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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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숨이 끊어진 아전의 몸을 으깨던 매와 보리쌀로 죽을 끓여 먹었을 그의 식솔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밝은 청정수를 들이켜고 싶었다. - P37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헛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 P41

그 저녁에도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 - P65

나는 겨우 말했다. 나는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온 바다를 송장이 뒤덮어도, 그 많은 죽음들이 개별적인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죽으면 어디가 먼저 썩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그 썩음에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은 자는 나의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모든 죽은 자는 모든 산 자의 적인 듯도 싶었다. 내 몸은여진의 죽은 몸 앞에서 작게 움츠러들었다. - P105

나는 겨우 알았다. 임금은 수군 통제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명량 싸움의 결과가 임금은 두려운 것이다. 수영 안에 혹시라도 배설을 감추어놓고 역모의 군사라도 기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것이 임금의 조바심이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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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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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었다.

_ 칼의 울음 중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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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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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로우면 자기를 나눠요. 외롭고 싶다, 혼자 있고 싶다는 것은 자기를 확인하는 굉장히 안온한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고독도 있습니다. 버려짐의 고독이에요. 우리는 무엇에 의해서 버려지기 마련입니다. 다들 실연의 아픔이 있잖아요? 실연을 당하면 왜 이렇게 아플까요. 근본적으로 보면 버려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버려짐은 다름 아닌 집 없음이에요. 갈 곳 없음이에요. 저는 실연을 한다음에 밖에 나가면 갈 데가 없었어요. 어딜 가야지 내가 안심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갈 곳 없음이라는 말아세요? ‘당신이 떠나간 이후에 나는 어디에도 갈 수 없네‘라는 유행가도 있잖아요. - P354

인테리어를 마주 보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잘 훈련되어서 절망을 이기는 법도 알죠. ‘이딴 절망하느니 더 열심히살자. 아무 생각 말고 잠이나 자자‘ 다음 날 나가서 터 일심히 일하고 또 물건을 사 와서 채울 겁니다. 즉, 내부 공간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쉴 곳이 없어요. 쉴 곳이 없으면 자기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만날 수 없으면 타자에 대한 꿈도 안 생겨요.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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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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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난중잡록」). - P356

이순신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졌다. 통곡이 바다를 덮썼다. 이날 전쟁은 끝났다.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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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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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 년 동안 린과 나는 누가 더 싼, 그러면서도 마실 만한브랜드의 와인을 구해오느냐 하는 별것 아닌 시합을 벌이고 있다. 병에 든 와인 말고 저렴한 박스 와인이 우리의 주종이고. 그런 것을 구하는 게 여의치 않으면 싼 미국 와인을 선택한다. 상표에 가짜 현대미술 작품이나 갈퀴를 든 포도주 상인이 그려진 것들로. 이따금은 보르도산이나 피노누아에 서슴없이 큰돈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누구나 딱 보면 아는 지역이나 연도가 없는 와인을 고집한다. 그저 단순히 ‘레드‘ ‘화이트‘ 아니면 한번씩 ‘핑크’ 와인이라 불리는 것들. - P199

"몰라." 그녀는 말한다. "아마 그랬겠지. 아버지는 특별히 그일을 어머니에게 숨기려고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특별히 그 일에 대해 아버지하고 대면하려 들지 않았어. 나는 그것 때문에 어머니를 미워했었어. 아버지하고 대면하려 들지 않는 어머니 태도 때문에." - P201

"결혼을 깨는 것은 두 사람이야, 허니. 나는 그 두 사람 중 하나였고." - P208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내게 허락하는 동안 그녀를 곁에 안고, 그 곳에 린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둘은 다만 멀리서 지켜본다. 호세의 입술을, 갑작스레 치몰리는그의 이맛살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 P215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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