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선, 고립. 격리. 이는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개념이다. 인간은 감염병을 옮기는 주체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이해하기 훨씬 전부터, 심지어 그것을 하느님의 행위라고 여기기도 훨씬 전부터 이런 것을 실행해 왔다.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단계 이전부터 인간은 자신을 감염원으로부터 떨어져 있게 하는 전략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_ 8장 분필로 문에 십자가 그리기 중 - P165

이러한 근대적 도시에서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는 중앙 권위체에 의해 하향식으로 취해져야 했다. 그리고 성공을 거두려면 그 권위체에는 세 가지가 필요했다. 첫째는 시기적절하게 발병 사례를 파악한 다음 감염의 이동 방향을 확정 짓는 능력, 다음은 질병이 어떻게 전파되는지 (수인성전염인지, 공기를 통한 전염인지, 곤충을 매개로 한 전염인지) 이해해서 차단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알아내는 능력, 마지막으로 주민들이 그러한 방안에 확실히 따르도록 하는 수단이었다. 9장 분필로 문에 십자가 그리기 중 - P169

1918년 스페인독감이 신고 대상이 되고 범유행병이라는 사실이 인정되자마자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라는 비상수단이 동원됐다. 최소한 그럴 여력이 있는 나라는 그렇게했다. 학교와 극장, 예배 시설이 폐쇄되었고 대중교통의 사용도 제한되었으며 대중 집회는 금지됐다. 항구와 철도역에는 격리 조치가 내려져 환자를 가려내 병원으로 보냈고, 병원에서는 이들을 일반 환자와 분리 수용하기 위해 격리병동을 따로 마련했다. 또 공공정보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채기를 할 때는 수건을 사용하고 규칙적으로 손을 씻도록 했다. 이와 함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피하되 창문은 계속해서 열어 두도록 했다(세균이 덥고 습한 조건에서 증식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_ 8장 분필로 문에 십자가 그리기 중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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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름, 기행 - 제주를 두 번째 여행하는 당신을 위한 오름 40곳
손민호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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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는 일상에 치이고 속도에 떠밀리는 우리네가 아무 때고 기댈 수 있는 위안의 꿈이다. _ 삼매봉, 사라봉 중 - P322

여행기자로서 나는, 역사는 책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
역사는 현장에 있었다. 제주의 역사는 당연히 제주 땅에 있었다. 그역사는 여태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역사였다. 먼저 기록을 보자. _ 수산봉, 안오름 중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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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도 꼬박꼬박 오름을 올랐다 내려왔다. 제주올레 1코스 말미오름 정상에서 내다본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도가 눈앞에서 소처럼 누워 있었고 멀리서 아침햇살 받은 성산일출봉이 번뜩이고 있었다. 김영갑이 섬 동쪽 중산간의 오름밭을 일러주었다면 올레는 바다를마주 보고 선 오름을 가르쳐주었다. 하나 오름에 기대어 사는 제주 사람의 삶은 해안이나 내륙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들 가난했고 막막했다. 꼬닥꼬닥 제주올레를 걸으면서 오름에 얹힌 인연이 또 이렇게이어지는구나 생각했다. _ 들어가며 - P12

오름은 사람의 얼굴을 한 산이다. 잘나고 번듯한 저들이 아니라 못나고 후줄근한 우리가 비벼대고 사는 산이다. 한라산이 오롯이 우러러야 하는 신의 산이면, 한라산 자락을 따라 얼기설기 얹힌 오름은 우리네와 부대껴 땀내 흥건한 사람의 산이다. 오름은 지지리도 못난 우리네 산이다. 낮고 작아 보잘것없는 우리네 꼴이다. 산을 닮은 어느 늙은시인의 노래처럼,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신경림, 「산에대하여 부분). _ 들어가며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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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우주의 암흑물질이었다. 너무나 친밀하고 익숙한 나머지 공개적으로는 이야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공포를 낳았고 그 뒤에는 체념이 따랐다. 종교가 위안의 주요 원천이었다. 부모는 자신의 자녀 중 적어도 몇몇을 먼저 떠나보내는 데 익숙했다. 사람들은 죽음을지금과 아주 다르게 여겼다. 죽음은 주기적인 방문객이었다. 따라서 두려움도 덜했다. _ 2장 라이프니츠의 단자 중 - P73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의 유행병은 여러 지역에서 각각 발생한 것이 아니라 모두 지구 차원에서 하나가 확산된 것임이 분명해졌고, 이에 따라 단일 명칭에 합의해야할 필요가 생겼다. 이때 채택된 이름은 이미 당시 지구상의 최고 강대국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사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 그 범유행병은 스페인독감 (이스판카, 에스파뇰라, 라 그리프 에스파뇰, 디 스파니셰 그리페)*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역사적 오류는 영구불변으로 남게 되었다. _ 5장 11번 병 중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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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라 세계보건기구는 1946년 독립 기관으로 출범했다. 그때에는 이미 우생학의 위신이 추락한 상태였고, 세계보건기구는 헌장에 보건에 관한 철저히 평등주의적인 관점을 새겨 넣었다. 헌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선언한다.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는 것은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또는 사회적 조건의 구별 없이 만인이 가지는기본적 권리의 하나이다." _ 19장 모두를 위한 의료 중 - P435

어떤 이는 1890년대 러시아독감이라는 범유행병이냉소주의와 권태감이라는 세기말 느낌에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때 사망자가 100만 명이었는데 스페인독감은 적어도 그 5배 이상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존자가 바이러스 감염 후 증후군에 시달렸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아주 많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독감이 닥쳤을 때 겪었던, 마치 목숨을 건 복권놀이 같았던 그 곤혹스러운 무작위성을 그 뒤로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닥치는 대로 일어난 폭력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것이 우울증으로 이어졌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_ 21장 말랑콜리 뮤즈 중 - P466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다른 것으로부터 안전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죽음에 관한 한 우리 인간은 모두가 방벽이 없는 도시에 산다. 2 독감은 인간의 질병이 된 순간부터 인류의 역사를 빚기 시작했다. _ 1장 기침과 재치기 중 - P51

1781년 두 번째 독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하루에 3만 명이 앓아누웠다. 그 무렵 대다수 사람이 그 병을‘인플루엔자‘influenza라 부르고 있었다. 이런 이름을 처음만든 사람은 병의 원인을 별의 인력 혹은 기운‘influence 탓으로 돌린 14세기 이탈리아인이었는데, 이 단어는 여러 세기가 지나서야 유행어가 됐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만 말의 개념적 정박지는 어디론가 쓸려 가 버렸다. 마치 ‘멜랑콜리‘melancholy 나 ‘냉담한‘ phlegmatic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_ 1장 기침과 재치기 중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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