

2) 역사를 모르는 무지한 자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스타일이 사뭇 달랐던 셸비 데이비스(이 책 주인공)과 피터 린치 자신이 확실한 공통점으로 지녔던 투자 철학이라고 그의 주장을 요약해도 될 것입니다. 2)는 현재 젊은 나이에 여의도에서 꽤 고수익을 올리는 어떤 전문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기도 해서 친숙합니다.


개인적으로 워런 버핏의 두 권짜리 두꺼운 회고록 <스노볼>을 무척 유익하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존 로스차일드는 저자 서문에서 이 책 주인공 셸비 데이비스와 워런 버핏 사이의 공통점(p17)을 지적합니다. 참고로, 저자 존 로스차일드는 셸비 데이비스의 아들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를 만나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부친의 인생 역정을 청취했는데 부자(父子)가 이름이 같으므로 이 책에서는 부친을 데이비스, 아들은 셸비로 가리킵니다. 이 독후감에서는 부친을 셸비 데이비스, 그 아들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로 꼬박꼬박 지칭하겠습니다. 


앞서 피터 린치가 회고하기를 셸비 데이비스가 꾸준한 종목을 선호했다고 하나, 워런 버핏이나 셸비 데이비스나 남들 눈에 잘 안 띄어도 자신들의 안목으로 장래 수익성이 확실해 보이면 태도가 확 달라졌다고 합니다. 기관 투자가들이 "진부하고 답답한(p18)" 종목이라며 기피한 보험주를 1947년에 주목하여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버핏도 셸비 데이비스도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투자를 감행(p7, p19, p24)했는데 이게 당시에 대박을 친 것입니다. 꾸준한 저수익 종목은 평소에 수익 방어용으로 선택하는 거고, 매번 안정 위주로만 투자해서야 어떻게 그들처럼 거액을 모을 수 있었겠습니까. 실제로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안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셸비 데이비스(1세대)는 지독할 만큼 구두쇠였다고 합니다. 절대 바닷가재나 생과일 주스를 레스토랑에서 주문하지 말고, (돈이 웬만큼 모인 상황이었으나) 뒤뜰에 수영장을 마련하지 말 것이며 정 하고 싶으면 "직접 구덩이를 파라"고 일렀답니다(p25). 그가 자녀와 손자들에게 가르친 건 첫째 근검, 둘째 자립심, 셋째가 과소비 금지였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성년이 되고도 자녀들이 집에 그런 거금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니...


아들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2세대)는 사립 고교, 프린스턴 대학을 나와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는 그 부친도 마찬가지여서 카펫 제조업자의 딸 캐트린 와서먼(주니어의 모친)이 셸비 데이비스에게 조달한 초기 자금이 쏠쏠한 시드머니 역할을 했다(p18, p42)고 책에 나옵니다. 뉴욕은행에 8년 근무한 후 자신의 사업(뮤추얼 펀드)을 시작했는데 부친이 보험주만 고집한 것과 달리 그는 업종을 넓혔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약세장 때문에 손실도 적잖게 보았다고 합니다. 이후 기업 재평가에 눈을 돌려 약세장에서 저평가 기업을 헐값에 매수해 들였으며 이것이 큰 효과를 보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하네요. 이 무렵 부친 셸비 데이비스는 스위스 대사도 역임했다(p26)고 나옵니다. 스위스는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대학원 다니기 전 그 여친 캐틀린과 함께 여름학교(p49)를 다닌 적이 있는 나라, 또 박사학위를 밟기 위해 대학원(제네바)을 다닌 나라이기도 합니다. 


가업은 현재 크리스, 앤드루 등 3세대인 손자가 물려받았는데 이들도 어렸을 적 할아버지 집에서 요리사, 운전 기사로 일하는 등 자립심과 절약을 가르치는 풍조는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지독하게 이어집니다. 말이 가업을 물려받은 거지 2세대인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 3세대인 크리스, 앤드루 등도 젊어서 자신만의 펀드를 운용했고, 특히 2세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는 대학 졸업 후 자신의 직원으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도 거절할 만큼 독립심이 강했다고 합니다(다른 이유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충분한 보수를 안 줄 것 같아서라고도 하네요). 또 뉴욕은행에서 계속 근무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기어이 퇴직하고 자기 펀드를 만들었을 만큼 도전 정신 또한 대단했습니다(이때 부친은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창의력이 생명이라 여겨 구태여 MBA 과정을 밟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셸비 데이비스 부자(父子) 모두 학부 전공이 역사학이었고, 금융공학 등은 독학으로 마스터했다고 합니다.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청년 시절이었을 때 에드거 로렌스 스미스라는 저술가가 처음으로 "분산 투자의 유효성"을 체계적으로 설파하여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당시 투자 통념을 깼다(p40, p61)고 저자 존 로스차일드는 말합니다. p6의 피터 린치 서문을 보면 역시 그도 셸비 데이비스가 분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저 에드거 로렌스 스미스의 책을 당시(1924)에 셸비 데이비스가 실제 읽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저자의 추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1세대 셸비 데이비스의 아버지 조지 데이비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당시 진짜 돈을 번 사람들은 금광 발견자가 아니라, 식료품이 다 떨어져 허덕거리는 채굴자들에게 통조림 등 보급품을 대던 장사치들이라고 하죠. 조지 데이비스도 반 세기 뒤 앨러스카 골드러시 당시 말에게 먹일 여물을 조달하여 청년 시절 큰 돈을 벌었습니다. 이 사람도 자기 아들(1세대 셸비 데이비스), 자기 손자(2세대 셸비 데이비스 주니어)처럼 프린스턴을 나왔으며 전공은 건축이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주식, 채권 투자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하네요(p36). 


조지 데이비스 역시 상원의원 가문 출신이었으므로 처음부터 풍족한 출발이긴 했으나 언제나 아들에게 근검절약을 가르쳤는데 덕분에 대공황 당시 위기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넘겼다고 합니다. 조지 데이비스는 어린 아들(1세대 셸비 데이비스)에게, 1차 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신문을 거리에서 팔게 할 정도였다고 하니 가정교육의 지독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에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1909년생이라고 나오니(p33), 1차 대전 종전 무렵이면 아이가 고작 열 살도 안 될 무렵입니다. 세상에.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프린스턴 출신 엘리트이긴 했으나 숙맥(p42)에 가까웠고, 이를 알아본 캐트린 워서먼은 이 청년이 자신이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는 결코 접근하지 않으리라는 걸 눈치챘다고 합니다. 이 무렵만 해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자신의 부친 조지처럼 증권 투자에는 무지했다고 하네요(p40). 캐트린 와서먼은 아주 부유한 가문 출신(반면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이무렵 대공황이었던 데다 부친 조지의 감이 떨어져 가세가 기욺)이어서 그야말로 "여성스러운 소양 교육" 외에는 아무 훈련을 못 받았는데도 자진해서 책 외판원 일을 한 후 창의적인 기법을 통해 돈도 많이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단한 아내가 있었으니 부창부수였다고나 해야죠. 단, 셸비 데이비스는 4대째 명문이었지만 와서먼 가문은 캐트린의 부친 요셉이 이주민이고 창업주(직물 제조-소매업)였습니다. 요셉 와서먼은 대공황 시기 사업을 정리하고 대신 다들 꺼리던 정부 채권에 대거 투자했는데 이것이 그의 재산을 지켜 줬습니다. 또 본디 증권에 무관심했던 청년 (1세대) 셸비 데이비스가 장인의 이런 패턴을 보고 뭔가를 배웠을 수도 있습니다. 


"증시든 보험주든 신혼부부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p57)." 제네바에서 박사학위를 밟을 때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라디오 리포터를 하며 경력도 만들 겸 돈을 벌었고, 부부가 여행을 하기라도 하면 그동안 사용하지 않을 방세 내기가 아까워 임차료를 돌려받았고(!) 이 덕분에 새로 집 알아 보느라 수고를 들였다고 하니 참 지독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1세대 셸비 데이비스는 저널리즘 관련 일자리를 얻기 힘들었는데 대공황과 2차 대전 발발의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도쿄 신문사에도 취업을 시도했다고 합니다(p64). 이랬던 그는 처남 빌 와서먼의 권유로 현장 전문가 겸 통계사로 월스트리트에 마지못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 캐트린 와서먼은 부친 요셉을 닮았는지 돈 무서운 줄 알고 열심히 벌고 아끼는 타입이었으나 빌 와서먼은 모친 에디스를 닮았는지 과시적 소비를 일삼았고 대신 한방의 투자 성공으로 언제나 위기에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런 유형이 꼭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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