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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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벼무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세심하게 바라보고 관찰하여 구체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면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였기에 박제가는 결코 얼버무리는 법이 없었다. 조선 양반들의 냉대 속에서 박제가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얼버무리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책 더미 속에서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의 고통과 고뇌가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책만 보는 바보>가 발행된 2005년에 내가 왜 이 책을 외면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책 표지의 뒷짐 진 선비가 고리타분해 보였거나, ‘책만 보는 바보’라는 제목에 공연한 반감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15년 전의 내가 그저 책을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아는 귀한 보석 같은 내용을 나만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가 15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묘한 낭패감마저 느껴진다.


궁궐 공부와 답사를 위해서 창덕궁 궐내 각사에 있는 ‘규장각’과 그에 딸린 부속 건물인 ‘검서청’에 간 적이 여러 번이다. ‘규장각’과 ‘검서청’을 공부하기 위해서 참고로 한 자료에는 “‘검서청’은 규장각에 딸린 부속 건물로 규장각의 관리인 ‘검서관’들이 야근할 때 주로 이용한 곳입니다.”라고 설명이 되어있었다. 그리곤 덧붙여져 있었다. “규장각 검서관으로는 잘 아시는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이 있었습니다.”

굳이 그 참고 자료가 아니더라도 나는 진즉부터 박제가와 유득공이야 유명한 저서인 <북학의>와 <발해고>덕문에 이름을 알렸다고 하지만 이덕무는 왜 이름이 널리 알려졌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북학의>와 <발해고>는 들어보았지만 이덕무의 저서나 업적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만 보는 바보>로 인해서 간밤에 쌓인 눈이 다음 날의 눈부신 햇살에 이른 아침부터 사르르 녹듯이 내가 가진 의문점도 사르르 녹아버렸다.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였던 이덕무는 정조 임금님을 보필하여 수많은 정책의 산실이자 보고(寶庫)였던 규장각을 규장각이게끔 만든 장본인 중 한 사람이었다. 역사 속에서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은 꼭 전쟁에서 적군을 무너뜨려야만 하는 것도 아니요, 반드시 어떤 물건이나 유산을 창조해야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제 자리에서 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해내는 것, 지름길을 찾지 않고 능력껏 임무를 완수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충분히 잘 굴러갈 수 있다. 이런 단순한 진리에 요령을 피우기 때문에 역사의 수레바퀴가 간혹 빠지기도 하고 수레가 넘어지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참을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엄중한 신분 체제 아래에서 서자로 태어나 ‘창고 속의 누렇게 뜬 곡식과 같이 세상에 쓰일 데가 없다’는 것에 좌절을 느끼던 이덕무. 책과 벗들과 함께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니 그 쓰임을 다하는 날이 왔다. 임금이 바뀌었고 규장각이라는 새로운 도서관이 생겼으며 비록 정기적인 녹봉을 받지는 못하지만 검서관이라는 관직도 하사받았다. 책만 보고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이덕무는 늘 가슴 아래가 묵직한 청춘을 보냈지만 마침내 마침맞는 보직을 하사받아 스스로가 빚어낸 삶이 희미한 빛을 내게 되었다.

<책만 보는 바보>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당연히 ‘책’과 관련된 것이고 둘째는 이덕무의 벗과 스승에 대한 것이며 마지막 셋째가 규장각과 검서관으로서의 이야기이다.


이덕무는 일곱 살 즈음에도 밖에서 놀기보다 책과 함께 노니는 것을 더 즐겼다. 그런 그였으니 책과 함께 하는 순간에 작은 그의 서재(청장 서옥)는 더 이상 작은 곳이 아니라 푸른백로(청장)가 맘껏 날갯짓을 할 수 있는 드높은 창공이었을 것이다. 이덕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책이었다.

하지만 이런 책도 질투할 만큼 이덕무가 더 사랑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벗 들이다.


<책만 보는 바보>에서 내 가슴이 가장 흔들렸던 부분도 바로 이덕무의 벗들 때문이었다. 그저 국사 책에서 한 줄의 딱딱한 글자로만 접했던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홍대용, 박지원은 역사 속 죽은 인물이 아니었다. 이덕무와 함께 다가온 그들은 나에게도 살아 숨 쉬는 사람이었고 친구였으며 스승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박제가에게 특히 더 마음이 갔다. 기골이 장대했던 박제가는 서자로서 비뚤어진 세상을 원망하고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양반들에게 분노했다.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받기도 하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던 박제가는 그렇지만 표현하지 않은 가슴속 따스함을 가진 사내였다.


얼벼무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세심하게 바라보고 관찰하여 구체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면 오래도록 관찰하고 연구하였기에 박제가는 결코 얼버무리는 법이 없었다. 조선 양반들의 냉대 속에서 박제가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얼버무리지 않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책 더미 속에서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그의 고통과 고뇌가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원래 나는 메이저보다 마이너에게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다. <책만 보는 바보>에 나오는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대개다 조선의 마이너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 한마디, 마음 한구석,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흔들었다. 왜 이덕무와 그의 마이너 한 벗들을 2005년부터 사귀지 못하였나 하는 안타까움이 이 벗들을 대하면 대할수록 깊어지고 있었다.책, 벗, 공부법, 세상을 바라보는 법 - <책만 보는 바보>를 읽고 느낀 점도 수십 가지이고 나눌 말도 몇 십여 가지이지만 가끔은 말은 아낄 때 더 빛이 나는 법. <책만 보는 바보>의 마무리는 ‘벗’에 대한 박제가의 생각으로 하고자 한다.


벗과의 사귐은 술잔을 앞에 두고 무릎을 맞대고 앉거나 손을 잡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여기에 벗과의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121쪽)

두 살, 일곱 살, 아홉 살 그리고 열세 살 어린 벗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눈 이덕무와 친구들- 백동수, 유득공, 박제가 그리고 이서구. 위의 박제가의 말처럼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진정한 벗이 생각나는 이 밤, 잘 못하는 소주 한 잔 기울이고픈 머언 고향의 친구들이 저절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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