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트는 피클과 장아찌에는 없는 김치만의 제법에있다. 풀이다. 김치를 담글 때 보통 찹쌀풀을 쑤어 넣는다.
찹쌀가루를 물에 끓인 것을 식힌 후 넣는 것이다. 꼭 찹쌀풀일 필요는 없다. 밀가루풀도 된다. 쌀뜨물을 끓인 미음을 진하게 졸여도 된다. 핵심은 당연히 농축 탄수화물이다. 최소 조선시대 중반 이후에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기법이다. 임진왜란 이후 한국인이 고추를 먹기시작했기 때문이다. 고추는 균의 활동을 억제해 김치의 부패를 방지한다. - P130

한식은 구속과 자유를 오가지 않는다. 철저한 구속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 P155

국밥과 비빔밥이 천대받은 이유도, 인기를 끈 이유도같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내재된 밥상의 엄밀함이다.
엄밀해서 패스트푸드 취급을 받았고, 엄밀해 보이지 않아도 실은 엄밀해서 사랑받았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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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로부터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편하게 말하자면 ‘하이델베르크인‘이 발생했다. 하이델베르크인과 그들의 후손은 ‘인간‘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원형이자, 인간의 직계 조상을 하이델베르크인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한 상태다. 하이델베르크인은 세 계통의 후손을남겼다.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그리고 이 책의 독자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인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다. - P22

호모 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 바깥을 유랑하며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을 만났다. 한 조상을둔 근연종이기 때문에 번식도 가능했다. 오늘날 동아시아인의 유전체에는 대략 2% 안팎의 네안데르탈인 유래DNA가 있으며, 소량의 데니소바인 계통 DNA도 남아있다. 우리 한국인의 몸에 수치로는 작지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덕분에 인간은 비만, 당뇨, 탈모의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 P24

OECD 국가들의 총 인구가 14억 명이 안 된다는 사실은 식사란 즐거운 행위라는 관념이, 관념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현실을 말한다. - P38

2부 한식의 겉멋사람만 전설의 용병이 된 건 아니다. 쌀 자체도 무시무시해졌다. 한반도의 다양한 재래종 벼 품종은 원래도 병충해와 수해, 가뭄, 태풍에 유난히 끈기를 발휘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한국은 1970년대에 농업혁명을 일으켰다. 21세기 한국인은 나라가 선진국이 된 과정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대적인 농업혁명 없이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한국도마찬가지다. 한반도에서도 충분한 알곡을 맺는 벼를 연구한 끝에, 한국은 마침내 통일벼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 P47

시루떡, 팥시루 같은 음식은쌀로 만들었지만 밥은 아니다. 시루는 신라, 고구려, 백제가 한강 유역을 놓고 싸우던 삼국시대에 이르러서야 친숙한 물건이 된 무쇠 가마솥 이전에 쌀을 익혀 먹었던 추억의 흔적이다. - P61

한식을 가리키는 한국어에서 물의 양은 중요한 정도를 넘어, 거의 절대적이다. 수분은 밥넘김의 시녀이니까.
명확한 기록 근거는 없지만, 찌개와 찜은 둘 다 ‘찌다‘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찌다‘는 또 어디서 나왔을까. 이북 방언에 힌트가 있다. 북한에서는 찌개를 ‘지지개‘라고 한다. 북한 문화어에 따르면 지지듯이 지글지글졸여 끓이면 찌개가 된다. 국.탕에서 찌개를 거쳐 조림·찜으로의 변화는 ‘보글보글‘에서 ‘지글지글‘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그게 아니라면, ‘국물을 조금 붓고 끓여 익히다‘
라는 뜻의 ‘지지다‘도 찌개와 찜에 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 P78

진국이란 재료를 물이라는 매개체에 넣고 수십 시간동안 열을 가해, 세포 조직 속에 숨은 마지막 한 방울의미네랄과 콜라겐까지 강제로 소환해낸 ‘가난의 경제학‘이자 ‘희석의 경제학‘이다. 사골국은 소의 뼈마디가 구멍이 날 때까지 삶아 내 만든다. 뼈 속에 갇힌 영양분을 물에우려내 인구 부양력을 극대화하려는 처절한 시도다. 진국은 재료가 가진 영양을 무한히 희석하여 더 많은 입(食口)을 살려내야 했던 빈곤의 기록이자, 재료에 가해진 고문의 역사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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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은 1955년출범 당시부터 당 강령에 ‘복지국가‘를 내세웠다. 그리고 총선 공약에‘사회보장제도의 충실화‘와 ‘국민연금제도의 창설을 전면에 내걸었다. 기시는 국가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먹고사는 문제‘를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내에서 진보적인 입장이었던 미키 다케오가 정무조사회장(당의 정책과 법안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기구)을 맡아 공약을 총괄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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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차례의 선거를 계기로 영국은 단 몇 년 만에 복지국가로 바겪었고, 평상시에도 국가가 경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상식이 됐다. 시민들은 귀족, 자산가, 기업가,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가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만든 정당이 주도해 국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대규모 사회 변화가 폭력을 동반한 혁명이 아닌, 평화로운 선거로 가능하다는 데서 민주주의의 힘을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1945년 총선이 영국의 현대를 만들어 낸선거로 평가받는 이유다. - P34

일견 모순된 아베 신조의 정책은 사실 자민당 노선을 집약한 것에 가깝다. 자민당은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면서 재분배에도 적잖이신경 썼다. 다른 한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전쟁과 군대를포기한 일본을 바꾸려고 했다. 지금의 일본을 이해하려면 1955년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합당으로 출범한 뒤, 1958년 총선을 계기로 장기 집권한 자민당에 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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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민주주의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다. 선거가 정당들이 건전하게 경쟁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까지 주의 깊게 반영되는 ‘민주주의의 꽃‘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의 과정에서 선거는 바람직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핵심수단이다. 반면 선거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권력의 폭주를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부여할 때 ‘선거에서확인된 국민의 지지‘는 강력한 명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권력의 억압뿐만 아니라 대중의 열광이 함께한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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