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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1,2,3,4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장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엄마의 실종을 지켜보며 엄마의 존재를 재인식하고있다. 1장은 아마도 주인공인듯한, 작가의 분신인 듯한 큰 딸의 시선으로, 2장은 60,70년대 어느 집이나 그랬던 것 처럼 '귀남'인 장남의 시선으로 3장은 엄마의 남편의 시선으로 4장은 실종된 엄마 자신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펼쳐지고 있다. 이 중 4장은 엄마의 시선으로 전개되긴 하지만 많은 부분이 엄마의 막내딸-아마 2남 2녀(아들,딸,아들,딸)중 젤 막내-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다.
앞의 장들에서도 묘사되는, 각 시선의 주인공들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 바로 울 엄마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소설의 초반부는 이야기는 읽는 것 같은 긴장감이 없어 좀 맹숭맹숭했다. 왜? 이건 우리집 얘기, 즉 리얼이니까. 3장 남편의 시선편에선 조금씩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했는데, 지금 울 엄마 아버지가 사는 모습이랑 너무 흡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소설처럼 아버지가 '이봐 나 배고픈디, 뭐 좀 먹었으믄 좋겄는디.'하면 엄마는 '당신은 수발해줄 사람이 이쓰이 복인줄 아소'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장을 보다가 그걸 만들어 드린다던지, '우리는 인자 자식들한테 아무 쓸모없는 짐덩이요.'하면서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소.'하는 말씀이나.(울 엄마는 이말을 진짜 하루에 한번은 한다.) '언제나 아픈 사람은 당신-아버지-고 그런 아버지를 보살피는 사람은 아내-엄마-다.'처럼 아버지는 아프면 옆에서 엄마가 돌봐주시만, 엄마가 아프면 오로지 당신 자신밖에 없다. 엄마아프다고 아버지가 직접 뭔가를 하신 건 30여년 전 엄마가 허리디스크로 대소변을 받아내던 그 시절뿐인 것 같다.
4장은 막내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다. 나는 여기의 막내딸이 꼭 나같다고 느꼈다. 외적 조건이 나랑 같은 부분은 많이 없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막내딸을 놓고 산후 뒤끝이 안좋은 것도 나랑 비슷하고, 숱 많은 검은 머리도, 내가 엄마의 네 번째 아이인 것도 비슷하다. 책의 막내는 자식들 중 처음 유치원이란 델 가봤고 나는 유일하게 대학을 다녔다. 입시공부하는 내게 도시락을 싸다 날른 묘사도 넘 비슷하고, 언니 오빠들과는 다르게 아마 엄마가 기본적으로 자식한테 해줄건 해줬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래서 오빠나 큰 언니한테 느끼는 자식한테의 미안한 느낌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한 자식인 것도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소설 속 엄마처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크게 막지도 않았다. 그런 막내에게 소설속 엄마는 아이를 품고 있는 막내를 보고 '내 새끼가 새끼를 품고 있네'하는데 마치 울 엄마가 나한테 속삭이는 듯한 착각을 했다. 엄마는 나의 존재만으로 기쁨이라 하셨는데, 그랬는데 나는 지금은 엄마의 존재가 때론 귀찮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 그 막내딸이 언니한테 쓴 편지에서 소설 속 엄마, 울 엄마한테서 받는 그 느낌을 적절히 표현하였다.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자기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언니, 아무래도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없어. 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해준 것 처럼 할수있나. 못해 할 수 없어. .....내가 엄마로 살면서 이렇게 꿈이 많은데.....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을까......하루가 아니라 몇 시간이라도 엄마의 꿈을 위로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엄마한테 말할거야, 엄마가 한 모든 일을, 그걸 해낼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TV에서 제주도 올레를 소개한다. 아버지와 입대를 앞둔 아들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올레를 걷고있다. 책장을 덮고 올레를 걷는 부자를 보면서 더 늦기전에 진실로 진실로 더 늦기전에 엄마랑 올레를 걸으면서 깊이있게 엄마의 한 많을 인생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겠다고 그리고 내 말도 엄마가 이해할 수 있는 다감한 소리로 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