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중국은 WTO 가입을 통해 비대칭적으로 이익을 얻었다. 중국은 WTO 가입 직전에 최혜국대우 조건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했는데, 그 이후 미국에서는 이전 수십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속도로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동시에 중국의 노동력은 글로벌 자본과세계 무역에 아주 빠르게 통합되었고, 그러면서 세계가 이미 득을 보아 온 인구변동의 상당한 순풍에 강도를 더했다. _ 2장 중국, 역사적 동원이 끝나다 중 - P52

첫째, 중국은 더 이상 세계적인 디스인플레이션의 원천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구변동의 압력과 루이스 전환점이 시사하는 바는, 지금까지 경제가 다룰 필요가 전혀 없었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압력이 현실화되고 무방비 상태의 우리를 포획하리라는 것이다.
둘째, 인구 고령화와 금융시장 통제가 끝남에 따라 저축이 감소하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논의했듯이, 자본수지가 경상수지를 다시 흑자로 돌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상반된여러 흐름, 즉 가계 부와 일대일로 지출, 중국 내 외국인 투자 등이 종합적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앞선 시기와 같이 중국의경상수지 흑자가 낳은 지속적인 자본 유입이 없다면, 미국과 세계 채권수익률(그리고 자산 가격)에서 과거와 같은 뒷받침은 역전될 것이다.
셋째, 노동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기술을 도입하는 능력은 중국 내에서 창출될 수 있는 사소하지 않은 혁신에 달려 있다. 이전해 줄 기술을 보유한 외국 기업의 도움이 없고 중국 기업의 외국 기업인수를 둘러싼 정치적인 민감함이 있는 상황에서는, 기술의 조직적인향상은 더 어려울 것이다. _ 2장 중국, 역사적 동원이 끝나다 중 - P73

따라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자신하는 예상은, 예를 들어 인도와 아프리카의 생산 증가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현저하게 느려져 연간 약1%에 머문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일본이 선구자였다. 일 본의 1999년 이후 성장률은 연평균 0.9%였다. 다른 선진국들은 2040년까지 향후 20년 동안 잘해야 이 기록과 대등하게 성장할 것이다. _ 3장 인구변동의 대역전과 성장에 드리운 그림자 중 - P91

20대는 소득이 낮고, 90세 이상까지 살아간다는 전망은 거의 모두에게 상상 너머에 있다. 저축하기에 좋은 시기도 아니다. 30대 이후로 은퇴까지는 자녀 양육에 이어 부모 돌봄의부담을 지게 된다. 대개 두 부담 사이에는 시차가 있지만, 일부의 경우곧바로 이어지기도 한다(Bauer and Sousa-Poza 2015, 2019), 자녀이건연로한 부모이건, 돌보는 일에는 시간과 노력, 돈이 든다.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감과 나중 일보다 앞닥친 일을 중시하게 되는 것을 고려하면,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보다 일단 연로한 부모를 부양하는 데 지출할 가능성이 더 크다. 달리 말하면, 생애주기 변화가 개인 부문 저축률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다. 또 생애주기 변화에 따라 노년층을 위한 적당한 생활과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공공 부문의 재정 부담이 코질 것이닼 _ 4장 의존과 치매, 다가오는 치매의 위기 중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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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핵심 주장은 인구변동과 세계화라는 두 변수가 지난 30년간 디플레이션 경향에 영향을 주었지만 앞으로 30년 정도는 두 추세가 역전하며 세계 주요 경제에 다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해지리라는 것이다. _ 서문 중 - P5

중국과 동유럽의 통합이 투입 가능한 노동력을 극적으로 증가시킨 유일한 요인은 아니었다. 세계 노동 공급은 다른 두 가지 인구변동 특성으로 더욱 증가했다. 그 두 가지는 모두 선진경제의 내부적인 것이었다. _ 1장 들어가며 - P15

두 가지 인구변동 특성 중 첫째는 이 시기에 부양인구비dependency ratio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부양인구비는 비생산가능인구(유소년 및 노년층)의 생산가능인구 대비 비율을 가리킨다. 둘째는 유급 일자리를 얻은 생산가능인구 중 여성의 비율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_ 1장 들어가며 - P16

그들은 이런 암울한 전망의 탓을 대체로 세계화와 제조업 생산기지의 외국 이전을 포함한해외로부터의 경쟁, 자국 내에서 비숙련 일자리를 차지하는 이민자들과의 경쟁, 자신들의 문제에 대응하지 않는 엘리트들의 실패로 돌렸다. 결과는 정치 포퓰리즘의 확산과 경제 자유주의의 위기였다. _ 1장 들어가며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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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한구석, ‘비워 두느니 만들어 놓은 게 분명한 좁은 모래밭, 정말 모래밖에 없는 ‘생짜‘ 모래밭에서도 아이들이 빼곡히 퍼질러 앉아 세상 더없이 진지한 흙공예에 골몰하고 있었고, 걸어서 올라갔다가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게 전부인, 장류진 작가의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에 등장해 유명세를 탄 ‘정체불명 판교 육교‘와 비슷한 통나무 구조물도 인기 폭발이었다. 저걸 오르내리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저렇게까지 즐거울 리가 없으므로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고 너무 없는 게 어이없어서 둘 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아이들도 혹시 그 어이없음이 신났던 걸까? _ 완주 와이드푸드 축제 중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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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창포 향에 에워싸여 축제장을 걷고 있으려니 단오를 정말 단오답게 ‘쇠고‘ 있는 것 같아 잔잔하게 행복했다.음식점은 단오 메뉴를, 지역 양조장은 ‘단오 에디션‘을 내놓고, 지역 정보지 《교차로》의 강릉판은 축제 정보를 빼곡히 담은 ‘단오 특별판‘을 발행하며, 시내 곳곳의 상점들은 ‘단오 맞이 바겐세일‘을 연다. 지역의 모든 것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단오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도 지역의 색깔을간직한 채로, 다른 지역 축제들이 자신이 홍보할 무엇인가를뽑아 올려 뿜어내기 위해 수원지의 역할에 열심이라면, 강릉단오제는 시민들의 마음이 저절로 흘러들어 머무는 저수지가아닐까. 이 저수지 안에서 우리는 넉넉히 푸근했고, 게다가 강릉 시내는 간판부터 조경까지 어찌나 ‘힙’ 하고 예쁜지 축제장과 시내를 오갈 때마다 마치 어느 축제 기획자의 꿈속과 어느도시 디자이너의 꿈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_ 강릉단오제 중 - P159

축제라기보다는 공무원들의 숙제 같았다. 악천후와 저예산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 분투하셨음은 알지만 태생부터가지자체와 별 관련 없는,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이었으니 잘못출제된 과제 아니었을까. 다른 축제들은 거칠지언정 ‘이 축제를 왜 여는가.’에 대해 뜨거운 진심의 대답이라도 갖고 있는반면, 젓가락 페스티벌에는 마지못함의 기운이 팽배했다. 문화도시로 선정된 그해에 일회성으로 열었다면 모두에게 행복했을 축제를 어영부영 꾸역꾸역 끌고 와야 했던 청주와 젓가락의 슬픈 인연도 이제는 끝낼 때가 됐지 않나 싶다. _ 청주 젓가락 페스티발 중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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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을 기대했는데 난데없이 ‘학뽕‘이 등장해 당황했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돼라.‘ 라는 메시지가 ‘공부=성적’의 K식 교육관과 만나 빚어내는 향기에서 씁쓸그윽하게 ‘K’를 느꼈다. 그래도 그 사이에서 빛난 주최 측의 조심성과 균형감각, 어딜 가든 우리를 굽어봐 주던 월출산, 신나게 축제를 즐기는 영암인들의 모습과 고장에 대한 자부심, 미처 다 먹고오지 못한 맛난 남도 음식들, 그리고 비………. 이 축제에는 그런 것들이 가득 있어 부렀다. _ 영암왕인문화축제 중 - P50

지방 소도시의 침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한때의 풍요를 누린 후 사람들이 빠져나간 탓에 유독 그림자가 크게 느껴지는 곳들이 있다. 처음 와 본 영산포가 그랬다. 일제가 수운을 이용한 곡물 수탈을 위해 일찌감치 등대를 설치할 만큼 번성했던 이곳은 옆 동네인 나주와 합쳐지며 그 하위 행정구역이 되었다. 그러니까 영산포는 ‘지방의 도심’도 아닌 ‘지방의 부도심‘, 이촌향도의 직격탄도 더 빨리 더 세게 맞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 날인데도 동네에서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범상치 않은 오라를 뿜는 홍엇집들이 늘어선 ‘600년 전통 홍어의 거리‘에도 오가는 발걸음이 없었다.(모두가 축제장에 몰려가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_ 나주 영산포홍어축제 중 - P67

따지고 보면 이 축제 자체가 이러한 영산포를 어떻게든 살리고 저떻게든 알리기 위한 발버둥인 셈이다.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유일한 특산물인 홍어를 두고 허송세월할 수도 없잖은가. 이런 걸 해 봤자 지역 재생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리없다는 걸 알지만 이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축제. 얼마나 요식이든 어쩔 수 없이, 하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야만 할 축제, 영산포에서 유독 진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슷한 딜레마를 갖고 있을 것이다. _ 나주 영산포홍어축제 중 - P68

한데 이 의령의 먹거리들이 꽤나 흥미로웠다. 대표 음식인 망개떡은 망개나무 잎에 싸서 찐 떡으로, 여러 유래 중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식량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 잎으로 싸매 흙이나 벌레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데다가 잎에 천연방부제 역할을 하는 성분까지 있어 오랜 기간 산에서 지내며 싸워야 했던 의병들에게 유용했다고.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안희재 선생이 독립군 식량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300여 년의 세월을 건너 임란 의병의 손에서 독립군의 손으로 건네진 떡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_ 의령 의병제전 중 - P75

애국은 적어도 우리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는 ‘구린‘ 것이었다.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해 온 대부분의 것들이 구렸고,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경우 대부분 뒤가 구렸다. 그랬기에 축제에 오기 전 김혼비는 마뜩잖았고 박태하는 다소 심술궂었다. 미안했다. 의병 개개인의 삶의결을 추상적 가치로서의 ‘애국‘으로 뭉뚱그려 버리는 게 K-민족주의라면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 어떤 진심들마저 ‘구림‘으로 뭉뚱그려 버린 게 우리가 한 일이었다. 애국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것도 어디 따로 뚝 떨어져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라 결국 우리와 비슷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싸움과 마음의 합이라는 걸 느낄 때 평소 ‘쿨함’으로 덮어 둔 마음 한 쪽이 열려 버린다. 이 분분하고 분연한 마음들을 어떻게 쿨하게만 넘길 수 있을까. _ 의령 의병제전 중 - P80

축제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만날 K는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같은 것들일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의병제전은 오히려 어떤 면에서 K를 넘어서는, 구시대적으로보일 수도 있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 어떤 ‘디그니티‘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의외의 곳에서 결국 K를 만난다. 재벌들의 생가를 돌면서 부자들의 기를 받는 투어라니. K-자본주의와 K-샤머니즘의 이 단단한 결합. 이걸 이길 K를 우리가 다른 축제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구 3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 의령이 찾은 진짜 살길은 의병이 아닌 재벌이었다. 자본은악, 의(義)는 선,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_ 의령 의병제전 중 - P88

그런 점에서 애초에 ‘아리랑이란 무엇인가.’ ‘왜 밀양 아리랑인가.’ 같은 질문을 놓지 못한 우리가 고지식하고 순진했다. 축제란, 아니 K-쇼란 본디 그런 본질적인 질문 대신 우리가 왜 짱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것을(관련 없을 것 같으면 ‘관련’의 의미를 무한 확장해서라도) 때려 넣어보여 주면 되는 것이었다. 부재한 철학은 중구난방 콘텐츠로, 중구난방 콘텐츠는 음향·조명·스케일을 최대치의 ‘고퀄‘로 뽑아내어 잘 커버하는 것이 K-쇼의 척도라면 ‘밀양강 오딧세이’는 예상을 훌쩍 넘는 양과 질로 흠잡을 구석 없는 쇼다. 축제 기간에 밀양에 갈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할 수도있겠다. K에게서 늘 배우는 교훈은 일관되게 일관성이 없으면일관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K에게 가장 아쉬운 점이면서 동시에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떤 힘이기도 한, ‘이렇게 까지’를 통해 가닿는 K-뚝심. _ 밀양 밀양아리랑대축제 중 - P104

술은 새콤하고 구수하면서 부드러워 잘도 넘어갔다. 유난히 싫은 것과 좋은 것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축제였고 덩달아 감정 기복도 극명했던 탓에 지쳤던 듯하다. 그런 상태로 장터에 앉아 맛있는 술을 나눠 마시고 있자니 어쩐지 "용서와 위로가 사랑으로 넘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 마음속에 여전히 걸려 있던 ‘어쩌라고‘와 ‘어쩌려고‘와 ‘어쩌자고‘ 들도 술과 함께 어쩔시구 자알, 넘어갔다. 어쩌면 이게 아리랑의 정신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토로이면서도 연가이면서도 흥이면서도 체념이기도 한. _ 밀양 밀양아리랑대축제 중 - P111

품바도 품바의 관객들도 같이 나이 들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세대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품바들은 다 어떻게 될까? 현재로서는 시대 단절적인 문화의 산물로 보이는 장터 품바들이 과연 세대를 건너서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다면 그때는 어떤 형태로 어떤 가치를 갖게 될까? 가치판단도 미래 예측도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다만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누구도 너무 멀리는 뒤떨어지지 않기를, 아무도 너무 갑자기는 외로워지지 않기를. _ 음성품바축제 중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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