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따라 세계보건기구는 1946년 독립 기관으로 출범했다. 그때에는 이미 우생학의 위신이 추락한 상태였고, 세계보건기구는 헌장에 보건에 관한 철저히 평등주의적인 관점을 새겨 넣었다. 헌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선언한다.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는 것은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또는 사회적 조건의 구별 없이 만인이 가지는기본적 권리의 하나이다." _ 19장 모두를 위한 의료 중 - P435

어떤 이는 1890년대 러시아독감이라는 범유행병이냉소주의와 권태감이라는 세기말 느낌에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때 사망자가 100만 명이었는데 스페인독감은 적어도 그 5배 이상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존자가 바이러스 감염 후 증후군에 시달렸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아주 많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독감이 닥쳤을 때 겪었던, 마치 목숨을 건 복권놀이 같았던 그 곤혹스러운 무작위성을 그 뒤로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닥치는 대로 일어난 폭력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것이 우울증으로 이어졌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_ 21장 말랑콜리 뮤즈 중 - P466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다른 것으로부터 안전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죽음에 관한 한 우리 인간은 모두가 방벽이 없는 도시에 산다. 2 독감은 인간의 질병이 된 순간부터 인류의 역사를 빚기 시작했다. _ 1장 기침과 재치기 중 - P51

1781년 두 번째 독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하루에 3만 명이 앓아누웠다. 그 무렵 대다수 사람이 그 병을‘인플루엔자‘influenza라 부르고 있었다. 이런 이름을 처음만든 사람은 병의 원인을 별의 인력 혹은 기운‘influence 탓으로 돌린 14세기 이탈리아인이었는데, 이 단어는 여러 세기가 지나서야 유행어가 됐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만 말의 개념적 정박지는 어디론가 쓸려 가 버렸다. 마치 ‘멜랑콜리‘melancholy 나 ‘냉담한‘ phlegmatic이라는 단어가 그렇듯이. _ 1장 기침과 재치기 중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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