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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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스먼트 게임 ;

해러스먼트라는 단어와 게임이라는 단어가 도무지 짝지워지지가 않았다.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때 도대체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책일까 궁금증이 일긴 했다. 해러스먼트, 즉 괴롭힘, 희롱이라는 다소 고통과 희생이 연상되는 단어와 게임이라는 유희와 재미가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의 문구로 연결되기에는 소시오 패스가 사람을 갖고 장난치는 것 같은 위험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해러스먼트에 방점이 찍혀있을지 게임에 강조가 되어있을지 알고 싶어졌다. 동시에 왜 제목을 이렇게 무게 중심없이 지었을까, 작가가 지었을지 편집자가 지었을지에 대한 호기심도 일었다. 작가가 지었다면 필력을 의심했을 것 같고 편집자가 지었다면 스스로 마케팅 방향에 대하여 우왕좌왕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작품은 일본의 한 유통회사에서 벌어지는 사내 괴롭힘과 그것을 해결하는 컴플라이언스실(일종의 감사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7년 전 해러스먼트(이 책에서는 일본식 표현인 '하라'라고 표기되어있는데 이 글에서도 '하라'라고 하겠다.)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지방으로 전출된 주인공 아키쓰는 사장 마루오에 의해서 본사 컴플라이언스실로 다시 발령을 받는다. 컴플라이언스실에는 마코토라는 젊고 똑똑한 여직원이 이미 일을 하고 있다. 마루오 회사의 사장 마루오씨가 아키쓰를 다시 본사로 발령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 와중에 마루오수퍼에는 5건의 다른 '하라'가 발생하면서 회사에 위기가 찾아오고 아키쓰와 마코토는 처음의 어색함과 불신을 발생한 '하라'들을 해결하면서 신뢰와 성과로 대체한다. 마침내 마루오 사장이 아키쓰를 본사 컴플라이언스실로 불러올린 이유도 밝혀지고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도 해결되면서 아키쓰는 고위직으로의 승진을 제안받지만 이를 마다한다. 아키쓰는 업무에 대한 성취를 위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자신 인생에 대한 여유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행복으로  느끼게 되고 승진대신 컴플라이언스실 실장으로 남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 작품의 작가인 이노우에 유미코는 소설가라기 보다는 드라마 작가로 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우리도 잘 아는 일본드라마 <하얀 거탑>도 이노우에 유미코의 극본이다. 이 외에도 히트시킨 많은 드라마들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은 읽는 동안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였다. 희곡은 아니지만, 소설 문장은 지문같이 느껴지고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말은 대사와 유사한다. 묘사되는 술집, 사무실, 수퍼마켓 등도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공간이 그려진다. 우리가 최근에 오피스 관련 컨텐츠라던지 '쌉니다. 천리마마트'같이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에 노출이 많이 되었기 때문인지, 드라마 극본을 많이 쓴 작가의 필력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쉽게 연상하고 떠오르면서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읽혔기 때문일까? 5개의 '하라'가 반복되면서 약간은 지루한 감도 없지않아 있다. 이것은 예를 들어, 대형마트 관련 TV드라마에서 어딘선가 본 듯도 하고 들은 듯도 한 익숙한 5개의 에피소드를 무작위로 배치시켜 상영하여 이미 본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리고 독자는 이미 다 알고 있다. 5개의 '하라'들이 어쨌든 아키쓰에 의해서 잘 해결되것임을. 문제는 이 해결의 전개가 우리가 너무도 많이 보았던 방식으로 너무도 익숙한 클리셰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그만큼 4번째 즈음까지 가면 약간은 지루한 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설의 전개 방식과는 별개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일부 공감되기도 하고 일부 우려스러웠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하라'들에 대한 것이다. 흔히들 우리나라의 10년 뒤는 일본이라는 말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이 생각에 반대다. 요즘 일본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뒤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그야말로 수 많은 '하라'들 혹은 '하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파워하라(Power Harassement): 같은 직장에서 작무상의 지위나 인간 관계의 우위성을 배경으로 적정한 업무를 초과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도 파워하라가 될 수 있다.

-참견하라: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행위

-모라하라(Moral Harassment): 말이나 태도로 상대를 불안에 빠뜨리거나 인격과 존엄에 상처를 입히는 정신적 괴롭힘. 자네, 당신이라는 용어도 모라하라가 될 수 있다.

-파타하라(Paternity Harassment): 부성 침해.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남자직원에게 가해지는 괴롭힘

-아라하라(Alcohol harassment): 음주나 회식 관련된 괴롭힘

-에이하라(Aging harassment): 나이에 대한 차별이나 괴롭힘

-스모하라(smoking harassment): 억지 담배를 권유하는 것에 대한 괴롭힘.

-마타하라(materinity harassment):직장에서 임신, 출산 등으로 당하는 괴롭힘.

-에어하라(Air harassment):멋대로 사무실 온도와 공기조절을 하는 괴롭힘.

-카스하라(Customer harassment): 고객해러스먼트. 고객의 악질적 클레임.

 

뭐 이런 것까지 '하라'인가 할 정도까지 세세하게 '하라'로 취급하고 인정하며 문제로 다룬다. 이 작품에 등장한 '하라'의 사례나 설명이 실제로 일본 기업에서 사용되고 인지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작품에 사용된 이상, 실제로 발생하거나 인지되고 있다고 본다면 이것이야 말로 참 갑갑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의 기업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꼰대'라는 단어는 이젠 거의 보통명사화 되었고 '90년대생이 온다'는 책까지 나왔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서도 얼마 전만 하더라도 무심히 넘길 수 있던 행동이나 말들이 얼마든지 '하라'로 취급되어 문제시 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적 요구와 문화적 흐름으로 볼 때 대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권리가 너무 심하게 대두되다 보니 어디까지가 서로 용인할 수 있는 교집합의 상황인지, 어디까지가 서로 교차되면 안되는 온전한 개인의 영역인지 아직은 그 경계가 애매하고 모두가 공감되지 못하고 있다. 80년대의 문화에서 이제 2020년의 문화까지 약 40년을 넘나드는 문화적 충돌하에서 기업들은 어쩌면 지나친 '하라'가 소통과 공감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90년대생과 2000년대생들이 이런 나를 보고 '꼰대'라고 할까. 이 책에 나온 가슴 답답해지는 '하라'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까지는 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지위와 나이를 넘어서 다같이 서로 막힘없는 대화와 소통이 되는 문화가 자리잡혔으면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우리 아들과 딸과 먼저 대화를 시도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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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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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어? 그럼 그만둬. 안전하지만 시시한 일이거나 위험하지만 재미있는 일, 둘 중에 하나를 해야지. 위험하면서 재미도 없는 일을 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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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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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뒤티유욀은 자신이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4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의사는 체력을 과도하게 소모하라는 처방을 내렸지만 종일 앉아서 일을 하는 뒤티유욀은 업무 외 시간이나마 신문 읽기와 우표수집 정도만 할 뿐이어서 도무지 체력을 쓸 일이 없어서 벽을 드나드는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전혀 쓸 일은 없는 채 그저 보유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회사에 상사가 바뀌면서 새로운 변화의 지시가 내려오는데 이 변화를 거부하던 뒤티유욀은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을 인지하게 되고 그 때부터 이 능력을 왕성하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부자들의 물건을 도둑질하며 의적으로 칭송받다가 스스로 감옥에 갇혔고 또 탈출을 하여 나름 변신을 하여 유유자적 살고 있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 여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 여인은 유부녀였다. 어쩔 수 없이 늦은 밤 몰래 그녀의 남편이 없는 사이 그녀의 집에서 뜨거운 사랑을 종종 나누게 되었다. 그 날은 두통으로 언젠가 처방받은 약을 먹고 그녀의 집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새벽이 되어 늘 하던 것 처럼 벽을 통해 그녀 집에서 나왔는데 갑자기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더니 뒤티유욀은 그만 벽 속에 그대로 갇혀 버렸다.

 

약 20쪽이 되는 분량의 이 소설의 줄거리는 정말 위의 요약이 전부이다. 서너 페이지에 있는 삽화를 빼면 순수히 내용은 15쪽 정도뿐이 안되는 것 같다. 요즘 기준으로 치면 단편소설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짧아서 아마 어디 응모하지도 못했을 분량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현재까지 인구에 회자되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2~3년 전에 연극무대로 올려지기도 했다. 내용이 이렇게나 짧은데 각색은 어떻게 되었고 연출은 어떻게 되었을지 다시 공연된다면 꼭 연극을 보러가고 싶을 정도이다.

 

이 작품은 1943년에 발표되었다. 그 당시를 기준으로 본다면 멀쩡한 사람이 벽으로 드나드는 초능력을 가졌고 별 쓸잘데기 없는 곳에 그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쓰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벽에 갇힌다는 기발한 상상력이 정말 신박했었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이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인든지 처음 시도한다는 것은 새롭다는 것에 대한 위험과 엉뚱한 것에 대한 용기와 모험에 대한 호기심이 동반되어야 그 '처음'을 완성할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의 관점에선 그닥 새로울 것 없는 환상동화이지만 1943년 프랑스를 생각해보라. 우울한 그 시대에 이런 기발한 환상을 꿈꿀 자 별로 없었을 터.

이 작품을 두 번을 읽으면서 (왠만해서 한 번 본 것을 두번 보지않는 편인데 책이 너무 짧아 두번보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드는 생각이 세 가지 정도 있었다.

 

첫째, 사람은 역시 여유가 있어야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게 된다.

지루하기 짝이 없을 만큼 변화가 없고 여유가 충족한 생활을 하던 차에 뒤티유욀은 자신만이 가진 능력,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을 깨닫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 교통지옥에을 통과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하게 몸과 머리를 쓰고 소금에 절여진 배추같은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라면 내가 뭘 갖고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전혀 없을 것이다. 뒤티유욀이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알고 찾아간 의사의 처방은 "체력을 소모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즉, 제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을 소모하면 능력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일상이 스스로를 절인 배추와 같이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들이여 자신이 놓치고 있는 능력은 없는지 여유를 갖고 찬찬히 관찰해볼지어다.

 

둘째, 사는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티유욀이 그렇게 좋은 능력이 있었다해도 상사가 바뀌지 않고 또 상사가 바뀌었더라도 업무에 변화를 주지 않았더라면 뒤티유욀은 살던 대로 살았을 것이고 자신의 능력을 되찾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뒤티유욀은 강하게 거부했지만 어쨌든 상사덕분에 능력 개발을 이루었다.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에게 자극을 주는 모든 외부 변화에 대부분 감사하고 볼 일이다.

 

셋째, 자신의 주변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정리 정돈을 잘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의약품이 어디에 있는지 뭐에 쓰는 약인지 정도는 알고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두통약이겠거니 짐작하고 알약을 먹어서 능력을 잃게되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과유불급이라고 자신의 능력을 막 써도 되는 지경이 되니 긴장을 늦추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첫 눈에 반한 사랑하는 여인에 온 맘을 다 쏟고 있었기 때문일까? 뒤티유욀은 체력을 소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두통약으로 잘못 알고 먹는 실수를 한다. 능력이 생긴 이후에 처음처럼 약간의 긴장과 생각을 하고 지냈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실수였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편해지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는 순간 생각의 횟수는 줄어드는 것이 이치이다.

 

이 책에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외에도 생존 시간 카드, 속담, 칠십 리 장화, 천국에 간 집달리 의 4개 작품이 더 실려있다. 개인적으로는 '생존 시간 카드'가 너무나 재미었었고 어릴 적 보던 환상특급에서 나올 법만 이야기여서 기발한 상상력과 전개에 푹 빠져서 보았다.

속담과 천국으로 간 집달리는 전래동화같은 느낌이 있었고 칠십 리 장화는 안데르센의 따뜻한 동화같은 분위기의 책이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분위기의 글을 쓴다는 것에 놀랍고 그 시절에 이렇게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또 놀랍니다. 여러모로 부러울 따름이다. 그래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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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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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특혜자들 역시 우리를 시샘하고 있다. 우리가 신비와 미지의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은근히 부러운 모양이다. 정작 우리는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무의 장벽을 지각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삶을 계속 영위하는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더욱 샘이 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인 죽음을 마치 후가처럼 여기먼서 자그들은 사슬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대체로 그들은 염세주의에 잘 빠지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서 나와 같은 범주의 속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면서 더욱 빠른 생활 리듬을 따르다 보니 명랑한 기분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 P59

고백할 만한 속내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고전 비극에서 우리를 진자 슬프게 하는 것은 주인공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의 비극이다. 평생 특별한 일이라곤 겪어본 적이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자기 모험을 자랑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장황한 이야기를 체념한 채 다소곳하게 듣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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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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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완서 읽기 3번째.

그의 데뷔작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박완서는 40의 나이에 등단햇다. 요즘이라고 해도 여자 나이 40이면 첫 시작을 하기에는 자신감이 결핍될 듯한 나이인데 1970년에 여자 나이 40에 등단을 했으니 아마도 그 때 문단에서는 약간이라도 센세이션이 되었음직하다.

 

<니목>은 박완서 작가가 취직하여 다녔던 미군PX의 경험을 일부 반영하여 쓴 소설이다. 그때 만났던 박수근 작가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20대 젊은 여성들이 전쟁이라는 참상을 어떻게 겪고 느꼈는지가 옥희도(아마도 박수근)라는 인물을 가운데 두고 그려내었다.

 

1.4후퇴 후 전쟁이 약간은 익숙해져 벼린 날에 경아는 서울의 아주 오래된 한옥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있다. 경아는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에서 미군을 상대로 스카프나 손수건에 그림을 그리라고 영업을 하고 정산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4명의 환쟁들이 일을 하고 있는 가게에 진짜 화가인 유부남 옥희도가 생계를 위해 합류한다. 전기수리공인 황태수가 경아에게 호감을 느끼며 다가오는 중인데 경아는 유부남인 옥희도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만다. 그것은 유부남 옥희도도 마찬가지. 서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결핍과 불안을 잠시라도 녹여줄 그런 대상이 필요했던 것인데 마침 그 곳이 각자가 서있었던 것이다.

참담한 전쟁의 가운데 경아는 전쟁이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고서야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어서 빨리 황폐해지기를, 그러기 전에 자기가 먼저 황폐해지기를 바라며 버티고 있는 삶이다. 그 속에서 순수한 맑은 눈빛을 한 옥희도는 경아에게 어쩌면 빨리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또 어쩌면 황폐해져가고 있는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라고 잠재 의식 속에서 생각했었을 지 모르겠다. 소설의 끝부분에 이유가 밝혀지긴 하지만 경아는 전쟁이 준 고통속에서 엄마를 미워하며 엄마의 모습을 한 오래된 한옥을 죽기만큼 싫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하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전 어느 즈음부터 아직 그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겨우 몇 개월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600페이지가 얼추 되는 제법 두껴운 책은 경아의 생각과 느낌의 절절한 묘사와 그가 바라보고 느끼는 전쟁 중 서울, 전쟁을 견뎌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으로 가득차 있다. 그 묘사와 서술이 너무도 생생하고 박완서 특유의 생경하면서도 상상가능한 비유와 은유로 인하여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하고 조금은 건조한 시선으로 하여 나는 오히려 익숙해져버린 그 전쟁이 한층 더 무섭게 다가왔다. '역시 전쟁은 안돼. 두 번 다시 전쟁은 절대 안돼.'라는 생각을 박 작가의 담담한 표현으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전쟁과 죽음과 학살을 더 절절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참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종아하게 되었던 재미는 책인데도 첫 부분에 경아가 싱그러운 젊음을 가진 태수보다도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멀쑥한 옥희도에게 연정을 느끼고 사랑을 갈구할 때 나는 경아가 미웠다. "아니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남의 남자를. 멀쩡한 가정을 깨려고 하나. 저 밖에 모르는 나쁜 가스나"라는 생각을 하며 주인공인데도 애착이 가지 않았고 오히려 경아를 일편단심 좋아하고 위해주는 태수를 응원하였다.

이것은 소설인데, 아니 현실일지라도 그들이 가진 감정을 제 3자가 뭐라 할 수 있겠냐마는, 유부남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있었나 보다, 나는. 경아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의 도입부분에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안되니 속도가 조금은 더뎠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좀 많이 보수적이구나'라고.

어쨌든 나중에 경아의 그런 마음 끌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하여서 그 미움으로 책을 마무리하지않을 수 있었어 좋았다.

 

국문학과를 입학하지 마자 전쟁이 일어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23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여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육아와 가사로 전혀 글을 쓰지 못하다가 거의 20년 세월이 지난 후 박완서는 첫 작품을 내었다. 첫 작품 발표때까지 20년이 걸렸지만 첫 등단이후 박 작가는 그야말로 소설, 산문, 동화, 콩트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작품을 어느 젊은 작가 못지 않게 왕성하게 써내었다. 책 뒤에 붙은 작가 이력을 보니 그야말로 후덜덜하다. 20년 묵은 솜씨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쓰고 소진하겠다는 결의까지 엿보였다. 그가 일생동안 써내었던 작품 수에 비하면 잘 알려진 소설은 의외로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다. 역시 후대에 길이 길이 이름이 남거나 혹은 시대에 두루 두루 회자되는 작품은 그만큼 어려운 가 보다. 하긴 모든 작품이 다 히트작이고 다 별 5개짜지이면 그 사람도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작품이라도 이렇게 오래도록 앞으로도 더 널리널리 읽힐 만한 작품을 쓰려면 역시 많이 일고 많이 써보아야 하는 것 같다. 박 작가의 두툼한 이력을 보며 누구나 다 아는 진리 하나를 또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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