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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젠더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다. 기존의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는 시선을 더해 각종 불법촬영 이슈와 미투 운동 등이 작년부터 활발해지면서 젠더 문제는 정피와 종교와 같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다루기 어렵고 쉽게 대화의 주제로 끄집어 내서는 안될 하나의 유리 그릇 같은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런 분위기의 시작점에 이 책 ‘82년생 김지영’이 있다.
2016년 말에 출간된 이 책은 2017년과 2018년 내내 한국 여성과 남성 사이에 핫 이슈였다. 정반대의 의미로. 여성들에게는 한국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깊은 공감의 의미로 그러했고 남성들에게는 그들도 현재 처한 현실에서 볼 때 또 하나의 피해자일진대 작품에서는 남성을 너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충이(?) 정도로 표현한 데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그러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여성들 사이에서 공감을 드러내며 앞다투어 읽기 시작했고 이에 곧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것도 아주 긴 기간동안말이다. 현재도 알라딘 베스트셀러50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반면에 남성들은-주로 젊은 남성들- 이 책을 읽는 여성들은 소위 ‘꼴페미’ 취급을 하며 여성의 책임은 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으로 간주해버리는 일이 생기곤 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김지영’은 살아오고 있었다.
김지영은 1982년에 2녀 1남 중 차녀로 태어났다. 위로는 김은영이라는 이름의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억척스럽고 생활력강한 주부였다.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하였던 할머니와 살면서 어려서부터 남동생과 두 자매간의 차별이 생활화되면서 커왔다. 그 시절 많은 대한민국 여성이 그랬듯이 김지영이 또한 초등학교 시절 짝꿍에게서 폭력으로 미화된 좋아함을 받았고 똑똑한 여자아이들임에도 반장은 줄곧 남자아이들이 하는 학교분위기를 당연시하며 자랐다. 중고등시절은 성추행을 은근히 일삼는 남자 선생님에게서 수업을 참고 받아야 했으며 여자는 조신해야한다는 말을 이데올로기처럼 듣고 생활했다. 대학시절은 그마나 좀 나은 듯 하더니만, 뒤에서 여자들에 대한 질 낮은 음담패설을 나누는 멀쩡한 남자 동기와 선배를 목격하고는 정나미가 뚝 떨어지기도 했다. 어렵사리 취직한 직장에서는 결혼과 그리고 결정적으로 임신을 하면서 취직 후 몇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출산 후 독박 육아의 스트레스, 시댁에서 받는 생활 스트레스, 맘충으로 취급받는 사회적 스트레스에 짓눌려 김지영씨는 급기야 우울증에 정신병까지 갖게 되어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되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나의 과거 시절을 떠올리게 하여 공감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101~102쪽에 걸쳐 있는 회사 면접 부분이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면접관이 고객과 미팅시 약간의 신체 접촉이 있을 시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했다. 3명의 여성 면접자는 각각 다른 대답을 했다. 김지영씨는 적당히 둘러대어 그 자리를 모면한다, 두 번째 면접자는 화를 내며 따지고 공개 사과를 요구한다, 마지막 면접자는 자신의 옷차림 등 잘못이 없었는지를 되돌아보겠다는 대답을 했다. 나라면 어땠을까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 가장 현실적인 김지영씨의 답변과 같지 않았을까 한다.
회사를 다닐 때 처세가 참 곤란할 때가 많았다. 공적인 일에 관하여 그건 내 일이 아니다고 확실히 말하면 ‘여자가 기가 세다’ ‘독하다’ ‘인적 화합이 안되는 사람이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고, 사람좋은 척하려고 예예를 자주 하면 회색 지대의 일이 어느 새 내 일이 되어 있다. 물론, 사람좋고 일 잘한다는 평판까지 함께 말이다. 때에 따라 달라지는 평판에 사회 생활 초기에는 처세를 하기가 많이 곤란했다. 경험도 없고 약간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사회 생활의 연차가 쌓이면서는 느꼈다. 여자는 회사생활을 하면 두 가지 평가가 있다는 것을. 하나는 남자같이 생각하고 생활하면서 일 잘한다는 평가가 또 하나는 순진한 척 예예거리며 순종하여 사람좋고 사회생활 잘 한다는 평가가. 이 둘 사이에서 매순간 많은 갈등과 선택과 후회가 있었다. 한 때는 적당히 둘러대는 김지영씨와 같은 처세를 많이 해왔지만 끝내는 거리두기, 관심끊기, 스스로 외로워지기를 선택하였다. 그 편이 맘이 더 편했다.
82년생 김지영씨의 삶은 많은 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공감을 이끌어 낼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이 소설보다는 다큐같다는 건 여자사람으로선 나만의 느낌일까?
소설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받을때는 다양한 인물의 생활과 생각과 개연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전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82년생 김지영에는 김지영씨의 생각만 존재한다. 가끔 언니 김은영이나 김지영씨의 엄마가 그들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김지영씨 혼자의 생각만이 담겨 있다.
130쪽에 김지영씨와 남편 정대현씨가 혼인신고를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지영씨 생각보다 빨리 남편이 혼인신고서를 준비해오니 김지영씨가 왜이리 급하냐고 혼인신고 급히 한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지않냐고 하니 남편은 ‘마음이 달라진다’며 혼인신고를 서둘렀다. 여기에서 김지영씨는 남편에게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는 김지영씨에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정대현씨가 말한 ‘마음’은 남편행세를 하겠다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가부장적 남성이 간간이 있기는 해도 요즈음 많은 젊은 한국의 남성들은 경제적 상황으로 인하여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다. 여기서 정대현의 마음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의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우리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시절이 그랬던 만큼 가정보다는 회사에 더 충실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볼 때 아버지들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젊은 남편 젊은 아버지 정대현씨도 시대에 따라 조금 달라졌기는 해도 가장, 책임감, 부양, 무게 등의 단어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소설이 좀 더 다양한 공감과 풍부한 작품적 해석을 위해 이 들의 얘기도 함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