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애는 그런 마음에 대해서 꽤 잘 알았다. 그러니까 현실의 효용가치로 본다면 애저녁에 버렸어야 했을 물건들을 단지 마음의 부피를 채우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마음을 말이다. - P58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 P62

그들이 생각하는 영업도 그런 것일지 몰랐다. 그들이 즐겨 바르는 포마드처럼. ...... 영업은 포마드처럼 강력하게 무언가를,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기 중을 부유하는 먼지나 홀씨, 혹은 햇볕처럼 그냥 슬쩍 내려않는 것이 아닌가. - P82

집이 늙는 흔적들이었다. 어려서 엄마와 함께 오래된 지벵서만 살아본 경애는 집은 그렇게 낡는다기보다는 늙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이 변해가는데는 외부의 영향보다는 내부의 소진이라는 맥락이 있었다. - P171

실력은 녹이 슬었어요. 기억이 녹슬지 않았을 뿐이죠. - P251

그렇게 발견의 눈을 갖지 못한다면 삶이 다르게 보일 가능성은 제로가 되는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경애는 궁금했다. 그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되는지. 이를테면 주말 내내 틀어박혀 어떤 감정기복을 이기며 있다가 갑자기 문밖에 못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 P272

돈을 벌면 벌수록, 무언가를 가지면 가질수록 이상한 불안과 파괴의 정동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 그렇게 마음이 굳어가는 것은 여기가 호찌민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일이 필연적으로 일으키는 마음 상태일지도 몰랐다. 창식씨가 손에 쥘 수도 없는 게임머니에 안달하는 것처럼. - P282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 - P285

조선생이 창식씨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가장 먼저 집안의 먼지를 쓸고 빨래를 하게 했던 것을 떠올리며 경애는 아침이면 지벵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중략... 어디로 가든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아무리 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해도 최후의 낙하점은 있어야 했다. 경애는 다시는 자신을 방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P306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으로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시흥의 창고에서 생각했다. - P307

이 행위의 명분에 대해 끊임없이 경애 자신이 스스로에게 알려주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흐트러지곤 했다. 그렇게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E가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지하상가를 지나다 노숙하는 여자와 아기를 보고 경애가 무심코 했던 ‘불행‘이라는 언급을 정정하던 E는 그때 겨우 열아홉이었다. 그런 깊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복된 현실과의 충돌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까. 마치 운석이 수없이 충돌해 만들어진 달의 크리에이터처럼 일상의 어떤 일들이 E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 P314

그렇게 해서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 - P3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