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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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촌스럽다 생각했다.

'경애'라는 이름이 주는 70-80년대적 느낌때문이었으리라. 내 사촌들 중에는 경애도 있고 정애도 있고 영애도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미애도 있었고 희애도 있었고 지애, 순애, 진애들도 있었다. 중고등시절 학교에는 수많은 '~애'들이 많았다. 그래서 제목 참 촌빨날리게 지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단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낮추게 되었다.

 

김금희 작가는 39의 젊은 나이게 등단하여 많은 문학상도 받은 젊은 유망한 작가이다. 그런데 주로 고전과 소위 유명하다는 책들 위주로 골라보던 나는 김금희라는 이 떠오르는 무지개같은 작가는 알지 못했다. 이 작가가 2018년에 세상에 내놓은 이야기가 경애의 마음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설픈 낙하산 영업사원 공상수와 한 번의 파업으로 사측으로부터 찍혀서 문구류 배분이나 하던 충무부 박경애이다. 둘은 아마 동갑일건대, 왜냐하면 초반에 둘은 모르지만 둘 사이엔 E-은총이라고 하는 같이 아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계기로 공상수는 영업3팀 팀장이 되고 팀원으로 박경애가 합류하고 둘은 반도미싱제품을 팔되 마음을 팔지 않는 영업을 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영업활동은 한다. 동시에 둘은 각자의 비밀을 갖고 있는데 공상수는 언니는 죄가 없다(언죄다)는 연애상담웹페이지를 갖고 2만여명의 여성들의 마음을 들어주고 달래주는 상담을 해주고 있고 박경애는 산주라는 대학선배인 유부남과의 떳떳지 못한 연애를 하고 있다. 이 사이에 언죄다가 있다. 즉 둘은 E-은총과 언죄다라는 두 가지의 합집합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어쩌다 영업3팀이 호찌민으로 파견되고 그 곳에서 기존 김부장팀과 실적을 다투는 과정에 김부장팀의 비리를 알게된다. 이를 본사에 알리는 과정에서 경애는 본사 정문에서 또 한번의 파업-이번에는 1인시위를 하게 되고 공상수는 언죄다의 페이지가 해킹당하면서 불가피하게 여자가 아닌 남자였슴을 밝히게 된다. 경애는 산주와의 비밀연애를 상담하고 위안을 받은 언니가 공상수임을 알게 되며 둘은 한참동안 마음을 준비하고 다듬는 시간을 가지다 언니와 E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는 마무리로 끝맺음 맺는다.

 

제목의 영향으로 인해 내가 집중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진짜 작가 많이 사용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공상수는 영업을 할 때는 '물건은 팔되 마음은 팔지말자'며 영업 3팀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말하곤 하고, 언죄다의 언니인 공상수도 박경애가 산주와의 연애로 힘들어할 때 '마음을 폐기하지 말자'는 조언을 한다.

고등학교 어느날 E의 죽음을 맞이하고 힘들어 하는 경애는 분노, 불안 그리고 이상한 안도감이 드는 이 모든 '마음'따위는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조선생은 공상수에게 한번 써본 마음은 남지만 안 써본 마음이 어렵다면서 경애는 힘들지만 거기에 맞는 마음을 알고 있을 거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상수는 언죄다의 "얼어붙은 프랑켄슈타인' 아이디를 쓰는 상당자가 경애라는 것을 알고는 경애스러움을 생각하고 그가 경애의 마음을 모두 알고있었다는 사실고 그 사실이 밣혀지더라도 경애가 경애인 것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마침내 둘은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공상수가 이야기하는 상수의 마음은 무엇이고 박경애가 생각하는 경애의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는 대개의 경우 글을 쓸때나 말을 할때 마음이 들었다는 표현보다 생각이 든다, 생각난다, 생각이 들었다라고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음을 어떻게 하자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마음과 생각은 다른 것일까. 단순히 말한다면 마음은 심장,즉 가슴의 소리같고 생각은 뇌, 곧 머리에서 나오는 느낌과 표현인 듯 하다. 하지만 언어학자 뇌과학자가 아니니 이것은 내 개인적 정의일 뿐이다.

 

경애는 어릴 적 E의 죽음으로 분노를 가졌던 마음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자신을 방기하는 방법으로 분노를 극복했다. 그 이후 대학생이 되고 취직을 했어도 자신을 내버려두는 냉소적 태도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죄다의 언니가 하는 '마음을 폐기하지 말자'는 말에 반응을 보인 걸거다.

상수는 밖으로 보이는 정의를 외치며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했던 아버지와는 다른 성격으로 아버지에게 외면받았고 중학시절 약간은 세상과 어울리지 못했던 엄마의 죽음으로 그 역시 세상에 어울리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그저 적당히 묻혀 사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언죄다 페이지에서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며 살고 있었다.

 

과거 E의 죽음으로 혹은 아버지로 인해 억눌렸던 마음들을 이제는 내버려두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정면으로 세상과 마주 하면서 자신의 마음들을 내보이려 하고 있다. 마치 긴 겨울 땅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따스한 햇살비치는 봄이 오면 땅을 가르고 올라오는 봄의 새싹들처럼. 이제 나누고 보여지는 그 마음들은 새싹이 더 푸르러지고 꽃을 피우듯 상수와 경애의 마음도 좀 더 따스해지고 포근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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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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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그런 마음에 대해서 꽤 잘 알았다. 그러니까 현실의 효용가치로 본다면 애저녁에 버렸어야 했을 물건들을 단지 마음의 부피를 채우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마음을 말이다. - P58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 P62

그들이 생각하는 영업도 그런 것일지 몰랐다. 그들이 즐겨 바르는 포마드처럼. ...... 영업은 포마드처럼 강력하게 무언가를,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기 중을 부유하는 먼지나 홀씨, 혹은 햇볕처럼 그냥 슬쩍 내려않는 것이 아닌가. - P82

집이 늙는 흔적들이었다. 어려서 엄마와 함께 오래된 지벵서만 살아본 경애는 집은 그렇게 낡는다기보다는 늙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이 변해가는데는 외부의 영향보다는 내부의 소진이라는 맥락이 있었다. - P171

실력은 녹이 슬었어요. 기억이 녹슬지 않았을 뿐이죠. - P251

그렇게 발견의 눈을 갖지 못한다면 삶이 다르게 보일 가능성은 제로가 되는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경애는 궁금했다. 그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되는지. 이를테면 주말 내내 틀어박혀 어떤 감정기복을 이기며 있다가 갑자기 문밖에 못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 P272

돈을 벌면 벌수록, 무언가를 가지면 가질수록 이상한 불안과 파괴의 정동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 그렇게 마음이 굳어가는 것은 여기가 호찌민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일이 필연적으로 일으키는 마음 상태일지도 몰랐다. 창식씨가 손에 쥘 수도 없는 게임머니에 안달하는 것처럼. - P282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 - P285

조선생이 창식씨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가장 먼저 집안의 먼지를 쓸고 빨래를 하게 했던 것을 떠올리며 경애는 아침이면 지벵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중략... 어디로 가든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아무리 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해도 최후의 낙하점은 있어야 했다. 경애는 다시는 자신을 방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P306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으로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시흥의 창고에서 생각했다. - P307

이 행위의 명분에 대해 끊임없이 경애 자신이 스스로에게 알려주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흐트러지곤 했다. 그렇게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E가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지하상가를 지나다 노숙하는 여자와 아기를 보고 경애가 무심코 했던 ‘불행‘이라는 언급을 정정하던 E는 그때 겨우 열아홉이었다. 그런 깊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복된 현실과의 충돌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마치 운석이 수없이 충돌해 만들어진 달의 크리에이터처럼 일상의 어떤 일들이 E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 P314

그렇게 해서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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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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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난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아프간계 미국인이 200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내가 읽어본 최초의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책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면 한비야의 걸어서 지구 세바퀴에서 아프가니스탄 여행기를 잠깐 본 기억이 있다. 아주 위험한 나라이며 여성의 인권이 걸레만도 못 할 만한 나라라는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이 여행 수기가 거짓 혹은 과장이라는 말이 많지만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므로 기억이라고만 해둔다.) 그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하여 들었던 것은 2001년 9.11 테러와 탈레반 그리고 빈라덴이다.

   솔직히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슬람계의 국가에 대하여 단신으로 듣는 국제소식 외에 동아시아에 있는 한국의 지방에 있는 내가 뭘 얼마나 더 관심을 가졌겠는가. 테러로 아무리 서방이 갈갈이 뛰고해도 나에게는 국제단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소설은 아프간에 대하여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다행인것이 그 역사에 대하여 구구절절 사연이나 설명이 담겨있진 않다. 주인공 아미르와 그의 친구같은 하인 하산,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 하산의 아버지 알리, 바바의 절친이자 아미르에게는 대부와도 같은 라힘 칸 - 이런 주요 인물들의 생활과 일상, 생각을 아미르의 관점으로 개인사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악역도 당연이 있어야겠지. 아미르의 학교 친구이자 아프간과 독일의 혼혈 아이인 아세프, 어린 시절의 갈등에서부터 2000년대에 가서 그 갈등이 증폭되고 결국 해묵은 상처의 치유에 결정적 매개체가 되는 인물인 아세프까지. 1973년경부터 1978년까지의 아프간에서의 유년시절과 소련침공이후 아프칸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하여 2002년경까지 살아가는 모습을 소설은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략 4가지 정도인 것 같다.

   첫째, 어쨋든 작가는 자기의 모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하여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많은 첫 작품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 책도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 있는 듯 느껴진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1980년 망명하여 미국에서 어렵게 생활한 것, 의학공부를 하여 의사가 된 것, 의사생활을 하면서 작가로 데뷔한 것 등등. 이야기의 소재는 다른 어딘에선가 빌어왔을지 몰라도 주인공 아미르의 큰 얼개는 작가와 많이 겹쳐있다.

   나름 아프간에서 좀 산다는 집 자식으로 혜택도 받았고 공산체제 소련의 침공으로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면서도 유년시절 재미있는 기억과 추억이 있는 당시에는 아름다웠을 고국, 그러나 지금은 황폐화되고 전쟁과 테러로 얼룩져 그 어느 누구도 아름다운 전통의 아프간을 알지못하는 현실에서 작가 호세이니는 지금의 아프간이 아프간의 전부는 아니라고, 우리도 한 때 웃으며 뛰어노는 시절이 있었다고, 지금의 그 나라는 아프칸 국민들이 원한 것 아니었다고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6.25 전쟁이후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했듯이.

 

   둘째, 아프간에 있었을 때는 파쉬톤인, 하자라인 등 종족에 대한 차별, 무시 등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더이상 어느 종족인지 어느 민족인지 아무도 신경을 쓰지않는 나라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었다. 다른 두 개의 환경에서 자라면서 그는 인간의 존엄과 인권, 공존에 대해서 스스로 터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슬람 종교안에서 알라의 이름으로 율법과 전통을 안고 살면서 다름으로 가지고 박해하는 아프간의 과거에 대하여 고백하고 종교의 포용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셋째,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당시 아프간에서는 유별나리만큼 가난한 이들에게 많이 베풀고 재산을 아무런 서약도 없이 나누고 하자라인들에게도 차별없이 공평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었다. 주위에서는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아들인 아미르 조차 자신보다 가난한 이들을 더 보살피는 아버지를 미워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선'함은 과거 바바의 부정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의 부정을 끊임없이 뉘우치는 과정에서 나온 죄책감를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그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바는 다른 모든 이들의 이해하고 용서하려고 했으나 정작 그 자신은 자신의 '과오'를 용서하지 못하고 평생토록 죄책감을 '선'으로 승화하려 노력하였다. 이 역시 작가는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한 건 아닐까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릇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고자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이 잘못과 실수와 그릇된 결정을 이후에 어떻게 만회하는가에 있다. 누구는 후회를 번복하며 한탄만 하는 삶을 살수도 있고 다른 이는 가슴속에 죄책감을 평생 안고 이를 만회하려 더 옳은 결정 더 선한 행휘를 하려고 하기도 한다. 이 부분이 어떤 '사건'이후의 삶은 나누는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부분인 두려움과 용기에 대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어린 시절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른이 되어 용기로 두려움을 이기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 책의 핵심이다. 어린시절 아미르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바치는 하산을 위해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개인적 욕망때문이었다. 한 눈 딱 감고 순간만 견디면 나의 앞날은 나의 비겁함과 두려움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탄탄대로 승승장구만 남게되는 거다. 결국 아미르는 어린 시절 그 순간에 탄탄대로 승승장구인 개인의 욕망을 선택했다. 하지만 예상되다시피 아미르는 성인이 되어 아프간으로 돌아가서 과거의 두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평생 개인적 욕망을 선택한 것에 대한 회한으로 최선을 삶을 살지 못한다. 아미르는 과거 자신이 한 과오와 맞닥뜨려 정면승부를 하고서야 스스로를 용서하고 비로소 미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아프간의 역사를 빌어 그 역사적 아픔과 함께 개인이 계산하지않고 순간을 바르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아미르를 통해서 보여주려 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프간데 대해서도 검색을 하게 만들었고 삶의 결정적 순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금 연습하게 했으니까.

 

   원래 작가의 문제인지 깔끔한 번역덕분인지 책이 너무 잘 읽히고 재미있어서 호세이니의 다음 책 '천개의 찬란한 태양'도 예약을 해두었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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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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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게 미국은 내 기억들을 묻게 될 곳이었다.
바바에게는 그의 기억들을 애도할 곳이었다. - P192

"공정한 건 아니다만, 며칠 동안, 아니 단 하루에 있었던 일이 인생의 행로를 바꿔놓을 수도 있단다." - P211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비밀을 말해버린 것이었다. 그래, 얘기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해결을 했다. 나는 입을 열어 내가 어떻게 하산을 배반하고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를 쫓아내고 바라와 알리 사이의 40년 우정을 파괴했는지 털어놓을 뻔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느 소라야가 여러 가지 면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용기는 그중 하나였다. - P246

아미르, 네가 했던 짓은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너는 어린애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복잡한 어린애였지. 너는 당시에 너 자신한테 너무 가혹했다. 너는 지금도 그렇더구나. 네가 페샤와르에 왔을 때, 나는 네 눈에서 그걸 확인했다. 하지만 네가 명심해야 할 게 하나 있다. 그것을 양심도 없고 선하지도 않은 사람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네 고통이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것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 P443

네가 이해해줬으면 싶은 게 있다. 그것은 선이, 진짜 선이 네 아버지의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나는 그가 했던 일을 생각해본다. 네 아버지는 거리의 가난한 ㅅ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고아원을 세우고 어려운 친구들에게 돈을 줬다. 그 모든 것이 속죄하고자 하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내 생각에는 그게 진짜 구원이다. 죄책감이 선으로 이어지는 것 말이다. - P444

페샤와르가 나한테 카불이 엤날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나게 하는 도시라면, 이슬라마바드는 카불이 나중에 어떤 모습이될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도시였다. -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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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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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이름만으로는 드라큘라에 못지않은 세계적 유명인이다. 그 유명세는 그러나 작품속에서 접하고 느낀 실체적 인물이 아니라 영화속에서 그려진 이미지로 혹은 괴물 이미지로 상징적으로 존재해왔다.

이 소설은 겨우 다시 19세의 여성에 의해서 1818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메리 셰리라는 영국 여인은 월리엄 고드윈이라는 급진적 정치가 아버지와 역시 여성주의자 어머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관계로 계모밑에서 자라났으나 계모에게서는 그리 따뜻한 대접을 받지못했고, 그 갈증을 아버지의 서재를 가득 채운 책들로부터 채워나갔다. 아버지의 제자격인 유부남 비시 셰리와 사랑의 도피를 행한 후 결혼하여 생활하면서 프랑켄슈타인을  지었냈다.

메리 셰리의 주변에는 항상 당대 유명지식인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들과 토론/독서/이야기 모임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중에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해내었다.

줄거리는 지난 200년간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어 책을 읽지않았더라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한번 요약하자면, 스위스의 지적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발한 귀족 청년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평소 자연철학에 관심이 아주 많았는데 17세에 독일의 대학으로 자연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유학을 떠나게 된다. 독일의 대학에서 어떤 열정으로 자연철학을 처절히 공부하면서 세상 어느 누구보다 완벽한 생명체를 만들고 싶다는 지적호기심이 발동하여 한 생명을 탄생하는 연구를 하게 되고 마침내 그의 연구를 성공을 이루게되었다. 그런데 성공의 단계에서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의 실체를 보고 그 추악한 모습에 경악을 금치못하며 마침내 자신이 무슨 짓을 하였는지를 인지하고 자신의 창조물을 외면해버리고 만다. 창조주의 외면에 홀로 도망해온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처절한 노력의 결과인지 거의 천재성을 가지고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여 언어와 행동과 관습, 선악, 정의과 불의, 지식 등을 꿰뚫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흉물스런 외양으로 인하여 인간사회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함을 뼈저리게 알게되고 그리하여 사회의 외면과 버림받음으로 인해 외양과 마찬가지고 그 성정 또한 난폭하게 변하여 프랑켄슈타인에게 그와 똑같은 친구와 연인으로 삼으며 인간사회에서 떨어져 아담과 이브와 같이 단둘만의 에덴을 만들기위해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협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프랑켄슈타인 주변의 모든 사람을 죽이겠다고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이 괴물을 창조한 것에 대한 막심한 후회와 또 한명의 여자괴물을 창조해야한다는 스트레스에 가족구성원을 힘들게 하고, 결국에는 여자괴물을 만드는 것을 포기하여 가장 친구 친구인 앙리 클레르발을 죽게하고 친구이나 아내인 엘리자베스까지고 괴물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모든 가산을 정리하여 이 괴물을 없애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 생각하고 북극의 겨울바다에까지 가서 괴물과 싸우지만 쇠약해진 몸으로 인해 그가 먼저 북극의 빙하에 갇힌 선박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해낸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을 목도하고 자신도 북극 꼭대기에서 자살할 것을 암시하며 북극의 차가운 바다로 뛰어든다.

소설은 액자형식으로 되어있다. 로버트 윌턴이라는 영국인이 모험과 탐험을 하기위해 북극 러시아로 향하는 선박을 임대하고 선원을 구해 항해하는 도중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의 누이인 새빌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인데, 이 편지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이고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괴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언급되어있지 않다. 다만, 키는 2미터가 넘어가고 덩치가 아주 크며 얼굴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보면 혐오와 공포가 절로 느껴지게끔 생겼다라고만 되어있다. 메리 셰리는 괴물의 이름도 구체적 생김도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독자들에게 그 상상을 맡긴 것 같은데, 우리는 1930년대 '프랑켄슈타인' 영화속에서 그려진 이미지 - 얼굴은 네모이며, 쇠못같은 것이 박혀있고 눈은 툭 튀어나와있는 - 가 지금은 아주 일반화되어있다.

요즘이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로봇 혹은 클론 등을 만들고 그 만들어진 로봇이나 클론들이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힘이 역전되는 그런 소설, 영화들이 많지만 1818년 당시를 생각하면 이러한 소재나 발상은 아주 독특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책을 읽기전에는 단지 괴물 소재의 작품이라고 생각했으나, 읽고 난 후는 과학의 발전에 대한 고찰을 하게하는 작품이며, 인조인간 혹은 로봇 혹은 클론은 과연 인간의 사고를 가졌다 할 수 있는지 누가 사람이고 누가 인간이라는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품인지에 대한 즉 인간 존재와 사유에 대한 근원적 고민을 갖게 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겠다.

근래 만들어진 터미네이터, 아일랜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 등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실은 원형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보편적 상상력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가히 창조주에 버금가는 하늘아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메리 셰리에게 감탄과 질투를 같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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