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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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고지식하지 않다고 전적으로 장담할 수는 없는 법이야.
장담하면 고지식한 사람이 되니까 말이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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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대체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등장했다. 과학이 진정 믿을 만한 지식인가, 과학이 진리라는 것을 입증할 방법은무엇인가, 과학을 탐구하는 일은 어떤 효용성이 있는가 등등의 의심과 반론이 분분했다. 앞서 갈릴레오에서 보았듯이, 과학자들은 고대문헌이나 성경이 아니라 자연세계에 진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연세계를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수학적 설명과 직접 관찰하고경험한 지식이 바로 진리라고 주장했다. 과학이 믿을 만한 지식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과학자들이 추구한 방법은 수학과 실험이다. 수학적 법칙과 실험적 방법으로 무장한 과학은 결코 상식적이고, 직관적인 지식이 아니다. (p.216-7) _ 뉴턴 과학의 완성 중에서

18세기는 ‘뉴턴 과학‘의 성취가 맹위를 떨쳤다. 뉴턴 과학에 영향을 받은 것은 과학자들만이 아니었다. 원리의 초판에 핼리가 쓴 서문의 한 구절 "이성의 빛 속에서 무지의 구름, 마침내 과학으로 걷혔다"는 계몽사상가들을 고무시켰다. 그들에게 뉴턴 과학은 미신과 무지, 독단의 구름을 걷어내고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었다. 새로운 과학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을 깨어나게 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뉴턴 과학은 가설이나 독단을 배제하고 수학적·합리적·실험적 · 경험적 방법으로 우주의 질서를 찾을 수 있다는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p.232) _ 뉴턴 과학의 완성 중에서

새로운 과학의 등장으로 유럽인들이 자연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일어났다. 과학을 발견한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고 조작하고 변형할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객체이고,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주체이며, 그 사이를 매개하는 지식이 과학이었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 우월한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은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럽인들은 과감하게 자신들이 자연에 대한 주인이자 소유자라고 말했다. 동양인에서는 결코 생각할 수도 없는 자연관이었다. 자연을 지배한다거나 자연을 인간과 분리된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동양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 239-40) _ 유럽이 아닌 곳에서 바라보는 과학혁명 중에서

맥스웰의 방정식은 파동 방정식으로서 전자기의 물리적 실체가파동이며, 방정식에서 도출한 전자기파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빛이 전자기적 파동이라는 예견에 과학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뿐만 아니라 빛까지 자신의 전자기학으로 통합시켰다. 1888년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는 전자기파를 발견해 맥스웰의 이론을 입증했다. 우리가 보고 듣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전파는 맥스웰과 헤르츠의 업적이다. (p.301) _ 물질과 에너지의 과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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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한 상황에서 완성된 갈릴레오의 역학혁명은 천문학혁명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오한 문제를 해결했다. 실제 천문학은 역학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어서 역학이 해결되어야 천문학 혁명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학, 즉 힘과 운동에 관한 문제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갈릴레오는 상식을 뛰어넘어 근대적 사고에 도달했다. 그가 세상과 맞서 싸웠던 세 가지를 꼽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 교회 그리고 상식이었다. 갈릴레오는 사람들이 머릿속의 고정관념과 상식 때문에 눈이 있으되 진리를 보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근대과학은 갈릴레오의 천재성과 피나는 노력으로 맺어진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p.203) _ 갈릴레오의 죄와 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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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에 농업은 서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중국, 동남아시아, 중앙아메리카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했다. 각 지역에서는 밀과 쌀, 옥수수, 감자 등을 독자적으로 재배하며 새로운 농업기술을 빠르게 배우고 퍼뜨렸다.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인간은 생존의 해법을 비슷한 방향으로 풀어갔다. 그런데 한번 농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자연환경도, 인간도, 그 어떠한 것도 이전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인간은 야생의 것을 길들이면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이제 구석기시대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결국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는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는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p.34) _ 진화와 문명 중에서

24절기는 태양이 움직이는 계절적 주기를 24등분한 것을 말한다. 한 절기는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움직이는 간격에 따라 나눈 것으로 24절기의 간격은 15.2일이다. 두 절기에 해당하는 한 달은 1삭망월보다 길어서 어느 지점에 가면 계절과 달 사이의 어긋남이 1개월 이상 벌어지게 된다.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이달에 윤달을 넣어 태양년과 삭망월의 불일치를 해결했다. 이러한 중국의 태음태양력은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동시에 반영한 정교한 달력이었다. 이것은 바빌로니아의 태음력이나 이집트의 태양력보다 훨씬 과학적이었다고할 수 있다. (p.43) _ 진화와 문명 중에서

이후 피타고라스학파가 서양 과학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탈레스의 근원 물질이 물질적이라면, 피타고라스는 형체도 없는 수량적인 것에서 근원 물질을 찾았다. 이들이 제시한 수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성격을 띠지만, 자신의 신념을 극단적으로 밀고나가면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일을 해냈다. (p.54-5) _ 고대 문명의 대역진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무엇보다도 설득력이 있었다. 피타고라스학파나 플라톤의 철학이 추상적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경험세계와 잘 들어맞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부정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가 세계 밖 어딘가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세계는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고, 그 물질과 관련된 운동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론, 운동론, 우주론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근대과학을 배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대와 중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는 논리적으로타당한 부분이 많았다. 과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는 이유는 그의 이론 체계가 어떻게 깨지면서 과학혁명이 일어나는지를 탐색하기 위해서다. (p. 62-3) _ 고대문영의 대약진 중에서

그리스 과학이 수와 도형이라는 불변적 요소를 바탕으로 자연세계의 질서를 탐구했다면, 중국 과학은 음양오행이라는 관계론적 요소를 가지고 변화무쌍한 자연세계를 이해했다. (p.84-5) _ 고대문명의 대약진 중에서

이러한 이슬람 과학의 제도화는 11세기경 최고조에 다다랐다. 이슬람 사원과 궁정, 병원, 도서관, 학교, 천문관측소는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번창했던 이슬람과학도 서서히 쇠퇴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으로 사회가 분열되었고, 종교적으로는 보수화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잃어갔다. 이슬람 문명은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 아랍, 유럽 등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융합되었던 곳인데, 이슬람 종교가 점점 불관용적으로 엄격해지자 이슬람 과학의 활력이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과학자들을 지원했던 재정적 뒷받침마저 줄어들어 더는 이슬람 세계에서 창조적 과학 활동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p.109) _ 지식의 횃불, 이슬람 과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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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 역사와 문화로 이해하는 과학 인문학
정인경 지음 / 여문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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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과학 이후에 우리는 과학을 사실이라고 인식한다. 세계는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과학은 세계에 대한 사실을 말하며, 인간은 과학을 통해 세계를 더욱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과학은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과 같이 세계가 어떻게 있는지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과학은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사실)을 말할 뿐이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이렇게 사실과 가치가 분리되었다고 주장한 이래, 대부분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과학을 가치중립적인 지식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오늘날 서양의 근대과학을 배우는 우리도 이러한 서양 철학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과학은 단지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말이다. (p.14)_ 프롤로그 중에서

환경에 대한 고도의 적응력을 입증하는 직립보행이 바로 진화의 비밀을 푸는 첫 번째 열쇠였던 것이다. (p.26-7) _ 진화와 문명 중에서

350만 년 전에 나타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똑바로 걸었고, 200만년 전의 호모 하빌리스는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하빌리스로 진화하는 데는 150만 년 정도의 시간이걸렸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 20만 년 전쯤에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이렇게 인간이 진화하기까지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수많은 환경의 위험을 물리치고 살아남기 위해 진화했고, 그 과정에서 지구의 어떤 동물보다도 지적인 존재가 되었다. 생각하고, 말하고, 도구를 만들었던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역사는 이렇게 인간의 진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p.29) _ 진화와 문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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