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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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이유가 없어도 좋다.그러나 죽음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 죽음, 그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위해서. - P9

"속속들이 모르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오." - P163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읽는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감각이라는 사실을. 한 줄의 문장을,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을, 혹은 그의 세계를 읽는 행위라는 것을. - P169

주먹질로 점철된 세월 속에서 소실기관처럼 퇴화해 버린 감정. 배우지 못했지만 천성적으로 지닌 심미안. 그는 허공을 가로지른 음의 거미줄을 건너갔다. - P184

하지만 행복은 유리에 맺힌 물방울처럼 불안했다. - P185

"이름은 한 존재의 모든 것을 담은 상징이에요. 한 사람의 얼굴과 눈빛과 몸집과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기억과 꿈과 그리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죠. 하나의 단어가 수많은 느낌을 담고 한 줄의 문장이 헤아릴 수 없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요."
한 줄의 문장이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그렇다면 놈은 셰익스피어의 문장에 정반대의 두 의미를 숨긴 것이다.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여전히 향기를 풍기지만 장미말고 불리지 않으면 더 이상 장미가 아니다. 아무리 향기로운 장미도 시간이 지나면 향기를 잃고 시들지만 그 이름은 살아남는다. ‘장미‘라는 이름을 부르면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가 떠오르는 것처럼. 장미는 사라지지만 장미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장미는 유한하지만 장리마는 이름은 영원하다. - P218

어떤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이 아니다. 문장은 한 인간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불치의 병이다. 단어와 구두점들은 몸 여기저기에 세균과 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문장들은 뼈에 새겨지고 세포 속에 스며들고 자음과 모음은 혈관을 타고 흐른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는 뇌세포를 물들이고 영혼을 재구성한다. 그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서도 안 된다. - P220

스기야마는 위험한 촉수를 가진 물건을 만지듯 조심스레 펜을 쥐었다. 펜촉은 검은 잉크를 듬뿍 머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심지어 종이 위에 내려앉지도 못했다. 눈앞의 백지는 형무소의 뜰처럼 활량했다. - P267

결핍은, 고통스럽지만 때로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고양시키는 법이다. 감옥은 살기엔 고통스러웠지만 꿈꾸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그곳엔 자유가 없었기에 자유를 꿈꿀 수 있었고, 희망이 사라졌기에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 P278

모든 일은 일어날 어떤 일의 전조다. 시간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고 사건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모든 행위는 다가올 운명을 위해 복무한다. 그것이 기막힌 행운이든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갈 불운이든, 문제는 그 전조를 예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20

운명은 어딩에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디에 있을 수 있느냐는 권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달콤함을 참는 것은 고통을 참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다. - P184

철학자들과 주인공들의 이름이 그를 떠나갔다. 나는 그의 영혼의 올이 하나씩 풀리는 것을 보았다. - P192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무, 심지어는 거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다시 곱씹을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행해 새 출발 하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돌이켜 볼 수 있고, 돌이켜 보아야 과오를 찾을 수 있고, 과오를 찾아야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해야 용서를 빌 수 있으며, 용서를 빌어야 용서받을 수 있고, 용서받아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288

진실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죠. 기록이 불태워지고 감추어졌다 해도 진실은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소실되고 나의 진술이 사라져도 제가 본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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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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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지를 썼다. 그냥 되는대로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몽의 마음에 들도록 힘썼다. 왜냐하면 내게는 레몽의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 P41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괴상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왜 엄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에는 일찌감치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으므로 나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잤다. - P49

"자넨 젊으니까, 그런 생활이 자네 마음에 들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는 하지만 결국 아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증략...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으나, 나이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 P51

길에 나서자, 피로한 탓도 있고 또 덧문을 열지 않고 있었던 탓도 있어서 벌써 퍼질대로 퍼진 뜨거운 햇살에 나는 마치 따귀라도 얻어맞은 것 같았다. - P57

이제 태양은 찍어누르는 듯 세차게 내리쪼였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 P65

조금 전과 다름없이 시뻘건 폭발은 그대로였다. 모래 위에서 바다는 잔물결들의 급하고 가쁜 숨결을 다하여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위께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햇볕에 쬐어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더위 전체가 내 위로 내리눌러대면서 나의 걸음을 막았다. 그리하여 얼굴 위에 엄청나게 무더운 바람이 와 닿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부르쥐었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부어 주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견뎌 이기려고 전력을 다해 몸을 버티는 것이었다. 모래나 흰 조개껍질이나 유리 조작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칼날처럼 번뜩일 때마다 양쪽 턱뼈가 움찔하곤 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 P67

나는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 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는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 P69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에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읭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지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 P69

그날 마음이 아팠냐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 질문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만약에 내가 그런 질문을 해야만 할 입장이었다면 나는 매우 거북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자문해 보는 습관을 좀 잃어버려서,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 P75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조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시대의 모든 암들입니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뫼르소는 판사들이나 사회의 법칙이나 판에 박힌 감정들의 편이 아닙니다. 그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 존재합니다. - P139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힌 것일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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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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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은 고통이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되지는 못해. 고통은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비열하게도 만드니까. - P42

내 미래는 아직도 요원하다. 앞을 향해서 뛰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역시 여신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신보다 이해아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이니까. - P61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밖에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동물뿐이죠. 저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국과 인민의 자식이죠. 조국과 인민의 경험은 즉 제 경험이기도 합니다. 그 경험에서부터 태어난 모든 문제를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책임미여 권리이기도 하지요. - P119

인간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은 반드시 자기의 머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기는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서 무슨 일에 있어서나 ‘왜?‘라는 질문을 던져 왔노라고 말한다. 희극적으로 비극을 연기하고, 비극적으로 희극을 연기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저주하고 누구를 동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 P169

씨왕 같은 청년은 역시 행복하다. 그들에게는 역사의 책임이 있을 뿐 역사의 부담은 없다. 우리들도 다시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우리들처럼 되는 것일까. - P173

나는 이신과 결혼했다. 행복은 비교함으로써 비로소 이해하고 느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 P203

생활이 계속 필요를 낳고, 물질의 필요가 조금씩 내 정신을 빼앗아. 마지막에는 정신을 대신해 버렸어. 욕망에는 제한이 없어. 그 하나하나가 분발의 목표가 되어 다른 것 따위는 생각할 틈도 없지.
철학은 철학자에게 맡기고,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겨 버렸어. 나는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 살림을 꾸리는 연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고 있어. 생활이라는 것은 본래 그런 것이야.
이것이 나의 이야기. 굼이 없는 생활이지만 덕택에 풍파도 일지 않아.
꿈이 있으면 언제나 풍파가 따르는 법이지. 다른 사람에게 주목을 받게 되면 반드시 그것을 깨뜨리려는 사람이 나타나. 하지만 누구에게도 주목을 받지 않으면 평온 무사한 법이야!
인간, 그 외에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 P205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론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내가 알 리가 있나. 그러나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도 모르겠다는 말은 난 믿지 않아. 자기의 필요에 의심을 갖는다든지, 두려워한다든지, 자신감이 없다든지 하는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 P239

이 자리에서는 서로의 인생을 알 수 있을 뿐 영향을 줄 수는 없어. 하물며 서로 간섭하는 것은 말도 안 돼. - P272

"현실은 우리 세대에도 한한의 세대에도 부모 세대의 고난을 나누어 갖게 하고 싶어요. 우리들은 쭉 이런 말을 들어 왔습니다. 너희들은 앞 세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만 앞 세대는 다음 세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었나요? 부모는 자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었습니까?"
- P344

뭘 그렇게 흥분하지? 나를 자기와는 다른 세대에다 집어넣고서는 이상한 사람! 하지만 말하고 있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괴로움이 있는걸. "아직 어린 주제에!" 엄마는 언제나 내게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엄마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를 생각해봐요. 내가 부딪히고 있는 것과 같은 이런 복잡한 문제에 부딪혀 본일이 있어요? 책에는 오이씨를 뿌리면 오리가 나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고 씌어있었다. 나는 무엇을 뿌렸지? 아무것도 뿌리지 않았어. 어른을 따라서 걸어온 것뿐이야. 그런데도 내 바구니에는 벌써 쓴 오이들만 가득해. 너무 무거워서 들 수조차 없어. 그런데도 갑자기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 거야. 마치 내가 역사에 대해 나쁜 짓이라도 한 것 처럼. 이걸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 거야? - P344

나는 고통의 표면에 마약을 바르고 싶지는 않다. 하물며 어제를 은폐의 대상이나 오늘의 웃음거리고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고통은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예술과 철학과 사상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청춘과 애정을 잃었지만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나는 열정이 불타고 난 뒤의 숯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를 따뜻이 데워 주고 내가 나아갈 길을 비춰 주기에 충분하다. - P368

수 천년에 걸친 봉건제에 의해서 우리들은 점점 다음과 같은 인간으로 길들여지고 말았다.-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습관이 없고, 생활에 대한 독자적 견해를 갖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며, 자기를 독특한 개성으로 고양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사회에 독특한 ‘이것‘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기를 ‘그것‘에 섞어 넣거나 복정시키는가, 다시 말해서 개성을 공통적으로 해소시키는가에 있는 것 같다. - P381

습관, 습관, 습관보다도 무섭고 권위가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위를 보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그 사람의 말의 가치도 지위에 따라서 다른 법이다. 지위가 높으면 말도 무겁고 지위가 낮으면 말도 가볍다. 이것은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다. 사실은 흔히 진리보다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개선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일까? - P402

참으로 좋은 공부가 된다. 만일 누군가에게 ‘단순한 일이 왜 이렇게 복잡해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일언지하에 대답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요소가 제1이라고. 여러 가지 목적으로 소란을 피우는 인간이 있고, 거기에 여려 가지 이유로 두려워하는 인간이 가세하고, 거기에 또 머리가 굳은 인간이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가장 단순한 일이라 할지라도 복잡해지고 말 것이다. 우연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세상사나 운명은 묘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 P443

나는 이미 ‘뛰어난 재목‘이 될 ‘최적기‘를 지났다. 닭으로 치면 늙은 닭이어서 제대로 달걀을 낳지도 못한다. 달걀로 친다면 반쯤 품다만 달걀이어서 새삼스럽게 부화될 수도 없다. 아직, 이대로 끝나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길에 커다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신천지를 창조하고 개척하는 것은 전력을 다 해서 지지한다. 나는 누가 올린 성과이건 간에 진심으로 기쁨을 느끼며 누가 불행에 빠지건 간에 진심으로 동정을 보낸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가? 꼭 내 자신이 영웅호걸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불만을 느끼고 리이닝에게 말했다.
"내게는 용기도 재능도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타인을 지지할 권리도 빼앗는 거요?"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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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3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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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매하고 완독하기까지 거의 일 년이 걸린 것 같다. 책 이름은 <한 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 워낙에 박영규 작가의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는 좋아한다.

제일 처음 꽂힌 책은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두 번을 읽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두 번 독파하고 나서 나는 고려시대로 이동했다. 애정을 갖고 책을 보니 어려운 단어도 왕 계보도 너무나 재미있었다. 고려시대가 이렇게나 재미있었다니. 2018년 <한 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을 본 후 나는 '한 권으로 읽는' 전 시리즈를 다 봐야 겠다고 다짐했다.

작년에 신라왕조실록을 거의 일 년에 걸처 완독을 했다. 조선, 고려와는 달리 따로 접해 본 적이 없는 역사라 많이 생소하였다. 아는 것이라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왔던 인물과 김유신, 김춘추, 첨성대 등등. 하지만 고향이 신라 지역인지라 그래도 왠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신라를 다 읽을 무렵 나는 <한 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과 <한 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을 동시 구매했다. 그 중에서 백제왕조실록에 먼저 손을 대었다. 그리고 이제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그저 놀라움이다.

우리는 백제에 대하여 너무 모르고 있다. 그리고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의 저자인 박영규 작가가 다 옳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고대사라는 것이 워낙 사료도 풍부하지 않고 있는 사료도 훼손, 왜곡된 것이 많아서) 드 넓은 대륙에 영토를 가졌던 백제, 선진 문물을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나누어 주는 것에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선진국 백제에 대하여 많은 편견과 선입견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백제의 비밀을 풀면 우리 고대사가 엄청나게 달라지고 역사를 새로이 배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실들을 나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운 학자들이 분명 많을진대 왜 논의와 연구가 더 진척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백제왕조실록을 보다 보니 문득 '가야'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가야는 백제보다도 더 비밀을 많이 간직한 고대국가이다. 가야는 백제, 왜, 신라가 모두 얽혀있는 미스터리한 나라로 남아있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직 후 학자들에게 '가야에 대해서 연구를 좀 해달라'고 했을까? 그때는 무슨 대통령이 역사 부문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나, 며 쪼잔하게 생각했는데 백제왕조실록을 읽고 가야에 대하여 궁금증이 일다 보니 문 대통령의 당부가 새삼 이해가 된다. 다 내가 모르기 때문에 생긴 편견이다.

어느 미술사학자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인는 법인가 보다.

겨우 요약된 책 한권 읽었다고 해서 내가 마치 백제역사 통이라도 된 것은 전혀 아니올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백제왕의 계보 정도는 스스로 정리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해놓으면 다음에 다시 책을 들쳐볼 때에는 해당 왕의 시대에 생긴 사건과 인물들도 사이사이 빈 공간에 집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접촉은 호기심을 유발하고 호기심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관심은 애정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애정은 결국 지식과 정보와 데이터의 축적으로 이어지니 나중에 나는 축적된 것들을 맥락에 맞춰 편집만 하면 된다.

나는 믿는다. 검색된 데이터와 내 안에 소화된 데이터에는 분명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역사 공부를 느리지만 계속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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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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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펜서 선생처럼 늙은 사람들은 담요 한 장을 사는데서도 크나큰 행복감을 느끼는 법이라는 거다. - P16

사실 그놈은 자신의 연주가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죄만은 아니다. 정신을 잃은 듯 박수를 치는 저 바보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누구든지 망쳐버리는 존재들이다. - P130

수녀들이 떠난 후 나는 10달러밖에 헌금하지 않은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샐리 헤이스와 공연에 가기로 했고 표를 사려면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유감스런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돈이란 항상 끝판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 P171

지금 네가 뛰어들고 있는 타락은 일종의 특수한 타락인데, 그건 무서운 거다. 타락해가는 인간에게는 감촉할 수 있다든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본인은 자꾸 타락해가기만 할 뿐이야. 이 세상에는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자신의 환경이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환경이 자기가 바라는 걸 도저히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단념해버리는 거야. 살제로는 찾으려는 시도도 해보지 않고 단념해버리는 거야. 내 말 알겠니?" - P276

"이렇게 말했더구니.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이야." - P277

"일단 그 빈슨 선생과 그와 같은 선생들의 과목에서 합격하고 나면 너는 네 가슴에 휠씬 더 친근하게 느껴질 지식에 점점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거야. 물론 자신이 그것을 바라고 기대하고 기다린다는 조건이 따르지. 무엇보다도 네가 인간 행위에 대해 당황하고 놀라고 염증을 느낀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것을 깨달으면 너는 흥분할 것이고 자극을 받을 거야.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네가 현재 겪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한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이 그 중 몇몇 사람들은 자기 고민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너도 바라기만 하면 거기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 그리고 장차 네가 남에게 줄 수 있으면 네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네게서 배울 수 있다는 거야. 이것이 아름다운 상부상조가 아니겠니? 그런데 이건 교육이 아냐. 역사야. 시야." - P278

"학교 교육은 그 외에도 도움이 되지.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 계속하면 자기 머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야. 무엇이 자기 머리에 맞고 또 무엇이 자기 머리에 맞지 않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야. 그리고 얼마 후에는 일정한 크기의 자기 머리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을 일일이 시험해보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을 절약해주지. 자신의 전정한 용량을 알게 되고 거기에 따라 자기 머리를 활용하게 되지." - P280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아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디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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