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에 농업은 서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중국, 동남아시아, 중앙아메리카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했다. 각 지역에서는 밀과 쌀, 옥수수, 감자 등을 독자적으로 재배하며 새로운 농업기술을 빠르게 배우고 퍼뜨렸다.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인간은 생존의 해법을 비슷한 방향으로 풀어갔다. 그런데 한번 농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자연환경도, 인간도, 그 어떠한 것도 이전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인간은 야생의 것을 길들이면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이제 구석기시대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결국 인간은 문명을 건설하는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는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p.34) _ 진화와 문명 중에서
24절기는 태양이 움직이는 계절적 주기를 24등분한 것을 말한다. 한 절기는 태양이 황도를 따라 15도씩 움직이는 간격에 따라 나눈 것으로 24절기의 간격은 15.2일이다. 두 절기에 해당하는 한 달은 1삭망월보다 길어서 어느 지점에 가면 계절과 달 사이의 어긋남이 1개월 이상 벌어지게 된다.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이달에 윤달을 넣어 태양년과 삭망월의 불일치를 해결했다. 이러한 중국의 태음태양력은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동시에 반영한 정교한 달력이었다. 이것은 바빌로니아의 태음력이나 이집트의 태양력보다 훨씬 과학적이었다고할 수 있다. (p.43) _ 진화와 문명 중에서
이후 피타고라스학파가 서양 과학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탈레스의 근원 물질이 물질적이라면, 피타고라스는 형체도 없는 수량적인 것에서 근원 물질을 찾았다. 이들이 제시한 수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성격을 띠지만, 자신의 신념을 극단적으로 밀고나가면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일을 해냈다. (p.54-5) _ 고대 문명의 대역진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무엇보다도 설득력이 있었다. 피타고라스학파나 플라톤의 철학이 추상적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경험세계와 잘 들어맞았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부정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가 세계 밖 어딘가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세계는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고, 그 물질과 관련된 운동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론, 운동론, 우주론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근대과학을 배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대와 중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는 논리적으로타당한 부분이 많았다. 과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는 이유는 그의 이론 체계가 어떻게 깨지면서 과학혁명이 일어나는지를 탐색하기 위해서다. (p. 62-3) _ 고대문영의 대약진 중에서
그리스 과학이 수와 도형이라는 불변적 요소를 바탕으로 자연세계의 질서를 탐구했다면, 중국 과학은 음양오행이라는 관계론적 요소를 가지고 변화무쌍한 자연세계를 이해했다. (p.84-5) _ 고대문명의 대약진 중에서
이러한 이슬람 과학의 제도화는 11세기경 최고조에 다다랐다. 이슬람 사원과 궁정, 병원, 도서관, 학교, 천문관측소는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번창했던 이슬람과학도 서서히 쇠퇴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으로 사회가 분열되었고, 종교적으로는 보수화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잃어갔다. 이슬람 문명은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 아랍, 유럽 등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융합되었던 곳인데, 이슬람 종교가 점점 불관용적으로 엄격해지자 이슬람 과학의 활력이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과학자들을 지원했던 재정적 뒷받침마저 줄어들어 더는 이슬람 세계에서 창조적 과학 활동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p.109) _ 지식의 횃불, 이슬람 과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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