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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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1년도에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알랭 드 보통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외국 작가라고 하니, 정확한 판매 부수는 모르겠지만 아마 상당히 많은 부수의 판매고를 올렸을 것이다.

그런 책을 발매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에야 읽어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왜 이렇게 인기가 있으며 왜 그렇게 인구에 회자되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전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인기에 힘입은 유명세 덕분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이 인기가 있다고 하면 너도나도 우르르 따라 하는 군중심리가 발동된 것일 수도 있겠으며, 2011년 당시 '낙수효과'나 '신자유주의'같이 능력주의가 팽배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개인의 불안이 책의 구매로 직접 반영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마치 주장이 실리지 않은 대학원생의 박사 논문을 읽는 것 같은 생각을 계속하며 여하튼 책을 완독하였다. 보통은 <불안>에서 불안의 원인을 5가지로 분석하고 해결책도 5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원인의 제시와 해결책의 근거가 그동안 꽤나 유명한 철학자들의 주장을 이것저것 짜깁기하여 나열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견이 피력되지 않은 대학원생의 논문은 통과되기 어렵기 마련인데, 보통은 그 유명세로 인하여 막대한 판매고를 올리고 상당한 자본도 획득했을 것이니, 그는 아마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보통의 <불안>에서 다루는 불안은 '지위에 의한 불안'으로 한정하여 다루었다. 이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마 이 책이 인기가 있었던 가장 주효한 원인이 현대인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다 수긍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안되었을 뿐이지, 인생을 어느 정도 살고 자기 호구지책을 스스로 하는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 생각은 다 했을 법한 원인들이다.

다만, 삶에 찌든 직장인과 현대인은 이것을 보기 좋게 잘 차려낼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중에서 내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기대'였다. '기대'에서 보통은 사람들의 '질투'에 대하여 주로 다루었다.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대를 갖고 있는 자신보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타인-특히 잘 아는 친구-이 더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은 좌절을 느끼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며 갑자기 세상이 회색빛으로 우울하게 보이는 것이다. 좌절과 상처 난 자존감과 회색빛 우울은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이러다 내가 재보다 더 뒤처지면 어쩌지? 빨리 따라잡아야 하는데."라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따라잡는 게 가망이 없어 보이면 그 친구 험담을 하게 된다.

"겉으론 잘나가는 듯하지만, 가정에 분명 뭔가 문제가 있을 거야. 쯧. 일이 잘 되면 뭘 해? 집안이 안 풀리는데 말이야."

책이 발매된 당시보다 지금이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인스타를 비롯한 각종 SNS에서 타인의 일상이 공개되고 그 일상이 파스텔 빛으로 화려하고 빛나게 포장되어 있으므로 스스로 잘 났다는 기대는 무너지고 타인보다 뒤처진다는 불안이 갈수록 팽배해진다.

보통의 <불안>은 그런 면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을 법한다.

보통은 원인을 다섯 가지 둔 것처럼 해결책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철학은 '이성'을 말한다. 앞서 말한 원인들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을 앞세워서 불안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철학자들의 유명 문구들을 책 곳곳에 포진하였다. 보통의 말은 별것 없지만, 철학자들의 송곳 같은 말들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예술은 '공감'을 일컫는다. 이성만으론 부족하다. 불안을 잠재우는 데는 가끔 이성이 필요하지만 대개 공감과 따뜻한 감성이 필요하다. 고대로부터 노래와 연극과 미술이 지속, 유지, 발전되고 있는 이유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피아노'를 5년 안에 꼭 배우리라 다짐을 하였다.

불안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해소하는 방법은 거의 ott나 유튜브나 활자뿐인데, 나도 멋들어지게 악기 하나쯤 다루며 감성을 어루만져서 불안을 누그러뜨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짐하고 독서토론 멤버들에게 공개 서약을 하였다.


정치는 '복지'를 의미한다고 나는 해석했다. 이것은 능력주의와 연결되어 있는데, 무한히 능력만을 강조하면 사회의 불평등이 악화되고 양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역사에서 우리는 사회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사회가 붕괴되거나,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르는 것을 목격하였다.

고로, 일정 부분의 비용을 치루더라도 복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사회적 불안'이 완화되어 개인의 불안도 덩달아 개선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특정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지칭하는 것이다. 온갖 불안에 시달리고 타인과 비교를 하다가도, 막상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는 가정을 하면, 현생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불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헤미아는 가치를 부와 소유에 두지 않고 개인의 영혼의 성장과 자유에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책을 보니, 나는 벌써 보헤미아적인 생각과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벌써 다섯 가지 중 해결책 하나는 실천을 하고 있었다. 장하다!


해결책을 다섯 가지 제시하기는 했지만, 보통은 구체적 방법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래로 자주 언급된 유명한 사람의 유명한 말을 적합한 곳에 적절히 언급하였을 뿐이다. 여기에는 쇼펜하우어도 나오고, 마르크스도 등장하며, 랄프 왈도 에머슨도 인용되었고, 톨스토이, 몽테뉴, 버나드 쇼, 라브뤼예르, 루소... 그 외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불안'을 해소하는 말들로 잠깐씩 등장한다.


자료를 찾고 적절한 것을 인용하는 수고를 하였겠지만, <불안>이라는 거대 화두를 다루기에는 내게는 불만족스럽다. 지인에게 굳이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의 가장 말미에 보통의 주장 같은 문구가 나오는데 그 말을 나도 인용하면서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재우고자 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보헤미안들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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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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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미래 사회가 조그만 플라스틱 원반을 모으는 대가로 사랑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오래지 않아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으로 인해 열렬한 갈망을 느끼기도 하고 불안데 떨기도 할 것이다. - P17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 P22

화려한 장식을 과시하는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존경을 받았다.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 P38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 P57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 P65

예외가 규칙이 될 수는 없었다. - P67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 P78

우리는 조상보다 휠씬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디ㅏ. - P80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 P114

지위가 성취에 의존한다면 성공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것은 재능과 그 재능을 믿을 만하게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활동에서 재능은 우리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재능은 한 동안 우리 손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그간의 성공마저 물거품으로 만들곤 한다. 우리는 최고의 능력을 우리 마음대로 전면에 내세울 수 없다. 우리는 가끔씩만 재능을 보여줄 뿐, 평소에는 그런 재능의 소유자답지 못하게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의 성취의 많은 부분은 외적인 힘이 준 선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변덕스럽게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그 힘에 의해 우리의 인생 경로와 경제적 능력이 결정되는 셈이다. - P118

"우리는 언젠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적과 함께 살아야 하고, 언제 원수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친구와 함께 살아야 한다." (라브뤼예르) - P124

철학은 외부의 의견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한다. - P147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그러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을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철학적 염세주의의 중요한 모범을 보여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 P155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 P157

"예술이 사람의 공감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조지 엘리엇은 그렇게 생각했다. - P176

높은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계속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지위에 대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들도 바뀌어간다. - P227

수많은 외적 사건과 내적인 특징이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든다. 운과 환경도 있고, 병과 공포도 있고, 우연과 뒤늦은 발달도 있고, 적절한 시운과 불행도 있다. - P238

"나는 우연히 능력보다 앞서서, 한참 앞서서 행진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미셀 드 몽테뉴) - P238

실제로 벌어지는 일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 P238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 P256

"그래, 이제 똑같은 일이 나한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
피요트르 이바노비치는 생각했다. 잠시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즉시,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자신도 몰랐지만,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난 일이며,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것, 만일 그런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우울해 질 것이라는 관습적인 생각을 구원을 받았다." - P272

우리는 우리의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 P293

보헤미안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우아한 집이나 옷을 살 수 있는 능력보다 당연히 더 중요했던 것은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감정의 주요한 저장소인 예술에 관람자나 창조자로서 헌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 P329

돈이 없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에너지를 사업 말고 다른 활동에 쏟는 쪽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현금이 아닌 다른 것에서 부유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 P337

"인간은 모름지기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 - P345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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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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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당신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나아가던 도중에 다신 스스로의 구도 행위로부터, 생각을 통하여, 침잠을 통하여, 인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얻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 P55

"친구분, 그대는 재치 있게 말을 할 줄 아는군요.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똑똑하지 않도록 경계하시오!" - P57

그는 여러 가지로 깊이 생각하여 보았으며, 마치 깊은 물 속을 뚫고 맨 밑바닥까지 들어가듯이 이러한 느낌의 맨 바닥까지, 그러한 느낌의 원인이 도사리고 있는 맨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갔다. 그렇게 한 까닭은,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생각이라고 여겨졌으며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느낌이 인식으로 바뀌어져서 사라지는 일이 없이 본질적인 것이 되고 그 인식 속에 있는 것이 빛을 바라기 시작할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 P59

싯다르타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계획을 세우면 바로 그렇게 되지요. 싯다르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요. 그는 기다리고, 그는 사색하고, 그는 단식을 할 뿐이지요. 그러나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몸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마치 물 속을 뚫고 내려가는 그 돌멩이처럼, 세상 만사를 뚫고 헤쳐나가지요. 그는 이끌려가면 이끌려가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놔두지요. 그의 목적이 그를 잡아당기지요. 애냐하면, 그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자기 영혼 속에 들여보내지 않기 때문이오. 이것 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마귀들이 부린 조화라고 말들 하지요. 아무것도 마귀들이 조화를 부려 생겨나는 것은 없지요, 마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술을 부릴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소. - P93

"당신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요? 당신이 배운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지요?"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 " - P97

당신의 내면에는 당신이 매순간마다 그 속에 파고들어가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그런 고요한 은신처가 하나 있어...그런 은신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안되지. - P107

"너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그는 혼잣말을 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릭 그렇게 혼잣말을 할 때 그의 시선은 강물 쪽을 향하였는데, 강물 역시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을, 언제나 밑으로 흘러 내려가면서 노래 부르고 흥겨워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 P139

싯다르타는 자기 아들이 옴으로써 자기에게 행복과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고통과 근심 걱정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소년을 사랑하였으며, 그 소년이 없이 평화와 행복을 누리느니 차라리 그 소년 때문에 사랑의 고통을 겪고 사랑에서 비롯된 근심 걱정을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다. - P171

당신이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던 것은, 당신 아들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신은 설마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중략)...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는 일, 그러한 삶으로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 스스로 자신에게 죄업을 짊어지게 하는 일, 스스로 쓰디쓴 술을 마시는 일, 스스로 자신의 기릉ㄹ 찾아내고자 하는 일, 그런 일을 못하게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친애하는 친구여, 이러한 길이 어느 누구한테는 혹시 면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이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신이 어린 아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 아이에게는 제발 번뇌와 고통과 환멸이 면제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기 때문에, 당신 아들에게는 그 길이 혹시 면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믿고 있는 겁니까? 그렇지만 설령 당신이 아들 대신 열 번을 죽어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아이의 운명을 눈곱만큼이라도 덜어줄 수는 없을 겁니다. - P177

친구여, 그 아이는 그대로 도망가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하여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 아이는 시내로 가는 길을 찾아나설 터인데, 그 아이로서는 당연한 일이에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아이는 당신이 해주어야 하는데 소홀하여 해주지 않았던 바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 P182

스님은 지나칠 정도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구도 행위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 P202

누군가 구도를 할 때는, 그 사람의 눈은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을 보게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결과가 생기기 쉽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은 오로지 항상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그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지요. - P203

내가 얻은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 P206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 P206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 말이란 신비로운 참뜻을 훼손해 버리는 법일세. 무슨 일이든 일단 말로 표현하게 되면 그 즉시 본래의 참뜻이 언제나 약간 달라져 버리게 되고, 약간 불순물이 섞여 변조되어 버리고, 약간 어리석게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야. - P211

자네의 그 위대한 스승의 경우에 비추어보더라도 나에게는 말보다는 사물이 더 마음에 들며, 그 분의 행위와 삶이 그 분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며, 그 분의 손짓이 그 분의 사상들보다 더 중요해. 나는 그 분의 위대성이 그 분의 말씀, 그 분의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분의 행위, 그 분의 삶에 있다고 생각해.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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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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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 P36

역사가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건을 선택해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사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어떤 사건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서술 대상의 차이가 아니라 역사의 대사건을 서술하면서 취한 두 역사가의 태도다.......그들이 어느 한쪽을 감정적으로 편들었다면 사실을 편향되게 기록하고 해석했을 것이고,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인류의 문화 자산이 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 P39

역사가는 때로 사료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 P45

그들의 책은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혔을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 P48

독해가 어려운 것은 낯선 정보가 너무 많아서다. 모르는 정보가 많으면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고,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텍스트에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 P51

역사는 사실을 쓴 이야기이고 언어로 재현한 과거이다. - P51

우리가 옛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극적인 사건과 기담과 인물 캐릭터의 보물 창고여서 소설가와 영화 제작자들은 거기서 인간과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찾아낸다. - P51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려는 욕망이 우리 인류의 본성. - P59

사마천은 황제와 고관대작들의 행위에 관한 사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천하와 시대의 과거를 재현할 수 없다고 보고, 구전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단서로 삼아 뛰어난 인물의 행적을 분석하고 평가함으로써 당대의 사회상을 구석구석 구려 보았다. ......사실위에 상상력을 적절하게 덧입혀야 이런 글이 나온다. - P73

"역사책을 집어 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가 때로는 휠씬 더 많은 것을 누설한다." 카의 밀이다. - P97

이슬람 세계의 불행은 교리 그 자체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세속의 왕이 된 데서 비롯했다. - P107

그는 평생 과거를 들여다보았지만 현재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현재를 직시하재 못했으니 미래를 옳게 예측할 수도 없었다. - P134

역사가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수집할 수 없다. 유적과 유물은 과거의 파편을 보여줄 뿐이다. 문헌 기록 역시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일부 사실만 담고 있다. 게다가 역사가는 사료를 통해 수집한 사실을 전부 기술하지 않으며, 아는 사실을 다 기술한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가는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중심으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사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다면 역사가는 어떤 기준으로 중요한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나누며, 어떤 원칙으로 의미 있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구분할까? 만인이 동의할 수 있는 완전무결하고 합리적인 기준이 있는가? 없다. 역사가는 저마다 다른 기준에 따라 중요한고 의미 있는 사실을 선택하며 같은 사실로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사실의 선택은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 영역에 속하며, 역사가의 주관은 개인적 기질, 경험, 학습, 물질적 이해관계, 사회적 지위, 역사 서술의 목적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좌우한다. - P137

역사가는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노련한 과학수사대 요원과 법의학자가 사신을 다루는 자세로 역사의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
......
랑케는 역사의 사실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쓴 책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귀중한 문헌을 보관하는 도서관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것이다. - P141

역사가는 역사의 사실을 수집하고 검토해 이 법칙으로 인간과 사회의 과거를 잘 설명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옳다고 여기는 점은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점은 비판하면 된다.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은 사회의 과거를 해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변화시킬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 P151

결국 이것은 논증이 아니라 희망 사항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19세기에는 경제학과 사회학이 초보적 발전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이론을 승인하거나 배척하는 데 필요한 실증적 데이터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해관계와 직관적 판단에 따라 그것을 수용하거나 배척해야 했다. - P161

‘조선상고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압록강 남쪽에 가두어 버렸던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치열한 투쟁이었다. - P192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마음의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 P192

얼마나 풍부한 정보를 가졌는지에 따라 ‘아는 수준‘이 달라진다. - P227

정확성은 역사가의 의무일 뿐 미덕이 아니다. 정확하다고 해서 역사가를 칭찬한다면 잘 말린 목재와 적절하게 섞은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다고 건축가는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것은 건축의 필요조건이지 건축가의 본질적인 기능은 아니다. 그런 일이 필요할 때 역사가는 이른바 역사학의 보조 학문인 고고학, 금석학, 고전학, 연대측정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모든 저널리스트는 적절한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사실이 스스로 이야기한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 역사가가 이야기할 때만 사실은 말을 한다. 어떤 사실에게 발언권을 주며 서열과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게 역사가다. 사실이란 자루와 같아서 안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한다. - P229

역사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며, 역사가는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 P229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선언했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만약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실인지 역사가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P232

카는 역사가 과학이 될 수는 없지만 탐구 대상은 과학과 다르지 않으며, 사실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합리적 해석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역사를 과학적으로 만드는 열쇠라고 주장했다. - P237

역사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일했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동화책 대신 영국 역사를 읽어 주었다. - P253

토인비의 이론에 따르면, 문명은 외부 환경의 도전에 대한 성공적 응전의 산물이며 탄생한 후에도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문명은 응전에 성공하면 성장,발전하고, 실패하면 쇠퇴하며, 실패한 응전이 계속될 경우에는 해체된다. - P259

역사가는 과거를 탐사하지만 그들의 눈이 향하는 곳은 현재와 미래인 경우가 많다. - P263

기술과 제도와 문화의 차이도 그 원인을 추적하면 결국 환경의 차이에 귀착된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다이아몬드의 대답은 간단 명료하다. "우연히!" 또는 "운이 좋아서!" - P291

‘총,균,쇠‘는 역사학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받아들인 과학자의 역사책이고, ‘사피엔스‘는 과학자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받아들인 역사학자의 역사책이다. - P299

하라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생물 종의 진화적 성공이 그종에 속한 개체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P304

"7만 년전 아프리카 한구석에 살았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되었고 이젠 신이 되려느 ㄴ참이다. 그들은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지만 불행하게도 자랑스러운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것을 이룬 적이 없다. 환경을 정복하고, 식량 생산을 늘리고, 도시와 제국을 세우고, 넓은 교역망을 구축했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하지 못했고, 다른 동물에게는 큰 불행을 안겨 주었다. 우주왕복선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힘은 세지만 책임 의식은 없고, 안락함과 즐거움만 추구하면서도 만족할 줄 모른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은 많고 책임은 지지 않는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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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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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당하게 궁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4

"그래도 사람은 개가 젤 낫아야."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 P47

서른 넘어 친구 짖ㅂ들이에서 처음 위스키를 마셨다. 오크향은 달콤했고 목 넘김은 황홀했다. 마셔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원히 술과 맞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한계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는 해방 전후의 한계와 여전히 맞서 싸우는 중이었고, 그사이 세상은 훌쩍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 P70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 P137

"지한테 득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는 것이 민중이여. 민중이 등을 돌린 헥멩은 폴쎄 틀레묵은 것이제."
늙은 아버지는 알았지만 젊은 아버지는 몰랐다. 그래서,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살기 위해서, 아버지와 그의 동지들은 입면 어느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사회주의에 등을 돌린 민중들 또한 자신들이 살기 위해 악착같이 식량을 숨겼으므로 몇시간을 뒤졌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쌀 한 줌과 동지의 목숨을 맞바꿔야 하는 보급투쟁이었다. - P175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삶을 부러워 미웁기도 했던 것이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231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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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 2023-05-2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