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 이문영 장편소설
이문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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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되지 못한 그의 이야기들이 이력서 빈칸을 비집고 들어가려다 곧고 매끄러운 실선에 막혀 무음의 소리를 질렀다.
그에게 영원은 그 실선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끝나지 않고 뻗으며 그가 달려가는 곳마다 먼저 도착해앞을 가로막는 바리케이드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만큼 시간을 쪼개며 살아온 그의 애씀을 이력서는 학력과 경력의 틈에 끼워주지 않았다. 그는 애를 쓰고 이력서를 쓸수록 묶어졌다. - P18

너무 전형적이어서 뻔한 가난은, 요즘 유행에도 뒤떨어진 불행은, 공정과 능력 같은 단어들에게도 외면받는 청춘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묽어지고 있을뿐이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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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 이문영 장편소설
이문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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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묽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가는 낮과 밤을 쫓아가려고 따다다다다 액셀을 당기다 보면 하루하루 묽어지기 마련이었다. 피부가 쓸리고 색이빠지면서 윤곽선이 뭉개진다. 너무 싱거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농도가 되고 마는 것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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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삶창시선 50
이종형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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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집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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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 시에시선 29
김인호 지음 / 시와에세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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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

구붓하여 구순하다
강산이 스스로 그러하여
날 선 마음과 마을을 적신다 - P10

동네마다 한날한시 제삿날이 많은 까닭은 큰 산 아래산다는 죄로 여순 때 동란 때 억울한 떼죽음이 많아 부모형제 억울한 죽음이 원통해 그대로 죽을 수 없어 눈 부릅뜨고 이 악물고 살다 보니 그냥 장수마을이 아니라 ‘죽지못해‘가 따라붙은 장수마을이 된 거란다

_ 죽지 못해 장수마을 중 - P66

지난봄 산동마을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던 산수유꽃
꽉꽉 여물어 다시 한번 빠알간 꽃 피워냈다.
영롱한 산수유 붉은 꽃잎 한 잎이라도 날릴세라
고샅마다 꽃잎을 모으는 농부들 손길 조심스럽다
돌담길 고양이들 산수유 붉은 꽃그늘에 조을고 있는
안개 걷힌 상위마을 아침
지금 구례 산동은 또 한 번의 봄
붉은 봄날이다

_ 산동의 봄은 두 번이다 중 - P84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반야도 좋았으나
노고단에서 손에 만져질 듯 펼쳐진 반야도 좋았으나
산동 지초봉에서 바라보는 여명의 반야가 그중 좋았다

‘악아, 넘어질라‘

급하게 내달리는 능선들을 다독이는 부드러운 손길
지리가 어머니의 산인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반야의 저 지극함이여

_ 지초봉 중 - P118

모진 세월 쉼 없이 흘러온 어머니 사진 속 젊은 날 가르마처럼 단정한 강의 길 산굽이굽이마다 피워 올린 골안개 미소로 짐승들 거친 숨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바다에 닿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순정한 강을 바라보는 산정의 아침이면 갓 태어난 아가의 순한 마음 되는 나는 저강의 영원한 숭배자다

_ 나는 저 강의 숭배자다 중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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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여름 에디션) -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윤가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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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좀 더 자신 있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더 많이 응원해줘야겠다. 비 어그레시브! 비비 어그레시브! - P25

어른이 되고 특히 글 쓰는 일을 하게 되면서, 어쩐지 점점 더 겁내고 움츠러드는 때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용감한 사람들의 다양한 말실수 일화를 더 자주 떠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도 다시 그런 마음들이 피어나면 좋겠다. 잘 몰라도 용감하게 도전해보는 마음. 틀리면 다시 배우고 익히려는 단단한 마음. 실수를 실험으로, 실패를 실현으로 바꾸는 용감무쌍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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