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직전, 조선은 이렇게 ‘야나가와 이켄‘을 계기로 일본과의 관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정묘호란 이후 후금 문제에 만주로 매달려왔던 상황에 또 다른 난제가 추가된 것이다. 인조와 조정신료들은 서북과 동남, 양쪽에서 위협받고 있는 조선의 냉혹한 지정학적 현실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후금의 위협을 의식하여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부심해야만 했다. 이래저래 일본에 대한 조선의 대응은 더욱 더 유화적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p.27)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다. 조선이 홍타이지의 요구대로 볼모를 보내지 않는 이상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전쟁이 터지면 강화도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었던 조선, 그나마 그 계획조차 이미 청에 읽혀버린 조선의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 (p.51)
‘오랑캐를 타오르는 불길처럼 여겨 겁먹고 두려워하면서도’ 청과의 화친론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조선은 이렇게 군신 상하가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상태에서 전쟁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p.79)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아무리 참혹해도 포위된 산성에서 조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적과 결전을 벌일 능력이 없는 데다화친을 이룰 전망도 불투명한 처지가 되자 신료들은 다른 곳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시도했다. 1월8일, 예조는 온조왕에 대한 제사를 다시 지내자고 청했다. (p.148-9)
죄가 있으면 치고, 죄를 뉘우치면 용서하는 것이 대국의 도리입니다. 정묘년의 맹약을 생각하고 생령을 불쌍히 여겨 소방에게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하지만 대국이 용서하지 않고 기어이 병력으로 추궁하려한다면 소방은 스스로 죽음을 기약할 뿐입니다. (p.161)
조선의 입장에서는 사방이 온통 캄캄할 뿐이었다. 강화도 함락 소식은 절망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최명길 등은 국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인조의 출성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강화도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남한산성도 무너지고 있었다. (p.214)
청은 다양한 항복 조건을 통해 조선에 이중 삼중의 그물을 쳐놓았다. 조건‘을 따를 경우 인조는 왕위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인조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홍타이지는 조유문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인조에 대한 협박을 빼놓지 않았다. ‘그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는데, 짐이 다시 살려주었다. 짐은 망해가던 그대의 종사를 온전하게 하고, 이미 잃었던 그대의 처자를 완전하게 해주었다. 그대는 마땅히 국가를 다시 일으켜준 은혜를 생각하라. 뒷날 자자손손까지 신의를 어기지 않도록 한다면 나라가 영원히 안정될 것이다. (p.219)
가도의 붕괴는 조선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있던 명의 분신‘이자 충성의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가도에 상륙한조선군이 살육과 약탈에 가담했던 것은 기존 조명관계의 파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조선이 ‘새로운 상국‘ 청에게 서서히 길들여져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p.246)
덕이 부족한 내가 왕위에 있은 지 15년에 오직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뜻밖의 화를 만나 외로운 성에서 포위당한 채 봄을 맞았다. 나는 지금해진 갖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 것이 일반 천민과 다름이 없고,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은 천성인데, 지금 두 아들과 두 며느리를 모두 북쪽으로 떠나보냈다. 돌아보건대 백성을 기르는 자리에 있으면서 나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모든 백성에게 화를 끼쳤다. 군사들은 전장의 원혼이 되게 했고, 죄 없는 백성들은 모두 포로가 되게 했고, 아비는 자식을 보호하지 못하고 지아비는 지어미를 보호하지 못하게 하여 가슴을 치고 하늘에 호소하게 했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이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머금고 오장이 에는 듯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p.252)
소현이 심양에서 보낸 세월은 명청교체明淸交替‘가 확실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던 시간들이었다. 조선에서는 청을 여전히 ‘오랑캐"라며 애써 무시하고 있지만, 심양은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를 뿌리째 바꿔가고 있던 ‘새로운 제국의수도였다. 소현은 그 심양에서도 핵심부에 머물며 세상의 변화를 목도했던 셈이다.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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