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
구붓하여 구순하다 강산이 스스로 그러하여 날 선 마음과 마을을 적신다 - P10
동네마다 한날한시 제삿날이 많은 까닭은 큰 산 아래산다는 죄로 여순 때 동란 때 억울한 떼죽음이 많아 부모형제 억울한 죽음이 원통해 그대로 죽을 수 없어 눈 부릅뜨고 이 악물고 살다 보니 그냥 장수마을이 아니라 ‘죽지못해‘가 따라붙은 장수마을이 된 거란다
_ 죽지 못해 장수마을 중 - P66
지난봄 산동마을을 온통 노랗게 물들였던 산수유꽃 꽉꽉 여물어 다시 한번 빠알간 꽃 피워냈다. 영롱한 산수유 붉은 꽃잎 한 잎이라도 날릴세라 고샅마다 꽃잎을 모으는 농부들 손길 조심스럽다 돌담길 고양이들 산수유 붉은 꽃그늘에 조을고 있는 안개 걷힌 상위마을 아침 지금 구례 산동은 또 한 번의 봄 붉은 봄날이다
_ 산동의 봄은 두 번이다 중 - P84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반야도 좋았으나 노고단에서 손에 만져질 듯 펼쳐진 반야도 좋았으나 산동 지초봉에서 바라보는 여명의 반야가 그중 좋았다
‘악아, 넘어질라‘
급하게 내달리는 능선들을 다독이는 부드러운 손길 지리가 어머니의 산인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반야의 저 지극함이여
_ 지초봉 중 - P118
모진 세월 쉼 없이 흘러온 어머니 사진 속 젊은 날 가르마처럼 단정한 강의 길 산굽이굽이마다 피워 올린 골안개 미소로 짐승들 거친 숨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바다에 닿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순정한 강을 바라보는 산정의 아침이면 갓 태어난 아가의 순한 마음 되는 나는 저강의 영원한 숭배자다
_ 나는 저 강의 숭배자다 중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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