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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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교양인이란 항상 교양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순전히 교양을 쌓겠다는 그 목적만으로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p.115~6)

오, 내 생활의 모든 영역에 빈틈없이 퍼져 있는 느림 속의 재빠름이여, 그에 반하여 내 광범위한 근면함을 온통 장악한 나태함이여. (p.181)

그는 산책을 한다. 왜,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할 일이 없고 충돌할 사람도 없고 집어 던질 것도 없는 이가 왜 하필이면 그 자신이란 말인가?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습기와 힘이 조용히 통곡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의 영혼은 육체를 혹사하고 싶은 갈망으로 떨린다. (p.190)

여기서 특히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가 이런 이상한 실험, 연습, 장난스러운 테스트와 연구를 할 만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걱정거리와 경제적인 문제 등을 안심하고 떠맡길 아내를 가질 정도로 행운아였다.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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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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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두드러지는 점이라고는 아주 심하게, 거의 과도할 정도로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 나는무수한 인간들 중 하나이며, 바로 그 점을 나 스스로 기이하게 여긴다. 나는 무수한 인간들 자체를 기이하게 여겨서 항상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p.26-7)

나는 별을 사랑하고, 달은 내 은밀한 친구입니다. 내 위에 있는 것은 하늘이지요. 살아 있는 한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대지에 두발을 딛고 서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 입장입니다. 시간은나에게 농담을 걸고, 나는 시간과 장난을 칩니다. 나는 근사한 대화거리를 생각해낼 능력이 없습니다. 낮과 밤은 내 동반자입니다. 아침과 저녁은 나와 절친합니다. 이 정도로 마치고 당신에게 작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가난한 시인으로부터. (p.76)

사람들은 그를 모방했지만 그만이 가진 독특함은 따라할 수가 없었다. 여담이지만 모방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모사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위대한 가치는 오직 본연의 특색에서만 유래할 따름이다.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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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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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가난하고 고독한 신세를 경험해본 자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타인의 가난과 고독을 더 잘 이해한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 타인의 굴욕, 타인의 고통, 타인의 무력함, 타인의 죽음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므로 최소한 타인을 이해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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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정원, 밀밭의 식탁
이언화 지음 / 남해의봄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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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으면 되돌아가거나 스스로 길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p.27)

봄꽃은 대부분 독성이 없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p.38)

시골에 살게 되면 진달래술을 한 번이라도 빚어 보고 싶었습니다. 술 효모와 빵 효모는 호환되거든요. 술은 빵을 발효시키고 빵은 술을 빚을 수 있답니다..(p.44)

빵긋은 여행자를 위한 마을의 마음입니다. 부유하는 가난하는 배웠는 못배웠든 건강하든 아프든 어리든 늙든 한자리에서 나란히 빵과 음식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날 그 시간만큼은 몸도 삶도 굶주림이 없길 바랍니다. 아무리 외롭고 어려워도 나란히, 마주보며 갓 구운 빵과 향기로운 차를 나눌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조금은 힘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식탁을 차린 이도 다시금 힘을 내지 않을까. (p.79)

지역이 같더라도생산자와 흙의 성질에 따라 확연히달라지는 풍미! 우리 농가밀빵이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p.117)

하지만 문헌상으로만 존재할 뿐 실체를 확인할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던 중에 어느 정미소에서 토종밀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밀 보급종인 금강밀과 달리 토종밀로 구운 빵은 납작하지만 맛이 좋았습니다. 바로 ‘앉은뱅이밀‘ 입니다. 옛사람들은 키가 작아 그리 불렀다는데 농업기술원에 등재된 품종은 아닙니다. (p.132)

추운 곳이 따뜻한 곳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훈훈하게 만든다는, 떨어져 있으면 사람과 사람이 더 가까워진다는 알래스카의 얘기를 에스키모들이 미치오의 아내에게 귀띔합니다.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설원에서 태어나는 카리부 사슴의 새끼나 영하 60℃ 추위 속에서도 즐겁게 지저귀는 검은방울새의 노래처럼 극한의 차가움마저 품어 안는 생명의 따뜻함.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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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1 - 역사평설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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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모문룡을 잘 대접하고 그를 도와 후금과싸우는 것이었다. 요컨대 명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조선을 이용하여 후금을 견제하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은 그 과정에서 기우는 제국‘ 명의 궤도 속으로 더 깊숙이 빨려들어가는 상황을 맞게 된다. (p.51)

이괄의 난 이후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어영군과 총융군을 창설하고 남한산성과 강화도를 정비하는 데 온 신경을 기울였다. 하지만 도성과 수도권 방어에만 치중하는 와중에 적의 주요 침입로인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의 방어는 몹시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이괄의난 이후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정권 안보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가 안보의 기반은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맞게 된다. 그것은 분명 당시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던 그들의 한계일 수밖에 없었다. (p.81)

1626년 인조는 "작년 태감들이 사신으로 와서 온 나라가 비로 쓴 것과 같았다"고 통탄했다. 요컨대 ‘은 먹는 하마’이자 ‘최악의 약탈자‘들에게 순순히 은과 인삼을 내주어야 했던 것은 인조대 조선이 안고 있던 ‘친명의 질곡‘ 이었던 셈이다. (p.90)

대동법은 광해군 즉위 직후 선혜지법宣惠之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실시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시 지역이 경기도에만 한정된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저런 반대에 밀려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p.92)

조선은 정탐을 통해 누르하치의 아들들 가운데홍타이지가 조선에 대해 강경파이고 다이샨이 온건파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p.151)

홍타이지는 조선 정벌을 미약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즉위 무렵 홍타이지는 명목상으로는 칸이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형들과 권력을 분점하고 연정을 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사촌형 아민은 홍타이지 추대에 반발하여 자신의 기旗를 이끌고 독립하려고 시도했다.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하면 홍타이지가 조선을 치러 가는 원정군 사령관으로 아민을 임명한 것은 시사적이다. 아민에게 원정의 모든 책임을 지움으로써 그의 충성심을 시험할 수 있고,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정치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아민은 원정 도중 홍타이지가 제시했던 지침과는 배치되는 독단적인 행보를 보임으로써 홍타이지의 ‘기대’에 부응한 바 있다. (p.155)

강화도로 옮겨가면서 조정은 임진강을 포함한 다른 지역의 방어에는 제대로 신경쓸 수 없었다. 평안도와 황해도를 포함하여 한강 이북지역의 백성들은 후금군의 칼날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사실상 정권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지켜야만 했다. (p.164)

이제 후금이 조선의 형이 되고 조선은 후금의 아우가 되기로 맹세했다. 인조반정이 성공했던 직후 ‘오랑캐’를 정벌하여 명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내세웠던 ‘이상‘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 ‘오랑캐’를 ‘형‘으로섬겨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p.174)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양성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다. 진정으로 안민安民, 양병養兵의 의지가 있었다면 궁가, 훈신, 공신들이 육지와 바다의 이권을 독점하고 있던 구조를 혁파시켰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익으로 국가 재정을 보충했어야 했다. 하지만 인조 정권은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한계였다. (p.208)

1629년 무렵 공허지국 조선은 정면에서는 명과 후금의 압박을 피하고 배후에서는 일본까지 다독여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p.229)

요컨대 이신들까지 포용할줄 알았던 홍타이지는 탁월했고, 사람과 대국을 볼 줄 몰랐던 숭정제는 어리석었다. 지도자의 국량局量의 차이가 결국 후금과 명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이다. 원숭환의 죽음과 이신들의 존재를 돌아보며 자멸한 왕조 명이 던지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p.253)

조선 또한 명과 후금의 대결 상황에서 수군 문제가 갖는 중요성을잘 알고 있었다. 후금의 강요대로 배나 수군을 제공할 경우, 가도가곧바로 위험에 처하고 명의 내지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후금에배를 빌려주는 것은 부모의 나라에 비수를 꽂는 일이었다. 1631년 6월, 배 때문에 명과 후금 모두로부터 구애받고 있던 조선의 고민이깊어지고 있었다. (p.297)

1632년 무렵까지 조선이 취한 대외정책은 일견 절묘했다. 명과 후금 모두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은 삼국관계에서 독립변수가 아니었다. 명과 후금 두 강국 사이에 끼여 있는 약소국이자 종속변수‘ 였다. (p.335)

강학년의 거침없는 비판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포악한 자가 포악한 자를 갈아치웠다(以暴易暴)는 표현은 충격적이었다. 인조반정의 정당성, 나아가 인조 정권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상소 내용이 알려진 직후, 조정은그야말로 뒤집어졌다. 강학년을 죽이고 강화도에 있는 광해군까지 죽여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타났다. (p.373)

과거의 국서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권세가 강한 신료들을 조심하라며 조선의 내정을 걱정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인들의 권세가 너무 커졌다‘고 했던 인조의 푸념이 어느새 홍타이지의 귀에까지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금은 이제 조선 내정에 ‘충고‘까지 하려고 덤비고 있었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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