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을 계기로 조선의 ‘주적主敵은 일본에서 청으로 바뀌었다. 일본은 이제 조선의 ‘원수‘가 아닌 ‘우방‘으로 변신한다. 그 근본적인배경은 무엇일까?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일본군을 피해 의주까지 파천했지만,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치욕은 겪지 않았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달랐다. 삼전도에서 청의 홍타이지에게 세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겪었다. 바로 거기에 적개심이 역전되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요컨대 대청인식과 대일 인식은 각기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 속에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특히 두 나라의 조선에 대한 압박 강도에 따라 서로 길항하면서 변화해왔던 셈이다. (p.331-3)