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다주에서 돌아온 뒤 나는 이런 질문들을 몇 달간 계속 곱씹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생활에 별 지장 없는 금속을 지하에서 채굴하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니! 실제로 필요한 물질들을 채굴하려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가 실제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물질은 무엇일까? _ 프롤로그 중 - P13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일상용품이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이토록 복잡한 제조 과정을 단 한 사람이 맡거나, 더 나아가 통제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대에 집필된 <나, 연필>은 특히 두 번째 교훈을 강조한다.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은 이 에세이를 예로 들면서 소련 경제학자들의 주장, 즉 중앙위원회에서 경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잘못됐다고 반격했다._ 프롤로그 중 - P21
<2024년 매월 한권씩 시집을 읽자>는 다딤으로 4월 마지막 주문한 책이 <니들의시간>이다. 1. 1월, 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2. 2월,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3. 3월, 순한 먼지들의 책방 4. 4월, 니들의 시간 한 눈으로 책을 보고, 한 눈으로 자신을 생각하면서 읽어내리는 시집이다. 희망의 근거나 조각들을 만나는 방식을 고민하게 만들어버렸다. 5월에는 어느 시집을 만날지 기대된다.
상복(喪服)묵은눈이 밤새 마술처럼 사라진 것을 본 적이 있는가어제오늘 내린 눈도 아니고 도둑눈 가랑눈 떡눈 진눈눈이란 눈들이 한자리 차지하고 쇠눈 숫눈 생눈 사태눈겨우내 쌓이고 얼어 돌탑이 된 얼음덩이가한순간에 녹아버린 것을 본 적이 있는가두부 속으로 들어간 혀처럼 눈 속으로 슬며시 잠입한뜨거운 입김들의 깊숙한 혁명을아이스크림 한 입 베어 먹고 언제 그랬냐는 듯시치미 떼고 언덕배기로 냅다 달리는눈물투성이 밀사들,꽝꽝 얼어붙은 눈은 속에서부터 스러진다층층이 쌓여온 눈은 밑에서부터 삭아내린다어느 날 갑자기 폭삭 주저앉는다 그제야여기저기서 상복 벗어 던지는 소리들판이 새파랗게 술렁인다봄이 일어선다 - P112
볼링공 굴리듯 흩어진 짱돌 살살 굴려주던 퇴근길 넥타이들처럼, 또다른 눈물들이 받쳐주고 올라서며 저물녘 책들이시를 쓰는데, 부서진 미래,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끝없이열리는 문들,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태풍보다 먼저 올라온 비에 매화나무는 젖는데, 지하도는 물에 잠기는데, 집이 떠내려가는데, 구명조끼도 없는들이 울부짖으며,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디디의 우산, 아부알리 죽지 마, 인간의 시간,책 한권 없는 일곱살 아이가 언니 오빠 미술책 읽듯 어머니 학교, 아배 생각, 씨앗 하나가 오이가 되기까지 나는 여기가 좋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오래된 미래......_ 또다른 눈물 중 - P123
평범한 아버지가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나간다! 그것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는 압력과 세태가 강해지고 있는 일본에서일종의 포인트가 되는 듯했다. - P74
생활 속에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뛰어난 귀를 가진 사람은 할머니처럼 평범한 곳에 있다. 연주자 또한 평범한 곳에 있어도 되지 않을까? - P80
파르스름한 날벌레의 다리가 읽고 간페이지를 다시 읽었다‘책과 학교 없이도 생각을 배웠다‘는‘슬픈 내 인생의 처음부터‘호미가 읽는다띄어쓰기가 규칙적인 콩밭과 고추밭낫이 읽는다 소루쟁이와 바랭이 방동사니풀밭은 띄어쓰기 안 한 중세의 문장여러번 지나가야 독해가 된다밭의 새싹과 마을의 말소리가 오랜 가르침이었다는내 학문은 이제 시작이다 - 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