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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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가 알려 준 팁이었다. 내 슬픔을 남이 같이 슬퍼한다면 기쁜 일이라고. 마이너스 마이너스 이퀄 플러스의 원리라고 했다. - P79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펑범함을 바라지. - P90

감독이 없으면 선수는 해이해진다. 내 뇌도 생긴대로 놀았을 뿐이다. - P129

-친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거죠?
-예를 들어, 이렇게 너와 내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특별히 돈이 오가지 않는데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이런 게 친한 거란다. - P130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 P132

스케이트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지는 못할거다.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이다. - P160

내 머리는 형편없엇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 P172

-근데 엄마, 그거 무슨뜻인지 알고나 쓰는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궃게 물었다.
-예쁨의 발견 - P179

나한테 그건 있지, 살아서 뭐하려고, 하는 질문이랑 비슷해. 넌 무슨 목적이 있어서 사니? 솔직히 그냥 살잖아. 살다가 좋은 일 있으면 웃고 나쁜 일 있으면 울고. 달리기도 마찬가지야. 1등하면 좋고 아니면 아쉽겠지. 실력 없으면 자책하고 후회도 하겠지. 그래도 그냥 달리는 거야. 그냥! 사는 것처럼, 그냥! - P186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 P245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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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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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권장도서라는데 나는 이런 소설이 있는줄도 몰랐다. 여기 저기 뛰어다니며 배우다보면 수업 자체에서도 배울것이 있지만 수업외적으로 솔솔히 건지는것이 많다. 이것이 배움과 만남의 큰 기쁨이 아니겠는가?

독서토론리더수업의 두번째 책으로 다음 수업때까지 읽어가야했다. 아몬드는 손원평이 쓴 청소년문학으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인물로는 주인공 석윤재 그의 친구 윤이수 혹은 곤 그리고 이도라이고 이들 주위에 어른으로 심박사 윤교수 윤재의 엄마와 할멈이 있다.

윤재는 태어날때부터 아몬드처럼 생긴 뇌의 편도체에 문제가 있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과 공감을 나누지못한다. 윤재의 엄마는 6살무렵 부터 윤재에게 감정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사람들 눈에 띄지않는 방법을 가르치며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나름 행복하게 살고있다.

윤재의 17번째 생일날이자 크리스마스 이브 날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게된 윤재는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거기서 곤이라는 친구를 사귀게되고 도라라는 육상선수를 꿈꾸는 여자친구도 사귀게된다. 윤재와 달리 곤이는 감정이 너무도 풍부한 문제아. 완전히 다른 성향인 둘은 부딪히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며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는 곤이는 가출하여 나쁜 형에게 가는데 곤이를 구출하기위해 목숨까지 거는 윤재는 이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한 단계 성장한다.

25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 소설은 청소년 문학이라 그런지 너무도 쉽게 술술 읽혀서 단 몇시간 만에 읽어버렸다. 작가는 아이가 태어난 2013년에 초고를 완성하고 몇번이나 수정과 퇴고를 거듭하여 소설은 2016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보니 이제는 소설을 읽어도 전과 읽는 것이 다르다. 전에는 그냥 스토리라인만 따라가고 캐릭터의 매력만을 감상했는데 이제는 단어 하나 하나를 음미하고 문장의 표현을 유심히 본다. 기발한 레토릭을 보면 감탄을 함과 동시에 작가는 어떻게 이런 표현을 떠올렸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전체 스토리가 어떤지 기승전결은 어찌되는지 갈등구조는 무엇인지 소재는 어떻게 선정했는지 집필에 얼마나 걸렸는지, 이 모든 것이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읽으려니 속도가 더디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은 어느 순간 몰입되어 이런 자질구레한(?) 나만의 고민은 순간 사라지고 독자인 나만 남아 독서를 하고있다. 서사의 위대한 힘이리라.

어찌보면 단순한 스토리인데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묘사에 공감을 만들고 전개에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연습을 해야 자연스럽게 이 경지까지 오를 것인가.

작가는 이 작품의 완성에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이 이전에 다른 습작의 시간은 더 많았을것이다.(많아야만 한다. 아니라면 나는 또 좌절ㅜㅜ)

여느때라면 책을 일고 인물과 스토리와 감상이 주를 이루었겠지만 분량이 그나마 적은 청소년소설이라 그런가 책 자체보다는 책의 작법과 창작의 비법에 더 신경이 가는 작품이었다.

 

아무튼, 책은 재밌다.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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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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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인 저자가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복수의 아이덴디티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갖게 된 혼란의 이유를 알수 있다. 그리고 작자가 애초에 마음을 뺏긴 우리 6~80년대 좋은 시들을 작가가 좋아하게 된 배경과 함께 다시금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책으로서 기대에 조금 못미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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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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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는 나에게 지하실의 조그만 ‘창‘이었다. 작은 창은 벽 높은 곳에 있어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지만, 하늘의 변화나 공기가 흐르는 낌새를 느낄 수는 있다. 손이 닿지 않아 거기서 도망쳐버릴 수는 없지만 바로 그 작은 창이 있어서 살 수 있었다. - P50

나는 ‘목격자‘이고자 했다. ‘목격자‘는 방관자가 아니다. ‘목격자‘는 언젠가 증언한다. 그리고 나는 ‘목격‘으로부터 증언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자, 나는 증언했다. 내일이면 이미 나는 ‘목격자‘에 머물러 있진 않으리라. - P82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고향>에서 인용 - P108

위험한 지역에 그대로 머무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만들어지 ㄴ위로의 진실에 매달리려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서 거리가 떨어진 이들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고 거리가 가까운 이들은 고통스러운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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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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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 년전 읽었던 멋진 신세계를 독서모임에서 다시 읽었다. 혼자 읽을 때와 같이 읽을 때는 그 느끼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함께 읽기를 하고 굳이 불편을 감수하고 독서 토론과 독서 클럽을 조직하는 것일게다.

 

멋진 신세계는 올더시 헉슬리가 1932년에 쓴 미래 세계를 예언하듯 그린 소설이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미래 과학 문명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한 소설로 읽어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묘사와 장면들이 여기 저기 많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본 사회와 인물들이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와 매트릭스 안에서 살며 진실의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네오(키아누 리브스)일행을 잡으려는 스미스 군단-생김도 똑같고 역할도 똑같은 스미스들을 우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볼 수 있다.

 

멋진 신세계에는 여러 계급이 있다. 제일 지적인 일을 담당하는 알파와 베타, 육체 노동과 잡일 담당하는 감마와 델타, 사회의 하층 계급으로 가장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 앱실론. 알파 계급의 경우 생김이 다양하지만 하위로 갈수록 생김의 종류가 단순하다. 그래서 앱실론 계급은 수 만명의 사람(과연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이 단지 서너 종류의 외모만을 갖고 있고 생김에 차별이 없어서 매트릭스의 스미스처럼 보는 것만으로는 구별을 할 수 없다. 매트릭스에서처럼 개체는 인공 부화로 태어나 부모가 없고 개인적 인연이 없다. 모든 교육은 국가가 계획하에 시행된다. 모든 것이 계획되고 통제되어-심지어 아름다움까지도-불안과 불안정이 없다. 이것이 신세계이다.

 

몇 년전 베스트셀러였던 기억전달자(The Giver)에서 모든 불안과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평안과 편안만이 존재하는 세상 역시 멋진 신세계에 존재하는 세계이다. 전쟁, 기아, 고통, 불행, 이별, 슬픔, 눈물이 없어진 세상에서 이것들은 오직 기억전달자로 선정된 사람만이 세대를 거쳐 기록도 영상도 아닌 기억만으로 전달되고 남겨지고 있다.

멋진 신세계에는 기억전달자가 아닌 포드님(하느님과 같은)이라고 불려지는 통제관이 바로 그 역할이다. 그는 과거를 알고 문학을 알고 과학을 알지만 오직 그만 가지고 있고 신세계는 이것이 배제된 사람의 역할과 감각과 순간의 즐거움만이 존재한다. 신세계에는 "오늘 누려도 되는 즐거음을 내일로 미루지마라"라는 말이 지배한다. 항상 욕망을 충족한다. 그래서 욕망과 욕구가 없다. 결핍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면 기시감을 느낀다. 어디서 본 것이고 어디서 들은 것이다. 제목은 멋진 신세계이지만 작품 내용은 하나도 신세계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언뜻보면 소재와 주제의 재탕 삼탕같아서 실망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기시감의 원류는 바로 이 '멋진 신세계'다. 이 소설은 1932년에 나왔다. 지금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봐온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컨텐츠들은 실은 멋진 신세계가 그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전혀 아니다. 영화 매트릭스, 가타카, 블레이드러너, 아일랜드 등 인간 복제, 편리와 편안, 고뇌가 없는 세상 등 전부 신세계에서 다룬 아이템들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본다면 그 당시에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써내려갔을까하는 생각에 그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신세계는 이런 사회이다.

 "사회적인 불안정이 없으면 비극을 생산할 길이 없으니까요. 세계는 이제 안정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때문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내나 아이들이나 연인 따위의 강한 감정을 느낄 대상도 없고, 마땅히 따르도록 길이 든 방법 이외에는 사실상 다른 행동은 하나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P333)

 

신세계의 포드님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만일 행복에 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신세계에 행복은 없다. 다만 즐거움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행복과 즐거움은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일상이 늘 똑같이 편안할 때 행복을 늘 느끼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때는 어제보다 더 즐거울 때, 어제 고통과 번뇌가 찾아들었는데 오늘 그것이 사라졌을 때 힘든 노동을 인내하고 잠시의 휴식을 가질 때 우리는 보통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즉, 반드시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은 인간은 바닥이 있어야 고점이 있고 고통이 있어야 행복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거다. 그래서 지금 내가 행복하더라도 남을 돌아볼 줄 알고 겸손할 줄 아는 것이고 반대로 지금 내가 불행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뒤따를 행복을 기대하며 희망을 가지며 고통을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꼭 고통과 불행과 인내가 있어야만 하나? 신세계처럼 늘 즐거움만 있으면 안되나? 신세계의 세계관을 굳이 삐딱하게 봐야할까?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항상 즐거운 것이 곧 행복아닐까?

 

책에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 약간의 신체적 결함을 가진 신세계 사람 버나드, 정신적으로 과잉스러운 신세계 사람 헬름홀츠, 신세계가 아닌 보호구역에서 살았던 야만인 존.

버나드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으로 자유과 생각을 하곤 했던 인물이지만 결국 신세계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세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을 선택했다.

존은 세익스피어를 이미 읽어버린 야만인(신세계 기준으로)으로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선을 원하고 죄악을 원하며 '사실상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며 스스로 고통의 삶을 선택하여 결국 자살을 택했다.

헬름홀츠는 이유는 모르지만 다른 알파와 달리 정신적 과잉을 가지게 되어 자유과 번뇌를 아는 알파 계급으로 그는 100% 고통의 삶 혹은 신세계에 적응하는 삶 대신 신세계가 지배하는 아일랜드로의 유배를 스스로 선택하여 비록 지루하고 즐거움이 없더라도 시와 과학을 연구하는 것을 삶을 선택했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지금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나는 헬름홀츠의 삶을 선택할 것 같다. 하지만 신세계에서 태어나고 신세계에서만 살았더라면 과연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

 

통제관 포드가 멋지다고 역설한 신세계의 삶이 이론적으로 완벽해 보이고 설핏 혹하기도 하지만, 이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나는 '멋진 신세계'에서 멋진 삶을 살고있는 버나드와 레니나와 헨리 포스터가 그렇게 멋져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내 나름으로 멋진 삶을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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