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교양 공부 - 나와 세계를 잇는 지적 생활 습관 ㅣ 하루 한 공부
전성원 지음 / 유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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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최초로 알리기 전까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는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다. 김학순 할머니의공개 증언은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큰 용기를 주어 국내외에 이 문제에 대한 증언이 잇따르는 계기가 되었으며, 1992년 1월 8일 일본의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수요집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_ 수요집회 중 - P35

멕시코로 이주한 멘추는 과테말라의 잔혹한 현실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1983년 멘추가 구술한 『내 이름은 리고베르타 멘추, 내 의식은 이렇게 탄생했다』가 출판되었다.
이 책은 과테말라 원주민 여성이 직접 증언한 수 세기의 억압과 배제의 역사, 당시 과테말라의 참혹한 현실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다. 목숨을 건 멘추의 발언에 세계는 더 이상 과테말라의 참혹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고, 1984년 ‘난민에 대한 카르타헤나 선언‘이 발표되었다. 199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리고베르타 멘추는 1959년 1월 9일에 태어났다.

_ 내 이름은 리코베르타 멘추 중 - P37

1945년 패망할 무렵 일본에는 약 210만 명의 재일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1946년 3월까지 대략 140만 명이 귀환했지만, 해방 직후의 혼란과 생활난 등의 이유로 일본으로 되돌아간 이들도 많았다. 1952년 주권을 회복한 일본은 외국인등록법을 시행해 재일동포의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한편, 지문날인을 거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했다. 1980년대 재일동포 한종석 씨가 지문날인을 거부하면서 지문날인 거부 운동이 전개되었고, 마침내 1991년 1월 10일 재일동포의 인권을 침해해 온 지문날인 제도가 철폐되었다.

_ 지문 중 - P40

해방 후 호남선 열차는 근대 산업화 시대, 가난을 모면하려고 무작정 상경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이별열차였다. 목포행 완행열차(비둘기호)는 1998년 12월 1일 노선이폐지될 때까지 서민들의 애환과 수많은 사연을 담아 달렸고, 호남선 복선화 사업은 호남선이 개통된 지 90년, 복선화공사가 시작된 지 36년 만인 2004년에야 완성되었다.

_ 대전발 0시50분 중 - P42

선언 이후 그의 발표와 달리 애초에 이 방위선 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도차이나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오히려 증대되었고, 오랫동안 미뤄 왔던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1950년 1월 26일)을 체결했다는 점 등을 볼 때 애치슨의 당시 연설은 아시아에 대한 경시와 무지의 반증이었다고 추측하게 된다.

_ 애치슨라인 중 - P45

고향 양산 대석리로 돌아간 권순도는 그곳에 집을 짓고 면암 최익현 선생 추모 사업을 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1931년 1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고향 마을에 세운 비석에는 "세계인 환영 권순도"라고 쓰여 있는데, 우연히 마을 곁을 지나가는 외국인이있으면 집으로 모셔다가 숙식을 제공하며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_ 세계인 환영 권순도 중 - P48

이 화장지 쪽지가 우여곡절 끝에 정의구현사제단의 손에 들어갔다. 불의한 권력을 넘어뜨린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_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중 - P51

세상은 ‘마르크스 이래 최고의 두뇌’로 불렸던 혁명가를 잃었고, 이후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불구덩이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_ 호자 룩셈부르크 중 - P53

[ 오늘날 오픈소스 웹 기반 온라인 백과사전의 대명사인
‘위키백과사전‘은 2001년 1월 16일 지미 웨일스와 래리 생어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위키백과사전은 전문가만 편집할수 있었던 이전의 백과사전과 달리 위키라는 개념과 기술을 사용해 전 세계에서 3100만 명 이상의 참여자와 익명의 다수가 참여하는 백과사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종이로 된 훌륭한 사전의 제작은 질 높은 검색을 위한 변함없는 필수조건이다.

_ 백과사전 중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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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교양 공부 - 나와 세계를 잇는 지적 생활 습관 ㅣ 하루 한 공부
전성원 지음 / 유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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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역사를 단순 암기 과목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를단지 ‘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인과관계를 살필수 있다면 ‘선’을 알고 있는 것이고,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이해한다면, ‘면‘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한다면, 역사의 여러 측면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개념 또한 역사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_ 어떻게 읽을 것인가 중 - P5

루이 암스트롱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재즈도, 현대의 팝도 지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재즈 자체가 뉴올리언스 지방의 민속음악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커다란 변화의 첫걸음이 새해 첫날의 이 작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_ 루이 암스트롱의 새해 중 - P21

훗날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가 표현한 스페인 사람들의 놀라운 정열과 불타는 시기심, 전투적 신앙은 이 무렵에 형성되었다. 레콩키스타가 진행되는 동안 스페인은 투항한 이슬람 세력과 유대인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지만, 정복이 마무리되자 더 이상의 관용은 없었다. 스페인에 충성을 바쳤던 무어인들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해야 했고, 개종한 무어인들은 ‘변절자‘tornadizos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다. 이처럼 오랜 고립 끝에 스페인은 신대륙 발견에 나섰다.

레콩키스타 중 - P23

이들에게 일본의 ‘전후‘란 전쟁 전의 체제를 복원하려 분투하는 시간이었고 신사가 주관하는 지역 축제인 ‘마쓰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용해 종교의 정치화, 정치의 종교화를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_ 천황제와 국가신도 중 - P25

1687년 7월 5일 출판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일명 프린키피아로 뉴턴은 당시에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이 책은 근대 역학과 근대 천문학을 확립한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_ 프린티피아 중 - P27

한국에서 크리스마스가 종교와 무관하게 기념일로 광범위하게 자리 잡게 된 데는 미군의 주둔과 함께 미국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이 주요한 원인이지만, 특별한 축제일이 된 까닭은 야간통행금지가 이날 만큼은 풀렸기 때문이다. 마치 중세의 카니발처럼, 크리스마스는 본래 취지와무관하게 평소 억압되던 욕구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제5공화국은 원죄를 의식해 교복과 두발 자유화 등 몇몇 자유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안정된 치안상태를 대외적으로 알린다는 명분 아래 1982년 1월 5일부터 통행금지 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24시간 깨어 있는 나라’(?)가 되었다.

_ 통행금지 중 - P29

모스는 1837년 10월 모스부호에 대한 특허를 받았고, 1838년 1월 6일 뉴욕에서 분당 10단어의 속도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실험에 성공했다.

_ 신은 무엇을 만들었나 중 - P31

19세기에 이를 때까지 과학 연구의 재정은 개인의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후원자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 덕분에 갈릴레오는 1610 년 가을 ‘대공의 철학자 겸 수학자‘로 임명되었다. 갈릴레오가 대학교수를 마다하고 대공의 철학자가 된 이유는돈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학문의 위계가 존재하던 당시 분위기에서는 철학 교수만이 현상의 본질과 원인을 탐구할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_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메디치가의 별 중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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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역사 - 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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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제 여성은 자신의 직업이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부유한 남성의 부인으로서 ‘과시적’으로 소비해야만 하고, 그 자체가 계층을 구별 짓는 행위가 되었다는 말이다. 고대 노예와는 달리 근대 여성에게는 ‘소비하는 일‘이허락되었지만, 그 소비는 언제나 대리적代理的, Vicarious 일 뿐 여성의 본질이 될 수는 없었다."

_ 왜 신부의 드레스는 신랑의 턱시도보다 비싼가 중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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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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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

장일호기자의 <슬픔의 방문>을 읽기전 가졌던 생각은 장일호란 이름으로 남성일 것이란 선입견이었다.

29세 저자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글을 보며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생각났다. 아버지의 죽음은 엄마의 삶과 생활, 그리고 자신속에 투영된 엄마의 모습을 그린다. 아버지의 부재속 가족의 경제적이면서도 정서적인 삶이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가정 환경은 저자의 진로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의 실업계 고교 입학과 늦은 대학생활로 이어졌고, 저자 동생의 비정규직 삶과 이후 어려운 처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공감아닌 공감을 일으키는 지점은 추상적인 언어로 아니라 구체적인 처지와 조건속에서 저자의 고민들이나 생각들이 고스런히 드러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대입해보게 만드는 표현들이다. 저 상황에서나 조건에서 분출하는 <슬픔>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서전적 글쓰기가 자신의 과거 아픈 기억(예를들면, 초등시절 성폭력), 가족이야기 (엄마나 남동생), 결혼후 기자의 삶(시어머니와의 관계 등)들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솔직은 기본이고 순간마다 생각을 정리하고 드러나는 마음을 느껴진다. 특히, 실업계고와 졸업후 짧은 직장생활은 은유작가의 경험을 보는 듯했는게, 시사인에서 함께 일한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여성이라는 공통점이외에 남성과 주류사회에서 차별화된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책속에서 반려동물, 페미니즘과 결혼생활등을 읽으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면 갈등이나 오해가 휠씬 줄어들텐데...

지금 제주도에 가고 있다. 한라산을 올라가려고 가는데, 책에 소개된 제주공드레카페는 다음번을 기약할 예정이다. 저런 카페주인이나 마음이 통하는 동네 식당 주인들의 마음 씀씀이는 소소하지만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연말에 읽었던 <슬픔의 방문>과 반수연작가의 <나는 바다를 삶아서>는 이란성쌍둥이 같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거리의 구세군에 지폐 한장을 수줍게 넣게 했고, 장애인들의 혐오하는 세상에 맞서 손을 잡아주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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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역사 - 지금껏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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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거나 쓰는 행위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이미지나 상징 등의 비물질적 요소를 포함하며, 소비의 형태 또한 사용상의 효용 이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물질이나 서비스를 욕망하는 순간부터 그것을 구매하고 즐기며 궁극적으로 폐기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상상력, 관계 맺기, 구별 짓기, 도덕, 이데올로기며 글로벌한 상품의 네트워크와 자원의 보존과 낭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소가 스며 있다.

_ 책을 펴내며 중 - P5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역사학이 주목하지 않았던 인간의 내밀한행위와 동기,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사회적 효과를 살피고자 한다. 소비는 삶의 편의성을 넘어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둘러싼 행위이며, 사람들은 그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한다. 그런데 소비는 사회의 일반적인 흐름을 거부하거나 그 견고한 구조에 균열을 내는 저항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_ 책을 펴내며 중 - P6

여성들은 종종 과부가 된 친구나 독신녀 말벗에게 재산의 일부와 자신이 소유한 괜찮은 물건을 몽땅 남기기도 했다. 이런 물건은 함께 쌓았던 우정과 추억의 증표로 건네졌는데, 그 이면에는 홀로 살아갈 여성에 대한 배려와 동지애가 배어 있다.

_ 가장 아끼던 물건은 과부가 된 친구에게 중 - P22

이를 두고 문화사가인 필리프 페로Philippe Perrot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단순하고 통일된 형태의 허식없는 옷이 등장한 것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_ 양복의 탄생 중 - P30

댄디즘은 부르주아 남성복이라는 거대한 조류를 거스르기에는 미미한저항이자 화려한 짧은 일탈이었다. 하지만 댄디즘이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않은 것은 아니었다. 댄디들이 정성 들여 받쳐 입었던 밝은 색깔의 조끼와여러 가지 방식으로 매었던 넥타이는 남성복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 두 가지는 어두운 단색 옷감으로 만들어진 수수한 남성복에 유일하게 화려한 색깔이 허용되는 아이템으로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되었다.

_ 양복의 탄생 중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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