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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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벼무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세심하게 바라보고 관찰하여 구체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면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였기에 박제가는 결코 얼버무리는 법이 없었다. 조선 양반들의 냉대 속에서 박제가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얼버무리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책 더미 속에서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의 고통과 고뇌가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책만 보는 바보>가 발행된 2005년에 내가 왜 이 책을 외면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책 표지의 뒷짐 진 선비가 고리타분해 보였거나, ‘책만 보는 바보’라는 제목에 공연한 반감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15년 전의 내가 그저 책을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아는 귀한 보석 같은 내용을 나만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가 15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묘한 낭패감마저 느껴진다.


궁궐 공부와 답사를 위해서 창덕궁 궐내 각사에 있는 ‘규장각’과 그에 딸린 부속 건물인 ‘검서청’에 간 적이 여러 번이다. ‘규장각’과 ‘검서청’을 공부하기 위해서 참고로 한 자료에는 “‘검서청’은 규장각에 딸린 부속 건물로 규장각의 관리인 ‘검서관’들이 야근할 때 주로 이용한 곳입니다.”라고 설명이 되어있었다. 그리곤 덧붙여져 있었다. “규장각 검서관으로는 잘 아시는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이 있었습니다.”

굳이 그 참고 자료가 아니더라도 나는 진즉부터 박제가와 유득공이야 유명한 저서인 <북학의>와 <발해고>덕문에 이름을 알렸다고 하지만 이덕무는 왜 이름이 널리 알려졌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북학의>와 <발해고>는 들어보았지만 이덕무의 저서나 업적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만 보는 바보>로 인해서 간밤에 쌓인 눈이 다음 날의 눈부신 햇살에 이른 아침부터 사르르 녹듯이 내가 가진 의문점도 사르르 녹아버렸다.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였던 이덕무는 정조 임금님을 보필하여 수많은 정책의 산실이자 보고(寶庫)였던 규장각을 규장각이게끔 만든 장본인 중 한 사람이었다. 역사 속에서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은 꼭 전쟁에서 적군을 무너뜨려야만 하는 것도 아니요, 반드시 어떤 물건이나 유산을 창조해야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제 자리에서 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해내는 것, 지름길을 찾지 않고 능력껏 임무를 완수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충분히 잘 굴러갈 수 있다. 이런 단순한 진리에 요령을 피우기 때문에 역사의 수레바퀴가 간혹 빠지기도 하고 수레가 넘어지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참을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엄중한 신분 체제 아래에서 서자로 태어나 ‘창고 속의 누렇게 뜬 곡식과 같이 세상에 쓰일 데가 없다’는 것에 좌절을 느끼던 이덕무. 책과 벗들과 함께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니 그 쓰임을 다하는 날이 왔다. 임금이 바뀌었고 규장각이라는 새로운 도서관이 생겼으며 비록 정기적인 녹봉을 받지는 못하지만 검서관이라는 관직도 하사받았다. 책만 보고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이덕무는 늘 가슴 아래가 묵직한 청춘을 보냈지만 마침내 마침맞는 보직을 하사받아 스스로가 빚어낸 삶이 희미한 빛을 내게 되었다.

<책만 보는 바보>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당연히 ‘책’과 관련된 것이고 둘째는 이덕무의 벗과 스승에 대한 것이며 마지막 셋째가 규장각과 검서관으로서의 이야기이다.


이덕무는 일곱 살 즈음에도 밖에서 놀기보다 책과 함께 노니는 것을 더 즐겼다. 그런 그였으니 책과 함께 하는 순간에 작은 그의 서재(청장 서옥)는 더 이상 작은 곳이 아니라 푸른백로(청장)가 맘껏 날갯짓을 할 수 있는 드높은 창공이었을 것이다. 이덕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책이었다.

하지만 이런 책도 질투할 만큼 이덕무가 더 사랑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벗 들이다.


<책만 보는 바보>에서 내 가슴이 가장 흔들렸던 부분도 바로 이덕무의 벗들 때문이었다. 그저 국사 책에서 한 줄의 딱딱한 글자로만 접했던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홍대용, 박지원은 역사 속 죽은 인물이 아니었다. 이덕무와 함께 다가온 그들은 나에게도 살아 숨 쉬는 사람이었고 친구였으며 스승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박제가에게 특히 더 마음이 갔다. 기골이 장대했던 박제가는 서자로서 비뚤어진 세상을 원망하고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양반들에게 분노했다.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받기도 하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던 박제가는 그렇지만 표현하지 않은 가슴속 따스함을 가진 사내였다.


얼벼무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세심하게 바라보고 관찰하여 구체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면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였기에 박제가는 결코 얼버무리는 법이 없었다. 조선 양반들의 냉대 속에서 박제가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얼버무리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책 더미 속에서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의 고통과 고뇌가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원래 나는 메이저보다 마이너에게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다. <책만 보는 바보>에 나오는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대개다 조선의 마이너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 한마디, 마음 한구석,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흔들었다. 왜 이덕무와 그의 마이너 한 벗들을 2005년부터 사귀지 못하였나 하는 안타까움이 이 벗들을 대하면 대할수록 깊어지고 있었다.책, 벗, 공부법, 세상을 바라보는 법 -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느낀 점도 수십 가지이고 나눌 말도 몇 십여 가지이지만 가끔은 말은 아낄 때 더 빛이 나는 법. <책만 보는 바보>의 마무리는 ‘벗’에 대한 박제가의 생각으로 하고자 한다.


벗과의 사귐은 술잔을 앞에 두고 무릎을 맞대고 앉거나 손을 잡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여기에 벗과의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121쪽)

두 살, 일곱 살, 아홉 살 그리고 열세 살 어린 벗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눈 이덕무와 친구들- 백동수, 유득공, 박제가 그리고 이서구. 위의 박제가의 말처럼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진정한 벗이 생각나는 이 밤, 잘 못하는 소주 한 잔 기울이고픈 머언 고향의 친구들이 저절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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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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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나는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 보았습니다. 이 문을 통해 햇살도 드나들고, 바람도 드나들고, 옛사람과 우리의 마음도 서로 드나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P7

이 방의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등을 보이며 가지런히 꽃혀 있는 책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를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 같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망므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 P13

겨울 햇살은 어느새 책상 위에서 내려와 방바닥을 굴러다닌다.(...) 오랜만에 짓빛 구름을 걷어 버리고 나와서인지, 햇살의 움직임이 한결 바겹다. 책장의 보풀도 따라 일어나 햇살이 공중에서 지나가는 길을 보여 주며 함께 동동거린다. - P15

책읽기의 이로움을 나는 이렇게 써 두었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휠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 P24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사람들 사이의 어떠한 곳에서도 우리가 마음 편히 있을 자리는 없었다. 우리가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에 맞는 벗들과 함께 있는 그 순간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이러한 벗들이 그리웠다. 내 입으로 글을 읽어도 듣는 것은 나의 귀뿐, 내 손으로 글을 써도 보는 것은 나의 눈 뿐, 오로지 내가 나를 벗으로 삼아 위안해 온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 P39

청장이 푸른 날개짓을 하듯이, 나는 날마다 방 안에서 책 속을 누비며 다녔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하고, 가 보지 않은 낯선 곳에 마음껏 내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림을 보듯, 소리를 듣듯, 나만의 작은 방에서 마음껏 책 속에 빠져 들었다. - P50

내가 윤회매 만들기를 좋아한 까닭은, 살아 있는 꽃 못지않은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모으고 매달릴 수 있는 그 일이 좋아서였다. 나는 유회매를 만드는 손끝에 나 지신을 모두 실었다. - P57

"나는 위아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정말 싫습니다. 예의를 지키라는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집안이나 신분,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고개를 들고 숙이는 것을 정하라는 게 아닙니까? 옳고 그름에 따라 고개를 들고 숙여야지, 어찌 그 사람의 껍데기만 보고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 P63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좀 더 마음을 기울이면 그가 살아온 이야기, 그의 가슴속에 담은 생각들을 알게 된다. 더욱더 마음을 기울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벗이 되리라. 박제가와 나처럼. 우리와 다른 벗들처럼. - P75

‘붉다‘는 그 한 마디 글자 가지고
온갖 꽃을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꽃술도 많고 적은 차이 있으니
꼼꼼히 다시 한 번 살펴봐야지.

-박제가 - P76

얼버무려 말하지 않는 다는 것, 그것은 세심하게 바라보고 관찬하여 구체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면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였기에 박제가는 결코 얼버무리는 법이 없었다. - P76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얼버무리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그는 얼마나 많은 밤을 책 더미 속에서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날들을 거리로 나아가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았을까. - P78

"유득공의 마음속에는 우물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근심 걱정도 한 번 담갔다 하면 사뿐하게 걸러져 밝은 웃음으로 올라오게 하는 우물 말입니다." - P85

"나도 내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무언가를 붙들고 싶습니다. 내가 끝까지 부여잡은 그것이, 후대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탄뿐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유득공 - P94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우정은 가난할 때의 사귐이라 합니다. 벗과의 사귐은 술잔을 앞에 두고 무릎을 맞대고 앉거나 손을 잡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여기에 벗과의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
-박제가가 백동수에게 주는 편지의 첫 구절 - P121

가슴속에 담긴 생각은 얼굴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법. 흐르는 시간은 그 표정들을 놓치지 않고 사람의 얼굴에 새겨 둔다. 바람과 함께 온 세월이 바위의 얼굴을 조금씩 깎아 놓는 것처럼, 서로의 온기로 그늘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나와 벗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근심 어린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 P130

"...그대는 침착하고 슬기로워 바탕과 재질을 갖춘 데다 나이 또한 한창이니, 다른 분야도 폭넓게 공부하기 바라오. 그러면 창고 속에서 누렇게 뜬 곡식과 같은 나처럼, 이 세상을 헛되이 살았다는 탄식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오...."
-이덕무가 이서구에게 - P135

스승은 자신의 훌륭한 인품으로 제자들을 서서히 감동시키고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두 마디 말로 제자들에게 번뜩이는 영감과 충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P154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샢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그러한 마음에 기초가 되는 것은 역시 지난날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자신만의 감각이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이다.
(...) 그리하여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동물인 코끼리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비좁은 틀에 거대한 코끼라의 몸을 구겨 넣으려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코끼리를 다리가 다섯 개인 하마라든가, 주둥이가 새의 부리처럼 별나게 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 P176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비참한 것은 쓰일 데가 없다는 것이다. 책만 파고들면 무엇 하나? 내 말과 글로는 세상을 조금도 바꾸어 놓지 못하는 것을. 몸을 움직여 할 줄 아는 일이 무엇이던가? 고작 종이를 묶어 책을 만들거나 밀랍으로 윤회매를 만드는 것뿐. 그러나 살아가는 데는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 P185

우리 일행 중에는 이러한 연경 거리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청나라의 관리들이 없을 때면, 황제의 도시 북경이 주인을 잘못 만나 천박하고 정신없는 저잣거리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며 혀를 차기도 하였다. 그들은 옛 성인들의 묘나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 곳만 찾아다니려 할 뿐, 연경 거리로 나와 지금 중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보지 않으니 느끼는 것도 없을 터였다. 이처럼 옛 글귀나 외우고 있는 고루한 선비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기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생각하면, 박제가의 가슴속에는 더욱 불길이 이글거렸을 것이다. - P200

이층 주합루 난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무성한 나무들이 계절따라 옷을 바꾸어 입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늘 가슴 아래가 묵직한 세월을 보내 온 나는, 그때마다 연못 위에 떠 있는 연잎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 P212

아버님의 시대보다 나의 시대가 더 나아졌듯, 나의 아들들의 시대는 좀 더 나아지리라. 머지않아 세상에 태어날 나의 손자의 시대는 더욱 그러하리라. 우리의 후손은 못난 조상처럼, 소중한 삶을 탄식과 분노로 오랫동안 소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노라면 스스로가 빋어 낸 삶이 희미한 빛을 낼 때가 있지 않을까. - P245

틈나는 대로 유득공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사는 책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기보다, 팔딱팔딱 뛰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자리해야 한다고 여기는 그였다. - P246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흔적은 사람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섦속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길을 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
시간을 나누다는 것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옛사람들로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을 나누어 받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들, 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산과 들을. 내 안에 스며 있는 그 시간들을 느낄 때면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순간 이런 마음이었을 텐데 하며, 겪어보지 못한 아득한 옛일이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샘솟듯 흘러나오는 건, 내 안에 이미 그 시간이 스며든 까닭일 것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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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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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주의자

토크니즘이란 이렇게 역사적으로 배제된 집단 구성원 가운데 소수만을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차별시정정책을 말한다. 토크니즘은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이고서도 자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회가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고 노력하여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은 이상적인 평등의 상황과는 꽤 먼 상태임에도 평등이 달성되었다고 여기는 착시를 일으킨다. - P24

누군가는 여전히 특권이란 말이 불편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혹은 남성으로서 이렇게 살기 힘든데 나에게 무슨 특권이 있는 거냐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불평등이란 말이 그러하듯, 특권 역시 상대적인 개념이다. 다른 집단과 비교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유리한 질서가 있다는 것이지, 삶이 절대적으로 쉽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고기에 비유해 생각해보자. 흐르는 물결을 따라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그 물결을 가로지르거나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보다 편하다. 하지만 물결을 따라가며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그저 편하다고만 할 수 없다. 삶은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를 힘들게 한다. 게다가 기회가 주어지는 만큼 과업이 따르고,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책임이 무거워지는 법이다. - P33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집단은 차별을 덜 인식할 뿐만 아니라 평등을 실현하는 조치에 반대할 이유와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차별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국가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왔지만 주류로서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여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진보 정치인을 종종 보는 것처럼 말이다. - P36

우리는 때로 의식적으로 사회적 편견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평소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는 사람이 정장을 갖춰 입고 구두를 신을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취업 면접을 갈 때이다..(중략)...인생에서 중요한 일일수록 그 선택은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최대한 안전한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 P75

당신은 차별이 보이는가? 구조적 차별은 우리의 감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인식하기 어렵다. 노예제 시대에는 노예를 자연스럽게 여겼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는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해 보였다. ...(중략)...우리는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하나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며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더 제한된다.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상대에게 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 P79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역사적으로 억압되었던 집단이 평등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이런 현상은 반복된다. 기존의 억압을 유지하기 위한 비하성 언어와 기존의 권력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비하성 언어가 대립하는 것이다. - P97

유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 P99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때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주는 잔인한 의미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다문화는 낙인이고 차별과 배제의 용어가 되었다. - P133

우리는 꽤 자주 누군가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거리에서 시선을 사용한다...(중략)...거리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다. 거리에는 살마과 행동을 규율하는 규칙과 감시체계가 있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 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접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 데 동참한다.
그래서 때로는 소수자가 스스로 숨어 있기로 결정한다. 소수자가 안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다. - P139

낙인을 피하기 우해 사회가 ‘정상‘ 또는 ‘주류‘로 여기는 정체성으로 보이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이를 어빙 고프먼은 ‘패싱‘이라고 부른다. - P140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용하는 싫다는 표현은 다르다. 사장이 어떤 직원을 싫다고 말할 때, 교사가 어떤 학생을 싫다고 말할 때, 이건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며 권력관계의 변동도 아니다. 바로 권력 그 자체이다. 무사한 차별이 싫다는 감정에서 나오고, 그 감정이 누군가의 기회와 자원을 배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작동하다.
그렇기에 이성애자가 하는 "동성애자가 싫다"는 말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싫다"고 하는 말과 같지 않다...(중략)...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주체 사이의 권력관계가 그 말의 의미와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 P143

2005년에는 헌법재판소가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부계혈통주의에 기반한 가족제도는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우려하던 사회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질서가 생겼을 뿐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혼인의 자유를 누리고 행복하게 되었으며 세상은 조금 더 평등하게 되었다. - P161

롤스에 따르면 시민 불복조잉란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를 말한다. 단순히 법을 어긴다고 시민 불복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사람들이 법을 어길 때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모르게 행동한다. 반면 시민 불복종은 공개적으로 위법 행동을 함으로써 대중에게 문제 상황을 알린다.
시민 불복종은 일종의 ‘말 걸기‘행위다. 매우 절실한 형태의 말걸기다. 사안의 긴급함과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이해되지 못할 때, 그래서 통성적인 경로를 통해 효과적으로 의견이 전달되지 않을 때 시민 불복종이 나타난다.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효과가 없고, 소수자의 의제에 다수자가 무관심하거나 변화의 의지가 없을 때, 불복종의 방식으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사안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 P166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의는 누구를 비나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누가 혹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은 아직 충분히 정의롭지 않고, 부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 P171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공존의 조건으로서 평등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이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족이나 귀족이라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를 민중이라는 다수가, 그리고 다음 단계로 사회 바깥에 놓여 있던 모두가 향유하게 될 때까지 세상은 아직 더 변해야 한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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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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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1999년경부터 2002년 중반까지 박완서 작가가 이곳저곳에서 발표했던 에세이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펴낸 산문집이다. <두부>가 발간된 것은 2002년 10월인데 이때는 작가가 칠순하고도 2년이 된 해였다.


박완서의 산문을 보면 작가에게 평생 그리움을 안겨주었던 고향 개성 박적골과 평생 책임과 숙제처럼 남겨졌던 6.25전쟁이 없는 적이 없다. <두부>에서도 그렇다. 5부로 구성된 <두부>의 2부인 아치울 통신은 박완서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과 가장 비슷한 산과 들을 품은 곳, 아치울로 이사 가서 사는 일상을 꽃과 나무와 새들의 이야기와 함께 담아내었다. 아치울 통신이라고는 하지만 5할은 아치울에 투영된 고향의 그리움이 곳곳에 배여있다. 3부 이야기의 고향은 늘 작가가 그리워 한 고향 박적골 이야기가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백반 집의 공깃밥과 김치처럼 얹져져 있다.


1부와 4부는 결이 좀 다르다. 노년의 자유라는 주제로 글이 모아진 1부는 칠순 즈음이 된 작가가 나이 듦과 노년의 시간에 대하여 때로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작가는 노년의 시간을 시간 속의 미아가 된 것 같다며 두려워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세상을 가볍게 보아 넘겨도 되는 지금의 시간이 좋다며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밖에 경험하지 못하는 나이 듦이기에 노련한 작가마저 노년의 시간과 자유에 대해서는 노련하지 않게 청춘을 대하는 20세 젊은이처럼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글 속에서 느껴진다.


단출하나 3개의 에피소드로 된 4부에서는 작가를 사로잡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한 명은 김윤식 평론가이고 다른 한 명은 박수근 화가이며 마지막 한 명은 이영학 설치미술가이다. 이름만 알았던 김윤식에 대하여 소소하나마 그의 인물 됨됨이를 알 수 있었고 박완서 작가의 처녀작 <나목>을 통해 이미 알았던 박수근 화가의 이야기를 소설이 아닌 산문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으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영학이라는 설치미술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두부>를 통해 알았다.


박완서가 글을 잘 쓰는 소설가임은 대한민국에서 책 좀 읽어보았다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를 일컬어 한국 문학의 대표, 상징, 대모라고 해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데에 반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박완서의 소설을 2편 밖에 읽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편이긴 하지만 그의 소설이 엄청나게 재미있다, 박진감 있게 흥미진진하다고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 문학적 이해와 공감이 아직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의 재미와 흥미를 떠나서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박완서는 '글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쓴다'라는 것이다. 그의 산문을 읽다 보면 감정의 표현과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의 묘사와 상황에 대한 비유와 은유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내고 저런 묘사를 그려낼 수 있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당연히 알고 있던 것들을 비유와 은유로 끌어내어 작가가 쓰고자 하는 상황을 독자가 바로 글을 읽는 그 순간 바로 내 일처럼 느끼고 공감하게끔 하는데 이런 작가의 능력에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는 표현밖에 하지 못해서 참담한 마음뿐이다.


박완서의 책, 특히 산문집을 읽으면서 줄을 치며 읽는 부분이 많은데 그 줄친 부분이라는 것이 헤세의 <데미안>처럼 철학적 사유를 위해 두고두고 읽으려고 그은 밑줄이라기보다는 '한국어'를 이보다 더 이상 맛깔나게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우리 말의 아름다운 표현 때문에 그은 밑줄인 경우가 더 많다. 박완서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상황에서 가장 영롱하게 빛나는 명사를 골라 또 그 영롱한 명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동사와 형용사를 찾아내고 배치하여 한국의 정서를 가슴에 안고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그의 글을 읽는다면 입으로 탄성이 절로 나고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을 만큼의 문장을 만들어 낸다. 이번 책 <두부>도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는데 책을 읽다가 표현이 너무 찬란하고 처절해서 줄을 긋다가 긋다가 온통 줄을 그어 댄 통에 나는 중간쯤 가다가 그만 줄 긋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두부>의 1부 노년의 시간에서는 시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세월에 대한 느낌을 쓴 것들이 많았는데 나도 어느덧 중년이 되고 나이 듦을 몸으로 마음으로 절절히 체험할 때이다 보니 그 어느 글보다 가슴에 와닿고 줄 칠 부분이 많았다.


노을이 너무도 핏빛으로 선열하여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할 적이 있는가 하면,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할 적도 있다 ...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힌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 (p136-137)



어느 늦은 가을 해 질 녘, 서쪽 하늘의 불타는 듯한 저녁노을을 보고 '처절하게 붉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내 표현이 성에 차지 않았었다. 그런데 박완서의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하고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하다'라는 언어 사용의 적절성을 보고 박 작가를 통해 국어의 아름다움과 글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집착에 매여 있기에 내 저녁의 노을이 아름다운 줄 아직 알지 못하겠다. 아니, 눈으로만 아름다움을 알되 가슴으로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 맞겠다. 아직은 조금 더 치열한 중년을 보내고자 한다. 그러고 난후 이십 년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날 때쯤이면 나도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의 진정한 아름다움의 이치를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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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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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ㄴㄹ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것은 옥살이하는 그도, 재판받는 그도 아닌, 한모의 두부를 향해 고개 숙인 그, 입술 주변에 허연 두부파편을 붙인, 적나라하게 초라해진 그였다. - P29

젊은이는 고분고분 두부를 받아먹으면서 먹물처럼 계속해서 어둠을 풀어내고 있었다. - P31

그런 날이 오기전에 그가 먼저 세상을 떴고, 그가 땅에 묻힐 때 그 옆에 내 자리까지 잡아놓고 나니, 내 여생은 6.25같은 국난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눈 팔 것도 샐 구멍도 없이 막힌 길이나 다름없었다. 나느 그 빠져나갈 길 없는 정해진 통로에 문득문득 공포를 느꼈다. 그건 죽음의 공포하고는 또다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따분한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이렇게 메마르고 삭막해도 되는 것일까. - P41

노망이란 무엇일까? 돌이킬 수 없는 옛날을 돌이킬 수 있을 것처럼 여기는 착란, 변하게 되어 있는 것을 안 변하는 것으로 붙잡아두려는 고통스러운 망상, 죽음이 보이는 시점에서 어린시절로 돌아가려는 퇴영에 지나지 않는 것을. - P43

건강한 육신에도 얼마든지 망령된 생각이 깃들이는데 나이와는 상관없이 상상력이 자유롭고 또 그걸 곧장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졋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 P47

나처럼 오랫동안 변치 않은 고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만도 얼마나 큰 복인가. 그리고 그건 나에게 맞는 복이었다. 만약 내가 고향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그날이 바로 마음속에 있는 내 고향, 이상화된 농경사회의 평화와 조화를 상실하는 날이 될 게 뻔하지 않은가.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보아버리면 다시는 안 보았을때로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일단 글을 깨치고 나면 문맹산태가 되는것이 불가능하듯 말이다. - P51

병을 앓고 있다고 하지 않고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병다운 고통이나 자각증상이 거의 없는 대신 남이 눈치채지 않도록 고이 간직해야 하는 부담감이 소유의 불편과 맞먹기 때문이다. - P53

처음 그 병의 진단을 받고 선뜻 믿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 벌써 성인병이라니. 하는 아직 젊은 마음 때문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어차피 노년의 문지방이란 누구나 그렇게 떠다밀리듯이 넘게 되어 있는 게 아닐까. - P55

대개 성인병의 내방을 받는 것은, 제 몸 안 돌보고 길러낸 자식들이 제각기 거들먹거리며 부모 슬하를 떠나갈 무렵이다. 애면글면 돌보고 사랑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이 없어진 허탈감을 메워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신의 몸이 그 존재를 드러낸다. - P56

나는 이제 소주 한잔에 삼겹살 한점을 먹고 싶어도 그 전에 내 몸의 눈치를 보며 비굴하게 아부까지 해야 한다. - P56

옛날사람이면 늙은이보다도 더 오래된 사람이 아닌가. 나는 현란하게 흥청대는 첨단의 소비문화 한가운데서 미아가 된 것처럼 우두망찰했다. 그때 그 미아의 느낌은 공간적인 게 아니라 시간적인 거여서 어딜봐도 귀로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 P68

실루엣만으로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게 바로 피붙이의 징그러움이다. 달려가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이제 오냐고 다짜고짜 때리기부터 한다. 내 손바닥의 아픔으로 내 새끼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타들어가던 애간장이 스르르 녹게 된다... 최고의 엑스터시도 육신을 통하지 않고는 이를 수 없는 걸 어이하리 - P75

담장 밖 시냇가에 황금갑옷을 입은 듯 장엄하게 물들엇던 은행나무가 엊그저께 아침에 보니 마지막 잎새도 안 남기고 황량하게 옷을 벗어던져 내가 본 찬란한 영광이 꿈인 듯 허전하더니, 살구나무는 천천히 질 모양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낙엽은 은행나무처럼 찬란하지 않은 소박한 누런색이지만, 가지 끝의 잎들은 부끄럼 타듯이 살짝 붉다. - P78

차가 긴 강변북로를 벗어나 구리 쪽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진지한 가로수가 나타났다. 평소 무자비할 정도로 뭉턱뭉턱 전지한 가로수를 꼴 보기 싫어했는데 하나같이 박수근이 그린 겨울나무들이 거기 나와 서 있는 것처럼 반갑고 정겨웠다. - P97

잎과 꽃과 열매까지 포함해야 나무의 전체가 되는 줄 알았다. 이제 보니 그것들을 다 떨구고 맨몸으로 서 있는 나목이야말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없다는 게 바로 저런 게 아닐까 싶게 거침없이 당당하고 늠름해 보엿다. 나무의 맨몸의 아름다움에 배하면 꽃이나 잎은 한낱 가식이나 방편에 지나지않은 것처럼 부질없게 여겨졌다. 사람도 만일 일생 쓰고 살던 위선이나 허위를 떨어버릴 수 있다면 무엇이 남을까. - P98

흙의 에센스가 바로 이런 거다 싶은 강한 냉이맛이 수액처럼 고루 펴지면서 마치 내가 한그루 나무가 된 양 싱그러워지는 걸 느꼈다. - P106

기상이변이란 바로 하늘을 믿을 수 없는 것이고, 하늘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원초적인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도 없다. 덮어두엇던 죄의식까지 불러내기 때문이다. - P116

한결 성기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굵은 빗줄기는 마치 은빛 회초리처럼 대지를 향해 강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119

가을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대총봉이나 내장산처럼 자지러지는 단풍은 아니었지만 산정에만 드문드문 보이던 황갈색이 어느 틈에 중턱까지 퍼졌다. 봄은 기를 쓰고 올라가더니 가을은 이렇게 신속하게 내려오고 있다. - P132

내 안에는 아직도 내 힘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 떨림이 남아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모진 세상, 미지의 운명 앞에 이리도 알몸인듯 시린가. - P134

노을이 너무도 핏빛으로 선열하여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할 적이 있는가 하면,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할 적도 있다. - P136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혀진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랫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 P137

소설은 허가맡은 거짓말 - P202

늙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산천이나 초목처럼 저절로 우아하게 늙고 싶지만 내리막길을 저절로 품위잇게 내려올 수 없는 것처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 나이가 좋다. 마음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안하고 싶은 건 안할 수 있어서도 좋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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