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뭐라도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세계. 이 세계에선 평생 동안 타인보다 내가 더 잘난 부분을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중략)...모두가 산꼭대기 벼랑 끝에서 까치발을 들고 서 있다. 그들은 외친다. 자기들이 얼마나 힘들게 여기에 올라왔는지...(중략)...공산주의가 아닌데도 모두가 1인분을 해야만 한다고 외친다. - P27
좌절 속에서 생각은 끝없이 피어났고, 속절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무너져 내려갔다. 전과 다른 일을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 안에 몰랐던 내가 있길 바랐다...(중략)...진짜 나를 찾아간다는 허울 같은 소리. 거기서 찾은 ‘나‘가 멋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걸까. - P46
어떤 비아냥도 그저 털어내면 그만인 먼지처럼 가볍게 여겨진 까닭은 역시나 통장이 묵직해졌기 때문일까. 더 이상 내가 정상인이라고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아졌기 때문일까. 제대로 된 돈벌이가 내게 준 건 땅도 집도 차도 아닌 해명할 필요 없는 삶이었다. - P94
시작. 그것은 어렵지만 동시에 설레는 일이었다. 한없이 부풀어 하늘로 올라가는 색색의 풍선 같기도 했다.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저 대기를 버틸 수 있을까. 전선에 걸리거나 나뭇가지에 찔려 펑 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시작이라는 건 어쨌든 멀어지는 것이니까. 그 멀어진 것들이 언젠가 별이 되기를 바라며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한 시작이 멀어지면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하늘로 올려 보냈다. 오늘의 시작, 내일의 시작, 모레의 시작, 한 달 뒤의 시작, 일 년 뒤의 시작. 그렇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작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늘이 알록달록한 빛으로 가득 찰 줄 알았다. 그 풍선들이 모조리 터져버릴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 P154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구나. 핸들을 어디로 꺽어야 하는지, 가서 무얼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두려울 때도 그녀처럼 웃을 수 있는 거구나. 이건 용기가 아니었다. 겁이 없어서 웃는 것도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게 책임이었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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