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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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1년도에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알랭 드 보통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외국 작가라고 하니, 정확한 판매 부수는 모르겠지만 아마 상당히 많은 부수의 판매고를 올렸을 것이다.

그런 책을 발매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에야 읽어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이 왜 이렇게 인기가 있으며 왜 그렇게 인구에 회자되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전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인기에 힘입은 유명세 덕분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이 인기가 있다고 하면 너도나도 우르르 따라 하는 군중심리가 발동된 것일 수도 있겠으며, 2011년 당시 '낙수효과'나 '신자유주의'같이 능력주의가 팽배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개인의 불안이 책의 구매로 직접 반영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마치 주장이 실리지 않은 대학원생의 박사 논문을 읽는 것 같은 생각을 계속하며 여하튼 책을 완독하였다. 보통은 <불안>에서 불안의 원인을 5가지로 분석하고 해결책도 5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원인의 제시와 해결책의 근거가 그동안 꽤나 유명한 철학자들의 주장을 이것저것 짜깁기하여 나열한 것 이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견이 피력되지 않은 대학원생의 논문은 통과되기 어렵기 마련인데, 보통은 그 유명세로 인하여 막대한 판매고를 올리고 상당한 자본도 획득했을 것이니, 그는 아마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보통의 <불안>에서 다루는 불안은 '지위에 의한 불안'으로 한정하여 다루었다. 이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마 이 책이 인기가 있었던 가장 주효한 원인이 현대인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다 수긍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안되었을 뿐이지, 인생을 어느 정도 살고 자기 호구지책을 스스로 하는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 생각은 다 했을 법한 원인들이다.

다만, 삶에 찌든 직장인과 현대인은 이것을 보기 좋게 잘 차려낼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중에서 내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기대'였다. '기대'에서 보통은 사람들의 '질투'에 대하여 주로 다루었다.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대를 갖고 있는 자신보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타인-특히 잘 아는 친구-이 더 잘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은 좌절을 느끼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며 갑자기 세상이 회색빛으로 우울하게 보이는 것이다. 좌절과 상처 난 자존감과 회색빛 우울은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이러다 내가 재보다 더 뒤처지면 어쩌지? 빨리 따라잡아야 하는데."라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따라잡는 게 가망이 없어 보이면 그 친구 험담을 하게 된다.

"겉으론 잘나가는 듯하지만, 가정에 분명 뭔가 문제가 있을 거야. 쯧. 일이 잘 되면 뭘 해? 집안이 안 풀리는데 말이야."

책이 발매된 당시보다 지금이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인스타를 비롯한 각종 SNS에서 타인의 일상이 공개되고 그 일상이 파스텔 빛으로 화려하고 빛나게 포장되어 있으므로 스스로 잘 났다는 기대는 무너지고 타인보다 뒤처진다는 불안이 갈수록 팽배해진다.

보통의 <불안>은 그런 면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을 법한다.

보통은 원인을 다섯 가지 둔 것처럼 해결책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철학은 '이성'을 말한다. 앞서 말한 원인들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을 앞세워서 불안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갖 철학자들의 유명 문구들을 책 곳곳에 포진하였다. 보통의 말은 별것 없지만, 철학자들의 송곳 같은 말들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예술은 '공감'을 일컫는다. 이성만으론 부족하다. 불안을 잠재우는 데는 가끔 이성이 필요하지만 대개 공감과 따뜻한 감성이 필요하다. 고대로부터 노래와 연극과 미술이 지속, 유지, 발전되고 있는 이유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피아노'를 5년 안에 꼭 배우리라 다짐을 하였다.

불안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해소하는 방법은 거의 ott나 유튜브나 활자뿐인데, 나도 멋들어지게 악기 하나쯤 다루며 감성을 어루만져서 불안을 누그러뜨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짐하고 독서토론 멤버들에게 공개 서약을 하였다.


정치는 '복지'를 의미한다고 나는 해석했다. 이것은 능력주의와 연결되어 있는데, 무한히 능력만을 강조하면 사회의 불평등이 악화되고 양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역사에서 우리는 사회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사회가 붕괴되거나,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르는 것을 목격하였다.

고로, 일정 부분의 비용을 치루더라도 복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사회적 불안'이 완화되어 개인의 불안도 덩달아 개선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특정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지칭하는 것이다. 온갖 불안에 시달리고 타인과 비교를 하다가도, 막상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는 가정을 하면, 현생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불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헤미아는 가치를 부와 소유에 두지 않고 개인의 영혼의 성장과 자유에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책을 보니, 나는 벌써 보헤미아적인 생각과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벌써 다섯 가지 중 해결책 하나는 실천을 하고 있었다. 장하다!


해결책을 다섯 가지 제시하기는 했지만, 보통은 구체적 방법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래로 자주 언급된 유명한 사람의 유명한 말을 적합한 곳에 적절히 언급하였을 뿐이다. 여기에는 쇼펜하우어도 나오고, 마르크스도 등장하며, 랄프 왈도 에머슨도 인용되었고, 톨스토이, 몽테뉴, 버나드 쇼, 라브뤼예르, 루소... 그 외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불안'을 해소하는 말들로 잠깐씩 등장한다.


자료를 찾고 적절한 것을 인용하는 수고를 하였겠지만, <불안>이라는 거대 화두를 다루기에는 내게는 불만족스럽다. 지인에게 굳이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의 가장 말미에 보통의 주장 같은 문구가 나오는데 그 말을 나도 인용하면서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재우고자 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보헤미안들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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