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15년에 처음으로 읽고 5년이 지나 두 번째로 읽었다.

분명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아주 코믹하고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작가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재를 싫어하고 그 이유는 우리의 모든 일상에 프로가 되기를 강요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기억이 난다.

두 번째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코믹과 재미는 여전하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발견하고 방방 떠서 그 시절야구를 회상하고 프로의식자본주의를 비판하기 보다는, 차분히 앉아 세상의 이치를 다 알아버린 사람처럼 관조하고 사색하고 약간은 가슴 아파한다.

나는 5년 전의 내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옛날에 써 두었던 감상문을 다시 불러오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감상문이었다. 무려 40대 중반의 성인이 저 정도 수준의 감상밖에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부끄러웠다. 실은, 이 책을 다시 읽고 감상문을 쓰는 수고를 덜기 위해 전에 썼던 감상문을 그대로 옮길까. 라고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나에 대해서는 기특하게 생각한다.

 

이 책은 세 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1.1982년의 베이스볼 2.1988년의 베이스볼 3.1998년의 베이스볼.

11982년의 베이스볼은 주인공과 조성훈이 중학교에 입학하는 그 해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기고 그들의 연고지인 인천에 하필삼미슈퍼스타즈가 창단되면서 두 주된 인물들이 야망을 가지는 소년이 되었다가 12푼의 승률을 숙명처럼 끌어안고 사는 불행한 소년의 삶을 살면서 유니세프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원망하다가 그들의 슈퍼스타이자 별이었던 삼미슈퍼스타즈를 떠나보내는 것이 주 내용이다.

21988년의 베이스볼은 삼미슈퍼스타즈를 경험하면서 사람의 인생은 소속이 결정하고 세상은 프로들이 이끌어나간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이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충실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를 진학하고 진학 후 삼미는 잊고 소속과 계급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한편, 아버지가 죽은 후 친척들이 돼지발정제를 먹은 듯이 돈을 향해 미쳐 날뛰는 것을 보면서 조성훈이 미련을 버리고 일본으로 떠나는 것도 2장의 이야기가 되겠다.

31998년의 베이스볼은 제목에서 딱 감이 오듯이 6.25이후 대한민국 최대 환란이라는 경제위기를 맞이한 주인공이 드디어 회사에서 짤린다. 일류대 출신의 주인공은 대기업에 들어가서 가정을 버려야 직장인이 산다는 책을 끼며 하루 4시간의 수면만을 취하며 회사에 모든 것을 바쳤건만 일류대도 대기업도 별 수 없던 그 시절에 주인공도 별 수 없었다. 그 즈음 일본에 갔던 그리고 아직도 삼미슈퍼스타즈의 정신을 신앙처럼 새기고 있는 조성훈이 돌아오고 그의 영향으로 주인공은 세상은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신이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주신 새 치약처럼 풍부한 시간을 남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내 인생의 일’ ‘내 인생에 대한 생각들을 잔뜩 끌아 도토리의 산을 쌓아두는 데 쓰기 시작한다. 그리곤? 다시 플레이 볼이다. 주인공은 이제 다시 플레이된 볼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전에 읽었을 때 나는 주인공이 다시 플레이. 된 공.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 지 아는 것을 당연히 여겼는데 지금 다시 보니 주인공이 진짜 제대로 알았을까 혹시 잠시 알았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1998년의 주인공보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 한 번 바뀌려고 준비하는 것 만큼 나이를 더 먹은 나는 아직도 어떻게 그 공을 잡아야 할지 여전히 생각 중이기 때문이다. 전에 써놓았던 감상문의 마지막 부분을 보니 나라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한 치의 성장도 못했나보다.

 

외환위기 이후에 현재까지 (이 책이 출판되고 10년하고도 2년이 더 흐른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지구가) 긴장의 날을 세우고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살고 있고, 세상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따위를 인용해가며 이것은 현대인의 숙명인 듯 세뇌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 과연 지금, 우리 앞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는가. 여전히 우리는 배고프고, 외롭고, 괴롭고, 늘 쫓기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에 다시 삼미슈퍼스타즈를 소환하여도 별 문제가 없을 듯하다.

, 나는 삼미슈퍼스타즈를 소환하여 지금 내 일상에 한번 대입해보고자 한다.

과연 지금 그리고 미래에 내 앞에 펼쳐질 일상은 무엇인가, 무엇이 내가 즐거이 맞닥뜨릴 수 있는 삶인가? 불안을 해소할 프로의 인생인지, 불안을 떨칠 삼미의 방식인지.

적절한 고민 후에 선택은 나의 몫. 나의 선택은?“

 

나는 여전히 내가 즐거이 맞닥뜨릴 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이보다 더 이상 적절하지 못할 만큼 고민을 했으나 나는 내 몫을 쟁여두지 못했고 선택도 미루고 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고민한다. 다만 불안하고 고민하는 가운데서도 남의 일이 아닌 내 인생의 일내 인생의 생각들을 조금씩 쌓아가느라 치열하는 것이 전과는 다를 뿐.

작가의 역할은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던 안톤 체홉의 말에 따르면 박민규는 2015년에도 2020년에도 제대로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화목한 가정은 이처럼 구성원 개개인의 자그마한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 P123

큰일이었다. 세상은 이미 프로였고, 프로의 꼴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 원년의 종합 팀 순위로는 그것을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6위 삼미 슈퍼스타즈: 평범한 삶
5위 롯데 자이언츠: 꽤 노력한 삶
4위 해태 타이거즈: 무진장 노력한 삶
3위 MBC 청룡: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2위 삼성 라이온즈: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한 삶
1위 OB 베어즈: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 - P126

나는 교육의 목표 역시 ‘소속‘을 가리는 데 있었다는 중요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또배짱이 아닌 이상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했다간 큰일이 나는 것이다. 눈치를 깠다면 당연히 타고난 저마다의 ‘소속‘부터 개발해야 한다. - P139

‘소속‘의 슬픔이란 그런 것이다. 이른바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집단에서도 이 ‘소속‘의 콤플렉스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사실 그래서, 인간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 P144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야 할 회사가 없었던 그해의 여름은--그과정을 충분히 마무리지을 수 있을 만큼이나 길고 긴 것이다. - P242

조표도, 그 어떤 지명과 소속도 표시되지 않은 칙칙한 지구였지만, 그 전체가 완벽한 ‘나‘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세계였다. 아주 오래전, 나는 좌표와 지명이 분명한 비싸고 화려한 지구 위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지구다.
때로 이 모든 생활이 현실 도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P258

자식, 잘 나간다 싶었더니 삼천포로 빠졌구나.
라는 말을, 들었다. 엘리트들 중에는 간혹 남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을 예사롭게 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엘리트 학생복을 입은 채 명문고를 나오고, 역시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의 요직에라도 앉으면 그럴 위험성은 상당히 높다. 게다가 ROTC라도 했다간 끝장이다. 최악의 경우는 게다가 어릴 때 줄반장과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겸한 것이고, 게다가 교회의 집사라도 된다면 더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 P259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도, 실은 국수의 가락처럼 끊기 쉬운 것이었다. 빙하기가 왔다는 그 말도 실은 모두가 거짓이었다.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 P262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안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 P264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 P279

무렵의 나는 겨울잠을 준비하는 오소리처럼--내 인생의 일, 내 인생에 대한 생각들을 잔뜩 끌어 모아, 도토리의 산을 쌓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토리의 산을 남겨둔 채 이제 더는 남의 일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면 할 만큼 했다. - P284

여러 번 취직을 했다가, 여러 번 퇴사를 했고, 그랫다가 얼마 전 다시 취직을 했다. 생각이 바뀌고 나자 마치 물과 뭍을 자유롭게 오가는 양서류처럼 취직 자리가 많아졌고, 그러면서도 물과 뭍이 동시에 공존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 P2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궁궐 - 그날의 역사
황인희 지음, 윤상구 사진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궁궐 건물과 건축에 관련된 책과 궁궐 기행 책은 많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자료를 이 책보다 더 많이 인용하여 각 궁궐의 전각과 연결지어 역사를 많이 설명하는 책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궁궐 전각을 설명하는 책과 같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유정 작가를 참 좋아한다.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그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처음 읽었던 <28>은 동물이 화자가 되는 새로운 시점에 대한 충격을 가져다주었고 스펙타클하고 다이내믹한 전개는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 했다. 내처 다른 작품을 골랐다.

<7년의 밤>. 실은 <7년의 밤>이 먼저 나온 책이다. 그러니 나는 발행 역순으로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7년의 밤>은 <28>과는 다른 화자 다른 이야기로 그 몰입감과 이야기 전개에 대한 궁금증이 독자로 하여금 강하게 집중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두 책을 읽고나니 정유정 작가의 다른 책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읽은 책은 <내 심장을 쏴라>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이 작품이 정유정 작가의 첫 작품이 되겠다. 역순으로 읽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내 심장을 쏴라>가 제일로 마음에 든다. 앞선 두 작품 <28>과 <7년의 밤>이 좀더 미스테리나 추리에 가깝다면 <내 심장을 쏴라>는 우리 인간 세상, 청소년, 사회에서 흔히 루저라 일컫는 이들과 그 심리를 다룬 사람냄새나는 작품이다. 결말도 마음에 들고 인물, 묘사, 대사가 다 좋았던 작품이다.

 

서론이 길었다. <진이, 지니>는 2019년 5월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 나는 존재를 몰랐다. 내가 얼마나 한국현대소설에 관심이 없었던지를 자명히 보여준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푸른 표지의 이 책이 바로 눈에 띄였다. 아마 그동안은 대여하는 사람이 많아 제대로 비치되고 않았던 것이고 이제 웬만한 읽은 사람은 다 읽었나보다. 예약하지도 않았는데 온전히 내 눈에 띄인 것을 보면. 주저함이 없이 바로 빌렸다.

 

정유정 작가의 다른 전작들과 비교해서 볼때, 나는 당연히 1~2일이면 다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일주일이 넘어서야 책을 반납할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작가는 자기 복제의 한계를 당초부터 갖고 있다하겠다. 하늘 아래 완전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문체는 있을 수 없을 거니까. 전작 3개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사한 점이나 문제의 비슷한 점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작가의 4번째 작품인 <종의 기원>은 작가의 전작과 소재가 달랐음에도 다른 컨텐츠, 예를 들면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많이 다루어서인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있엇다. 약간의 <7년의 밤>과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작품 <진이, 지니>도 그렇다. <28>과 상당히 닮았다. 동물 소재라는 것과 동물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다보니 그의 움직임을 쫓는 묘사나 표현까지도. 그래서 새롭지 않고 약간의 지루했다. 그래서 꼼꼼히 읽지 못하고 는으로 흘려 읽는 부분이 많았다. 줄거리가 짐작이 되고 표현도 새롭지 않고 새길만한 깊은 문장도 아니었다.

 

분위기가 어둡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밀렵으로 포획된 동물이 우연히 탈출하고 탈출해있는 과정의 사건들을 두 남녀 주인공의 교차시점으로 그린 내용인데 밀렵된 동물이라는 소재 자체가 어두운 데다가 두 주인공의 처지를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우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읽는 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여자 주인공 진이가 동물 지니와 동화되어 회상하는 부분은 작가가 밀렵둥물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부각시키기 위해 억지로 감상적으로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개인적 감상이니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 알아두시길.

 

왜 하필 주인공 동물로 보노보를 골랐을까? 작가의 인터뷰라도 있을까 하여 검색을 해보았는데 실패했다. 아마 밝히지 않겠게지, 내가 못 찾은 게 아니라. 밀렵이라는 설정을 하다보니 그랬을까하고 추측만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 아니다보니 작가가 보여주려 했던 사람과 동물의 교감, 동물 사랑이 내게 쉽게 와닿지가 않았다. 아니, 내가 동식물에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는 그랬다.

이런 이유로 전작들 대비 책을 처음 잡은 이후로 가장 오래동안 붙잡고 있었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뻔하지 않았다. 진이와 지니가 처음 만나는 순간과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을 절묘히 혼합하고 교차시킨 작가의 이야기를 꾸미는 능력은 인정해야만 하겠다. 동물 학대, 휴머니즘,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공감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나는 별 3개정도만 주겠다. 동시에 <내 심장을 쏴라>같은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러스먼트 게임 ;

해러스먼트라는 단어와 게임이라는 단어가 도무지 짝지워지지가 않았다.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때 도대체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책일까 궁금증이 일긴 했다. 해러스먼트, 즉 괴롭힘, 희롱이라는 다소 고통과 희생이 연상되는 단어와 게임이라는 유희와 재미가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의 문구로 연결되기에는 소시오 패스가 사람을 갖고 장난치는 것 같은 위험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해러스먼트에 방점이 찍혀있을지 게임에 강조가 되어있을지 알고 싶어졌다. 동시에 왜 제목을 이렇게 무게 중심없이 지었을까, 작가가 지었을지 편집자가 지었을지에 대한 호기심도 일었다. 작가가 지었다면 필력을 의심했을 것 같고 편집자가 지었다면 스스로 마케팅 방향에 대하여 우왕좌왕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작품은 일본의 한 유통회사에서 벌어지는 사내 괴롭힘과 그것을 해결하는 컴플라이언스실(일종의 감사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7년 전 해러스먼트(이 책에서는 일본식 표현인 '하라'라고 표기되어있는데 이 글에서도 '하라'라고 하겠다.)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지방으로 전출된 주인공 아키쓰는 사장 마루오에 의해서 본사 컴플라이언스실로 다시 발령을 받는다. 컴플라이언스실에는 마코토라는 젊고 똑똑한 여직원이 이미 일을 하고 있다. 마루오 회사의 사장 마루오씨가 아키쓰를 다시 본사로 발령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 와중에 마루오수퍼에는 5건의 다른 '하라'가 발생하면서 회사에 위기가 찾아오고 아키쓰와 마코토는 처음의 어색함과 불신을 발생한 '하라'들을 해결하면서 신뢰와 성과로 대체한다. 마침내 마루오 사장이 아키쓰를 본사 컴플라이언스실로 불러올린 이유도 밝혀지고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도 해결되면서 아키쓰는 고위직으로의 승진을 제안받지만 이를 마다한다. 아키쓰는 업무에 대한 성취를 위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자신 인생에 대한 여유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행복으로  느끼게 되고 승진대신 컴플라이언스실 실장으로 남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 작품의 작가인 이노우에 유미코는 소설가라기 보다는 드라마 작가로 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우리도 잘 아는 일본드라마 <하얀 거탑>도 이노우에 유미코의 극본이다. 이 외에도 히트시킨 많은 드라마들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은 읽는 동안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였다. 희곡은 아니지만, 소설 문장은 지문같이 느껴지고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말은 대사와 유사한다. 묘사되는 술집, 사무실, 수퍼마켓 등도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공간이 그려진다. 우리가 최근에 오피스 관련 컨텐츠라던지 '쌉니다. 천리마마트'같이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에 노출이 많이 되었기 때문인지, 드라마 극본을 많이 쓴 작가의 필력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쉽게 연상하고 떠오르면서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읽혔기 때문일까? 5개의 '하라'가 반복되면서 약간은 지루한 감도 없지않아 있다. 이것은 예를 들어, 대형마트 관련 TV드라마에서 어딘선가 본 듯도 하고 들은 듯도 한 익숙한 5개의 에피소드를 무작위로 배치시켜 상영하여 이미 본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리고 독자는 이미 다 알고 있다. 5개의 '하라'들이 어쨌든 아키쓰에 의해서 잘 해결되것임을. 문제는 이 해결의 전개가 우리가 너무도 많이 보았던 방식으로 너무도 익숙한 클리셰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그만큼 4번째 즈음까지 가면 약간은 지루한 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설의 전개 방식과는 별개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일부 공감되기도 하고 일부 우려스러웠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하라'들에 대한 것이다. 흔히들 우리나라의 10년 뒤는 일본이라는 말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의 나는 이 생각에 반대다. 요즘 일본은 오히려 우리보다 더 뒤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그야말로 수 많은 '하라'들 혹은 '하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파워하라(Power Harassement): 같은 직장에서 작무상의 지위나 인간 관계의 우위성을 배경으로 적정한 업무를 초과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도 파워하라가 될 수 있다.

-참견하라: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행위

-모라하라(Moral Harassment): 말이나 태도로 상대를 불안에 빠뜨리거나 인격과 존엄에 상처를 입히는 정신적 괴롭힘. 자네, 당신이라는 용어도 모라하라가 될 수 있다.

-파타하라(Paternity Harassment): 부성 침해.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남자직원에게 가해지는 괴롭힘

-아라하라(Alcohol harassment): 음주나 회식 관련된 괴롭힘

-에이하라(Aging harassment): 나이에 대한 차별이나 괴롭힘

-스모하라(smoking harassment): 억지 담배를 권유하는 것에 대한 괴롭힘.

-마타하라(materinity harassment):직장에서 임신, 출산 등으로 당하는 괴롭힘.

-에어하라(Air harassment):멋대로 사무실 온도와 공기조절을 하는 괴롭힘.

-카스하라(Customer harassment): 고객해러스먼트. 고객의 악질적 클레임.

 

뭐 이런 것까지 '하라'인가 할 정도까지 세세하게 '하라'로 취급하고 인정하며 문제로 다룬다. 이 작품에 등장한 '하라'의 사례나 설명이 실제로 일본 기업에서 사용되고 인지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작품에 사용된 이상, 실제로 발생하거나 인지되고 있다고 본다면 이것이야 말로 참 갑갑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의 기업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꼰대'라는 단어는 이젠 거의 보통명사화 되었고 '90년대생이 온다'는 책까지 나왔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서도 얼마 전만 하더라도 무심히 넘길 수 있던 행동이나 말들이 얼마든지 '하라'로 취급되어 문제시 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적 요구와 문화적 흐름으로 볼 때 대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권리가 너무 심하게 대두되다 보니 어디까지가 서로 용인할 수 있는 교집합의 상황인지, 어디까지가 서로 교차되면 안되는 온전한 개인의 영역인지 아직은 그 경계가 애매하고 모두가 공감되지 못하고 있다. 80년대의 문화에서 이제 2020년의 문화까지 약 40년을 넘나드는 문화적 충돌하에서 기업들은 어쩌면 지나친 '하라'가 소통과 공감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90년대생과 2000년대생들이 이런 나를 보고 '꼰대'라고 할까. 이 책에 나온 가슴 답답해지는 '하라'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까지는 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지위와 나이를 넘어서 다같이 서로 막힘없는 대화와 소통이 되는 문화가 자리잡혔으면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우리 아들과 딸과 먼저 대화를 시도해 보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