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9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내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게 얼심히 수행하는 '지겨움'의 대상이었다.'

 

   69는 무라카리 류의 자전적 소설이다. 1969년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그가 실제로 학교에서 했었던 바리케이드 투쟁과 그 외 학교 생활을 아주 즐겁게 유쾌하게 그린 소설이다.

1969년이면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80년대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소설에서 나온 류의 생활을 보건태, 소소한 일상과 생활을 많이 다를지언정 당시 고등학교 학생들이 갖고 있던 생각은 우리가 고등학교를 보내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맨위의 구절은 소설 속 문장이 아니라 소설 맨 마지막 지은이의 말에 류가 한 말이다. 소설의 세세한 줄거리보다 이 문구가 바로 내 가슴을 크게 울리며 격하게 동의를 이끌어 내었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친구가 존재했을 뿐, 선생은 남아있지 않다. 물론 물리적으론 국어선생도 있고 수학선생도 있고 영어선생도 있고 각 과목과 담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그들은 단지 무라키미 류가 말한 것 처럼 우리라는 인간을 가축으로 만들어 사회로 내보내려는 일을 충실히 담당하는 기능인이었다. (물론, 그들도 생활인으로 직장인으로 나름의 애환이 있고 할말은 있을 것이 분명하나 여기서 그들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여학교였던 내 고등학교 시절은 일부 남자선생들의 성희롱적인 언어와 눈짓이 넘나들었고 당구큐대와 특별제작된 회초리가 여학생들의 엉덩이와 손바닥을 거의 매일 두드리던 나날이었다. 한 반에 50~60명 가까운 아이들을 몰아넣고 자율학습시간에는 교도관이 감방 순시하듯 회초리를 벽에 긁어대며 단 하나의 소음도 잡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선생들은 교실 순시를 해대었다. 낭만도 없고 자유도 없는 시절이었다. 오로지 사춘기가 빨리 온 친구들에게서 듣는 이글스와 데미안과 이문세가 축사의 우울한 나날을 위로해 주었다.

   무라카미 류의 고등학교 시절도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터. 그럼에도 그는 너무도 유쾌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짓는다. 아마 그 자신이 재미있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부럽다.

 

   사람들은 대게 과거의 기억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때가 좋았지, 그땐 그랬지. 하지만 나는 어쩌면 실제보다 더 안좋게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만큼 고등학교 시절은 돌이키면 친구들과 즐거운 나날이었긴 하나 '나'라는 인간의 성장에는 한 치도 영향을 주지 못한 시절이었기에 그럴 수 있을 듯 하다.

   그 때 그 선생들은 지금은 환갑이 넘거나 늙은 할배들이 되었을 텐데, 제발 태극기 들고 나서는 할배들만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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