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홀로 가려는 여행이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와 함께 떠난 여행이였다.

떠오르는 해를 보겠다고 신년이니까 그걸 보겠다고 꽤 거창하게 밤잠 한숨 못자고 차를 달렸다.

그런데 우리는 놀리는지 해는 뜨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해서였을까. 너에게 그런건 어울리지 않으니 들어가 잠이나 자라고 나에게 장난을 치는 거 였을까.

날이 많이 추웠다. 그래서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나를 안아주는 그의 넓은 어깨가 좋았다. 그래서 너무 좋아서 잠깐 틱틱거리기도 했고 혼자 있고 싶어 떠난 여행이였는데 잠시라도 그가 내 곁에 없는 것이 싫었다.

조금씩 시간이 흐를 수록 내가 그를 더 많이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게 사랑한다고 잘 말하지 않지만 어쩌면 단 한번도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여자인지라 그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너 바보냐고 사랑하니까 이렇게 항상 보고싶어하고 보고싶어서 미쳐버릴거 같지라고 했었다.

얼마나 설레던지. 당장이라도 그에게 가서 그의 넓은 가슴팍에 내 온 몸을 기대고 싶었다.

어쩌면 말이다 그와 평생 함께 할지도 모른다.

내꺼하자.라고 말하는 그의 그 나지막한 목소리.

나는 그가 좋다.

그도 내가 좋단다.

우리는 과연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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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자주 죽고싶었다. 참 많이 죽어야겠다 혹은 숨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였다. 그냥 그저 그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자살'이라고 이야기하는 행위를 한적은 없다.

그것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혹은 귀찮은 일이였는 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러한 행위를 한적은 없었다.

그저 잠들기전이나 깨어을때 눈을 감을때 다시는 돌아다니고 싶지 않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지겹다.

이러한 따위의 귀찮음과 괴로움 외로움 우울함으로 인하여 나는 그러고 싶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두렵고 귀찮고 무서웠을때 나는 죽고 싶었다.

그래서 짧은 도피를 했었다. 그것을 누군가는 나의 첫번째 여행이냐고 묻는다.

실제로 내가 그 도피를 했을때 한 독일 남자가 나에게 물었었다.

 

"당신에게 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곳인가요?"

"나에겐 도망처에요."

"도망이요?"

"나는 아주 어리죠. 어쩌면 당신의 첫사랑과 나이가 비슷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난 모든것이 참 많이 두려웠어요. 힘들었고. 나는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내게 익숙하지 않아 다른 것에 내 생각따위에 신경쓰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친거죠"

"그래서 당신은 성공했나요?"

"어쩌면요. 나는 이주동안 어떤 생각도 슬픔도 혹은 죽고 싶다는 생각도 안했으니까요."

 

그 독일 남자는 자신은 음악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노래를 했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잘 마시지 못하는 맥주를 한병 사주었고.

가끔 그를 내가 머물고 있던 방갈로 앞 해변에서 만났다.

그는 아는 척을 하거나 어떠한 인사도 없이 그저 -괜찮다고. 당신은 괜찮을 거라고. 그 나이때는 다 그런거라고- 말했다.

그가 나보다 일주일을 먼저 떠났고 그의 냄새나는 몸을 나는 온몸으로 껴안았다.

내겐 참 고마운 그의 이름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만날수 있다며 그에게 - 아직 살고 있다고 이렇게 웃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제 아주 조금 안정적이다.

떠돌이지만 안정적이라고 말할수 있는 떠돌이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그렇다고 땅도 없고 돈도 없지만 이제는 참 많이 행복하다고 말 할수 있다.

18살. 내가 죽고 싶었고 그래도 괜찮다고 믿었을 때 난 아마 사춘기였을까.

그게 십여년을 계속되었으니 참 오래동안 나는 방황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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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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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까지 와준 한권의 책과 한 사람.

나는 가을을 타는 사람이 아니다.

외롭지 않았던 적이 없어서 외롭다는 것이 어떤건지 조금씩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앞에 당신이 적어놓은 글 귀를 보며 나는 조금은 울었다.

 

 -우리 가을엔 이별하지 않기로 하자. 넌 추위를 많이 타니 겨울에도 조금은 참기로 하자. 그리고 봄이 오면 그때도 그러고 싶다면 그땐 내가 너를 조금 더 이해하기로 할게.-

 

당신은 항상 이런 사람이다.

나는 발리의 작은 마을에 정착했고 이곳엔 가을이라 할것도 여름이라 할것도 겨울이라 할것도 봄이라 할것도 없다.

그런데 당신은 이런 사람이다.

내게 책한권 주겠다고 이곳까지 아무렇지 않게 와 활짝 웃어주는 이다.

당신의 마음이 좋아 읽어 내린 책.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다 있다며 환하게 웃던 당신이 나는 조금 원망스러웠다.

나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니 그저 책은 어때?라고 묻는 당신이 있어 나는 똑같이 웃어보인다.

비행기 위에서 당신은 까만 밤 동안 먼저 책을 읽고 왔다는 걸 안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잘 안다는 것이 조금은 무섭다.

무서운 것이 이런거라 더욱더 좋다.

당신 이제 나와 함께 여기서 살면 안될까.

돌아가서 그렇게 외로워할거라면 그냥 여기서 나랑 이렇게 살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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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라고 둘이 앉아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탕수육이랑 고량주 한병이요"

 

밖에 나갈까 하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고 나는 문득 외롭다고 생각했다.

너무 외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생각하다 잠들었다.

오랜만에 악몽이었다. 악몽 속에 나는 무엇이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손길에 나는 놀라 잠에서 깼다.

무섭고 무서운 악몽이었다.

술을 마셔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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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우는 사람이였다. 정말 이렇게도 잘 울수 없을 정도로 나는 잘 우는 사람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래 19살. 내가 흔들리고 방황하며 아침이면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에 분노하던 그때부터 나는 타인의 앞에서 울지 않았다.

그저 피아노 옆 좁은 공간에 초록의자를 하나 사 놓고 홀로 그렇게 울었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 타인에게 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19살 이른 나이에 나는 홀로 살아야 했고 그 넓은 집에 덩그러니 남았다.

함께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죄인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로 인해 이 모든 것들이 다가왔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였을까. 부모는 내게 같이 가자고 나와 함께 가자고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홀로 남았다. 외롭다는 걸 안건 아마 그때부터 일까. 아니면 나만 홀로 남겨졌다고 느끼던 조금 이른 중3 무렵일까.

나는 왜 이렇게 외로워해야 하는 걸까.

이제 세상엔 나 홀로 남았다.

가족이라 할 것 없이 나는 홀로 남아 외롭다. 내가 울면 괜찮다라고 이야기 해줄 가족이 처음부터 없었는지 이제야 없어진 건지 나는 모르겠다.

 

어제밤 한참을 울다 문득 이 집을 이제는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포근해 보인다는 이유로 샀던 회색 소파. 삼나무로 만들어 향이 난다는 책장.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많은 책들.

내게는 너무나도 큰 6인용 식탁. 조율이 안된 오래된 피아노. 여행하며 깨질까 불안해하며 사 온 모로코 화병.

외로울까 무서워 크지 않은 침대. 어지러운 책상. 그것보다 더 어지러운 내 머릿속.

이 모든 것들을 이제는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옛날에 한 사람을 알았다. 그녀는 눈 웃음이 매력적이였고 말투가 나와 같았으며 붉은 머리에 각진 얼굴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녀를 참 많이 사랑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아직도 내가 그녀를 참 많이 사랑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세상에서 떠나던날 나는 울지 못했다. 잔인하게도 나는 울 수없었다. 그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내게 줄것이 있지 않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받아야 할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녀가 내게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그리고 내가 그녀를 사실 조금은 원망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친구에게 갔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을 친구에게 갔었다. 나를 안아주거나 나를 위로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을 내 친구에게 갔었다.

참 긴 여행이었다.

공항에서 나를 보고 친구는 저벅저벅 걸어와 밥 먹자며 배고파보인다며 내게 밥 먹자고 하는 친구가 얼마나 고맙던지.

밥을 먹는 건지 짜고 찌릿한 내 눈물을 먹는 건지 모르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울던 나.

나는 그렇게 참 많이도 친구의 곁에서 울었다.

항상 든든하던 내 친구는 아직도 날 불안해하고 나는 친구를 걱정하고.

이렇게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해야겠다.

 

이 집을 정리하면 어쩌면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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